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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이동원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5월
평점 :
필요에 의한 글자만을 찾아 헤맸고,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그때에, 나는 더 이상 책을 읽지 못하겠다, 생각 들었다. 그래도 전보다 아주 조금 여유가 생겨서, 한 글자도 읽지 못했던 책들에 손을 조금씩 대고 있다. 유약한 글들을 읽으면 나조차도 금세 녹아서 무너져 버릴까봐, 너무 강인한 글들을 읽으면 거부감이 생겨 버릴까봐, 어떤 책들에 눈길을 주지 못했다. 집에 있던 책들 중 그 어떤 것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없다는 그 사실에 절망하며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이라고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책. 일전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서점에서도 본 적 있고, 서평도 읽은 바 있었다. 하지만 순전히 제목에만 이끌려 품 안에 안고 온 책. 「살고 싶다」 -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려 발악하는 요즘.이니까.
‘군대’라는 작은 사회 속에 몸 담고 있던 ‘선한’이라는 스물넷의 어린 남자.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시를 쓰고자 했었고, 삶을 소풍처럼 살고자 했었던 그는, 스물넷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의로 생을 마감했다. (이 정도만 써놔도 나중에 서평을 읽으며 기억을 할 수 있겠지.)
나는 스물다섯의 봄을 맞았는데 너는 왜 스물넷의 가을에 멈춰 있냐.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는 공지영 작가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읽었었다. 마음에 꼬옥 담아둔 문장을 인용해볼까 한다.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쳐져 있는 것만 같이 느껴져서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이 모든 일이 하나도 수습되지 않을 듯한 날이 있다는 걸. (이 책은 언젠가 꼭 서평을 쓸 테지만, 별 두 개에 그칠 수밖에 없는 책.) 선한도 저 말처럼, 그리 생각했던 게 아니었을까. 나 역시, 그렇다. 아니, 주체가 오로지 ‘내’가 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랬다. 스물여덟 해를 살며 이렇게 힘들 때가 있다는 걸 처음 경험해본다. 낯설다. 삶이란 이토록 아주 재수 없을 정도로 소름끼치게 흥미로울 수 있구나.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나는 믿는 종교가 없지만, 현재 심리 상태에 딱 맞는 본문에 나오는 성경구절인) 마음에 와 닿는 말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작성할까 한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그래. 살아 내자. 이 세상. 살아내려 열심히 애쓰자. 얼마나 좋은 일이 오려고, 올해는 이렇게 지난한걸까. 생각을 정리하고자 쓴 서평인데, 바보 같이 또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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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없으면 죽겠다는 사람과는 만나지 마라. 사람은 사람을 채워줄 수 없다. 날 채워줄 수 없는 사람에게 나를 채워주길 기대하고 요구하니까 결국은 바닥을 드러내고 메말라 갈라져버린다. 자신이 없으면 살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남겨진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포도 향만 첨가된 탄산 주스처럼 그것은 사랑이라 불렸을지 모르나 실체는 다른 것이다. 사랑은 상대를 세워주는 것이다.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명을 낳는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나도 사랑은 가슴에 남아 그 남은 생을 살아가게 한다. 나는 누구보다 너와 엄마를 사랑하지만 너와 엄마가 없어도 살 수 있다. 너도 그래야 한다.
여담으로, 내가 외출할 때, 그이의 식사 걱정이라던지 안부를 걱정하면, 난 너 없이 밥도 잘 먹고, 잘 지내.라고 말할 때마다 안도감이 들면서 약간의 서운함이 생기곤 했는데, 그것은 아마 내가 그이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만족시켜주길 요구하는 저차원적인 사랑에 근거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