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빈 방  죽음 후에

  존 버거, 이브 버거   김현우 옮김

  열화당  2014년 07월 30일

 

 

 

 

 

 

 

 

 

 

 

 

 

 

 누군가 쓰던 방이 비면 쓸쓸하겠지. 좋은 일이 있어서 집을 떠난 거라면 덜 하겠지만. 그 방을 쓰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면 슬프겠다. 주인이 돌아오지 않는 방을 그대로 두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사람은 없지만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 방을 썼을 테니. 그대로 두면 언젠가 방주인이 돌아올 것 같기도 할 거다. 그저 기억하는 것과 무언가를 남겨두고 기억하는 것에서 어떤 게 더 슬플까. 이런 생각을 하다니.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게 더 마음 아프겠지. 그렇다고 세상을 떠난 사람 물건을 빨리 정리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남은 사람한테는 슬퍼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죽은 사람 물건을 정리할 수 있다. 슬픔은 평생 가겠지만 산 사람은 살아간다. 어쩐지 이 사실도 무척 슬플 것 같다. 죽는 사람은 더 살지 못해서 안타까울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더 살지 못한 안타까움도 산 사람이 더 크게 느낄 것 같다.

 

 좁은 방에 물건이 가득해도 거기에 사람이 없으면 그 방은 넓어 보일 거다. 내 방도 내가 없으면 그렇게 보일까. 그전에 정리를 해야 할 텐데. 그 생각을 오래해서 그런지 현실에서는 못하고 꿈속에서만 한다. ‘빈 방’이란 말은 아프고 슬프다. 본래부터 빈 방이었다면 다르겠지만. 난 아직 그런 빈 방이 없다. 언젠가는 갖게 되겠지. 내가 먼저 만들까. 존 버거와 아들 이브 버거는 아내면서 어머니인 베벌리 밴크로프트 버거를 떠나 보내고 한해가 지난 뒤에 베벌리 밴크로프트 버거를 그리는 그림과 글을 썼다. 존 버거 이름은 들어봤지만 잘 모른다. 존 버거는 글뿐 아니라 그림과 사진과 상관있는 걸 한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가지를 하다니 대단하다. 여러 가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난 하나도 제대로 못해서. 죽은 사람도 조금 부럽다. 남편과 아들이 그리워해서. 그걸 죽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사람이 살다 가는 것을 슬퍼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자기 삶을 다 산 거니까.

 

 이 책에는 많은 것을 담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겠지만 조금만 한 것 같다. 존 버거는 아내가 아픈 모습도 아름답다고 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은 그런 거 좋아하지 않을 텐데. 이건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지 않았을 때 그러겠구나. 존 버거는 아내가 아플 때도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대로였구나. 존 버거는 어떤 일을 떠올리고는 그런 건 아내가 더 잘 기억할 텐데 한다. 그런 말을 하는 건 존 버거가 아내를 잘 보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도 조금 부럽구나. 별걸 다 부러워한다. 존 버거 아내 베벌리는 암으로 죽은 것 같다. 아들 이브 버거도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그리워하는데 울지 못했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그때는 그랬다 해도 이제는 눈물 흘릴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함께 산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마음이 뻥 뚫린 것 같겠다. 뻥 뚫린 마음을 채워야 할지 그대로 두어야 할지. 나도 그건 잘 모르겠다. 앞으로도 잘 모를 것 같다. 떠나간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을 떠올리고 사는 것밖에 없겠지. 보이지 않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해도 곁에 있다고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 소설에서 그런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는데. 실제로도 그럴 거다. 주인 없는 빈 방에 들어가면 조금 슬프겠지만, 곧 방 주인이 즐겨하던 게 떠오르겠지. 옷이나 신발, 뜰을 봐도 그렇겠다. 살았을 때 상대를 잘 봐야 나중에 떠올릴 수 있겠다. 곁에 있는 사람이 떠났을 때 자신이 그 사람을 잘 모르는구나 하지 말고, 곁에 있을 때 잘 보고 자주 말하면 좋겠다.

 

 

 

 

빈 방

 

 

 

네가 떠나고 가끔 난 네 방에 들어가 봐

그 방에서 넌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너와 잠깐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냈다면 좋았을걸

언젠가 네가 돌아온다면 기쁠 텐데

잊지마,

네가 돌아올 곳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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