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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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에서 자랐어요.”라는 사실이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자랑거리가 되었다. 친구가 아파트에 살던 것을 부러워하던 내가? 정말로? 왜? 어째서 말야?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주택에 사는 것이 로망이 된 시대가 되면서부터겠지.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그치곤 했다. 자세한 내막을 말하게 되면 좋았던 게 더 이상 좋지 않을 확률이 훨씬 더 커지기 때문에.

유년 시절, 엄마가 “저녁을 지어야 하니 친구들이랑 좀 더 놀다 와.”라고 말을 하면 나는 부리나케 골목길을 와다다다 내달리며 모기차를 따라나섰다.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겠지만) 동네 엄마들은 아이들의 활동에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았다. 심지어 집에서 500m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 놀아도. (가장 기억에 깊이 박혀있는 것은 (아마도 겁이 많아서 혹은 운동신경이 없어서) 나 혼자만 담을 넘지 못해 빙 둘러 가야 했던 그 길들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럴 수 있었나 보다 하고 지금과는 너무 다른 그때를 회상해 본다.

집,하면 떠오르는 것이 참 많은데 그중 한여름에 너무나도 더웠던 집안의 꽉 막힌 공기. 아, 지금 다시 생각해도 숨이 턱 막혀버릴 정도로 습하고 눅눅하고 어쩐지 떽떽거리는 것 같던 더운 공기 말이다. 자다가도 몇 번이나 찬물을 온몸에 뒤집어써야만 했다. 그 짓을 스물다섯 살까지 했다. 내가 번 돈으로 집에 에어컨을 놓기 전까지. 아니, 그마저도 에어컨 평형수를 잘못 구매해서(에어컨을 처분할 때까지 그 이유를 몰랐다) 에어컨 구매한답시고 돈은 돈대로 쓰고, 집은 시원하지도 않고, 주택이라 누진세는 열심히 붙고, 에어컨이 있는데도 집이 시원하지 않다며 에어컨이 고장 난 거 아니냐는 부모님의 볼멘소리에 그럴 거면 아빠 엄마가 사지 왜 안 샀냐고 버럭 하던 나. 그 여름. 나는 그전까지 여름에는 다들 이러고 사나보다, 했다. 그렇게 말하는 나를 보며 J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그때가 생각이 나서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그 시절 여름이 싫은 이유와 지금 여름이 싫은 이유는 너무나도 다르다. 지금은 물먹은 솜사탕 같은 습도가 싫다면, 그때는 여름 그 자체가 싫었다. 정말이지, 덥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좋아할 수 없는 계절이었다.

게다가 겨울에는 또 얼마나 춥냐면, 웃풍이 엄청났다. 아파트의 웃풍과 오래된 주택의 웃풍이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몸이 덜덜덜 떨리는데 오죽하면 이놈의 집이 잘못 지어진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보일러를 틀어도 확 따듯해지지도 않았고, 따듯하지 않은 채로 가스비는 20만 원을 훌쩍 넘어 30만 원, 40만 원도 우스웠다. 매해 겨울은 추웠기에, 보일러실의 보일러가 얼어서 부모님은 드라이기와 뜨거운 물들을 받아다가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물을 뜨겁게 데우면서 저놈의 보일러는 얼어도 문제고 터져도 문제네 생각했었다. 그걸 못 봐주겠다 생각했는지 엄마는 어느 날 집에 난로를 들였는데, 그게 연탄난로였다. 그 안에 고구마도 넣어 구워 먹기도 하고, 그 위에는 떡을 구워 먹기도 하고, 주전자를 올려놓고 끓이며 집안에 수증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게 따듯했냐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훈훈했지만, 전기매트는 필수적으로 틀어놔야 하는 정도. 아마 이사를 하지 않았다면 부모님은 여전히 그 연탄난로를 쓰고 계셨겠지.

책 제목을 보자마자 그때의 집이 생각이 났다.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웠던 우리 집. 하지만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기 때문에 (게다가 적어도 이웃 주민들은 우리와 똑같이 살고 있었으니까) 그것 자체를 불우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공선옥 작가의 글을 읽으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었던 내 유년 시절에 대해 민망하게도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불우했다고 표현하는 작가의 유년 시절에 대해 어쭙잖게 연민을 품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쓰인 문장들과 내 생각이나 감정이 일치할 때마다 나는 안타깝게도,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라는걸.

11. 뭔가 포근하고 좋은 것들이 아니라 불안을 유발하는 조건들에 둘러싸여 살았고 자연히 내 의식을 형성하는 것은 초조, 긴장, 두려움들. 나는 나의 장소, 나의 공간, 나의 시간, 나의 생활을 한편으로 연민하면서 또 한편으로 버리고 싶은 기분으로 살았다.

나도 딱 그랬다.

특히 집 밑에 있는 슈퍼에서 동네 아저씨들의 싸움이 일어날 때면 그 소리가 바람을 타고, 구름을 타고, 어둠을 타고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거의 대부분 딴짓을 하고 있는 내 방 창문에 똑똑 노크를 해왔다. 혹여라도 나의 아빠도 그곳에 끼어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사춘기였던 나는 그 생각도 잠시, 그러거나 말거나 귀를 틀어막고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새벽이 되면 신탄진역과 대전역을 오가는 기차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그 소리가 내게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 동네를 떠나고 싶었는데, 지긋지긋하게 참 오래 살았다. 가끔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으려나 하고.

79. 나에게 내 집이란 어떤 집인가. 내게 내 집이란 어떤 집이어야 하는가. 내게 집이란 무엇인가. 어디로 떠나도 언제고 돌아올 수 있는 집,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내 물건들이 편히 자리 잡고 있는 공간, 그곳이 내 집이라고 난 생각했다. 가지고 있다가 값 오르면 팔고 나올 ‘부동산’이 아닌, 비 오는 날의 우산으로서의 집. 눈 오는 날의 베이스캠프.

작가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한다.

집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집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집과 나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가.

내가 노년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곳으로 고향을 꼽았다. 그 생각은 몇 년째 굳건했고 그렇기에 변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불현듯 그때의 그곳이 지금의 그곳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장소도, 많이 바뀌고 있고 바뀔 테니까. 내가 모르는 곳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 속에서 어떤 것 하나를 고집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문인 화가 송현숙도 고향 무월리는 언제든지 돌아갈 곳, 돌아가야 할 곳,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을 테지만 직접 목격한 무월리는 그곳이 아니라 하지 않았나. 결국은 내가 살아야 하는 곳이 내가 돌아가야 하는 곳이겠지. 그래서 조금 유연하게 흘러가는대로 두려 한다. 아직 노년이 멀기도 했거니와 세상에는 살아보고 싶은 곳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어쩌면 안일한 생각을 기반으로.

몇 년 전에 읽은 김미월 작가의 <여덟 번째 방>과 최근에 읽은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가 차례로 떠올랐다.

지금은 모든 이들이 집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다. 기승전 집이 되는 세상. 결국 집은 무엇인가ㅡ 다시 원질문으로 돌아왔다.

오탈자 ; 79. 가지고 있다가 값 오르면 팔고 나올 ‘부동산’이 아닌, 비 오는 날의 우산으로서의 집 ▶ 우산으로써



_책 속의 문장

8. 고향을 생각하고, 집을 생각하면 따뜻하고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 깊숙한 곳에 또아리 틀고 있는 스산함. 황량함의 감정을 나는 쉽게 말해오진 못했지만 부정할 수는 없다.

93. 산다는 것은 복불복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그러니,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과연 천운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99. 인생에도 확실히 막간은 필요하다.

잠시 쉬는 시간, 독일 사람들은 그런 시간을 파우제라고 했다. 파우제, 잠시 쉬었다 가자는 것이다.

221. 돈을 벌기 위해 집 밖으로 떠돌았던 아버지는 집에 오면 늘 ‘이방인’ 같을 수밖에 없었다.

- 뚜덕뚜덕 지은 집

- 싸목싸목 : 천천히의 방언(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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