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이혼, 나는 이혼을 상상하곤 한다. 이혼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상상하기보다는, 그와 함께 살지 않는 것을 상상한다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이겠다. 대부분 마음이 공허할 때 그렇다. 나의 감정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쪽은 언제나 그이기에 미안한 마음이 일기 때문이다. 내가 서운함을 느끼거나 서러움을 느끼거나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대부분 그에게서 기인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니까. 그렇게 우리, 각자 살게 되면 어떤 모습일까,를 어렵지 않게 상상해본다. 하지만 차라리 처음부터 결혼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결혼한 이후로 그와 각자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상상을 해보는데, 다행이라고 느끼는 것은 내가 각자 사는 삶에 대해 불안정하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그는 결혼한 이후로 내게 ‘안정’이라는 큰 쉼터가 되었다. 나는 그이가 잘 가꾸어놓은 초원에서 양분을 얻고 쑥쑥 자라는 어린 사슴이다. 그러한 사실이 내게 큰 위안과 감사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자고 있는 그의 손을 찾는다. 그러면 그는 잠결에 내 손을 더 꽉 그러잡는다. 그의 온기에서 나는 평온을 되찾는다.




이 책을 읽을 무렵도 그때였다. 감정이 폭발적으로 일던 봄. 봄은 그렇다. 풀릴 것 같은 날씨이면서도 춥고, 덥고, 습하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사람에게 희망고문을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봄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분명 봄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도 언젠가부터 봄을 멀리하게 되었다. 나의 감정이 봄의 변덕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김숨의 <이혼>은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단편 중 하나였다. 책의 제목은 수상작인 <웃는 남자>에 실렸다. 나는 망설임 없이 <이혼>을 펼쳤다.




책에는 이혼을 한 사람, 이혼을 앞둔 사람, 이혼을 하고 싶어 했지만 못한 사람이 나온다. 보면서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특히 부부로서의 오십삼 년의 삶이 그러했다. 아…… 오십삼 년이라니. 자그마치 오십삼 년. 요즘 이혼은 무척 쉬운 것처럼 말들 한다. 하지만 나는 이혼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안다. 나는 어머니가 아니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125. “엄마, 아버지하고 이혼하고 싶었던 거 아니야?

“…….”

“엄마가 그랬잖아. 아버지하고 이혼하는 게 소원이라고.

“모르겠다…….

“왜 몰라?

“그러게…….



꼭 내 아빠가 그랬다. 또 내 엄마 역시 그랬다. 둘 모두 그랬는데도, 그랬다. 둘은 삼십 년을 넘게 부부로 지내왔지만, 여전히 맞추지 못하는 퍼즐이다. 그리고 맞출 수 없는 퍼즐이기도 하다. "너네 아니었으면 네 아빠랑 벌써 이혼했어.”라는 말을 나는 듣고 자랐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제일 잘못한 일이 있다면, 결혼을 하기도 전에 들어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말을 듣고 자라면서 나와 내 동생은 어쨌든 몸은 어른으로 성장했다. 우리 남매는 앞가림 하나는 누구보다 잘했다. 내 동생은 중간에 힘든 일을 겪기도 했지만, 그건 본인이 저지른 일이니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릴 때 나는 우리 집이 꽤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엄마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입장이 바뀌었다. 나는 오히려 아빠에게 엄마와 이혼을 하라고 말을 한다. 엄마와 사이가 괜찮았을 때에도 아빠와 이혼하라고 말을 했다. 그냥 둘은 서로 각자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우리 남매도 더 이상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으니, 서로 각자 편하게 사시는 삶을 권해드리고 싶었다.





125. “엄마, 지금 감정이 어때?

“응……?

“엄마가 지금 느끼는 감정 말이야. 슬퍼?

…….

“행복해?”

“…….”

“아니면 화가 나?

“…….”

“막 화가 나지 않아?

“모르겠어…….

“화가 나 미칠 것 같지 않아?

그러나 화가 나 미칠 것 같은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그녀였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나 보다. 법원에서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이혼숙려기간이 지난 4주 후, 법원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 쪽에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보다 엄마는 이혼을 훨씬 더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에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울었던 것도 엄마고, 법원에 가지 않겠다고 통보하고 연락을 끊은 것도 엄마라고 했다. 나는 중간에서 화가 났다. 정말, 책의 민정처럼 화가 나 미칠 것 같은 사람은 내 부모가 아니라 나였다. 나 역시 더 이상 도울 수 없다고, 민정처럼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후회했지만,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뱉은 말에 대해 나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미치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후회하면 안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에는 각자의 삶은 각자가 살아야 한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삶은 대신 살아줄 수가 없다는 것도, 내가 신경을 쓰는 것만큼 상대는 (그게 아무리 부모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내 경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본인 삶인데도 그랬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명치가 아팠다. 숨구멍이 막힌 것 같았다. 젠장할.



119. 결혼해 사는 내내 수억 광년 떨어진 행성처럼 서로 겉도는 느낌이었거든. 주말부부로 살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야. 새벽에 잠에서 깨, 그 사람 손을 슬그머니 그러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옆에 누워 잠든 그 사람이 이생에서는 만날 수 없는 존재처럼 멀고멀게 느껴져서.


가끔 나는 그가 내게서 조금 멀리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나 역시 그럴 때마다 그를 지그시 바라보곤 한다. 그는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왜? 하고 물음을 던지지만, 나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당신이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아.”라고 하는 말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런 추상적인 것들에 대해 이해를 잘 하지 못하고 토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내게 멀어질 생각을 한 적도 없고, 그렇기에 그런 행동을 일부러 하지 않았으며,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을뿐더러, 그는 내게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도 오 년을 함께 살 맞대고 살다 보니, 나의 행동들에 물음표를 그리며 나의 행동을 그리고 감정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는 점이다. 내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면 휴지를 가져다주고, 내가 그의 손을 찾으면 손을 더 꽉 잡고, 따뜻한 차 한 잔을 타서 내 앞에 놓아준다. 우리는 그렇게 부부가 되고 있다.





132. 법원에 이혼 서류를 제출하던 날 철식이 그녀에게 물었다.

“나는 고아가 되는 건가?

“고아?”

그녀가 되물었다.

“고아…….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주먹으로 갈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그녀는 물었다.

“그게 마흔일곱 살이나 먹은 남자가 할 말이야?

철식을 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고아라고? 미친놈.

나는 이 책을 한 달 사이에 세 번을 읽었다. 감정을 그러잡고 싶을 때마다 읽은 것은 아니었고, 단편들을 순차적으로 읽지 않았기에 읽은 때가 두 번이었다.

아마 그 언젠가 또 숨구멍을 짓눌러 올 때,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비슷하게 미칠 것 같은 사람이 여기 또 있다는 위안을 받기 위해서.

부부는 결혼했다고 자연스레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노력이 있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란걸, 그렇기에 세상에 이혼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색안경끼고 보지 않을 수 있을 수 있는 마음도 동시에 생겼다. 나와 그는 오늘, 조금 더 부부에 가까워지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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