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탐구 집 - 나를 닮은 집 짓기
노은주.임형남 지음 / EBS BOOKS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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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있을 때 하루 중에서 밥을 먹을 때 말고는 TV를 켜지 않는다. 그마저도 밥상이 거실 중간에 떡하니 있어서지, 아마 식탁에서 먹으면 TV를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내가 TV를 보지 않는 건 시간이 아까워서도 있고 영상을 오래 들여다보지 못하는 까닭도 있다. 어쨌든, 비위가 약한 내가 밥을 먹을 때 선택하는 채널은 으레 만화였다. 예를 들면 짱구, 뽀로로, 폴리 같은 그런 만화. 가끔 예능이나 교양 프로그램을 보기도 하는데 더럽거나 보기 힘든 장면이 나오면 숟가락을 놔버리기 때문에 끝까지 보지는 못한다. 그날도 채널을 돌리다가 본 게 <EBS 건축탐구 집>이었다. 나래이션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다 했더니, 배우 김영옥 님이었다. 집에 대한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한껏 오버스러운 면이 많아 어느 순간 또 보지 않았는데, 잔잔한 목소리와 오버스럽지 않은 억양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그러다가! 신기한 안경을 쓴 두 분이 나온다.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부부. 그런데 이게 책으로도 나왔구나- 반가운 마음에 덥석 집어왔다.

2021년에 집을 가진다는 일, 참 꿈같은 일이다.

부동산에 관해 누군가는 기성세대가 양보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IMF를 겪었고 그들도 우리처럼 힘든 세대를 보냈다. 우리가 보기엔 그때는 거저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때도 지금의 기성세대에게는 집을 산다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다. 언제가 더 힘들고 누가 더 힘든 게 아니라, 내가 사는 지금 시대가 가장 힘든 게 아닐까.

어쨌든,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전원주택에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 ‘다시’라고 말을 하는 까닭은, 결혼 전까지 주택에 살아온 나는 아파트에 대한 장점들을 취하며 살아왔는데 이후에 주택에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가 이런저런 이유들로 역시 아파트지-라고 마음을 바꾼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장점보다 단점을 더 찾기가 쉬울 만큼 주택에 사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고, 주택에서 사는 더럽고 어렵고 힘든 것들(3D)+불편한 것들을 나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주택에 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획일화된 아파트에서 벗어나 집의 구조와 창의 방향, 집의 형태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실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크고, 작은 나의 텃밭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주방이 집의 중심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거실을 없애고 주방과 다이닝룸만으로 공간을 채우고 싶다. (요리도 못하고 살림도 안 좋아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면 생각이 바뀌려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취향은 잠시 접어두고) 그들만의 고유한 세계들이 얼마나 깊고 견고하게 보이는지, 부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근대 건축의 거장인 르 꼬르뷔제가 노년에 자신을 위해 지은 집은 고작 4평짜리로 지붕은 슬레이트, 외장은 통나무 사이닝인 오두막을 생각하면 이런 내 욕심도 너무 큰 거 아닌가 싶어 웃음이 나지만, 아마 르 꼬르뷔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설계를 하고 완성본까지 봤으니까 그런 게 아닐까! 하며 혼자 억지로 이유들을 만들어낸다.

책에는 내가 미처 다 보지 못한 프로그램들이 많아서 책을 읽는 중간에 프로그램을 찾아보기도 하며 즐거운 며칠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중 가장 공감이 갔던 건, 254. 발코니는 내부와 외부 사이에 숨을 불어넣는다.라는 문장이었다. 반외부 공간인 발코니는 효율적이지 않은 버려지는 공간이라고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 때문에 아파트 발코니 확장공사를 기본적인 조건으로 넣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발코니는 의미가 있고 소중한 공간인걸.

그리고 패시브하우스를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반성), 패시브하우스란 공기 순환이 되는 필터를 설치하는 집이다. 그래서 바깥의 공기가 집 안 공기에 맞게 재가공되어 들어와 열을 빼앗기지 않는 구조가 된다. 이렇듯 소극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방식이다.

책에서는 그런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린워싱’이었다. 실제로 환경을 위한 것이 아닌, 겉으로만 친환경 이미지를 갖기 위해 관련 활동을 하는 것!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집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환경에 위해를 가하는 것인데 과연 그것을 친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지을 집이라면 환경에 덜 해를 끼치는 방향으로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패시브하우스는 집에 기계를 달아야 하기 때문에 구조 자체가 제한적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 저런 집도 나올 수 있구나-하며 감탄하기도 했다. (그저 좋다는 얘기)

28. 집이란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서적 가치가 있다.

책으로 읽을 때와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낀 점은, 집은 건축주를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그 집을 지은 것이든 리모델링을 한 것이든, 집이 거주하는 사람을 닮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건축주의 삶의 철학들이 집안 곳곳에 면밀하게 메우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이 배웠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겠구나. 자신의 삶과 가치관, 사랑을 담아 만들어내는 집들을 더 많이 구경하고 싶다.

지금은 너무나도 아쉽게도 집이라는 것이 사고파는 물건 개념으로 전락했지만, 여전히 집이 가진 의미는 동일하다. 내가 마음 편하게 거주할 수 있는 공간. 난 오늘도 우리의 집을 구상해 보고 웃음 지으면서, 지금의 내 공간에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며 그 간극을 촘촘하게 채워가본다.

 

_책 속의 문장

24. 행복이란 때와 시간을 정해놓고 찾아오는 계획된 미래가 아니라 만족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는 예기치 못했던 순간순간마다 찾아온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39. 집을 짓는다는 건 ‘나’를 새롭게 세우는 일이다. 때론 집을 새로 짓는 것만으로 삶이 바뀌기도 한다.

42. 집을 짓기 위해서는 방을 몇 개 두고, 어떤 구조로 짓느냐, 얼마에 짓느냐보다 나의 삶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 먼저다.

143. 집 짓기는 나를 아는 것뿐 아니라 몰랐던 가족의 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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