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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 거야 - 지상에서 보낸 딸과의 마지막 시간
김효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내게 ‘백혈병’이란 영화나 드라마 여주인공들이 남자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만드는 매게체거나 어린 아이들이 걸리는 병으로만 인식되었었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엄마가 그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정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리고 치료를 할수록 이렇게 무서운 병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사실 책을 받고, 내용을 알아버리는 순간 읽기가 싫었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기억해야 할 것임을 알기에.. 하지만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했다. 엄마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근무 중 걸려온 전화. ‘어머니가 어떤 상태인 줄 아세요? 환자 혼자두면 위험합니다. 집도 가깝지가 않으니 더 그렇지요.. 당장 오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작년 3월 24일 점심을 먹고, 이를 닦는데 걸려온 전화 한통. 서울 병원이였다. 임파선 암 진단을 받고, 일주일 정도 입원하며 항암 치료를 받아왔던 엄마가 마지막 6번째 치료를 위해 서울로 올라 간지 보름째 되던 날. 전과 다르게 치료가 더디다며 걱정 말라며 명랑하게 말하던 엄마와의 통화로 큰 걱정 안하고 있었는데 전화 한통으로 생각이 멈춰버렸다. 당장 회사에 사정을 말하고, 근무하는 동생과 통화한 후 집으로 가서 대충 짐을 챙겨 서울로 올라갔다. 울어 팅팅 부은 눈으로 별일 없을꺼라는 동생의 위로를 받으며 서울로 향하던 그 4시간은 정말 지옥 같았다.

‘백혈병’이란다. 임파선 암이 어떻게 백혈병으로 바뀌었는지 자신들도 모르지만 지금 위험한 상황이니 격리병동에 갈 동안 1인실을 주겠단다. 먹는 음식을 비롯해 환자의 모든 물품은 소독을 하고, 보호자도 위생에 철저해야 한단다. 뭐가 뭔지 모르게 쏟아지는 의사들의 말에 기가 막혔다. 다 끝난 줄 알았던 암세포가 이름을 바꿔 다시 살아나버렸다.

치료를 위해 히크만 (중심정맥관)을 심어야 한단다. 하루가 급하니 토요일이라도 당장 내려가 시술을 받자는 말에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내려갔다. 그 사이 병실도 격리병동으로 옮기고, 급하게 시술을 받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져 움직이지도 못하고, 열이 40도 가까이 올랐다. 결국 5일이 지나서야 히크만을 심으면서 염증이 생긴 것 같으니 관을 빼야한단다. 엄연한 자신들의 잘못을 미안함 없이 말하는 의사들. 병원에서 그들은 절대강자였다. 억울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여튼 염증을 치료하는데 한 달, 항암하는데 한 달. 도합 2달 넘는 병원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이였다. 온갖 항생제와 항암약으로 인해 엄마는 식욕도 잃고, 점점 말라만 갔다.

그렇게 1차를 끝내고, 다행히 관해가 되자 담당교수는 이식을 권했다. 이모랑 삼촌이 전부 올라와 검사를 했지만 5명 모두 불일치. 엄마는 혈액도 RH -인데다 타입도 굉장히 드문 경우라고 한다. 조혈모세포협회에 의뢰했지만 우리나라엔 맞는 사람이 없고, 호주에 1명이 있는데 백인의 골수를 이식한 경우가 없어 아직 확답을 해 줄 수 없다는 담당 코디네이터의 말. 갈수록 첩첩산중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이식은 보류하고, 공고요법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 후 공고 3차까지 보통 40일 입원치료, 퇴원 후 30일 집에서 생활 다시 입원, 퇴원을 반복했다. 치료를 할수록 촉진제를 맞고도 수치가 회복되는 시간이 길어져 맘을 졸이기도 했다. 수치가 제로 상태에서 간과 폐에 균이 생겨 그걸 또 치료하느라 항생제를 수없이 맞았고, 열이 올라 날마다 혈액배양검사를 하는가하면 암포를 맞는 동안엔 잠을 못 잘 만큼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병동엔 중환자실로 내려간 환자, 죽음을 맞은 환자, 새로운 환자들로 붐볐다. 무슨 환자들이 이리 넘쳐 나는지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그 중 고3 수능준비하다 재발되어 입원했던 00이, 나와 같은 나이라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3번의 이식에도 불구하고 다시 재발되어 줄기세포 치료를 받던 00, 같은 포항에서 왔다고 먹을 꺼 잘 챙겨주던 반장아줌마의 아들까지 퇴원하고 다시 입원할 때마다 안 좋은 소식들이 연이어 들렸다.

마지막 치료를 마치고 퇴원할 때 담당 간호사가 ‘다시는 병동으로 올라오지 마시고, 외래 올 때 한번 씩 놀러는 오세요. 건강하시구요..’란 말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꼭 그랬으면 좋겠는데.. 치료가 끝난 게 11월 13일. 아직까지도 외래가서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엔 긴장되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다신 111병동으로 가고 싶지 않다.

지난 1년 동안 엄마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입원하고, 퇴원하면 계절이 바뀌어 있고, 그 속에선 여름인지 겨울인지 느낄 수도 없었다. 반복되는 생활. 누군가는 병원에 갖혀 있으니 바보가 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가끔 미칠 듯 가슴이 답답해 짜증을 내기도 하고, 뛰쳐 나가버리고 싶은 생각도 많았다. 어렵게 구한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어 화가 나기도 했고, 친구들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난 꽉 막힌 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제대로 먹을 수도 없고, 불편한 보호자 침대에서 자려니 온 몸이 쑤시고, 회진에 소독에 치료하느라 들락거리는 의사 간호사 소리에 깊은 잠을 잘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병동에선 감염의 위험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아기처럼 엄마를 돌봐줘 편했는데 집에선 다시 예전의 게으른 나로 돌아가 버렸다고 엄마의 불만이 크다. 하지만 이렇게 투정부리고, 게으름 부릴 수 있는 우리 집이 좋다. 이렇게 오래오래 함께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있을 지는 하늘만이 알고 있으리라...

힘든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 글을 썼다던 작가의 말처럼 책을 읽으며 괴롭기도 했지만 위로가 된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 무엇. 세상에 가장 힘든 이별이 부모가 자식의 죽음을 보는 거라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직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희망을 붙잡는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의 용기라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병동의 환자들은 그랬다. 아직 백혈병을 100%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하진 못했지만 머지않아 꼭 완치 할 수 있는 날이 올꺼라고. 그래서 힘든 와중에도 기꺼이 임상 약을 사용하고, 검사 혈액 뽑는데 동의하는 거라고 말이다. 어느 보호자가 ‘이 병동 사람들은 전부 실험하고, 연구하는 대상들이다’란 말이 우스게 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 일거다.

마지막으로 백혈병 환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혈액이다. 특히나 엄마는 RH -라서 혈액을 구하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도 했다. 그런 귀중한 혈액을 나눠준 많은 사람들. 또한 백혈병 협회로부터 도움 받은 헌혈증(생면부지의 그들이 나눠준 고마운 헌혈증으로 엄마는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으로 수혈을 할 수 있어 한결 부담을 덜기도 했다. 나부터도 헌혈하기를 기피했는데 많이 반성한다. 빈혈이 좋아지면 꼭 헌혈을 하리라. 내가 받았던 도움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게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일테니 말이다. 모든 분들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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