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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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불특정 다수의 물건들을 보고 듣고 먹고 만지고 착용하고 이건 이 정도면 정말 싼 거야, 이건 왜 이렇게 비싸지, 하며 그것들에 대한 가치를 매긴다. 그런 행위들이 소비자인 내게는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이 소비재가 물건이 아니라 사람에게 매겨진다면? 책의 제목인 ‘생명 가격표’에서 가격표라는 것은 어떤 것의 비용이나 값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것에 생명에 매겨진다니, 얼떨떨했다. 생명과 가격표를 어떻게 결부시켜야하는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은 채로 책을 읽었다.

11. 생명의 가치를 매기는 데 쓰이는 방법은 가격 책정의 목적, 가격이 상징하는 것, 가격 책정에 채택되는 관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에서는 911테러 희생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으나 경제적 가치는 희생자의 소득에 기반하여 책정되었기에 결과 값은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보상금의 지급 방법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던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인간이 태어난 목적이자 목표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그 방법이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는, 점점 읽어갈수록 물음표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911테러의 경우 희생자 나이가 적고, 가족 수가 많고, 고소득일수록 보상 금액이 늘어났는데, 그렇다보니 한 생명당 25만달러 ~ 700만달러까지 차이가 있었다. 당연히 불합리하다 여길 수밖에 없는 금액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들이 그때껏 납부했던 세금을 환급하고 국가에서 위로차원에서 일정한 보상금을 결정하고 얹어주는 방식이면 모를까, 이건 사람 자체에 차등을 두어 보상금을 지급하다니? 사람들의 생명에 매겨진 금전적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얼마나 교묘하게 위험하고 공포스러운 말인지.

‘모든 생명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헌법 제11조 1항에서도 말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백하게 말한다. 하지만 책의 예시와 같이 기차 선로에 떨어진 사람이 경찰과 강력한 범죄자일 때, 90세 노인과 10살 어린이가 시간을 다투는 경우는 질병일 때 의료인이 단 한 명만을 봐줄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그 생명이 동일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시시때때로) 생명에 대한 값을 매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흡연자의 조기 사망이 정부 수입에 도움이 되므로 체코 공화국 정부가 흡연을 권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보고서에는 조기 사망으로 인해 국가가 지불할 의료비와 연금, 사회보장비, 노인 주거 보조비가 줄어 들어 국가 예산이 절약된다는 점을 들었다고 했다. 조기 사망과 정부 수입을 결부시키다니, 이는 기본적인 인간의 가치를 경시하는 것이 아닌가.

몇 달 전에 읽었던 쓸모가 없어진, 연금을 받는 노인은 더 이상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처리를 한다는 박형서 작가의 『당신의 노후』가 떠올랐다. 그 책을 읽고 현실이 되어 내가 몇 십 년 후에 노후를 맞이했을 때, 그게 기쁨과 뿌듯함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로 가득 채워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잠잠해진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임신 여성과 태아의 생명에 매겨지는 상대적 가치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은 2021년 1월 1일부로 낙태죄가 폐지되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생명에 대한 것이어서 여전히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아무리 깊게 생각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책을 읽고 난 직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라는 교양프로그램에서 정원섭 씨를 다룬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춘천에서 강간살인범으로 누명을 쓰고 15년을 넘게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무죄 판결을 받은 정원섭 씨. 손해배상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 일로 인해 피폐한 삶을 살게 된, 너무나도 고생한 나머지 가족들에게도 고스란히 돌아갔어야한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단 말인가. 환산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명백하게 한 개인의 삶을 앗아간 국가의 책임이었으니 얼마가 되었든 국가에서 배상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에 대한 형사 보상금(무죄에 대한 보상금)만 받을 수 있었고, (갑자기 만들어낸) 청구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은 끝끝내 받지 못한 채 영면에 드셨다. 심지어 당시에 사건에 가담했던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국가의 근본적인 역할에 대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의 생명은 얼마인가요?

오탈자 92 정당화하기가 더 쉬어진다.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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