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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습관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8월
평점 :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라는 책을 한 이웃님의 서평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 평이 너무나도 좋았기에, 작가를 마음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그 책을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전에 <사랑하는 습관>을 먼저 만나보게 되었다. 섬세하고 세심한 작가의 문체를 칭찬하는 분들이 많아 더욱 기대가 되고 있던 참이었다.
1950년대 초반에 쓰인 작품들인데,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초반의 영국인들(즉,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무너져버린 혹은 무너지고 있는) 영국인)과 더 나아가 유럽인들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없으면 읽어나가기가 조금은 어려운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읽기가 그리 힘들었나.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사랑하는 습관>에는 사랑하는 습관, 그 여자, 동굴을 지나서, 즐거움, 스탈린이 죽은 날, 와인, 그 남자, 다른 여자, 낙원에 뜬 신의 눈이 있다. 나는 이 책의 단편들을 읽어놓고도 멍한 상태를 유지할 때가 많았고, 그것에는 나의 독해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자책도 덩달아 따라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습관/에 마음을 가장 많이 둘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동굴을 지나서/를 세심하게 보았다. 물론 그 단편을 한 번 읽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나 역시 제리처럼 눈의 실핏줄이 터져나가는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다 읽고 나니 그 단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37. “있잖아요, 조지, 당신은 그저 사랑이 습관이 되었을 뿐이에요.”
“꼭 뭔가를 품에 안고 싶어 한다는 뜻이에요. 혼자 있을 때는 어떻게 하세요? 베개라도 안고 계세요?”
사랑하는 습관을 지녔다는 것은, 어떤 걸까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마주했었다. 분명 나는 사랑하는 습관에 대해서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단편을 읽고 나니, 사랑하는 습관이 결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랑을 하는 습관,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습관, 습관적으로 사랑을 하는 것, 습관적으로 사랑을 한다고 착각하는 일 - 사랑이 습관이 되어버린다면, 그래서 내가 상대방에게 가진 감정이 사랑인지 사랑이 아닌지 불분명하다면 그보다 더욱 외로운 것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착잡해졌다.
책 속의 조지 탤벗은 마이러에게 버림받고 아내를 만나 자신과 결혼해주기를 간청한다. 이 부분에서 이미 조지의 심경을 알 수 있는 말이 나온다. “나랑 같이 살면 당신도 좀 덜 외로워질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소?” 결국 그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을 한다기보다 그저 혼자 남는 외로움이 싫어서 어떤 여자든 곁에 두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조지를 가볍게 무시하며 자신은 연하의 남성과 재혼을 할 것이라 말한다. 그는 그 여파로 그는 독감에 걸려 간병인을 두게 되었는데, 자신을 간병해주는 서른다섯의 젊은 보비와 결혼을 하게 된다. 너무나도 습관적으로.
19. 이제 생각해보니, ‘가슴이 아프다’라는 말은 사람이 아픈 심장을 품고도 밤낮으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뜻인 것 같았다.
적어도 사랑은 습관이 되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한 것 같다. 습관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 그러한 상황이어서, 그러하다고 믿으니까, 실제로 그러하니까 - 하지만 우리는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살펴보고 자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늘 물어야 한다. “너의 심장은 누구에게 뜨거워질 수 있니?” ... 중독적인 사랑이 아니라, 습관적인 사랑을 -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131. “누구에게나 쉬운 인생은 없어요. 각자 나름의 어려움이 있죠.” (스탈린이 죽은 날)
/동굴을 지나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내 생각이 아직 다 정리가 되지 않았을뿐더러 읽은 것의 1/3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 단편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누구나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 중 하나를, 제리는 멋지게 해내었기 때문에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물속에서 3분을 버틸 수 있는 것은, 단지 3분을 버틸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그가 성장했다는 방증일 터였다. 제리는 앞으로도 조금씩 조금씩 크고 작은 동굴을 지나올 것이었다. 그리고 제리라면, 동굴을 잘 - 지나올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게 조금 부러웠던 것 같다. 스스로 동굴을 자처해서 들어가고 잘 빠져나올 수 있었던 모습들이 용기 있게 보였다. 서른이 지난 나에게도, 그러한 동굴을 지날 시기가 아직 더 많이 남아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동굴을 지나가는 도중에 이 단편을 생각할 수 있으면 더없이 위안이 되겠다.
ps.
15. 그녀는 아이들을 오랫동안 내버려둘 수 없었기 때문에 2주 동안만 영국에 머무르면서, 오스트레일리아와 그곳의 날씨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라는 문장을 보면서, 뭐야? 구글로 번역했어? 뭐 이래? 어떻게 해석하라는 거야? 이게 앞뒤가 맞는 말이야? ... 하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전체적인 문장들이 읽으면서 이해를 하기에 너무 난해했는데, 1. 눈에 쏙 들어오는 그런 번역본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 혹은 2. 내가 독해력이 부족한 건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ps2.
도리스 레싱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19호실로 가다>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습관>이 좋아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못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