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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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혼, 나는 이혼을 상상하곤 한다. 이혼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상상하기보다는, 그와 함께 살지 않는 것을 상상한다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이겠다. 대부분 마음이 공허할 때 그렇다. 나의 감정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쪽은 언제나 그이기에 미안한 마음이 일기 때문이다. 내가 서운함을 느끼거나 서러움을 느끼거나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대부분 그에게서 기인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니까. 그렇게 우리, 각자 살게 되면 어떤 모습일까,를 어렵지 않게 상상해본다. 하지만 차라리 처음부터 결혼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결혼한 이후로 그와 각자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상상을 해보는데, 다행이라고 느끼는 것은 내가 각자 사는 삶에 대해 불안정하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그는 결혼한 이후로 내게 ‘안정’이라는 큰 쉼터가 되었다. 나는 그이가 잘 가꾸어놓은 초원에서 양분을 얻고 쑥쑥 자라는 어린 사슴이다. 그러한 사실이 내게 큰 위안과 감사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자고 있는 그의 손을 찾는다. 그러면 그는 잠결에 내 손을 더 꽉 그러잡는다. 그의 온기에서 나는 평온을 되찾는다.




이 책을 읽을 무렵도 그때였다. 감정이 폭발적으로 일던 봄. 봄은 그렇다. 풀릴 것 같은 날씨이면서도 춥고, 덥고, 습하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사람에게 희망고문을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봄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분명 봄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도 언젠가부터 봄을 멀리하게 되었다. 나의 감정이 봄의 변덕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김숨의 <이혼>은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단편 중 하나였다. 책의 제목은 수상작인 <웃는 남자>에 실렸다. 나는 망설임 없이 <이혼>을 펼쳤다.




책에는 이혼을 한 사람, 이혼을 앞둔 사람, 이혼을 하고 싶어 했지만 못한 사람이 나온다. 보면서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특히 부부로서의 오십삼 년의 삶이 그러했다. 아…… 오십삼 년이라니. 자그마치 오십삼 년. 요즘 이혼은 무척 쉬운 것처럼 말들 한다. 하지만 나는 이혼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안다. 나는 어머니가 아니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125. “엄마, 아버지하고 이혼하고 싶었던 거 아니야?

“…….”

“엄마가 그랬잖아. 아버지하고 이혼하는 게 소원이라고.

“모르겠다…….

“왜 몰라?

“그러게…….



꼭 내 아빠가 그랬다. 또 내 엄마 역시 그랬다. 둘 모두 그랬는데도, 그랬다. 둘은 삼십 년을 넘게 부부로 지내왔지만, 여전히 맞추지 못하는 퍼즐이다. 그리고 맞출 수 없는 퍼즐이기도 하다. "너네 아니었으면 네 아빠랑 벌써 이혼했어.”라는 말을 나는 듣고 자랐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제일 잘못한 일이 있다면, 결혼을 하기도 전에 들어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말을 듣고 자라면서 나와 내 동생은 어쨌든 몸은 어른으로 성장했다. 우리 남매는 앞가림 하나는 누구보다 잘했다. 내 동생은 중간에 힘든 일을 겪기도 했지만, 그건 본인이 저지른 일이니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릴 때 나는 우리 집이 꽤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엄마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입장이 바뀌었다. 나는 오히려 아빠에게 엄마와 이혼을 하라고 말을 한다. 엄마와 사이가 괜찮았을 때에도 아빠와 이혼하라고 말을 했다. 그냥 둘은 서로 각자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우리 남매도 더 이상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으니, 서로 각자 편하게 사시는 삶을 권해드리고 싶었다.





125. “엄마, 지금 감정이 어때?

“응……?

“엄마가 지금 느끼는 감정 말이야. 슬퍼?

…….

“행복해?”

“…….”

“아니면 화가 나?

“…….”

“막 화가 나지 않아?

“모르겠어…….

“화가 나 미칠 것 같지 않아?

그러나 화가 나 미칠 것 같은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그녀였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나 보다. 법원에서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이혼숙려기간이 지난 4주 후, 법원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 쪽에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보다 엄마는 이혼을 훨씬 더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에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울었던 것도 엄마고, 법원에 가지 않겠다고 통보하고 연락을 끊은 것도 엄마라고 했다. 나는 중간에서 화가 났다. 정말, 책의 민정처럼 화가 나 미칠 것 같은 사람은 내 부모가 아니라 나였다. 나 역시 더 이상 도울 수 없다고, 민정처럼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후회했지만,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뱉은 말에 대해 나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미치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후회하면 안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에는 각자의 삶은 각자가 살아야 한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삶은 대신 살아줄 수가 없다는 것도, 내가 신경을 쓰는 것만큼 상대는 (그게 아무리 부모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내 경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본인 삶인데도 그랬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명치가 아팠다. 숨구멍이 막힌 것 같았다. 젠장할.



119. 결혼해 사는 내내 수억 광년 떨어진 행성처럼 서로 겉도는 느낌이었거든. 주말부부로 살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야. 새벽에 잠에서 깨, 그 사람 손을 슬그머니 그러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옆에 누워 잠든 그 사람이 이생에서는 만날 수 없는 존재처럼 멀고멀게 느껴져서.


가끔 나는 그가 내게서 조금 멀리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나 역시 그럴 때마다 그를 지그시 바라보곤 한다. 그는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왜? 하고 물음을 던지지만, 나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당신이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아.”라고 하는 말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런 추상적인 것들에 대해 이해를 잘 하지 못하고 토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내게 멀어질 생각을 한 적도 없고, 그렇기에 그런 행동을 일부러 하지 않았으며,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을뿐더러, 그는 내게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도 오 년을 함께 살 맞대고 살다 보니, 나의 행동들에 물음표를 그리며 나의 행동을 그리고 감정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는 점이다. 내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면 휴지를 가져다주고, 내가 그의 손을 찾으면 손을 더 꽉 잡고, 따뜻한 차 한 잔을 타서 내 앞에 놓아준다. 우리는 그렇게 부부가 되고 있다.





132. 법원에 이혼 서류를 제출하던 날 철식이 그녀에게 물었다.

“나는 고아가 되는 건가?

“고아?”

그녀가 되물었다.

“고아…….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주먹으로 갈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그녀는 물었다.

“그게 마흔일곱 살이나 먹은 남자가 할 말이야?

철식을 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고아라고? 미친놈.

나는 이 책을 한 달 사이에 세 번을 읽었다. 감정을 그러잡고 싶을 때마다 읽은 것은 아니었고, 단편들을 순차적으로 읽지 않았기에 읽은 때가 두 번이었다.

아마 그 언젠가 또 숨구멍을 짓눌러 올 때,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비슷하게 미칠 것 같은 사람이 여기 또 있다는 위안을 받기 위해서.

부부는 결혼했다고 자연스레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노력이 있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란걸, 그렇기에 세상에 이혼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색안경끼고 보지 않을 수 있을 수 있는 마음도 동시에 생겼다. 나와 그는 오늘, 조금 더 부부에 가까워지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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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 들으면 두 번 말하라 - 영리한 인생을 사는 50가지 기술
와카오 히로유키 지음, 김현영 옮김 / 마음서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제목에 이끌려 읽고 싶었던 책이었지만, ‘영리한 인생을 사는 50가지 기술’중 하나에 불과했던 <여덟 번 들으면 두 번 말하라>였다. 각 50가지 제목들에 한 장 반 내지 두 장 정도 분량의 설명이 부가되어 있다. 이는 특별할 것 없는, 우리 모두가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나는 이 책에 대해 진부하다는 이유를 대며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거부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던 이유를 대부분 차지하는 것은, 50가지 중 겨우 1을 읽을 때였다. ‘당신은 오늘, 죽는다’라는 강렬한 부분에서 고백하기를, 책의 저자인 와카오 히로유키는 마흔다섯에 중증 급성간염으로 생과 사의 기로에 섰던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삶의 유한성을 깨달은 것. 삶의 유한성을 깨닫고 나서 삶의 본질은 우리가 아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 그러면서 조금 경계했던 것은, ‘삶은 유한하기에 욜로(You Only Live Once)처럼 살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러지는 않았다. 내가 사는 삶에 애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면 핵심이었다.

나는 삶이 무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삶의 유한성을 쉽게, 또 자주 잊는다. 삶의 유한성을 생각하다 보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 필요가 없지 않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열심히 살아내고 싶기도 한 이중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것이 당장 나에게 다가온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근래에 자주 생각하는 것 중 하나를 조심스레 고백하자면, ‘나는 오늘 부자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오늘 어쩌면 불구가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과연 나는 오늘 안전한가?




19. 내일이 되면 오늘보다 조금 더 늙습니다. 앞으로 남은 긴 인생에서 오늘의 당신이 가장 젊습니다. 무언가를 할 생각이라면 오늘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공부였다. ‘5월에는 하던 공부를 마저 해야지. 그런데 왜 이렇게 시작하기가 싫을까. 나는 의지박약인가.’하며 고민했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며 나의 가장 젊은 날, 나는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우선 그것을 하자!’ 결심했다. 그간 용케도 잘 미뤄왔다. 나는 6월에 볼 시험을 5월에 접수할 것이다. 나에게 공부하지 않을 수 있는 핑계는, 안타깝지만 조만간 사라지고 말 것이다.




108. 밝은 미래를 건설하고 싶다면 일단 배워야 합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배움을 가까이하면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나 역시 무척 공감하는 말 중 하나. 나이가 많든 적든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 의지, 용기만 있다면 그것은 재미없는 삶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배우는 과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어차피 나 그거 한두 달밖에 못할 것 같은데… 내가 그걸 배울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나는, 지금은 ‘고작 한두 달이라도 내가 재미있게 배웠으면 됐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즐겁게 배웠던 그 시간이 헛되지 않으면 됐다. 그에 대한 값어치를 매길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나니까.

게다가 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90세 노인의 수기>를 읽으면 이제 막 서른을 지난 내가 이 세상에 배울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하기 싫을 때 나는 자주 그 글을 찾아서 읽는다. 그럴 때면 나는 몹시도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지!




106. 살다 보면 한자리에 서서 한 방향으로만 안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아집에 갇히고 맙니다. 그럴 때는 조금만 관점을 바꾸어보세요. 다른 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관점을 바꾸는 일이 몹시 괴로운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관점을 바꿔 생각하는 것보다 타인의 말을 듣고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하며 수용하는 것이 내게는 조금 더 쉬운 일이다. 그것은 타인과 나의 다름을 인정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사람의 관점을 나의 관점으로 바꾸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느껴지기에 그러려고 노력하지 않게 되었다. 그만큼 관점을 바꾸는 일이 나는 무척 힘들게만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 에너지 소모라고 생각할 정도. 내가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나 내게 피해가 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쉽게 관점을 바꾸거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소신이 있다 정도로만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데, 어쩌면 어린 나이에 고집을 넘어 아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래서 타인과의 대화를 즐기려고 노력한다. 내가 생각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부분을 타인을 통해 듣고 싶어 하는 욕구를, 나는 '아직' 가지고 있다. 세상을 조금 더 재미있게 살아가려면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침을 즐겨야 한다고 (요즘은) 생각하고 있다.


209. 언쟁이 아니라 대화를 해야합니다.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고, 그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208. “나는 말싸움을 하지 않는다. 말싸움에서 이긴들 상대방의 생각이나 태도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가치관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편이 아닌데, 내게 그는 절대적인 타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일까. 나는 그와 대화를 하다가 언쟁으로 변질될 때가 있다. 내가 그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그가 내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그런 언쟁이 발생하는데, 특히 내 쪽이 좀 더 많이 심하다. 각기 개성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와 나의 모든 것이 맞을 수가 없는데도, 나는 종종 그것을 잊는다. ‘그는 나와 같은 방향에서 나와 똑같이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게 아닌 것 같으면 괜스레 섭섭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나는 내가 독선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와 나의 의견이 다를 때는 나는 어쩐지 내가 무척이나 독선적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째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다. (맨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보면 그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은 새로울 것이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것을 진부하고 식상하다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사는 거 아닌가. 사실 이 책의 저자인 와카오 히로유키 역시 이렇게 써놓고도 모든 것을 다 지키며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본질을 알고 있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깨우치기가 쉽다는 것. 두 해 전부터 내가 가슴속에 담아두고 매번 꺼내어 보는 말,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처럼. 근래의 나는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상실된 상태였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봐야지.


ps. 하지만 책의 제목은 좀 생뚱맞다. 예를 들면, 단편집 중 하나의 제목을 책 제목으로 쓴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고 그 부분을 특히나 임팩트 있게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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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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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를 이전에 먼저 만났었다. <금수>를 읽을 때도 조곤조곤하게 작가의 문장들이 연한 순두부처럼 보드라우면서도 섬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책의 내용은 그다지 밝을 수 없는 소재이지만, 따뜻함은 내내 지속된다. 책을 다 읽은 후에, 나는 주인의 손에 내맡긴 채 잠에 든 얌전한 강아지가 된 듯했다. 멍하니 있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부터 그런 조짐이 있었고 역시나 나의 예상이 딱 맞았는데, 그것에 대한 후폭풍이 몹시 심각한 것이었다. 그랬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왜’ 그랬냐는 것이 중요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중요했다.




일본 여행 중에 뇌졸중으로 죽음을 맞이한 기쿠에 고모의 사후정리를 하기 위해 고모가 살던 로스앤젤레스를 가게 된다. 조카였던 겐야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는 놀라움을 느낄 새도 잠시, 변호사가 보여준 유언장에는 찜찜한 문장이 있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여섯 살에 백혈병으로 죽었다고 알고 이던 레일라가 죽은 게 아니라 행방불명이 된 거라니?


“삭제된 마지막 다섯 줄에는 마약 레일라를 찾게 되면 겐한테 물려준 모든 유산의 70퍼센트를 레일라에게 주었으면 좋겠지만, 찾지 못하면 레일라 같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회운동에 유용하게 썼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문구가 덧붙여져 있었어요. (…)”
“레일라 요코 올컷은 여섯 살이 되었을 때 곧바로 백혈병으로 죽었어요.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레일라는 여섯 살 때 행방불명되었어요. 1986년 4월 5일이에요. 보스턴의 집에서 차로 15분쯤 걸리는 곳에 있는 막 개장한 대형마트에서요.” 


겐야는 어쩌면 무모하다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레일라를 찾기 위해, 아니 생사라도 알기 위해 사립탐정을 고용하게 된다.





159. “레일라는 살아 있는 거야? 죽은 거야? 적어도 그것만이라도 알려줘. 너희들의 깨끗한 마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야. 만악 레일라가 살아 있다면 도와줘.”


이 책의 가장 매력이라 함은, 착한 등장인물'들'에 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다 착하고 선한 사람들뿐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자꾸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처럼 등장인물들이 모두 착하기는 힘든데 말이지- 하면서. 책의 등장인물들은 레일라를 찾는 데에 여념이 없다. 겐야도, 사립탐정인 니코도 그 누구 하나 소홀함이 없다. 레일라의 실마리는 니코에 의해 하나씩 베일을 벗게 되지만, 그렇다고 가정만 할 뿐, '왜'가 없다. 겐야는 교코와 케빈에게서 '왜 그렇게 했는지,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 듣게 된다. 호흡을 길게 하여 천천히 읽고 싶었지만, 그런 속도 모르고 책장을 넘기는 손은 야속하게 점점 빨라지기만 한다. 그렇게 마주한 충격적인 진실에 나는 머리가 어수선했다.



377. 레일라는 4월 5일에 죽는다, 나는 레일라 묘의 묘석으로 살겠다.

내가 기쿠에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나는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서 그런 감정을 이입하는 것 자체가 조금 힘이 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생각보다 쉽게 이입이 됐다. 그보다 나의 배우자가 이언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것이 훨씬 더 이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기쿠에라면'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엄마라는 건, 나아가 '정상적인' 부모라는 건, 그런 걸까.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단 말인가. 정말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내가 그녀였다면 나도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리고 남은 생을 견뎌내야 했던 순간까지 얼마나 외로웠을까. 모든 진실을 마주하고 난 뒤에 나는 기쿠에가 안쓰러워 표지의 여인을 나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던 것 같다. 마치 표지의 여인이 기쿠에인 듯.





41. 배치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각각의 꽃이 그저 피고 싶을 때 피는 자연스러운 조합이 아름답다. 정말이지 잘난 체하지 않게 심어 놓았는데, 반대로 그것이 바로 기쿠에 고모의 잘난 체라고 생각하며 겐야는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158. -꽃에도, 풀에도, 나무에도 마음이 있단다. 거짓말 같으면 진심으로 말을 걸어보렴. 식물들은 칭찬받고 싶어 한단다. 그러니 마음을 담아 칭찬해주는 거야. 그러면 반드시 응해올 거야.


160. 그 순간 풀꽃들의 수런거림이 시작되었다.
분명치 않은 웃음소리. 속삭이는 목소리. 얌전한 중얼거림.......

나는 이 책을 발코니에서 읽었다. 내 발코니에는 얌전하고 가지런하게 나의 식물들이 놓여있었다. 나는 나의 식물들에게 오랜만에 하나하나에게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나 역시 식물들에게는 내가 모르는 속삭임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키우던 식물이 죽으면 한동안 의욕이 상실되는 것도, 똑같은 식물을 키우는 것을 겁내는 것도 그와 상응한다. 레일라를 둘러싼 이야기도 이야기였지만, 작가가 그려내는 기쿠에의 정원이 탐 나서 나는 잠시 사그라들었던 전원주택의 꿈을 생각해내었다. 기쿠에는 어쩌면, 상실을 위로하는 방법으로 이와 같은 멋진 정원을 가꾸어낸 것은 아닐까. 식물들에게 말을 걸었을 기쿠에, 식물들과 교감하며 잔잔하지만 큰 슬픔을 마음속에 묻어두었을 기쿠에. 하지만 감사하게도, 나는 미야모토 테루의 결말 하나로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고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서른세 개의 거베라 화분은 기쿠에의 바람처럼 언제까지고 싱그럽게 자라날 것이다. 이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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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 조광희 장편소설
조광희 지음 / 솔출판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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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십이 년에 처한다.



무죄였던 원심이 뒤집어졌다. 12년. 동호는 친구 승철의 변호를 맡았다. 원심이 이렇게 허무하게 뒤집힐 수 있나. 원심이 뒤집혔다면 이건 변호인의 책임이 크다.라는 생각으로 동호는 죄책감을 느끼고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 있는 동안 그가 선거 시절에 도움을 줬던 서울시장이 메일을 한 통 보내오는데 내용인즉슨, 전임 시장이자 현재 국회의원의 비리를 조사해달라는 것. 하지만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은 과연 만만치 않다. 그는 정의를 구현하고 싶어 하는 변호사인 까닭에 더욱 극심하다. 혼자서는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누군가를 섣부르게 고용하는 것도 불안하여 동호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직원들에게 부탁을 한다.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걸 목격하게 되고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동호는 그 비리를 적나라하게 파헤칠 수 있을까?

리셋, 왜 리셋일까. 생각했다. 어째서 리셋일까. 이건 정말 간단하지 않다. 인간의 인생은 리셋될 수 없다. 켜켜이 쌓아온 역사이기 때문에. 하지만 장 회장은 이십억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사버리려고 한다. 그 제의는 솔깃하다 못해 움츠러들게 한다. 돈이면 모든 것에서 해방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모든 이들이 ‘암묵적 진실’이지 않을까. 그 사실만으로도 슬퍼진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도, 조양호의 일가도, 어쨌든 모든 것이 ‘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그만큼의 돈을 가져본 적 없어 돈이 우습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그런 돈을 쥐고 있다면 정말 인생을 리셋할 수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평생 먹고 살 수만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양심까지 팔아치울 수 있는 사람이, 어쩌면 가장 가까이는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 생각을 억제하기 위해,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기 마련이다. 라는 말로 나의 뇌를 맑게 환기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뉴스에서 마주할 때면 모든 뇌의 흐름이 끊어지게 됨을 느끼는 건 이미 돈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전에 읽었던 책 두 권이 생각났는데, 안천식 변호사의 <고백 그리고 고발>에서 기을호 씨와 대기업의 사건은 사법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었다면, 손아람 님의 <소수의견>은 한 사람을 위해 대한민국을 피고인으로 두고 재판을 진행시키는 것.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다 피차일반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 분배되어 있는 부분 중 정의를 위한 부분은 너무나도 약소하고 보잘 것 없어서 진실을 호도하려는 자들이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이 여전히 난제로 남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것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돈과 권력에 쉽게 휘말릴 수밖에 없고, 생명과 밀접하면 더욱 그러하다.


과연 나는, 윤리를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인가? ... 확답할 수 없다. 내게 돈과 권력이 주어지지 않았고, 주어질 확률이 그리 크지 않기에 지금 당장은 아니. 라고 당차게 말할 수 있지만, 정말 그것이 내 앞에 주어졌을 때 그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나. 그렇게 진실은 규명되지 못하고 호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리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 나는 내가 윤리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고민할 수 있는 인간이었으면 한다.

+

등장인물 중 이 사람은 왜 넣었을까- 싶은 이가 있었다. 왜. 왜. 왜지? ... 결국은 신경 쓰지 말자- 그것은 그리 크게 신경 쓸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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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상을 완성해 줘
장하오천 지음, 신혜영 옮김 / 이야기나무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한 번씩, 나의 사랑에서 벗어나 타인의 사랑에 대해 관심을 돌릴 때가 있다. 그게 딱 요즘인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평소에는 찾아보지도 않았을 드라마를 본다며 TV 앞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흠칫 놀라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그와 나의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따뜻한 봄이니까, 바람이 살랑살랑 부니까, 꽃이 피니까, 분홍색의 옷을 많이 입으니까 라는 우스운 핑계들로 점철 지어진다. 어쨌든, 어떤 계절인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봄은 사랑을 시작하기 참 좋은 계절임에 틀림이 없다. 드라마나 영화, 책을 보다 보면 처음엔 그와 내가 갓 연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도 생각이 나서 실실거리지만, 곧 흥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이야기에 개연성이 없거나 기상천외한 연애를 한다거나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너무나도 잘 아니까. 사랑에 빠졌다가 다퉜다가 결국은 둘이 이어지는 스토리는 어쩌면 너무나도 흔한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물론 엔딩은 달라질 수 있다는 건 명심하고.

나는 링컨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라는 말을 무척 좋아한다. 어떤 말을 넣어도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좋아한다. (뜬금포 고백) 한 예로, '사랑을 위한, 사랑에 의한, 사랑의'라고 바꿀 수도 있는데, 여기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개인적으로는 어떤 이론이나 해석이든 전부 가능한, 알파의 의미를 가져서 더욱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사랑에 관심을 가진다. 내가 가진 사랑의 형태와 대조시키기보다는, 그 사람의 사랑은 어떤 형태인지 궁금해서. 그러한 이유로 집어든 책이 <나의 세상을 완성해줘>였다. 열두 편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 사랑에 대한 이야기.




어느 순간, 사랑에 관한 한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는 사랑은 이렇지만, 이 사람이 하는 사랑은 이렇고, 저 사람이 하는 사랑은 저렇다는 것을 우린 너무나도 잘 알지 않나. 사람 생김새가 다르듯, 사랑도 각양각색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 이야기에 함께 웃고 슬퍼하며 공감하는 것은 그 사랑과 나의 사랑이 완전하게 닮아서 그렇다기보다는 비슷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이게 진짜 현실 속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라는 생각을 많이 배제시키려 노력했다. 각기 사연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겪지 않은 일이라고 하여 그것은 '현실과 동떨어지는 일'이라고 속단하는 것이 조금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조금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랑도 남들이 들으면 신기하다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반대로 나는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랑을 남들은 시시하게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책은 내 기준에서는 그렇게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다. 조미료가 조금 과했다. 열두 편의 사랑을 엿보았지만, 어떤 사랑에도 마음을 주지 못했다. 마음이 에 닳는다거나 안타깝다거나 웃음이 나온다거나 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사랑을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누군가의 감정 속에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치중했기에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들의 상황뿐이라 더 그렇게 느꼈던 것일까. 어쨌든 아쉬움이 짙다.








오탈자402. 샤펑 농담에서 통쩐은 꿈쩍하지 않았다 ▶ 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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