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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 조광희 장편소설
조광희 지음 / 솔출판사 / 2018년 4월
평점 :
7.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십이 년에 처한다.”
무죄였던 원심이 뒤집어졌다. 12년. 동호는 친구 승철의 변호를 맡았다. 원심이 이렇게 허무하게 뒤집힐 수 있나. 원심이 뒤집혔다면 이건 변호인의 책임이 크다.라는 생각으로 동호는 죄책감을 느끼고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 있는 동안 그가 선거 시절에 도움을 줬던 서울시장이 메일을 한 통 보내오는데 내용인즉슨, 전임 시장이자 현재 국회의원의 비리를 조사해달라는 것. 하지만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은 과연 만만치 않다. 그는 정의를 구현하고 싶어 하는 변호사인 까닭에 더욱 극심하다. 혼자서는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누군가를 섣부르게 고용하는 것도 불안하여 동호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직원들에게 부탁을 한다.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걸 목격하게 되고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동호는 그 비리를 적나라하게 파헤칠 수 있을까?
리셋, 왜 리셋일까. 생각했다. 어째서 리셋일까. 이건 정말 간단하지 않다. 인간의 인생은 리셋될 수 없다. 켜켜이 쌓아온 역사이기 때문에. 하지만 장 회장은 이십억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사버리려고 한다. 그 제의는 솔깃하다 못해 움츠러들게 한다. 돈이면 모든 것에서 해방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모든 이들이 ‘암묵적 진실’이지 않을까. 그 사실만으로도 슬퍼진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도, 조양호의 일가도, 어쨌든 모든 것이 ‘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그만큼의 돈을 가져본 적 없어 돈이 우습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그런 돈을 쥐고 있다면 정말 인생을 리셋할 수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평생 먹고 살 수만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양심까지 팔아치울 수 있는 사람이, 어쩌면 가장 가까이는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 생각을 억제하기 위해,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기 마련이다. 라는 말로 나의 뇌를 맑게 환기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뉴스에서 마주할 때면 모든 뇌의 흐름이 끊어지게 됨을 느끼는 건 이미 돈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전에 읽었던 책 두 권이 생각났는데, 안천식 변호사의 <고백 그리고 고발>에서 기을호 씨와 대기업의 사건은 사법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었다면, 손아람 님의 <소수의견>은 한 사람을 위해 대한민국을 피고인으로 두고 재판을 진행시키는 것.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다 피차일반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 분배되어 있는 부분 중 정의를 위한 부분은 너무나도 약소하고 보잘 것 없어서 진실을 호도하려는 자들이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이 여전히 난제로 남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것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돈과 권력에 쉽게 휘말릴 수밖에 없고, 생명과 밀접하면 더욱 그러하다.
과연 나는, 윤리를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인가? ... 확답할 수 없다. 내게 돈과 권력이 주어지지 않았고, 주어질 확률이 그리 크지 않기에 지금 당장은 아니. 라고 당차게 말할 수 있지만, 정말 그것이 내 앞에 주어졌을 때 그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나. 그렇게 진실은 규명되지 못하고 호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리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