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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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라는 문장을 이 책의 서평 첫 머리에 꼭 쓰고 싶었다.



5년 사이에 거주지가 자주 바뀌었다. 대부분의 생을 대전에서 살다가 결혼을 하면서 평택으로, 진주로, 대구로 오가는 동안 내가 느낀 결핍들은 때때로 나를 잠식시킨다. 이는 누군가와 비교해서 생기는 결핍이 아니라 내부의 모든 감정들이 충돌하여 일어난 결핍들이었다. 그런 것들을 나는 앞으로 남은 생의 20년 정도는 더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데, 아직도 그러한 방법을 잘 모르고 있어서 여전히 힘이 든다고 자주 느낀다. 지난번에 겪어봤으니 이번엔 괜찮겠지, 지난번에 그만큼 힘들었으니까 이번에는 좀 덜 힘들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보기 좋게 예상과 빗나갔다. 그때는 그때라서 힘들었고, 지금은 지금이라서 힘들었다. 그때는 그때만큼 힘들었고, 지금은 지금만큼 힘이 든다. 그때도 많이 힘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는 곱절 힘이 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때로는, 어딘가에 정착할 수 없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 적이 있었다. 여행 다니듯 삶을 살면 정말 좋겠다. 나는 여행하는 삶을 살아야지. 하지만 그런 마음은 항상 그곳에 정착하고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낯가림이 많은 사람이었고,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게 문제일지도 몰랐다. 이사를 다니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결국은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귀결되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동안 내가 긍정적으로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살지 않아도 되네. 얼마만 더 이곳에 살면 되겠다. 하는 것들이었는데, 특히 지금이 그랬다. 뭘 해도 마음이 붕 떠있는 것 같은 나날들을 지내고 있다. 이곳에서 몇 년만 더 참으면 된다. 라는 생각이 아직도 나를 지배하고 있다. 처음보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우습지만, <이방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운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의 삶이 힘겨웠다고 말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한국에서 지역과 지역 사이를 오가는 것도 적응이 되지 않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저들은 어떨까 - 하물며, 모국어가 아닌 그곳의 언어로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이야기할 수 있겠으며, 그렇게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가 과연 생길까? 하는 것들에 눈이 시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라는 제목을 보고, 마음이 저렸다. 꼭 나를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전 회사에서 안건을 낼 때 “그 지역에서는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이라는 말로 시작된다거나, “OO씨가 사는 곳은~” “OO씨, 다음번엔 어디로 가요?” 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내내 주변인이었고,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뼈가 있는 말들이라고 생각했다. 줄거리를 읽으며, 나는 이 책을 꼭 읽어야만 하겠어 - 라는 강한 집착을 가지기도 했다. 내가 찾지 못한 숙제의 답을 간절하게 찾고 싶었던 심정의 나는, 여전히 한 마리의 어리고 여린 사슴이었다. 그러면서도 책을 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에서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




책에는 9편의 단편이 실려있었다.

<히어 앤 데어> <동국> <라스트 북스토어> <천천히 초록> <로사의 연못> <분홍에 대하여> <압시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로드>


체류 기간 2년 동안 거주지를 정해야 하는 동희, 이제야 자신을 찾기 시작한 작은엄마 동국, 헌책방에서 판소리 LP판을 보고 반가워하는 ‘’, 무슨 연유에선지 우울증에 걸린 올케 연희(개인적으로는 안아주고 싶은 인물), 총성이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을 ‘’, 거의 매일 물 뿌리듯 비가 조금 오고 무지개가 자주 드는 신비한 곳의 검은 연못, 검은 물, 검은 흙 속에 살고 있는 듯한 부부, 마음에 쏙 드는 단어들을 속삭였던 남편과 헤어진 뒤에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로 도망치듯 온 세레나, 생부가 써놓은 ABCD가 이름이 된 압시드, ‘네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 몰라서 그래’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 둥지를 떠나 살다가 엄마의 집으로 향하는 삼 남매, 진, 범, 명




단편 중 좋지 않았던 단편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다 각기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하나의 단편을 두고서도 오래도록 생각할 수 있음이 실로 반갑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찾던 답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없었고 나를 쓰다듬어주거나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을 그려낸 이야기를 보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동질감 같은 것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책 뒤편에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보고, 울컥,한 마음을 삼키었다.



늘 그랬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떠나야 하는 나는, 그곳에서의 삶이 힘들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금세 퇴색되고 급기야 미화되고 있는 것을 종종 느꼈다. 이제 익숙해졌으니까, 하는 마음이 더 컸던 탓도 있었다. 이제 살 만한데, 또다시 어디론가 가야 한다니 - 라는 생각만으로도 아득해졌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버티려고 노력했지만 막상 마주치고 나면 그러한 마음들은 자주 힘을 잃어버렸다. 어느 지역에 잠시 임시로 거주한다는 생각을 언제나 가지고 있던 탓에 완전한 마음을 줄 수도 없었고, 나는 자주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이번에는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나는 이번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어떤 것이라도 붙잡고 싶었으나 그런 노력들이 허공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급기야는 나는 이곳에서는 살 수 없다는 결론까지 내는 상황까지 이르며 주말부부를 먼저 내뱉기도 했다. 그런 나를 잡아준 것은 J지만, 한편으로는 J 때문에…라는 원망과 미움이 커져가던 나날들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제는 굳이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마음을 한 단계 내려놓고 유심히 관찰한다. 그러면 그 여느 때보다 선명해지고 분명해진다. 내가 살고 싶은 삶과 내가 꿈꾸는 삶에 대하여. 그러면서 이러한 삶들은 결국, 내게 주어진 기회라고 여기게 된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책에서, 우리는 어떤 식이든지 세상을 떠도는 유목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부분에서 나는 이민을 간 사람과 역이민을 온 사람과 한국에서 사는 사람 모두 각자의 고충을 안고 있구나. 누구나 다 고립되어 있는, 소속감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많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시간들을 보냈다. 익숙하다고 사랑한 것이 아니고, 낯설다고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모든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들을 내비쳤고, 극렬히 미워하는 시선들을 내리꽂았다. 일부도 전체로서의 일부이기 때문에 일부라고 부른다는 그 말을, 그렇기 때문에 그게 전체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는 그 말을,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에 대해 일부에게도 윤리적 책임이 따른다는 그 말을 나는 분명하게 지지하는 바이기에 여전히 내가 이곳에서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느낀 것들을 뒤엎기는 힘들겠지만, 조금은 나른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희는 문득 한국에 머문 지 어느덧 4개월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1년 8개월이 지나면 거소증이 만료된다는 사실도. 더 연장할 건지 떠날 건지 지금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엇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았다. 가령 어느 천변이 걷기에 좋은지, 어느 밥집이 맛있는지, 어느 마트가 친절한지, 어느 미용실이 샴푸를 더 깔끔하게 하는지 같은 거였다. 이 도시가 점점 몸에 익어가는 것만 같았다. 동희는 제 몸 어딘가에서 잔뿌리들이 뻗어 나와 흙을 가르고 축축한 곳을 찾아 스스로 내려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들은 본능처럼 익숙한 곳은 감지하고 저 홀로 뻗어 나갔다. 그러니 동희는 아무 일도 한 게 없었다.

동희의 이야기를 읽으며 왈칵 자주 눈물을 쏟았던, 한국도 미국도 아닌 서 있는 곳이 그녀가 존재하는 곳이며, 어디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어디에서 죽느냐의 문제더라는 그 말들을, 나는 오래도록 사슴이 풀을 되새김질하듯 이곳에서의 삶이 힘겨워질 때마다 반추하게 될, 귀중한 지표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한 마리의 어리고 여린 사슴이다.





 




<히어 앤 데어>

 

21. 지하로 내려오면 방향 감각을 잃었다.


30. “어디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어디에서 죽느냐의 문제더라고. 체류 기간 2년 동안 잘 생각해봐요.”

33. 모든 것이 흐릿한 가운데 그녀의 의식만이 분명했다. 한국도 미국도 아닌 현재 서 있는 곳이 그녀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34. 동희는 문득 한국에 머문 지 어느덧 4개월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1년 8개월이 지나면 거소증이 만료된다는 사실도. 더 연장할 건지 떠날 건지 지금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았다. 가령 어느 천변이 걷기에 좋은지, 어느 밥집이 맛있는지, 어느 마트가 친절한지, 어느 미용실이 샴푸를 더 깔끔하게 하는지 같은 거였다. 이 도시가 점점 몸에 익어가는 것만 같았다. 동희는 제 몸 어딘가에서 잔뿌리들이 뻗어 나와 흙을 가르고 축축한 곳을 찾아 스스로 내려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들은 본능처럼 익숙한 곳은 감지하고 저 홀로 뻗어 나갔다. 그러니 동희는 아무 일도 한 게 없었다.


 

 

<라스트 북스토어>


79. 우리는 어떤 식이든지 세상을 떠도는 유목민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이민자가 나이거나, 내 동생이거나, 내 엄마이거나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천천히 초록>


101. “나를 떠올리면 그림의 한 부분이 지워지거나 뭉개져 있는 느낌이 들어. 시간의 한 부분이 뭉텅뭉텅 잘려나간 느낌이 든다고. 그런 기분 모르지? 머리와 다리만 있는 몸으로 사는 느낌. 앞으로 한국에서 계속 살 거냐는 질문도 하지 마. 날 짜구 몰아내는 것 같아. 어디에서 사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해?”


110.“서로 다른 성질의 것들이야. 그렇게 다른 것들을 같은 조건으로 비교하면 고유한 것들이 묻혀버리고 말잖아.”


116.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본 것은 신문지를 꽉 움켜쥔 아버지의 두 주먹뿐. 묻지 않아도 될 것과 알지 않아도 될 것들 속에서도 삶은 충분히 완전체로 흘러갈 거였다.




<분홍에 대하여>


151.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그의 말을 이해했어. 그도 나의 말을 이해했어. 우리는 서로의 말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었어. 그러니까 사랑이지.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

이 세상 그 누구의 말보다 나는 그의 말이 가장 이해하기 쉬웠다고.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이해 못 할 말이 세상에 어딨느냐고 물을 거야.”

“돌을 쪼듯, 그는 내 맘에 꼭 드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골라 내게 말을 걸어주던 사람이었어.

“나를 ‘내 예쁜 빨강 눈 토끼새끼’, 그렇게 불러줬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도 듣기 좋아 자주 들려달라고 자꾸 힝힝, 하면서…….

158.“입술도 점점 파리해지고 빛나던 눈동자도 빛을 잃었겠지. 묽어지다 희미해지다 결국 사라지는 것. 색깔을 잃어버리는 것. 사랑을 놓친다는 것은 그런 거였더라고.

“남편과 헤어지고 어디든 멀리 가고 싶었어. 다른 언어를 스는 곳이면 어디든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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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3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안영준 옮김, 엄인정 해설 / 생각뿔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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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유명한 <노인과 바다>를 이제야 접했다. 일부러 읽지 않은 건 아닌데, 언젠가 읽겠지 하면서 미뤄두었던 수많은 책 중 한 권이었다.

와, 정말 격정적이었어.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촌스러운 나는 이것 말고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문득, 지금보다 더 어린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 책에 대한 어린 내가 느꼈을 감상이 궁금해지다니.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가장 어린 나이인 지금이라도 책을 부지런히 읽어서 기록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84일 동안 노인은 물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처음에 바다에 나왔을 때 마놀린이라는 소년과 동행하였지만, 40일 동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노인을 살라오(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소년을 다른 사람의 배를 타도록 권유했다. 노인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이번에는 멀리까지 나가보기로 한다. 혼자서 바다를 나간 노인은 어마어마하게 큰 (코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5.5미터인) 청새치를 잡았고, 멀리서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고 온 상어들을 물리쳤지만, 결국 노인이 가져온 것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청새치였다는 것.이 이 책의 짧은 줄거리다.


112.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는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너무나도 간단한 줄거리에 우리가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단연 노인이 청새치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의 묘사였다. 단지 물고기를 잡는다는 표현보다는, 사투를 벌인다는 표현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격정적이었다.

낚싯줄을 계속 잡고 있는 탓에 손바닥이 패이고, 손에 쥐가 나서 마비가 될 정도였다. 그 와중에 외로움과도 싸워야 했고, 졸음과도 싸워야만 했다. 그럼에도 노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은 노인의 승리로 청새치를 잡아서 배 옆에 붙잡아매었다.


126. “놈들과 싸울 거야. 죽을 때까지.”

하지만 ​승리도 잠시,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고 상어들이 나타난다. 노인은 청새치를 상어로부터 지키는 것이 사명인 것처럼 상어들로부터 청새치를 지키려고 갖은 노력을 한다. 상어를 물리치는 부분에서는 이러다가 노인이 죽으면 어떡하지, 혹은 상어한테 잡아먹히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노인의 기력이 쇠해가는 것을 느꼈다. 배의 손잡이를 무기로 써야 할 만큼 상어와 대적할 수 있는 무기도 부족한 상황이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계속해서 싸운다.



131. “아무것도 없어. 다만 나는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남은 것은, 청새치의 앙상한 뼈. 노인은 항구에 도착해서 돛을 감아 묶고 돛대를 어깨 위에 걸머메고 매우 힘겹게 오두막으로 향한다. 그리고 밀린 잠을 잔다. 청새치와 대적하기 전 졸음과 싸울 때, 그렇게도 꾸고 싶었던 사자 꿈을 꾸면서.





136. “다시 저와 함께 고기를 잡아요.”
“아니다. 난 운이 없는 사람이야. 더 이상 나는 운이 없어.”
“그놈의 운 타령 좀 고만하세요. 운은 제가 가지고 올게요.”


그리고 소년과 함께 바다에 나가겠지. 그들만의 르 마르(바다를 좋아한다는 표현의 스페인어)에서, 노인은 이제 새와 이야기를 하거나 바다를 향해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의 신체에 이야기를 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혼잣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곁에 있는 소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었다. 노인의 바람대로 행운의 숫자가 된, ‘85’에 대해 노인은 두고두고 소년에게 말하게 될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더 이상 노인은 외롭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PS.

7페이지에서 살라오에 대해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해놓았는데, 그보다는 ‘운이 없는 사람’ 혹은 ‘운이 다한 사람’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재수 없는 사람’ 역시 똑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나처럼) 잘못 해석할 우려도 있으니까. 나의 경우에는 내내 ‘재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을 하다가, 마지막에 136. “아니다. 난 운이 없는 사람이야. 더 이상 나는 운이 없어.” “그놈의 운 타령 좀 고만하세요. 운은 제가 가지고 올게요.”를 보면서 아, 그 뜻으로 얘기하는 거였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비단 내 문제면 어쩔 수 없겠지만. (흠) 게다가 작품 해설에는 ‘운이 다한 사람’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차라리 통일을 하지. 아쉬웠던 부분.


 

* 책 속의 문장들

31. 어둠 속에서 노인은 아침이 오는 소리를 느꼈다.

그리고 노를 저어 나아가면서 날치들이 물을 떠나면서 내는 몸을 떠는 소리와 솟구쳐 날며 뻣뻣하게 세운 날개로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들었다.

34. 빛의 산란


112. 좋은 일이란 오래가는 법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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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습관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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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라는 책을 한 이웃님의 서평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 평이 너무나도 좋았기에, 작가를 마음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그 책을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전에 <사랑하는 습관>을 먼저 만나보게 되었다. 섬세하고 세심한 작가의 문체를 칭찬하는 분들이 많아 더욱 기대가 되고 있던 참이었다.




1950년대 초반에 쓰인 작품들인데,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초반의 영국인들(즉,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무너져버린 혹은 무너지고 있는) 영국인)과 더 나아가 유럽인들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없으면 읽어나가기가 조금은 어려운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읽기가 그리 힘들었나.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사랑하는 습관>에는 사랑하는 습관, 그 여자, 동굴을 지나서, 즐거움, 스탈린이 죽은 날, 와인, 그 남자, 다른 여자, 낙원에 뜬 신의 눈이 있다. 나는 이 책의 단편들을 읽어놓고도 멍한 상태를 유지할 때가 많았고, 그것에는 나의 독해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자책도 덩달아 따라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습관/에 마음을 가장 많이 둘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동굴을 지나서/를 세심하게 보았다. 물론 그 단편을 한 번 읽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나 역시 제리처럼 눈의 실핏줄이 터져나가는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다 읽고 나니 그 단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37. 있잖아요, 조지, 당신은 그저 사랑이 습관이 되었을 뿐이에요.

“꼭 뭔가를 품에 안고 싶어 한다는 뜻이에요. 혼자 있을 때는 어떻게 하세요? 베개라도 안고 계세요?

 


사랑하는 습관을 지녔다는 것은, 어떤 걸까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마주했었다. 분명 나는 사랑하는 습관에 대해서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단편을 읽고 나니, 사랑하는 습관이 결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랑을 하는 습관,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습관, 습관적으로 사랑을 하는 것, 습관적으로 사랑을 한다고 착각하는 일 - 사랑이 습관이 되어버린다면, 그래서 내가 상대방에게 가진 감정이 사랑인지 사랑이 아닌지 불분명하다면 그보다 더욱 외로운 것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착잡해졌다.

책 속의 조지 탤벗은 마이러에게 버림받고 아내를 만나 자신과 결혼해주기를 간청한다. 이 부분에서 이미 조지의 심경을 알 수 있는 말이 나온다. “나랑 같이 살면 당신도 좀 덜 외로워질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소?” 결국 그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을 한다기보다 그저 혼자 남는 외로움이 싫어서 어떤 여자든 곁에 두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조지를 가볍게 무시하며 자신은 연하의 남성과 재혼을 할 것이라 말한다. 그는 그 여파로 그는 독감에 걸려 간병인을 두게 되었는데, 자신을 간병해주는 서른다섯의 젊은 보비와 결혼을 하게 된다. 너무나도 습관적으로.


19. 이제 생각해보니, ‘가슴이 아프다’라는 말은 사람이 아픈 심장을 품고도 밤낮으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뜻인 것 같았다.

적어도 사랑은 습관이 되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한 것 같다. 습관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 그러한 상황이어서, 그러하다고 믿으니까, 실제로 그러하니까 - 하지만 우리는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살펴보고 자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늘 물어야 한다. “너의 심장은 누구에게 뜨거워질 수 있니?” ... 중독적인 사랑이 아니라, 습관적인 사랑을 -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131. “누구에게나 쉬운 인생은 없어요. 각자 나름의 어려움이 있죠.” (스탈린이 죽은 날)


/동굴을 지나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내 생각이 아직 다 정리가 되지 않았을뿐더러 읽은 것의 1/3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 단편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누구나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 중 하나를, 제리는 멋지게 해내었기 때문에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물속에서 3분을 버틸 수 있는 것은, 단지 3분을 버틸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그가 성장했다는 방증일 터였다. 제리는 앞으로도 조금씩 조금씩 크고 작은 동굴을 지나올 것이었다. 그리고 제리라면, 동굴을 잘 - 지나올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게 조금 부러웠던 것 같다. 스스로 동굴을 자처해서 들어가고 잘 빠져나올 수 있었던 모습들이 용기 있게 보였다. 서른이 지난 나에게도, 그러한 동굴을 지날 시기가 아직 더 많이 남아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동굴을 지나가는 도중에 이 단편을 생각할 수 있으면 더없이 위안이 되겠다.





ps.

15. 그녀는 아이들을 오랫동안 내버려둘 수 없었기 때문에 2주 동안만 영국에 머무르면서, 오스트레일리아와 그곳의 날씨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라는 문장을 보면서, 뭐야? 구글로 번역했어? 뭐 이래? 어떻게 해석하라는 거야? 이게 앞뒤가 맞는 말이야? ... 하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전체적인 문장들이 읽으면서 이해를 하기에 너무 난해했는데, 1. 눈에 쏙 들어오는 그런 번역본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 혹은 2. 내가 독해력이 부족한 건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ps2.

도리스 레싱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19호실로 가다>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습관>이 좋아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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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플란트 전쟁 - 본격치과담합리얼스릴러
고광욱 지음 / 지식너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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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플란트의 전쟁>이라니, 나는 이 책이 너무나도 읽고 싶었다. 치과의 비리를 폭로하겠어! 라는 책이라는 정보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재 내 입에는 차가 한 대 들어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차 한 대 값이 들어있다는 말이다.)
나는 치과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치과를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치과는 20대에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가야만 했던 곳'이었다. 나의 치아는 약하고 부식이 잘 되는 편에 속했는데 고등학생 시절에 밤늦게 사탕이나 껌, 캬라멜, 음료 등을 먹고 그대로 자던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에 상황은 더 심각했다. 양치를 하기 싫어서 안 하고 잔 게 아니라, 잠깐만 누워있어야지, 하다가 잠든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억울하기도 했다. (도대체 왜?)

게다가 (믿거나 말거나지만) 엄마가 나를 품었던 임신 기간 동안 이가 너무 아파 참지 못하고 발치를 했다는 것을 듣곤 내가 그 때문에 이가 이렇게 약한 게 아니냐는 원망 섞인 목소리를 많이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던 단 하나는, 치열이 고르다는 것뿐인데 그래서 그 덕에 교정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교정을 하지 않아도 됐을 뿐이다. 교정이라는 것은 오로지 선택사항이니까. 하지만 나의 치아를 치료하는 일들은 선택사항을 훨씬 넘어 필수적인 것에 속했다. 지금 치료를 하지 않으면 삼십 대에 틀니를 껴야 할지도 모른다고도 했었다.



내가 J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치과에서는 입만 벌려도 백만 원이야.”
실제로 그랬다. 입만 벌려도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 단위가 오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단순히 스케일링이나 검진 목적으로 치과를 찾은 것이 아니라면 아파서 찾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었다. 이는 아프기 시작한 순간부터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갈 때마다 망설이게 되는 것은 돈이었다. 지금 가도 얼마 정도는 깨질 텐데, 라는 것을 마음먹고 가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오바되는 가격은 나를 항상 멍하게 만들엇다. 치과비는 왜 그렇게 비싸기만 한지, 재료가 비싼 건지, 정말 과잉진료인 건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치과비는 왜 이렇게 비싸요?”에 대한 대답을 해줄 거라고 했다. 그러니, 당연히 나는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광호는 서울대 치대를 나와 창주시에 개원을 했다. 그리고 그날 팩스로 표준수가표를 받았다. 표준수가표란 이러했다.

 

임플란트 230만 원

틀니 150만 원 (악당)

골드 크라운 45만 원

골드 인레이 25만 원

레진 13만 원

스케일링 6만 원

 

 



며칠 후 광호는 창주시치과협회의 월례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한 치과원장이 큰 잘못을 했는지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의 인민재판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그 상황이 일어난 발단이 궁금했던 광호는 온라인 카페에서 이유를 찾아낸다. 임플란트 수가를 180만 원으로 한 것, 직원에게 선생님이라는 격에 맞지 않는 호칭을 쓴 것, 월례회 참석을 거부한 것, 면담 요청을 무시한 것에 관한 것이었다. 협회에서 정해준 임플란트 230만 원이라는 담합을 무시하고 진행했으나, 결국은 협회에 사과를 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광호는 치과의 환자 대기실로 나가 데스크에 크게 써 붙여놓은 진료비 안내표를 들여다본다.

임플란트 100만 원 / 골드 크라운 33만 원

 

협회의 행동은 다른 포악하고 악질인 것들과는 비할 바가 못되었다. 협회에서 그들을 ‘덤핑(Dumping)치과네트워크’라고 불렀다. 덤핑이 뭔가 해서 찾아봤더니, 채산을 무시한 채 싼 가격으로 상품을 파는 일이라고 나와있다. 한 마디로 헐값판매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협회에서는 자신의 지인을 환자로 변장하여 몰래 촬영(불법을 찾아내기 위한)을 하기도 하고, 행정기관에 정확하지 않은 민원을 넣기도 하며, 그리고 그곳 치과에서 일을 한 이력이 있으면 이직이 어려울 것이라는 말로 협박을 하거나 환자들에게는 그곳에서 치료를 하면 추후에 AS를 해줄 수 없다는 치사한 방법들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광호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불법적인 일을 하지도 않았고, 사정상 버티지 못하는 직원들은 어쩔 수 없었지만 든든하게 옆을 지켜주는 직원도 있었고, 뜸하긴 해도 자신을 믿어주는 환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흔들릴 때는 그때였다. 재료 공급을 끊어버리는 일. 그곳에 재료를 공급해주면 당신 회사와 거래를 완전히 끊어버리겠다. 라는 무시무시한 압박, 그렇게 끊긴 거래들. 이런 질긴 싸움들은 무려 10년이나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호가 계속해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의 신념과 많지는 않지만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의 존재 역시 클 것이라 생각한다. 그와 협회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싸우면서 겪은 일들이 얼마나 가혹하고 고된 시간들이었을지, 책만으로는 가늠하기가 어렵다. 잘 싸우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는 조금 의아하게 생각해야 한다. 비단 임플란트만이 아니어도, 우리는 ‘과잉진료 없는’,‘바가지 안 씌우는’,‘정직한’,‘인간적인’ 치과를 추천해달라고 말을 하게 된다. 왜 유독 치과에 그런 수식어들이 붙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부르는 게 값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입만 벌렸는데 이백만 원이요. 입만 벌렸는데, 오백만 원이요. 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임플란트 재료의 가격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국산은 10만 원, 외제는 제일 비싼 스위스산으로 27만 원의 재료비만 지불하면 우리는 임플란트를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책에 기술되어 있는 그대로의 금액을 적었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이 책 자체가 ‘왜 치과비는 그렇게 비싼가요?’에 대한 물음에 대해 해명을 하기 위한 책이라고 하니 이 금액 언저리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이 금액에서 뻥튀기가 된 이유가 뭘까. 이는 의료인의 기술, 능력이 포함되어있는 금액이었다. 물론 의료인의 기술은 월등히 뛰어날 테고, 우리는 기꺼이 그 금액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게 왜 (230만 원을 기준으로) 23배나 올라야 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내가 다녔던 한 치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다니는 치과에 대한 신뢰가 크다. 내 치아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치과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치과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스케일링을 받으면 시린 이가 일주일은 가기 때문이다. 급한 마음에 간 동네 치과에서 이 치아는 치료하셔야겠네요, 라는 말을 들어도 다녔던 치과로 가서 다시 한 번 검진을 받는다. (참고로 그 치과는 150km가 걸리는 곳에 있다.)

하지만 원장님은 나에게 과연 합리적인 금액으로 내 치아를 치료해주셨던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불신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그 치과만을 선호할 것을 잘 안다.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치아 치료 금액들을 떠올리느라 애를 쓰다 보니, 결국은 처음부터 진료를 잘 받았어야지. 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책만이 남았다. 하하. 그리고 내가 다니는 치과원장님은 맨~~~ 처음에 내 치아를 보며 함께 한탄해주셨다(...) 나는 그것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전에 치과를 방문했을 때, 이 치아는 꼭 치료해야 하는데, 시간이 되지 않으니 내가 사는 지역에서 치료하라고 말씀하시며 적정 금액은 이 정도라고 말씀해주셨다. (감사)


사실 나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조금 많이 신뢰한다. 실제로 경험한 것들 때문이다. 실제로 물건의 양이 적거나(이건 괜찮지만) 질이 떨어지는(이건 많이 안 괜찮다) 것들이 많았다. 그게 치과에서도 적용된다고 생각했었다. 책을 읽었다고 하여 그것이 완전히 사그라지지는 않았지만, 많이 완화된 부분은 있다. 그리고 과잉진료하지 않는, 바가지 씌우지 않는, 인간적인 치과원장님들이 여전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계속해서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크다. 나는 죽을 때까지 치과 치료를 게을리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말이다.

PS. 표지가 너무 무섭다... 진짜 너무너무 무섭다...




오탈자 159. 원장님한테는 제가 정말 감사한대요감사한데요

(/~한대요/는 /~한다고 해요/의 줄임말이다. 타인에게 들은 말을 옮길 때 주로 쓰기도 한다.)

오탈자 168. 공개 사과문을 게제하고 나서게재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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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행복해지는 마술을 할 거야 - 피터 래빗X마술사 최현우 콜라보
피터 래빗.최현우 지음 / 넥서스BOOKS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유명한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의 말이다. 이 말을 이해하게 된 건 점차 발전해가는 SNS 덕이 컸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사각 박스를 깨고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각자 삶의 고충들을 겪고 있었다. 대부분의 것들을 쏟아낸다고 생각했던 나 역시도 힘들 때는 SNS를 멀리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를 위해서라도 꼭 지켜야 하는 몇 가지 규칙 같은 것이었다. 처음에 그 규칙을 정해두고 스스로 자제를 해야 했지만, 언젠가부터는 내 마음이 건강하지 않을 때에는 아예 인터넷 페이지를 켤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삶이 무료하거나 의미를 상실할 때면 나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특히 올해가 그랬는데) 똑같은 삶을 비극과 희극 두 가지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희극인 삶을 살아야겠어!




프롤로그. ‘항상 행복한 건 무리, 불행한 건 일상적인 것’

그리고 그만큼, 마음을 치유해주는 말이 하나 더 생겼다.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자주 외면하던 말이기도 했다.

나는 분명 지난주에 혹은 어제 혹은 몇 시간 전에는 깔깔거리며 웃고 즐거워했는데, 왜 지금은 마음이 이렇게 허전하고 헛헛할까? 하는 물음을 총괄한 답이었다. 서른 해를 살면서, 여전히 행복이 도처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행복을 느끼는 순간보다 그 행복을 누르는 힘이 더 강하다는 사실은 너무 명백하여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너무 흔하기도, 또 당연한 말이지만) 행복은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 마음껏, 온 마음을 다해 누려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온다. 너무 당연한걸, 당연하지 않게 살고 있는 요즘이었는데 피터래빗과 최현우 마술사가 합작하여 마술을 부린 덕분에 마음이 노곤노곤해짐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새삼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올해에 여행을 자주 다니지 못했는데 여행을 기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내 삶에 있어 조금 크게 작용하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으며 내가 즐거워하는 것! 을 생각하다 보니, 나를 일상에서 떠나보내기도 하고 결국은 일상으로 다시 복귀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여행’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책을 읽기 직전에, 많은 시일이 남은 여행의 숙소를 예약해둔 상태였다. 마음이 차오른다. 차오른 마음은 둥둥 떠다닌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즐겨야 하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아는 시간들을 조금 더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시간들이었다.



 



 

 

 

 

 

 

 

 

 

 

 

 

 

 

 

 

 

 

 

 

 

 

 

 

 

 

 

 

 

 

 

102. 어떤 사람을 편견을 가지고 본다고 해서
그 사람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닌데도
그런 잘못된 시선이 힘들 때가 있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의 잘못된 시각을
일일이 바로잡아 줄 수 있는 일도 아니고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는 없어요.
편견에 부딪혔을 때,
때로는 ‘저 사람은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고
넘겨야 내게 상처로 남지 않을 때도 있답니다.




/ 편견이, 이렇게나 무섭다.

편견이라는 벽이 세워지지 않게 부단히 노력해야겠지만,

편견이 생기지 않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편견이 생기지 않게 노력하기보다는,

편견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유연하게 고쳐나갈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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