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은 건 아니지만, 지금은 책읽기를 좋아한다. 내가 책읽기를 시작했을 때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소설을 즐겨 읽고 가끔 시를 보았다. 누군가 나한테 지금까지 만난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가장 좋아하는 소설(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제대로 대답하기 어렵다. 하루쯤 생각하면 재미있게 본 걸 쓸 수 있을지도. 아니 하루는 짧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사람은 한번 보고 좋으면 여러 번 봤을지도. 내가 책읽기를 즐겁게 여기기는 해도 여러 번 본 책은 없다. 많은 사람이 《어린왕자》(생텍쥐페리)를 여러 번 보고,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든다고도 하던데, 난 여러 번 보고 싶은 책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말하면 괜찮을까.

 

 오래했다고 말할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책을 읽기만 했다. 인터넷을 하면서 책을 보고 감상을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줄거리도 짧게 썼는데 자꾸 쓰다보니 길게 쓰게 됐다. 지금은 좀 길게 쓰는 건 어쩌다 한번이고 비슷한 길이로 쓴다. 하지만 예전보다 글이 늘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내 마음에 들지 않게 쓸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책을 읽기만 해도 괜찮겠지만, 느낌을 쓰면 읽은 책을 좀더 오래 기억할 수 있어서 좋다. 좀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쓰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언제부턴가 조금 의문이 생겼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해서 그 사람이 괜찮을까 하는. 다른 사람보다 나 자신이 별로여서 그렇게 생각했다. 책을 읽고 생각하면 그때는 마음이 괜찮은데 시간이 흐르면 그걸 잊고 만다. 다시 생각하니 본래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산 사람이기에. 득도한 얼마 안 되는 사람은 사람 세상 일에 얽매이지 않겠지만, 보통 사람은 언제나 자기 안에 있는 어둠과 싸워야 할 거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그 싸움에 지지 않으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읽기 글쓰기가 사는 데 도움은 되지 않아도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아주겠지. 누군가한테는 그게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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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쓰기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잠깐 가르쳐드리겠습니다. 편지를 한번도 써 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처음에는 누구한테 편지를 쓸지 생각합니다. 떠올랐습니까.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고르고 자신이 쓰기에 좋은 펜이나 연필로 거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쓰세요. 편지지를 준비할 때 봉투도 준비해두면 좋습니다. 편지를 다 쓰고 혹시 틀린 글자는 없는지 한번 죽 읽어보고 편지지를 봉투에 넣을 수 있게 접으세요. 봉투 속에 편지를 넣은 다음에는 편지봉투가 열리지 않게 풀칠해서 잘 붙이세요. 저는 편지쓰기 전에 하는 건데, 그건 봉투에 우표 붙이고 주소 쓰기예요. 우표는 봉투 오른쪽 위에 붙이고, 왼쪽 위에 보내는 사람 오른쪽 밑에 받는 사람 주소 이름을 쓰세요(우편번호도 빼먹지 마세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반대로 써서 자신이 편지를 받는 사람도 있던데, 잘못 쓰지 않게 조심하세요. 주소 쓰기까지 다 하면 이제 편지를 가까운 우체통에 넣으세요. 편지는 사나흘 길게는 닷새뒤쯤 상대한테 갈 거예요.

 

 어때요, 그렇게 어렵지 않지요. 편지지에 하고 싶은 말 적을 때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때 편지 받을 사람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올 거예요. 편지 쓸 때는 자신보다 상대를 더 생각하기도 합니다. 무슨 말을 하면 상대가 좋아할까, 이런 생각. 편지라고 늘 좋은 말만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못했던 말을 천천히 생각하고 적는 사람도 있겠지요. 어쩐지 그건 마지막 편지일 것 같습니다. 헤어질 때는 편지보다 만나서 말로 할 때가 더 많겠군요. 그때는 편지 같은 거 남겨두고 싶지 않겠습니다. 잠깐 쓸데없는 말을.

 

 먼 곳에 살아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한테도 편지쓰면 괜찮겠지요. 가까이 있다 해도 바로 건네지 않고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으면 색다를 겁니다.

 

 자, 지금 써 보세요.

 

 

 

희선

 

 

 

 

 

 

 

 

 

 

이 많은 우체통에서 진짜는 어느 것일까, 답은 왼쪽 맨 끝이다

(사진을 바로 앞에서 찍고 싶었지만 거기에 택배 배달차가 서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다른 우체통에 편지 넣으면 가지 않겠지, 편지 넣는 곳 막아뒀을 것 같다

예전에 우체통(우편함)에 있는 새를 비둘기라고 했는데 제비란다

제비가 흥부한테 박씨를 물어다 준 걸 생각하고 반가운 소식을 나타내려 했나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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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 쓸 때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기도 하다. 난 혼자여서 아이한테 편지 써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못할 거다. 내가 편지를 쓰는 사람은 친구뿐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마음속으로는 친구라 생각한다. 난 사람을 정말 못 사귄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내가 먼저 말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물어보는 것에는 대답하기도 하지만. 글이라는 게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때는 그때대로 혼자 지냈을까.

 

 얼마전에 라디오 방송에 자기 아이한테 편지를 쓴 엄마가 나왔다. 아이한테 편지를 쓰고 그게 책으로 나와서였다. 그 작가 이름은 김정은이고 책은 《엄마의 글쓰기》다. 큰딸이 초등학교 6학년 열세살이었는데 말을 잘했다. 엄마 김정은은 일하느라 아이들과 따로 살다 몸이 아파서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었다. 그때는 아이들과 살게 됐는데, 아이들이 엄마를 서먹서먹하게 여겼다. 마침 집 앞에 도서관이 생겨서 김정은은 아이들과 함께 가서 아이들이 골라오는 책을 읽어주었다. 그걸 네다섯해쯤 했다고 한다.

 

 아이마다 다르겠지만, 요즘은 사춘기가 빨라졌겠지. 어느 날 첫째가 엉뚱한 말을 해서 김정은은 자신이 어렸을 때를 생각하고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 뒤로도 김정은은 아이한테 하고 싶은 말이나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면 편지를 썼다. 편지를 써주는 엄마 좋을까. 난 좋을 것 같다. 처음에 그런 거 받으면 어색하겠지만. 말로 못하는 걸 글로 쓰면 차분하게 쓸 거다. 말은 한번 하고 나면 주워담기 힘들다. 말도 천천히 생각하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내가 그렇던가, 이건 좋은 뜻이 아니다. 난 말을 잘하지 않아서 못하기도 하지만 하기 싫기도 하다. 글로 쓰는 말도 힘들고 말하는 건 더 힘들다.

 

 날마다 얼굴 보는 사람한테 편지쓰기는 좀 어려울까. 그래도 아이한테 쓰는 건 좀 다를 것 같다. 휴대전화기로 쉽게 보내는 문자메시지가 아닌 종이에 손으로 편지를 쓰면 쓰는 사람뿐 아니라 받는 사람도 좋을 거다. 부모가 쓴 편지를 받는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는다고 느낄 것 같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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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9-22 0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첨 받을 땐 눈물나요. 맞춤법 틀린 것, 필체 그런 게 다 감동적이죠. 상황까지 엮이면 더.

희선 2017-09-23 01:07   좋아요 0 | URL
AgalmA 님은 어머님한테서 편지를 받은 적 있군요 처음에는 편지가 온 것만으로도 감동스럽고 눈물 나겠습니다 어쩐지 그럴 것 같네요 별 말 아니어도 눈물 나겠죠


희선
 
연대기, 괴물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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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해 전에, 오랜만에 한국 단편소설을 봤을 때는 단편소설이 예전보다 짧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철우 단편소설은 긴 편이네요. 임철우는 예전부터 알았는데 소설은 그다지 자주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만난 것에서 가장 처음 생각나는 건 《봄날》입니다. 그리고 곽재구 시 <사평역에서>를 보고 <사평역>이라는 소설을 썼지요. 그 소설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데, 어렸을 때 드라마 본 것도 같아요. 생각나는 건 역에 사람이 모여있는 것뿐이지만. 눈 오는 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도 소설로 드라마를 만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단편소설로는 거의 만들지 않지요. 영화로 만들까요. 제가 한국소설을 보기 시작했을 때는 그때를 말하는 소설보다 더 옛날 이야기를 하는 걸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다 그랬는지. 아니 어쩌면 그때 소설가가 예전 이야기를 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지만 예전에 단편소설 많이 못 보고 잘 못 봤어요. 지금도 잘 보는 건 아닙니다.

 

 여기 담긴 소설은 거의 어둡습니다. 슬픔과는 다른 것도 같아요. 언젠가 어떤 소설집을 보니 소설마다 나오는 사람이 다른데도 그 사람들이 비슷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게 대체 뭐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은희경 책 《중국식 룰렛》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조해진 소설 《빛의 호위》도 비슷했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이면서 비슷한 건 소설마다가 그 사람의 평행우주여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쓰지는 않았나 봐요. 지금 생각하니 평행우주에 사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고 같은 사람이군요. 다른 사람일지라도 비슷한 점이 있기도 한데.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여기 담긴 소설을 보고도 다른 사람이지만 비슷하기도 하다고 느꼈습니다. 연작소설은 아니지만 이어져 있는 소설 같아요. 예전에 박완서 님 소설을 보고 같은 사람이 여기저기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거야말로 연작소설인데 그때는 그런 것도 몰랐습니다. 지금도 아는 게 별로 없군요. 이런 말로 잘 못 써도 이해해달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2017년에 나온 소설집인데 여기에는 지금보다 예전 이야기가 더 많아요.

 

 네번째 소설 <간이역>을 보니 어렸을 때 본 흑백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데 여자가 아이 있는 남자와 결혼하고 자기 아이는 낳지 않는 게 나왔어요. <간이역>에도 그런 사람이 나오더군요. 그 사람은 췌장암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지금 아내보다 예전에 차 사고로 죽은 아내를 생각하고 시를 썼어요. 남편은 세상을 떠날 아내보다 두번이나 아내를 떠나 보내야 하는 자신을 더 불쌍하게 여겼군요. 나중에는 지금 아내보다 예전 아내를 생각한 걸 미안하게 생각한 것 같기도 합니다. 소설에 시인이 나오는 거 한편 더 있어요. <남생이>예요. 여기에서 남자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떤 여자를 보고 어릴 적에 만난 친구를 떠올렸습니다. 남자가 어릴 적에 만난 미화와 여자가 같은 사람인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미화 아버지와 오빠는 한센병에 걸렸다가 나았지만 한 곳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 일을 누군가한테 들키면 미화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어요. 남자가 어렸을 때 그걸 알고는 바로 다른 친구한테 말해서 미화는 그곳을 떠났습니다. 나이를 먹은 남자가 그 일을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거군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습니다. 소설에서는 죽음을 우울하게 그릴 때가 많더군요. 그건 결국 산 사람이 생각하는 죽음이잖아요. <흔적>과 <세상의 모든 저녁>은 그런 이야기예요. 두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다르지만 아픈 데는 같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흔적>에 나오는 사람은 아들과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내고, 병든 개도 떠나 보내고 자신이 살았던 흔적을 모두 없애려 합니다. <세상의 모든 저녁>에 나오는 사람은 쪽방에 혼자 살았어요. 오래전에 옹기를 만들었는데 시간이 흐르고는 그것을 쓰는 사람이 줄어들고 그걸 그만뒀습니다. 그때 결혼한 사람과는 헤어지고 혼자 살다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것을 알아채는 사람도 없었어요. 혼자 살던 사람이 죽고 그것을 시간이 흐르고 알았다는 이야기는 가끔 들리기도 합니다. 사라진 일을 말하는 소설 하나 더 있어요. <물 위의 생>은 아우라지 뗏사공 이야기예요.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왜 그렇게 삶이 평탄하지 않은지. 소설에는 잘되는 사람보다 이런저런 일을 겪고 역사에 휩쓸리는 사람 이야기를 더 쓰는군요. 임철우는 1980년에 일어난 광주민중항쟁을 《봄날》로 썼습니다.

 

 죽음이 나오는 소설이 앞에서 말한 두 편만은 아닙니다. 여기 담긴 소설에는 다 죽음이 나옵니다. <연대기, 괴물>은 송달규가 지하철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기사로 시작합니다. 아니 처음에는 이름이 없군요. 송달규라는 이름도 자기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한사람 삶을 말한다기보다 보도연맹 사건, 베트남 전쟁, 5 · 18 그리고 세월호에 이르는 굵직굵직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역사는 실체없는 괴물이 만들어낸 일일지. 그 괴물은 사람 마음이기도 하겠지요. <이야기집 - 단추눈 아짐>도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단추눈 아짐 이야기면서 부용도 해송리 이야기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단추눈 아짐처럼 산 사람이 많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이가 차면 적당한 사람과 혼례를 올리고,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 헤어지고 아이가 있는 사람과 다시 사는 일. 조금 쓸쓸해 보이지만 단추눈 아짐 삶이 아주 안 좋은 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말해도 덜 안타깝게 덜 쓸쓸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소설이 아주 없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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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빈 방  죽음 후에

  존 버거, 이브 버거   김현우 옮김

  열화당  2014년 07월 30일

 

 

 

 

 

 

 

 

 

 

 

 

 

 

 누군가 쓰던 방이 비면 쓸쓸하겠지. 좋은 일이 있어서 집을 떠난 거라면 덜 하겠지만. 그 방을 쓰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면 슬프겠다. 주인이 돌아오지 않는 방을 그대로 두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사람은 없지만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 방을 썼을 테니. 그대로 두면 언젠가 방주인이 돌아올 것 같기도 할 거다. 그저 기억하는 것과 무언가를 남겨두고 기억하는 것에서 어떤 게 더 슬플까. 이런 생각을 하다니.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게 더 마음 아프겠지. 그렇다고 세상을 떠난 사람 물건을 빨리 정리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남은 사람한테는 슬퍼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죽은 사람 물건을 정리할 수 있다. 슬픔은 평생 가겠지만 산 사람은 살아간다. 어쩐지 이 사실도 무척 슬플 것 같다. 죽는 사람은 더 살지 못해서 안타까울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더 살지 못한 안타까움도 산 사람이 더 크게 느낄 것 같다.

 

 좁은 방에 물건이 가득해도 거기에 사람이 없으면 그 방은 넓어 보일 거다. 내 방도 내가 없으면 그렇게 보일까. 그전에 정리를 해야 할 텐데. 그 생각을 오래해서 그런지 현실에서는 못하고 꿈속에서만 한다. ‘빈 방’이란 말은 아프고 슬프다. 본래부터 빈 방이었다면 다르겠지만. 난 아직 그런 빈 방이 없다. 언젠가는 갖게 되겠지. 내가 먼저 만들까. 존 버거와 아들 이브 버거는 아내면서 어머니인 베벌리 밴크로프트 버거를 떠나 보내고 한해가 지난 뒤에 베벌리 밴크로프트 버거를 그리는 그림과 글을 썼다. 존 버거 이름은 들어봤지만 잘 모른다. 존 버거는 글뿐 아니라 그림과 사진과 상관있는 걸 한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가지를 하다니 대단하다. 여러 가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난 하나도 제대로 못해서. 죽은 사람도 조금 부럽다. 남편과 아들이 그리워해서. 그걸 죽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사람이 살다 가는 것을 슬퍼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자기 삶을 다 산 거니까.

 

 이 책에는 많은 것을 담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겠지만 조금만 한 것 같다. 존 버거는 아내가 아픈 모습도 아름답다고 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은 그런 거 좋아하지 않을 텐데. 이건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지 않았을 때 그러겠구나. 존 버거는 아내가 아플 때도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대로였구나. 존 버거는 어떤 일을 떠올리고는 그런 건 아내가 더 잘 기억할 텐데 한다. 그런 말을 하는 건 존 버거가 아내를 잘 보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도 조금 부럽구나. 별걸 다 부러워한다. 존 버거 아내 베벌리는 암으로 죽은 것 같다. 아들 이브 버거도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그리워하는데 울지 못했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그때는 그랬다 해도 이제는 눈물 흘릴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함께 산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마음이 뻥 뚫린 것 같겠다. 뻥 뚫린 마음을 채워야 할지 그대로 두어야 할지. 나도 그건 잘 모르겠다. 앞으로도 잘 모를 것 같다. 떠나간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을 떠올리고 사는 것밖에 없겠지. 보이지 않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해도 곁에 있다고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 소설에서 그런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는데. 실제로도 그럴 거다. 주인 없는 빈 방에 들어가면 조금 슬프겠지만, 곧 방 주인이 즐겨하던 게 떠오르겠지. 옷이나 신발, 뜰을 봐도 그렇겠다. 살았을 때 상대를 잘 봐야 나중에 떠올릴 수 있겠다. 곁에 있는 사람이 떠났을 때 자신이 그 사람을 잘 모르는구나 하지 말고, 곁에 있을 때 잘 보고 자주 말하면 좋겠다.

 

 

 

 

빈 방

 

 

 

네가 떠나고 가끔 난 네 방에 들어가 봐

그 방에서 넌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너와 잠깐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냈다면 좋았을걸

언젠가 네가 돌아온다면 기쁠 텐데

잊지마,

네가 돌아올 곳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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