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 이장미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 밑줄 쫙 그었던 그때로부터 (몸은 컸지만, 마음은 그대로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회사일이 힘들다고 꼬질꼬질하게 울지 않는 그런 다섯 살이나 더 먹은 내가 되었다. 작가는 아니 엄마는, 다시 딸 위녕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면서 딸에게 주는 레시피라니. 음식말이야? 웃기지만, 난 정말 레시피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책 속에 있는 무언가를 해먹어 보기에는 까슬한 모래알들이 입안을 맴돌아 좀처럼 삼켜지질 않았던 날들이 이어졌다. 더디지만 분명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다가 어느 순간 다시 쿵,하고 내려앉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기에 조금 아껴둬야지 생각도 했(었)다.

 

 

가벼이 써나가는 글 속에서 어쩌면 너를 괴롭히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그 일들, 그 단어, 그 눈빛이 떠오를지도 몰라. 아프겠지만 그것을 잡아라. 오늘이 아니어도 좋아. 너무 아프거든 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명심해라. 우리가 회피하고, 무시하고, 도망치고 싶어 하는 바로 그것이 실은 우리가 진정 풀어야 할 숙제이고 넘어야 할 언덕이며, 결국은 우리를 진정으로 성장시켜주는 열쇠임을 말이야. 얼핏 가시투성이로 보이는 그 껍질 속에 실은 성장의 열매가 있다는 것을 말이야. p18-19

 

 

산다는 것도 그래. 걷는 것과 같아. 그냥 걸으면 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돼. 그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그 순간을 가장 의미 있게, 그 순간을 가장 어여쁘고 가장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만들면 돼. p27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무도 없는 휴일에도, 너 자신에게 가장 아름답고 좋은 옷을 입혀주거라. () 무릎이 나오고 고무줄이 하염없이 늘어나는 낡은 트레이닝복은 이제 쓰레기통으로 보내거라. 그날의 네 일상에 알맞은 복장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고르고 양말까지 색깔 맞춰 신고 청결하게 하고 머리를 드라이어로 잘 다듬어라. 언제 어디서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몸을 돌보아야 해. 이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p35

 

 

모든 것이 처음부터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쳐져 있는 것만 같이 느껴져서,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이 모든 일이 하나도 수습되지 않을 듯한 날이 있다는 걸. p66

 

 

 

나는 분명, 작가의 글 속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뜻한 음식과 와인 혹은 맥주 혹은 소주를 생각하며 나도 치어스-를 했다는 것 또한.

 

 

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아니야, 엄마. 내가 아는 오빠는 그 언니 만나서 갑자기 마음 잡고 술과 담배도 끊고 새사람이 되었어뭐 이런 말은 하지 마라. 그건 악마가 여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부린 술수가 틀림없어. 여자들은 수만 년 동안 남자들을 길들이려고 했지만 언제나 헛되었어. 자신이 낳아 기른 아들도 호르몬이 변하는 사춘기가 되면 엄마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무슨 수로 여자가 남자를 변하게 한단 말이니? 만일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를 만나 변했다면 그건 그 남자가 변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란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어도, 다른 여자를 만났어도, 강아지를 새로 키우거나 닭이나 고슴도치를 키웠어도 그가 그렇게 변했을 거라는 데 500원을 걸 수 있지.

 

 

생각해봤는데 나는 결혼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아내와 엄마가 의미하는 그것들에 적합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야. 나는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오로지 (존경할 수 없는) 남자의 말을 다 존중하고 순종하(는 척이라도 하)며 나를 뒷전에 둔 채로 (더구나 젊은 그날에) 아이들을 위해 집 안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는, 날마다 같은 그릇에 반찬을 차리고 닦고 그릇장에 넣고, 다음 날 같은 그릇을 또 꺼내 반찬을 담고 또 닦고 그릇장에 넣고, 이런 무한 반복에서 생의 의미를 찾는 종류의 여자가 아니었단 말이지. 나는 이런 것들을 잘 해내지 못했을 때 내게서 일어나는 죄책감도 너무 싫었어. () 네가 만일 누군가에게 반찬을 해주고 옷을 다려주고, 말하자면 엄마 놀이를 좋아해서 결혼하고 싶어 하고 말한다 해도, 나는 그것 때문이라면 결혼을 말리고 싶다. 여자에게 결혼이란, 이 모든 것을 날마다 몸이 아프거나 병들었거나 슬프거나 노엽거나 죽을 것 같아도 해야 하며 그렇게 해주어도 칭찬이나 대가를 받기가 힘든 노동이란다. 아니 험담이나 듣지 않으면 사실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 엄마는 결혼 생활 동안 마치 누가 뒤에서 총이라도 겨누는 것처럼이 모든 것들을 죽도록 하고 비난을 받아왔어. () 너는 어리석었고 덜렁대는 엄마보다 현명하고 차분하니까 언제든 현명한 결정을 할 거라고 믿는다만, 결혼은 그러니까, 지금 혼자 있는 게 너무 좋은데 이 사람하고라면 그 좋음도 양보할 수 있을 거 같다, 이럴 때 하는 거야. 이 사람이 너무 좋아서 이 사람하고 연관된 모든 사람이 엄청 이상할 뿐만 아니라 나를 싫어하고 가끔 (듣기에 따라) 모욕하고 명령하고 이래도 이 사람이 하도 좋아 그쯤은 참을 수 있겠다, 이럴 때.

 

 

 

극단적이지만, 책으로 느끼기에 언뜻 노예처럼 살아왔던 자신의 결혼생활이 마치, 결혼생활의 전부인양 써놓은 글에, 그녀를 힐난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해서 행복해요.'라는 사람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어쩌면, '결혼해서 행복하다는 것''결혼 생활에 맞춤된 여자'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그게 거북했다. 나도 어느새 결혼한 지 만 이 년이 되었다. 나는 결혼해서 행복하다. 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배우자와 나의 가치관이 맞고, 그 가치관대로 살아가고 있는 까닭이다. 결코 나는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혹은 복종하거나 굴종하기 위해 혹은 맹종하기 위해 결혼하지 않았고, 어떤 존재도 그렇게 하기 위해 태어난 생명은 없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혼에 알맞은 여자는 없다,는 것. 적어도 나에게는 호혜적인 부부가 될 수 없다면, 그 관계는 다시 생각해봐야하는 것이다. 결혼도 그러하지만, 하물며 ''이라는 것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낯선 타인들과 공생하도록 설계가 되어져있다. 가족,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직장, 다시 가정. 자라온 환경마다 조금씩 다를지언정, 어떤 조직에 속해져있다는 것은 누구나가 같다. 다만 작가는, 타협이나 의논 혹은 배려가 없는, 그러니까 '공생'이라는 단어를 전혀 느껴보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남자들을 세 번이나 만난 것뿐이고, 그게 전부인양,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말을 한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을 마음에 담아두며 살고 있는 요즘, 나는 내 경험만으로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살면 안 되겠다. 라는 말을 더욱 절실하게 다시 새길 수 있었다.

 

이러이러했기 때문에 나는 결혼에 부적합한 여자야.”라는 말은, 즐거운 나의 집을 떠올리게 했고, 자신의 삶을 과대 포장하는 것처럼 느끼게 했고, 자기합리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 책. 그 기분을 고스란히 느꼈다. ,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자기합리화는 똑같구나. 때문에, 앞으로는 작가의 에세이 혹은 자전적 소설에는 더 이상 손을 뻗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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