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블로그 일 방문자 수 1,000명 만들기
권호영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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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블로그를 언제 시작했더라? 하고 보니, 2009년부터였다. 서평책을 신청하면서 서평을 블로그에도 올려야 했기 때문에 만들어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때는 블로그보다 (네이버) 카페에서 시간을 더 보냈었기 때문에 블로그를 키워야지 라는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가 타이밍이 맞아 연애를 시작하면서 그것을 기록하기 위해 적었고 다행히도 그때의 사람과 결혼을 했다. 아이코,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면 어쩔 뻔했어...

그때의 블로그를 향한 마음이 꾸준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나 혼자) 굳건히 믿고 있다. 책을 제외하고는 해야 하는 리뷰보다 하고 싶은 리뷰를 했다. 누가 읽어도 상관없는 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웃 공개로 일상에 관한 포스팅을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읽혔으면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도 읽히고 싶지 않은 그런 글. 그러다보니 이웃에 연연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를테면 벌써 몇 년째 알고 지내는 오래된 이웃이지만 분명 오래전에는 활발하게 당신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묻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국한된다. 그분은 더 이상 블로그를 하지 않아서 나는 그분의 근황도 모르는데, 이웃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분은 나의 근황을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게 살살살 마음을 긁어댔다. 그래서 이웃을 끊은 적이 있는데, 왜 끊었냐고 물어오기에 시답지 않은 말을 한 적도 있다. 지금은 솔직하게 ‘다시 친해지면 이웃하려고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그 말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다.

 

 

사람은 타인의 좋지 않은 일에 더 공감하기가 쉬운 모양인지, 좋지 않은 일에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위로를 해주었다. 나는 그게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다. 물론 당시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내가 느낀 감정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나의 본인이 타인에게 안도감을 주는 것 같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말들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웃을 고민하고 정리하고 새로 만들고 하는 작업들을 귀찮지만 몇 달에 한 번씩 꾸준히 한다. 블로그를 지금보다는 더 오래 하고 싶으니까. 그런데 한 가지 불편한 것은, 내가 누군가를 이웃추가를 함으로써 그들에게 내 이웃공개 포스팅이 다 보인다는 것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웃이더라도 그룹별로 볼 수 있는 포스팅이 달랐으면 하는 (나에게만 필요할 쓸데없는) 소망을 가져본다.

 

 

 

 


 

 

사족이 길었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 달 만에 블로그 일 방문자 수 1,000명 만들기>라는 책을 조금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다. 이제는 읽어볼까 싶어 책을 펼쳤는데 블로그 방문자 수뿐만이 아니라 사소한 것까지 실려있어 꽤 흥미롭게 읽었다. 책에는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는 많은 분들이 고민해 봤음직한 내용들이 실려있다. 어떻게 블로그를 하지? 다만 나는 처음 블로그를 할 때 막무가내로 포스팅을 시작해서 그런지 다른 분들의 그런 마음에 많이 공감할 수는 없지만, 뭐든 처음이 어려운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때문에 충분히 고민을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블로그만 10년 이상을 한 내 기준에도 블로그가 다른 SNS보다 조금 더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다른 SNS에는 몇 분이면 업로드할 수 있는 하나의 글이 블로그에만 오면 조금 더 신중해지기 때문이다. 같은 사진이더라도 더 수다쟁이가 되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못 했던 말들을 쏟아내기도 하고 그렇다. 또 블로그를 할 때 크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종종 느꼈던 건 블로그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잔뜩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이때는 내가 이걸 좋아했구나. 내가 이걸 싫어했어? 지금은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라는 뜻밖의 나의 발견.

 

 

책에서도 블로그를 ‘나’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가장 처음 꼽았다. 그리고 블로그의 정체성.

나는 일상 블로그를 지향하는데, 여기에서 나는 ‘소소한 일기장’에 속한다.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내보자면 ‘글쓰기 및 자기계발’ 정도? 아... 자기계발? 잘 모르겠네. 글을 쓰는 것도 책 감상인 서평 말고는 딱히 쓰지 않는 것 같고. 내 블로그의 성격은 뭘까.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봤는데도 잘 모르겠다. (갑자기, 뜬금없지만, 내 작고 시시한 글을 읽어주시는 이웃님들께 감사를)

 

 

 

 

블로그 이름과 닉네임을 짓는 사소한 것부터 상위노출을 위한 키워드, 높은 조회수 만들기, 수익창출까지 블로그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블로그 저품질에 대해서는 종종 몇몇의 이웃님들한테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래서 블로그 이사를 간다고 하여 혼자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한 적 있었으나 책을 읽어보니 타인에게 나를 노출시키기 위해 블로그를 만든 이들에게 저품질에 걸려 내가 더 이상 노출이 되지 않는다면 블로그 이사를 갈 수밖에 없구나,하고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게 되었다.

 

나는 상위노출을, 높은 조회수를, 수익창출을, 블로그에 있는 글로 책을 내는 일도, 인플루언서도 원하지 않고, 적어도 이 블로그에는 체험단을 하고 싶지도 않아서 단순하게 ‘와 진짜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블로그 세상이네’ 하며 흥미롭게 읽었다. 다른 블로그마케팅 책은 읽어보지 못해서 비교는 어렵지만, 책도 어렵지 않고 쉽게 잘 읽혀서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거나 블로그의 몸집을 키우고 싶은 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 아, 근데 닉네임 짓기 부분을 읽다가, 닉네임이 너무 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내 적고 소중한 이웃님 중에는 벨라나 밸라나 baella나 bella나 vella가 없지만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벨라가 있는 것.... 나는 내 이름에서 따온 별명이라 너무 당연했는데 갑자기 당연해지지 않은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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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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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에서 자랐어요.”라는 사실이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자랑거리가 되었다. 친구가 아파트에 살던 것을 부러워하던 내가? 정말로? 왜? 어째서 말야?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주택에 사는 것이 로망이 된 시대가 되면서부터겠지.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그치곤 했다. 자세한 내막을 말하게 되면 좋았던 게 더 이상 좋지 않을 확률이 훨씬 더 커지기 때문에.

유년 시절, 엄마가 “저녁을 지어야 하니 친구들이랑 좀 더 놀다 와.”라고 말을 하면 나는 부리나케 골목길을 와다다다 내달리며 모기차를 따라나섰다.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겠지만) 동네 엄마들은 아이들의 활동에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았다. 심지어 집에서 500m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 놀아도. (가장 기억에 깊이 박혀있는 것은 (아마도 겁이 많아서 혹은 운동신경이 없어서) 나 혼자만 담을 넘지 못해 빙 둘러 가야 했던 그 길들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럴 수 있었나 보다 하고 지금과는 너무 다른 그때를 회상해 본다.

집,하면 떠오르는 것이 참 많은데 그중 한여름에 너무나도 더웠던 집안의 꽉 막힌 공기. 아, 지금 다시 생각해도 숨이 턱 막혀버릴 정도로 습하고 눅눅하고 어쩐지 떽떽거리는 것 같던 더운 공기 말이다. 자다가도 몇 번이나 찬물을 온몸에 뒤집어써야만 했다. 그 짓을 스물다섯 살까지 했다. 내가 번 돈으로 집에 에어컨을 놓기 전까지. 아니, 그마저도 에어컨 평형수를 잘못 구매해서(에어컨을 처분할 때까지 그 이유를 몰랐다) 에어컨 구매한답시고 돈은 돈대로 쓰고, 집은 시원하지도 않고, 주택이라 누진세는 열심히 붙고, 에어컨이 있는데도 집이 시원하지 않다며 에어컨이 고장 난 거 아니냐는 부모님의 볼멘소리에 그럴 거면 아빠 엄마가 사지 왜 안 샀냐고 버럭 하던 나. 그 여름. 나는 그전까지 여름에는 다들 이러고 사나보다, 했다. 그렇게 말하는 나를 보며 J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그때가 생각이 나서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그 시절 여름이 싫은 이유와 지금 여름이 싫은 이유는 너무나도 다르다. 지금은 물먹은 솜사탕 같은 습도가 싫다면, 그때는 여름 그 자체가 싫었다. 정말이지, 덥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좋아할 수 없는 계절이었다.

게다가 겨울에는 또 얼마나 춥냐면, 웃풍이 엄청났다. 아파트의 웃풍과 오래된 주택의 웃풍이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몸이 덜덜덜 떨리는데 오죽하면 이놈의 집이 잘못 지어진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보일러를 틀어도 확 따듯해지지도 않았고, 따듯하지 않은 채로 가스비는 20만 원을 훌쩍 넘어 30만 원, 40만 원도 우스웠다. 매해 겨울은 추웠기에, 보일러실의 보일러가 얼어서 부모님은 드라이기와 뜨거운 물들을 받아다가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물을 뜨겁게 데우면서 저놈의 보일러는 얼어도 문제고 터져도 문제네 생각했었다. 그걸 못 봐주겠다 생각했는지 엄마는 어느 날 집에 난로를 들였는데, 그게 연탄난로였다. 그 안에 고구마도 넣어 구워 먹기도 하고, 그 위에는 떡을 구워 먹기도 하고, 주전자를 올려놓고 끓이며 집안에 수증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게 따듯했냐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훈훈했지만, 전기매트는 필수적으로 틀어놔야 하는 정도. 아마 이사를 하지 않았다면 부모님은 여전히 그 연탄난로를 쓰고 계셨겠지.

책 제목을 보자마자 그때의 집이 생각이 났다.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웠던 우리 집. 하지만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기 때문에 (게다가 적어도 이웃 주민들은 우리와 똑같이 살고 있었으니까) 그것 자체를 불우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공선옥 작가의 글을 읽으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었던 내 유년 시절에 대해 민망하게도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불우했다고 표현하는 작가의 유년 시절에 대해 어쭙잖게 연민을 품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쓰인 문장들과 내 생각이나 감정이 일치할 때마다 나는 안타깝게도,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라는걸.

11. 뭔가 포근하고 좋은 것들이 아니라 불안을 유발하는 조건들에 둘러싸여 살았고 자연히 내 의식을 형성하는 것은 초조, 긴장, 두려움들. 나는 나의 장소, 나의 공간, 나의 시간, 나의 생활을 한편으로 연민하면서 또 한편으로 버리고 싶은 기분으로 살았다.

나도 딱 그랬다.

특히 집 밑에 있는 슈퍼에서 동네 아저씨들의 싸움이 일어날 때면 그 소리가 바람을 타고, 구름을 타고, 어둠을 타고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거의 대부분 딴짓을 하고 있는 내 방 창문에 똑똑 노크를 해왔다. 혹여라도 나의 아빠도 그곳에 끼어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사춘기였던 나는 그 생각도 잠시, 그러거나 말거나 귀를 틀어막고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새벽이 되면 신탄진역과 대전역을 오가는 기차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그 소리가 내게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 동네를 떠나고 싶었는데, 지긋지긋하게 참 오래 살았다. 가끔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으려나 하고.

79. 나에게 내 집이란 어떤 집인가. 내게 내 집이란 어떤 집이어야 하는가. 내게 집이란 무엇인가. 어디로 떠나도 언제고 돌아올 수 있는 집,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내 물건들이 편히 자리 잡고 있는 공간, 그곳이 내 집이라고 난 생각했다. 가지고 있다가 값 오르면 팔고 나올 ‘부동산’이 아닌, 비 오는 날의 우산으로서의 집. 눈 오는 날의 베이스캠프.

작가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한다.

집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집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집과 나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가.

내가 노년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곳으로 고향을 꼽았다. 그 생각은 몇 년째 굳건했고 그렇기에 변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불현듯 그때의 그곳이 지금의 그곳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장소도, 많이 바뀌고 있고 바뀔 테니까. 내가 모르는 곳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 속에서 어떤 것 하나를 고집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문인 화가 송현숙도 고향 무월리는 언제든지 돌아갈 곳, 돌아가야 할 곳,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을 테지만 직접 목격한 무월리는 그곳이 아니라 하지 않았나. 결국은 내가 살아야 하는 곳이 내가 돌아가야 하는 곳이겠지. 그래서 조금 유연하게 흘러가는대로 두려 한다. 아직 노년이 멀기도 했거니와 세상에는 살아보고 싶은 곳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어쩌면 안일한 생각을 기반으로.

몇 년 전에 읽은 김미월 작가의 <여덟 번째 방>과 최근에 읽은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가 차례로 떠올랐다.

지금은 모든 이들이 집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다. 기승전 집이 되는 세상. 결국 집은 무엇인가ㅡ 다시 원질문으로 돌아왔다.

오탈자 ; 79. 가지고 있다가 값 오르면 팔고 나올 ‘부동산’이 아닌, 비 오는 날의 우산으로서의 집 ▶ 우산으로써



_책 속의 문장

8. 고향을 생각하고, 집을 생각하면 따뜻하고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 깊숙한 곳에 또아리 틀고 있는 스산함. 황량함의 감정을 나는 쉽게 말해오진 못했지만 부정할 수는 없다.

93. 산다는 것은 복불복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그러니,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과연 천운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99. 인생에도 확실히 막간은 필요하다.

잠시 쉬는 시간, 독일 사람들은 그런 시간을 파우제라고 했다. 파우제, 잠시 쉬었다 가자는 것이다.

221. 돈을 벌기 위해 집 밖으로 떠돌았던 아버지는 집에 오면 늘 ‘이방인’ 같을 수밖에 없었다.

- 뚜덕뚜덕 지은 집

- 싸목싸목 : 천천히의 방언(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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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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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불특정 다수의 물건들을 보고 듣고 먹고 만지고 착용하고 이건 이 정도면 정말 싼 거야, 이건 왜 이렇게 비싸지, 하며 그것들에 대한 가치를 매긴다. 그런 행위들이 소비자인 내게는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이 소비재가 물건이 아니라 사람에게 매겨진다면? 책의 제목인 ‘생명 가격표’에서 가격표라는 것은 어떤 것의 비용이나 값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것에 생명에 매겨진다니, 얼떨떨했다. 생명과 가격표를 어떻게 결부시켜야하는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은 채로 책을 읽었다.

11. 생명의 가치를 매기는 데 쓰이는 방법은 가격 책정의 목적, 가격이 상징하는 것, 가격 책정에 채택되는 관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에서는 911테러 희생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으나 경제적 가치는 희생자의 소득에 기반하여 책정되었기에 결과 값은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보상금의 지급 방법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던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인간이 태어난 목적이자 목표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그 방법이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는, 점점 읽어갈수록 물음표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911테러의 경우 희생자 나이가 적고, 가족 수가 많고, 고소득일수록 보상 금액이 늘어났는데, 그렇다보니 한 생명당 25만달러 ~ 700만달러까지 차이가 있었다. 당연히 불합리하다 여길 수밖에 없는 금액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들이 그때껏 납부했던 세금을 환급하고 국가에서 위로차원에서 일정한 보상금을 결정하고 얹어주는 방식이면 모를까, 이건 사람 자체에 차등을 두어 보상금을 지급하다니? 사람들의 생명에 매겨진 금전적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얼마나 교묘하게 위험하고 공포스러운 말인지.

‘모든 생명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헌법 제11조 1항에서도 말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백하게 말한다. 하지만 책의 예시와 같이 기차 선로에 떨어진 사람이 경찰과 강력한 범죄자일 때, 90세 노인과 10살 어린이가 시간을 다투는 경우는 질병일 때 의료인이 단 한 명만을 봐줄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그 생명이 동일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시시때때로) 생명에 대한 값을 매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흡연자의 조기 사망이 정부 수입에 도움이 되므로 체코 공화국 정부가 흡연을 권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보고서에는 조기 사망으로 인해 국가가 지불할 의료비와 연금, 사회보장비, 노인 주거 보조비가 줄어 들어 국가 예산이 절약된다는 점을 들었다고 했다. 조기 사망과 정부 수입을 결부시키다니, 이는 기본적인 인간의 가치를 경시하는 것이 아닌가.

몇 달 전에 읽었던 쓸모가 없어진, 연금을 받는 노인은 더 이상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처리를 한다는 박형서 작가의 『당신의 노후』가 떠올랐다. 그 책을 읽고 현실이 되어 내가 몇 십 년 후에 노후를 맞이했을 때, 그게 기쁨과 뿌듯함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로 가득 채워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잠잠해진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임신 여성과 태아의 생명에 매겨지는 상대적 가치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은 2021년 1월 1일부로 낙태죄가 폐지되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생명에 대한 것이어서 여전히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아무리 깊게 생각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책을 읽고 난 직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라는 교양프로그램에서 정원섭 씨를 다룬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춘천에서 강간살인범으로 누명을 쓰고 15년을 넘게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무죄 판결을 받은 정원섭 씨. 손해배상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 일로 인해 피폐한 삶을 살게 된, 너무나도 고생한 나머지 가족들에게도 고스란히 돌아갔어야한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단 말인가. 환산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명백하게 한 개인의 삶을 앗아간 국가의 책임이었으니 얼마가 되었든 국가에서 배상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에 대한 형사 보상금(무죄에 대한 보상금)만 받을 수 있었고, (갑자기 만들어낸) 청구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은 끝끝내 받지 못한 채 영면에 드셨다. 심지어 당시에 사건에 가담했던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국가의 근본적인 역할에 대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의 생명은 얼마인가요?

오탈자 92 정당화하기가 더 쉬어진다.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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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탐구 집 - 나를 닮은 집 짓기
노은주.임형남 지음 / EBS BOOKS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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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있을 때 하루 중에서 밥을 먹을 때 말고는 TV를 켜지 않는다. 그마저도 밥상이 거실 중간에 떡하니 있어서지, 아마 식탁에서 먹으면 TV를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내가 TV를 보지 않는 건 시간이 아까워서도 있고 영상을 오래 들여다보지 못하는 까닭도 있다. 어쨌든, 비위가 약한 내가 밥을 먹을 때 선택하는 채널은 으레 만화였다. 예를 들면 짱구, 뽀로로, 폴리 같은 그런 만화. 가끔 예능이나 교양 프로그램을 보기도 하는데 더럽거나 보기 힘든 장면이 나오면 숟가락을 놔버리기 때문에 끝까지 보지는 못한다. 그날도 채널을 돌리다가 본 게 <EBS 건축탐구 집>이었다. 나래이션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다 했더니, 배우 김영옥 님이었다. 집에 대한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한껏 오버스러운 면이 많아 어느 순간 또 보지 않았는데, 잔잔한 목소리와 오버스럽지 않은 억양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그러다가! 신기한 안경을 쓴 두 분이 나온다.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부부. 그런데 이게 책으로도 나왔구나- 반가운 마음에 덥석 집어왔다.

2021년에 집을 가진다는 일, 참 꿈같은 일이다.

부동산에 관해 누군가는 기성세대가 양보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IMF를 겪었고 그들도 우리처럼 힘든 세대를 보냈다. 우리가 보기엔 그때는 거저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때도 지금의 기성세대에게는 집을 산다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다. 언제가 더 힘들고 누가 더 힘든 게 아니라, 내가 사는 지금 시대가 가장 힘든 게 아닐까.

어쨌든,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전원주택에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 ‘다시’라고 말을 하는 까닭은, 결혼 전까지 주택에 살아온 나는 아파트에 대한 장점들을 취하며 살아왔는데 이후에 주택에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가 이런저런 이유들로 역시 아파트지-라고 마음을 바꾼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장점보다 단점을 더 찾기가 쉬울 만큼 주택에 사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고, 주택에서 사는 더럽고 어렵고 힘든 것들(3D)+불편한 것들을 나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주택에 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획일화된 아파트에서 벗어나 집의 구조와 창의 방향, 집의 형태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실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크고, 작은 나의 텃밭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주방이 집의 중심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거실을 없애고 주방과 다이닝룸만으로 공간을 채우고 싶다. (요리도 못하고 살림도 안 좋아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면 생각이 바뀌려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취향은 잠시 접어두고) 그들만의 고유한 세계들이 얼마나 깊고 견고하게 보이는지, 부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근대 건축의 거장인 르 꼬르뷔제가 노년에 자신을 위해 지은 집은 고작 4평짜리로 지붕은 슬레이트, 외장은 통나무 사이닝인 오두막을 생각하면 이런 내 욕심도 너무 큰 거 아닌가 싶어 웃음이 나지만, 아마 르 꼬르뷔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설계를 하고 완성본까지 봤으니까 그런 게 아닐까! 하며 혼자 억지로 이유들을 만들어낸다.

책에는 내가 미처 다 보지 못한 프로그램들이 많아서 책을 읽는 중간에 프로그램을 찾아보기도 하며 즐거운 며칠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중 가장 공감이 갔던 건, 254. 발코니는 내부와 외부 사이에 숨을 불어넣는다.라는 문장이었다. 반외부 공간인 발코니는 효율적이지 않은 버려지는 공간이라고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 때문에 아파트 발코니 확장공사를 기본적인 조건으로 넣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발코니는 의미가 있고 소중한 공간인걸.

그리고 패시브하우스를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반성), 패시브하우스란 공기 순환이 되는 필터를 설치하는 집이다. 그래서 바깥의 공기가 집 안 공기에 맞게 재가공되어 들어와 열을 빼앗기지 않는 구조가 된다. 이렇듯 소극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방식이다.

책에서는 그런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린워싱’이었다. 실제로 환경을 위한 것이 아닌, 겉으로만 친환경 이미지를 갖기 위해 관련 활동을 하는 것!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집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환경에 위해를 가하는 것인데 과연 그것을 친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지을 집이라면 환경에 덜 해를 끼치는 방향으로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패시브하우스는 집에 기계를 달아야 하기 때문에 구조 자체가 제한적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 저런 집도 나올 수 있구나-하며 감탄하기도 했다. (그저 좋다는 얘기)

28. 집이란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서적 가치가 있다.

책으로 읽을 때와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낀 점은, 집은 건축주를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그 집을 지은 것이든 리모델링을 한 것이든, 집이 거주하는 사람을 닮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건축주의 삶의 철학들이 집안 곳곳에 면밀하게 메우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이 배웠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겠구나. 자신의 삶과 가치관, 사랑을 담아 만들어내는 집들을 더 많이 구경하고 싶다.

지금은 너무나도 아쉽게도 집이라는 것이 사고파는 물건 개념으로 전락했지만, 여전히 집이 가진 의미는 동일하다. 내가 마음 편하게 거주할 수 있는 공간. 난 오늘도 우리의 집을 구상해 보고 웃음 지으면서, 지금의 내 공간에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며 그 간극을 촘촘하게 채워가본다.

 

_책 속의 문장

24. 행복이란 때와 시간을 정해놓고 찾아오는 계획된 미래가 아니라 만족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는 예기치 못했던 순간순간마다 찾아온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39. 집을 짓는다는 건 ‘나’를 새롭게 세우는 일이다. 때론 집을 새로 짓는 것만으로 삶이 바뀌기도 한다.

42. 집을 짓기 위해서는 방을 몇 개 두고, 어떤 구조로 짓느냐, 얼마에 짓느냐보다 나의 삶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 먼저다.

143. 집 짓기는 나를 아는 것뿐 아니라 몰랐던 가족의 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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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홍차 1~2 + 티다이어리 세트 (3종 중 1종 랜덤)
김줄 그림, 최예선 글 / 모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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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의 사전적 의미를 본다면, 찻잎을 발효시켜 마시는 차-라고 나와있다. 그렇다면 나는 차를 좋아하는 걸까? 내가 아는 홍차는 그리 많지 않다. J가 데이트할 때마다 주문하던 얼그레이와 내가 좋아해서 몇 해째 찾는 (홍차는 아니지만) 국화차, 캐모마일, 그리고 중간에 여기저기서 마셔보고 입맛에 맞는 차들의 이름을 몇 알고 있다. 결혼하면서 홍차라고 하여몇십 개의 차를 들였는데, 거기엔 홍차와 허브차가 있어서 나는 그걸 이제까지 홍차라고 착각하고 있었던듯. 게다가 홍차카페에도 허브티가 있어서 별생각을 못하기도 했고.

어쨌든 내가 차를 마시는 건 향이 좋고 맛있어서인데, 나는 아무래도 예쁜 잔에 마시고 싶어서 차를 마시는 건 아닐까 - 하고 착각하기도 한다. 흐흐. 근래에 홍차카페에 몇 번 다녀오면서 러브미라는 차를 접했고, 오, 이거 괜찮다. 라며 갈 때마다 러브미를 주문했다. 이제는 내가 사서 마셔보는 게 낫지 않을까. 아무튼, 홍차에 대한 관심이 하나둘 생기다 보니 도서관 커피와 차에 대한 코너까지 와버렸고, 그중 <오늘은 홍차>가 눈에 띄었다. 궁금증에 안을 살펴보니 만화책이네. 만화책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라 머뭇거리는데,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그림이다.

+ 얼그레이가 남자의 홍차라는데... J는 남자네. 그래, 여자는 아니니까... 며칠 전에 간 홍차카페에서도 얼그레이 젠틀맨을 시킨 J였다.

쉼표가 필요할 때마다 홍차를 마셔봐요.

조금은 다른 내가 되어있을 거예요.

책을 읽는 내내 곁에 차를 두고 홀짝거리며 읽었다. 욕심 같아서는 챕터마다 나오는 홍차를 마시며 공유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 홍차들은 내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게 있는 각기 다른 차들을 마시며 아쉬움을 달랬다.

차를 마시는 버릇을 들이다 보니, 차를 우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급하게 마셔도 그 맛을 알 수 없고, 너무 천천히 마셔도 그 맛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차를 우리는 시간 동안 나는 다른 일을 했었는데, 지금은 우려지는 걸 보면서 내 마음을 환기시킨다. 그렇다고 뭔가를 하는 건 아니고, 멍하니 차가 우려지는 걸 바라보는 일이다. 그게 뭐라고, 마음이 열리는 느낌마저 받기도 한다. 홍차카페에 가서 이미 알맞게 타놓은 차를 마시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한 템포씩 쉬어가는 일, 나도 책을 읽으며 조금씩 쉼표를 찍었다. 이토록 자발적인 쉼표라니.

111. 사랑이건, 일이건 타이밍이 있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급하게 결론지어야만 할 때 사람들은 꼭 남들이 정해둔 방식대로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좋은 타이밍을 놓쳤다고 해서 일을 완전히 망치는 건 아니에요.

타이밍을 놓친 덕분에 이렇게 맛있는 밀크티를 마실 수 있잖아요?

천천히 해답을 찾아요.

미우 씨 마음속에 있는 단단한 심지를 믿고서.

뭐든지 타이밍, 하지만 그 타이밍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내게는 직장이었다. 단속을 해도 내 손가락은 제멋대로 움찔거리며 나를 노동인구로 만들기 위해 무지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으니까. 지금 안 하면 안 올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에 좀 더 집중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좀 더 단단하게 해보도록 한다.

162. 매일 기울이는 노력, 일상의 작은 일들을 정성을 다해 마무리하는 것.

누가 봐주지 않아도, 아무도 멋지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거야.

어쩌면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공복물을 마시고 필사를 하고 영어회화를 끄적거리고 듣고 따라하고 책을 읽는 이 단순하고도 반복되는 루틴을 가끔 나는 왜 할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킨다거나 이거로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좋으니까. 나는 이게 즐겁고, 재미있으니까. 결국은 나는 정말 쓸모없는 취미생활을 가지고 있고, 이 쓸모없는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실행하는구나. 내 일상은 또 그렇게 마무리가 된다. 213. 홍차의 쓸모는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 것, 바로 그것에 있다. 나의 일상은 나만의 쓸모없이 소중한 만족감으로 탄탄하게 채워지고 있다.

데이드림, 폼폼밀크티, 다즐링, 초콜릿 밸런타인, 벚꽃 홍차, 아쌈, 테일러스 캔디, 모모우롱, 얼그레이, 네팔 홍차

숲 토닉, 송 오브 바닐라, 얼리 모닝 티, 매화의 꿈, 밀키 블루, 로즈 히말라야

기회가 된다면 조금씩 맛보고 싶다. 이 홍차를 마실 때 만화책에서 본 컷들을 기억해 낼 수 있을까 :)

1. 아, 찻잔 사고 싶다.

예쁜 찻잔을 구경하러 가야겠다.

오프라인이면 더 좋겠는데.

2. “애프터눈 티를 마시려고 떼어둔 시간만큼 소중한 것은 없지요.

타샤 튜더 할머니를 만나서 얘기 좀 해야겠다.

3. 홍차, 홍차, 홍차...

입에서 홍차라는 동글동글한 말이 데구르르르르 굴러다닌다.

4. 나는 내가 좋아하는 캐모마일을 마시러 가야지 총총

_책 속의 문장 (1권)

78. 차를 마시는 건 내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 같아요.

코에 닿는 향, 혀에 닿는 맛, 목에 넘어가는 물줄기를 가만가만 더듬어보면

아주 세밀한 향기와 미묘한 감촉이 느껴져요.

몸과 마음이 밀착되는 느낌이 들면서 내 마음이 말하는 게

조금씩 들리기 시작해요.

이 감각이 바로 ‘나’구나.

110. 홍차는 타이밍이 아주 중요하죠.

너무 길게 울리면 떫고 검은물이 돼버리니까.

_책 속의 문장 (2권)

147-148. 차와 찻잔도 어울리는 만남이 있어요.

색이 아름답고 맛이 깊은 홍차는

담백한 찻잔이 차의 섬세함을 살려주지요.

반면 맛과 향이 복잡한 가향 차를 마실 때는

찻잔도 색과 무늬가 화려하거나 모양이 재미난 것을 꺼내죠.

홍차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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