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 이장미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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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 밑줄 쫙 그었던 그때로부터 (몸은 컸지만, 마음은 그대로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회사일이 힘들다고 꼬질꼬질하게 울지 않는 그런 다섯 살이나 더 먹은 내가 되었다. 작가는 아니 엄마는, 다시 딸 위녕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면서 딸에게 주는 레시피라니. 음식말이야? 웃기지만, 난 정말 레시피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책 속에 있는 무언가를 해먹어 보기에는 까슬한 모래알들이 입안을 맴돌아 좀처럼 삼켜지질 않았던 날들이 이어졌다. 더디지만 분명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다가 어느 순간 다시 쿵,하고 내려앉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기에 조금 아껴둬야지 생각도 했(었)다.

 

 

가벼이 써나가는 글 속에서 어쩌면 너를 괴롭히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그 일들, 그 단어, 그 눈빛이 떠오를지도 몰라. 아프겠지만 그것을 잡아라. 오늘이 아니어도 좋아. 너무 아프거든 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명심해라. 우리가 회피하고, 무시하고, 도망치고 싶어 하는 바로 그것이 실은 우리가 진정 풀어야 할 숙제이고 넘어야 할 언덕이며, 결국은 우리를 진정으로 성장시켜주는 열쇠임을 말이야. 얼핏 가시투성이로 보이는 그 껍질 속에 실은 성장의 열매가 있다는 것을 말이야. p18-19

 

 

산다는 것도 그래. 걷는 것과 같아. 그냥 걸으면 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돼. 그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그 순간을 가장 의미 있게, 그 순간을 가장 어여쁘고 가장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만들면 돼. p27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무도 없는 휴일에도, 너 자신에게 가장 아름답고 좋은 옷을 입혀주거라. () 무릎이 나오고 고무줄이 하염없이 늘어나는 낡은 트레이닝복은 이제 쓰레기통으로 보내거라. 그날의 네 일상에 알맞은 복장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고르고 양말까지 색깔 맞춰 신고 청결하게 하고 머리를 드라이어로 잘 다듬어라. 언제 어디서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몸을 돌보아야 해. 이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p35

 

 

모든 것이 처음부터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쳐져 있는 것만 같이 느껴져서,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이 모든 일이 하나도 수습되지 않을 듯한 날이 있다는 걸. p66

 

 

 

나는 분명, 작가의 글 속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뜻한 음식과 와인 혹은 맥주 혹은 소주를 생각하며 나도 치어스-를 했다는 것 또한.

 

 

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아니야, 엄마. 내가 아는 오빠는 그 언니 만나서 갑자기 마음 잡고 술과 담배도 끊고 새사람이 되었어뭐 이런 말은 하지 마라. 그건 악마가 여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부린 술수가 틀림없어. 여자들은 수만 년 동안 남자들을 길들이려고 했지만 언제나 헛되었어. 자신이 낳아 기른 아들도 호르몬이 변하는 사춘기가 되면 엄마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무슨 수로 여자가 남자를 변하게 한단 말이니? 만일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를 만나 변했다면 그건 그 남자가 변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란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어도, 다른 여자를 만났어도, 강아지를 새로 키우거나 닭이나 고슴도치를 키웠어도 그가 그렇게 변했을 거라는 데 500원을 걸 수 있지.

 

 

생각해봤는데 나는 결혼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아내와 엄마가 의미하는 그것들에 적합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야. 나는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오로지 (존경할 수 없는) 남자의 말을 다 존중하고 순종하(는 척이라도 하)며 나를 뒷전에 둔 채로 (더구나 젊은 그날에) 아이들을 위해 집 안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는, 날마다 같은 그릇에 반찬을 차리고 닦고 그릇장에 넣고, 다음 날 같은 그릇을 또 꺼내 반찬을 담고 또 닦고 그릇장에 넣고, 이런 무한 반복에서 생의 의미를 찾는 종류의 여자가 아니었단 말이지. 나는 이런 것들을 잘 해내지 못했을 때 내게서 일어나는 죄책감도 너무 싫었어. () 네가 만일 누군가에게 반찬을 해주고 옷을 다려주고, 말하자면 엄마 놀이를 좋아해서 결혼하고 싶어 하고 말한다 해도, 나는 그것 때문이라면 결혼을 말리고 싶다. 여자에게 결혼이란, 이 모든 것을 날마다 몸이 아프거나 병들었거나 슬프거나 노엽거나 죽을 것 같아도 해야 하며 그렇게 해주어도 칭찬이나 대가를 받기가 힘든 노동이란다. 아니 험담이나 듣지 않으면 사실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 엄마는 결혼 생활 동안 마치 누가 뒤에서 총이라도 겨누는 것처럼이 모든 것들을 죽도록 하고 비난을 받아왔어. () 너는 어리석었고 덜렁대는 엄마보다 현명하고 차분하니까 언제든 현명한 결정을 할 거라고 믿는다만, 결혼은 그러니까, 지금 혼자 있는 게 너무 좋은데 이 사람하고라면 그 좋음도 양보할 수 있을 거 같다, 이럴 때 하는 거야. 이 사람이 너무 좋아서 이 사람하고 연관된 모든 사람이 엄청 이상할 뿐만 아니라 나를 싫어하고 가끔 (듣기에 따라) 모욕하고 명령하고 이래도 이 사람이 하도 좋아 그쯤은 참을 수 있겠다, 이럴 때.

 

 

 

극단적이지만, 책으로 느끼기에 언뜻 노예처럼 살아왔던 자신의 결혼생활이 마치, 결혼생활의 전부인양 써놓은 글에, 그녀를 힐난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해서 행복해요.'라는 사람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어쩌면, '결혼해서 행복하다는 것''결혼 생활에 맞춤된 여자'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그게 거북했다. 나도 어느새 결혼한 지 만 이 년이 되었다. 나는 결혼해서 행복하다. 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배우자와 나의 가치관이 맞고, 그 가치관대로 살아가고 있는 까닭이다. 결코 나는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혹은 복종하거나 굴종하기 위해 혹은 맹종하기 위해 결혼하지 않았고, 어떤 존재도 그렇게 하기 위해 태어난 생명은 없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혼에 알맞은 여자는 없다,는 것. 적어도 나에게는 호혜적인 부부가 될 수 없다면, 그 관계는 다시 생각해봐야하는 것이다. 결혼도 그러하지만, 하물며 ''이라는 것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낯선 타인들과 공생하도록 설계가 되어져있다. 가족,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직장, 다시 가정. 자라온 환경마다 조금씩 다를지언정, 어떤 조직에 속해져있다는 것은 누구나가 같다. 다만 작가는, 타협이나 의논 혹은 배려가 없는, 그러니까 '공생'이라는 단어를 전혀 느껴보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남자들을 세 번이나 만난 것뿐이고, 그게 전부인양,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말을 한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을 마음에 담아두며 살고 있는 요즘, 나는 내 경험만으로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살면 안 되겠다. 라는 말을 더욱 절실하게 다시 새길 수 있었다.

 

이러이러했기 때문에 나는 결혼에 부적합한 여자야.”라는 말은, 즐거운 나의 집을 떠올리게 했고, 자신의 삶을 과대 포장하는 것처럼 느끼게 했고, 자기합리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 책. 그 기분을 고스란히 느꼈다. ,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자기합리화는 똑같구나. 때문에, 앞으로는 작가의 에세이 혹은 자전적 소설에는 더 이상 손을 뻗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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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이동원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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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에 의한 글자만을 찾아 헤맸고,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그때에, 나는 더 이상 책을 읽지 못하겠다, 생각 들었다. 그래도 전보다 아주 조금 여유가 생겨서, 한 글자도 읽지 못했던 책들에 손을 조금씩 대고 있다. 유약한 글들을 읽으면 나조차도 금세 녹아서 무너져 버릴까봐, 너무 강인한 글들을 읽으면 거부감이 생겨 버릴까봐, 어떤 책들에 눈길을 주지 못했다. 집에 있던 책들 중 그 어떤 것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없다는 그 사실에 절망하며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이라고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책. 일전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서점에서도 본 적 있고, 서평도 읽은 바 있었다. 하지만 순전히 제목에만 이끌려 품 안에 안고 온 책. 살고 싶다-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려 발악하는 요즘.이니까.

 

 

 

‘군대’라는 작은 사회 속에 몸 담고 있던 ‘선한’이라는 스물넷의 어린 남자.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시를 쓰고자 했었고, 삶을 소풍처럼 살고자 했었던 그는, 스물넷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의로 생을 마감했다. (이 정도만 써놔도 나중에 서평을 읽으며 기억을 할 수 있겠지.)

나는 스물다섯의 봄을 맞았는데 너는 왜 스물넷의 가을에 멈춰 있냐.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는 공지영 작가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읽었었다. 마음에 꼬옥 담아둔 문장을 인용해볼까 한다.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쳐져 있는 것만 같이 느껴져서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이 모든 일이 하나도 수습되지 않을 듯한 날이 있다는 걸. (이 책은 언젠가 꼭 서평을 쓸 테지만, 별 두 개에 그칠 수밖에 없는 책.) 선한도 저 말처럼, 그리 생각했던 게 아니었을까. 나 역시, 그렇다. 아니, 주체가 오로지 가 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랬다. 스물여덟 해를 살며 이렇게 힘들 때가 있다는 걸 처음 경험해본다. 낯설다. 삶이란 이토록 아주 재수 없을 정도로 소름끼치게 흥미로울 수 있구나.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나는 믿는 종교가 없지만, 현재 심리 상태에 딱 맞는 본문에 나오는 성경구절인) 마음에 와 닿는 말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작성할까 한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그래. 살아 내자. 이 세상. 살아내려 열심히 애쓰자. 얼마나 좋은 일이 오려고, 올해는 이렇게 지난한걸까. 생각을 정리하고자 쓴 서평인데, 바보 같이 또 울컥했다.

 

 

 

 

네가 없으면 죽겠다는 사람과는 만나지 마라. 사람은 사람을 채워줄 수 없다. 날 채워줄 수 없는 사람에게 나를 채워주길 기대하고 요구하니까 결국은 바닥을 드러내고 메말라 갈라져버린다. 자신이 없으면 살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남겨진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포도 향만 첨가된 탄산 주스처럼 그것은 사랑이라 불렸을지 모르나 실체는 다른 것이다. 사랑은 상대를 세워주는 것이다.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명을 낳는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나도 사랑은 가슴에 남아 그 남은 생을 살아가게 한다. 나는 누구보다 너와 엄마를 사랑하지만 너와 엄마가 없어도 살 수 있다. 너도 그래야 한다.


여담으로, 내가 외출할 때, 그이의 식사 걱정이라던지 안부를 걱정하면, 난 너 없이 밥도 잘 먹고, 잘 지내.라고 말할 때마다 안도감이 들면서 약간의 서운함이 생기곤 했는데, 그것은 아마 내가 그이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만족시켜주길 요구하는 저차원적인 사랑에 근거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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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 어떤 위로보다 여행이 필요한 순간
이애경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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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숭숭한 마음들로 현기증이 이는 가을의 초입, 바쁜 일상들에 치여 근 한 달을 책과 멀리했다. 하지만 마음이 동동거리는 책이 없어 책장을 쓰윽 훑어보다가 집에 있던 황경신 작가의 생각이 나서, 이병률 작가의 끌림을 들었으나, 이내 다시 두 권 모두 책장 속으로 넣고 마는 사태에 봉착한다. 나는 조금 지겨워져서 오래간만에 도서관에 가서 손끝에 와 닿는 책의 감촉을 느끼고 있는데,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라는 책 제목에서 현재 내가 그런 마음인데, 하고 읊조리며 책을 집어 들었다. , 이애경이다. 이 작가를 2011년에 처음 만났었다. 2011년 어느 날, 그녀가 말했던, 버금딸림음의 시기를 겪던 스물네 살의 나,는 조곤조곤한 그녀의 글을 읽으며 누구나 다 그러는 시기가 있어.’라며 작은 어깨를 쓰다듬어주는 작은 위안을 받았던 기억이 새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가 나온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 전작인 눈물이 그치는 타이밍도 그랬고. 생각해보건대, 스물네 살의 나,는 불안정하고 위태로워서 그녀가 해주었던 위로가 공기 중에 은연하게 흩어지는 호흡같은 것이어서 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성질의 것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은근한 생각도 들었던 까닭이다.

 

 

독자라는 가면을 쓰고 이런 무례한 말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글은 이전보다 조금 더 여물었고 옹골차졌다. ‘여행에 대한 생각 그러니까, 에세이만 가득한 것을 읽고 싶었던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여행이야기만 잔뜩 즐비하게 늘어져있는 것을 읽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책을 읽기 전, 몇 권의 책을 중도포기 했고, 그러면서 갸웃하면서 읽어나간 책이 현재 심리상태에 꼭 알맞아서 더 이상의 어떤 간도 필요 없을 정도였다. 책을 읽고도 책을 다 놓지 못하고, 여전히 서성거리고 있다. ‘여행을 통과하고 만나서일까. 아니면 내가 여행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일까. 둘 중 어떤 것일지 모르겠으나, 단어 하나하나에 두근거림과 문장 하나하나에 설레임이 공존하는 듯 했다. 그것은 여행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키기는커녕,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준비하는 게 많아 바쁜 그에게 말했다. “한 주만 시간을 내줘. 어디든 좋아. 어디든 가자!그렇게 우리는 이 달의 마지막 날에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은 고정되어 있던 것, 단단하게 굳어가던 마음을 한 번씩 흐트러뜨려 질서를 다시 잡고, 뭉친 마음의 근육을 풀어주는 처방전과도 같다.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데 판단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될 때, 정해진 삶의 패턴에 익숙해져 그 익숙함을 흔드는 무언가에 거부 반응이 일어날 때, 고마운 사람들에게 오히려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질 때, 통장에 적힌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체크하며 나도 모르게 안주하려 할 때, 큰마음을 먹고 전해줬을 선물에도 딱히 감동하지 못할 때, 터벅터벅 힘없이 돌아오는 퇴근길이 늘어갈 때, 잘 지내냐는 물음에 "그냥 똑같지 뭐."라고 대답하는 나를 발견할 때. 그때가 바로 익숙함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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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내게 끌린다
남인숙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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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학 1년생이었던 나, MCM이 좀 알아주는 20대 초반이 들고 다니는 전형적인 브랜드였는데, 이제 막 친해지려고 하던 참의 아이가 나한테 그러더라. “나 이거 가방이랑 지갑 MCM꺼야.” 마땅히 할 말이 없어서, “그래서?”라고 대꾸했고, 그 이후 나는 그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한 나의 모든 것(내 옷, 가방, 구두)은 당시 보세였고, 지금이야 보세도 나름대로 인정해주기는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 싸구려로 통했던 시절이었다. 내가 가진 것 중 브랜드를 고집했던 건 운동화 오직 그거 하나였다.

 

 

 

 

 

그리고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하필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건설도 불황이었기 때문에, 학교 졸업하면 우왕좌왕할 게 뻔했던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그때 가닥을 잡지 못하면 나는 평생 그러고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에. 일 년이라도 더 늦추기 위해서. 각설하고, 그때 당시 휴학생이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옷가게 알바를 시작했다. 부모님의 압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여자애들이 소위 환장한다는 MCM의 그 어떤 것을 사기 위해서였다. 한 달 알바비로 85만원을 받았고, 그 돈을 가지고 백화점을 갔다. 그 돈은 지갑과 가방을 사고도 남는 돈이었고, 매장을 둘러보고는 생각했다. ‘겨우 이딴 게 왜 좋은 거지.’ (참고로 MCM을 욕하는 게 아니니 오해는 말 것.) 혼자 판단하건대, 대학교 때 그 아이는 브랜드 상품=본인의 가치가 동일시 된다고 믿었고, 그로 인한 자존감이 상승한다고 생각했기에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구태여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책을 읽고 잠시 했었다.

 

 

 

 

 

이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라 함은, 나는 아직 내게 끌린다에는 소위 말하는 몇 백 만 원의 명품 구두가 바로 그 화자,인 까닭이다. 구두는 자신이 만난 일곱 명의 여자에게 애정을 주는데, 마녀 상사를 둔 사회초년생 리즈, 오랜 연애 중인 간호사 비비안, 남편의 울타리에 살고 있는 올리비아, 두 달을 못 넘기는 연애를 하는 공무원 마릴린, 아이 둘을 케어 해야 하는 전업주부 그레이스, 연기를 하고 싶지만 현실은 인터넷으로 성인용품을 파는 오드리, 유부남을 사랑하는 소피아 가 그 주인공이다.

 

 

 

 

 

 

 

회사에 다닐 때 난 항상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고 거기 도달하는 게 좋았어. 내가 하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그런 대상이 뚜렷한 게 좋았어. 그런 게 욕망이겠지? 그런데 나를 없애고 아이들만을 위한 삶을 살다 보니 바로 그게 없어진 거야. 내 욕망은 없어지고 아이들과 당신을 통해서만 욕망을 투영해야 하는 삶. 난 그래서 숨이 막혔나 봐.” _p188 (그레이스)

 

 

책을 쉬지 않고 두어 시간동안 내리 읽으며 공감을 톡톡톡 찍어 내려갔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숨을 깊게 내쉬고 - 나는 누구를 닮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처음 취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실수로 이어진 일로 인해 잔뜩 주눅 들어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리즈와 별반 다를 게 없어보였고, 결혼은 하고 싶지만 내 생활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마릴린을 닮았으며, 아이가 생긴다면 는 없어지고 아이만을 위한 삶이 되어버리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모습을 그레이스의 모습에 대어보았다. 또 걱정인형 나셨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 속에서 벗어나기.’

 

인간의 삶에 누구에게나 통하는 정답은 없지만 자신만의 정답은 필요한 것 같다. 그 정답을 보기 위해서는 자기 삶의 안개, 즉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는 모호함을 걷어 내야 한다. _p77

 

 

최근에 나를 알게 된 사람들은(주로 회사 동료들), 내가 자존감이 상중하로 따졌을 때, 중상위권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고 조금 놀랐었다. 나는 자존감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더욱 놀라운 말들이었다. 나는 오히려, 억지로 (단어가 문장과 조금 맞지 않지만) 자존감을 높이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에 속한다. 나는 몸매가 좋지도, 얼굴이 예쁘지도, 마음이 예쁘지도, 웃는 모습이 예쁘지도, 체력이 좋지도 않다. 때문에 그것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나의 내·외적인 모습을 부정하고, 비하하며, 창피하게 느낄 때도 있었으니 말 다 했다. 무언가 내가 잘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남들에 비해 빼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만족하는 수준에 그칠 때가 더 많았기 때문에,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보통 이 정도는 해.’ 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이, 어쩌면 자존감 상승에 방해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언제나, 나 자신만 두고 보았던 것이 아니라, 남들과 비교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내게 가장 필요한 건 를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는 일이었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거,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나를 위한 채찍과 칭찬을 스스로에게 무던히 해주어야 하는 거였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여전히 나는 나를 사랑해. 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내가 나라서 만족해. 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조금 더 동글동글하게 매만져주고 싶다. 남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내가 될 수 있기를.

 

 

 

 

 

 

 

 

밑줄 긋기.

 

 

 

삶에서 가치를 찾으려면 먼저 자기 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에서 풍요로움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_p45

 

 

 

 

 

마음 놓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기’ _p50

 

 

 

 

 

사람은 행복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을 때 행복해진다.’ _p88

 

 

 

 

 

인간은 자기의 삶을 자기 의지로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 때 자유를 느낀다. 선택의 결과가 어찌 되든 자기 의지로 결정해야 한다. 아무리 성공적이어도 남이 대신 해주는 결정 속에서만 사는 건 의미가 없다. 사람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행복도 자유의 범위 안에 있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_p119

 

 

 

 

 

현실에 발을 디디고 불꽃처럼 살아 보기’ _p128

 

 

 

, <파랑새>라는 동화에서 틸틸이랑 미틸이 파랑새를 찾는다고 온갖 고생하다가 마지막에 자기 집에서 파랑새를 찾잖아. 그렇다고 걔네가 한 고생이 말짱 헛건 줄 아니? 그게 걔네가 그 뻘고생을 해서 보는 눈 생기고 철이 드니까 집에 있던 파랑새를 알아볼 수 있었던 거야. 그냥 가만히 앉아서 눈을 부릅뜨고 있었으면 파랑새 끝까지 못 찾았을걸. 원래 가까이 있는 좋은 건 엉뚱한 데 멀리 가서 멍청한 삽질을 해 봐야 찾아지는 거야.” _p150

 

 

​​

 

자신이 다른 것을 포기하고라도 얻고 싶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_p153

 

 

 

욕망의 완전한 주인이 될 때 삶은 당신 편이 된다.’ _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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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랑 - 우리 조금 멀리 돌아왔지만
정현주 지음 / 스윙밴드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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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시간을 비운 일요일 오전이다. 집에 누워 책을 읽는데, 창문너머로 들리는 매미소리가 흡사 시원한 계곡물 어느 중간지점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고, 나는 엎드린 상태에서 발을 동당거렸다. 기분이 싱그러워졌다. 금요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었다. 모두 에세이였다. 왜 또 에세이인가. 지금 내 마음이 엉클어졌는가, 하고 마음을 문질러본다. 그리고 우습게도 또 사랑이다. 어제는 그와 식사를 하던 도중, 눈물방울을 그렁그렁해 보였다. 과거의 우리 모습을 떠올리면서, 가끔 그때가 그립다고 말하는 나를 보며 그는 웃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어이없어서 웃었는가,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안쓰러워서 웃을 수밖에 없었는가는 잘 모르겠다. 과거의 우리가 조금 그립다고 말하는 그런 나를 질책하지 않는 그가, 우리 지금 행복하지 않는가 묻지 않는 그가 미웠다. 그는 내 탓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 잘못이야. 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그래서 더 찔끔거렸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또 그의 탓을 한다. 그래야 내 못된 이기적인 생각들이 핑계와 변명밖에 될 수 없지만, 정당화가 될 테니까.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 정현주. 한 자, 한 자 꼭꼭 씹었다. 소화가 될 듯 말 듯해서 계속해서 더 꼭꼭 씹어 삼키었다. 책은 말한다. 사랑혼자다시, 사랑이라고. 아니. 결국, 사랑. 이라고.

 

여자의 반지 자국이 다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주고 싶었던 남자,

사랑이 더딘 여자가 사랑을 들키던 바보 같지만, 그것이 참 좋다고 말하는 남자,

차가운 냉면 뒤에 뜨거운 커피. 따스한 보라.

싫어하는 일도 기꺼이 할 수 있는 이유, 그것은 사랑.

 

서평을 쓰지 말지, 했다. 에세이에 대한 서평은 항상 참 힘이 드니까. 또, 절대 객관적일 수가 없을테니까. 내 마음을 비춰보여야 하니까. 책을 다 읽고선, 일전에 썼었던 작가의 스타카토라디오에 대한 서평을 읽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책을 읽었던 2011. 그래, 그때에도 그와 나는 사랑을 했었지. 얼마나 더디고 머뭇거리던 순간들이었는가. 행복한 만큼, 불안했던 때도 있었고,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지 못한 그때를, 순간들을, 회상했다. 다행이다. 지금 그가 없어서. 이런 주책의 내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되어서. 지금 역시 성숙하지 못해서 언제쯤 어른이 될 거냐며 나를 수없이 질책하고 질타하는데, 서평을 읽고 생각했다. 그 사이에 많이 컸네, 아직 어른이 되지는 못했지만, 또 사랑에 관한한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할 테지만, 그래도 참 많이 컸다, 나. 대견하다. 그리고 이렇게 부쩍 성장해버린 내 뒤로는 항상 당신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감사하다. 당신.

 

 

 

사랑이란 뭘까요?”

기르는 것 같아요.

밥 주고 물주고 같이 산책하고 같이 아파하고

그러면서도 떠나지 않고 함께 성장하는 것.”

 

이내 후회했다. 어제 그에게 투정부린 일들을. 그리고 고마웠다. 내 어린 마음을 언제나 처음처럼 감싸 안아주는 그가. John lenonlove(책의 첫 챕터에 나오는 추천음악이다.)를 들으며 일요일 오전이 흘러간다. 그와 함께 들었다면, 우울한 노래야. 라고 말했겠지만, 분명 그도 좋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좋아한다고 하니까. 남들이 삶을 살아야하는 이유를 물어볼 때에, 그것이 그 무엇도 아닌 나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가 우리의 집으로 얼른 왔으면 좋겠다. “오늘 달이 참 밝다. 그치, YH.“ 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 말을 하려면 오늘 뜨는 그 달이 여느 날보다 영롱하게 밝았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정말이지, 남김없이 고마운 사람, 당신.

 

 

* 읽을 영화 정리해두기

<나 이즈 굿> <바스티유> <비기너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베스트 오퍼> <그녀> <세렌디피티> <차가운 장미>

 

 

 

사랑하기 더 좋은 때란 없다.

그냥 지금이다.

지금 같이 있자.

 

손을 잡아요, 뛰어들어요, 지금.

사랑할 시간은 지금, 지금이 가장 좋아요.

 

 

저절로 웃음이 났다.

웃는 남자를 보고 여자도 웃었다.

마음에 꽃이 피는 것 같았다.

정말로 봄이었다.

 

아이의 마음으로 사랑하기를. 우리들의 아침이 사랑하는 사람을 웃게 할 즐거운 궁리들로 시작되기를. 그가 웃어서 덩달아 나도 웃는 날들이기를. 함께 걷는 세상의 골목골목이 웃으며 사랑하는 기억들로 채워지기를. 함께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더 큰 자유를 만나기를. 무엇보다도 맨 먼저 사랑이기를. 우리의 가장 맨 앞에 사랑이 있기를.

 

 

사랑에 빠진 남자처럼 행동하자, 나는 다시 사랑에 빠진 남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해요, 계속. 끝은 좋을 것을 의심하지 말고.

봄이 반드시 올 것을 알기 때문에 기꺼이 겨울을 견디던 날처럼.

사랑해요, 계속.

 

 

사랑하여 오늘도 마음에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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