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에 본 드라마 <BORDER 경시청 수사1과 살인범 수사 제4계>를 다시 보았다. 아직 끝까지 못 봤다. 모두 9환데 4화까지 봤다. 만화영화는 여러 번 보기도 하지만 드라마는 한번만 볼 때가 더 많다. 요새는 예전에 본 거 다시 보고 싶기도 하다.

 

 이 드라마를 다시 본 건 다음 편이 나와서다. 다음 편 그렇게 길지 않지만. 어떤 이야기였는지 잘 생각나지 않았는데 보다보니 한번 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조금 신기했다. 이걸 책으로 본 적 없는데 소설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보더> 원작은 따로 없어서 소설을 볼 수 없는데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찾아보니 소설과 만화로도 나왔다.

 

 형사 이시카와 안고(오구리 슌)는 어느 날 사건 현장을 돌아보다 범인과 맞닥뜨리고 범인이 쏜 총에 맞는다. 총알은 머릿속에 박혔다. 그것을 빼는 수술을 하려면 심장을 멈춰야 했다. 그 말을 들은 이시카와는 심장이 한번 멈춘 것을 기억하고 한번 더 죽고 싶지 않다고 한다. 수술을 하지 않고 이시카와는 머릿속에 총알이 박힌 채로 다시 형사로 돌아간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겠지.

 

 머릿속에 총알이 있으면 걱정스러울 것 같은데. 그 일로 이시카와는 별난 힘을 갖게 된다. 그건 죽은 사람이 보이고 말도 할 수 있는 거였다. 이시카와가 죽은 사람을 깨우는가 보다. 죽은 사람이 나타나서 말하면 무서울까. 이시카와가 형사여서 잘된 게 아닌가 싶다. 그 사람을 죽인 사람을 잡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시카와는 하면 안 되는 것도 조금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도 증거를 찾아내면 좋을 텐데. 다른 사람한테 죽은 사람이 가르쳐준 걸 쉽게 말할 수 없겠다.

 

 보더border는 경계라는 뜻이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에 있는 이시카와를 나타내는 거겠지. 이 드라마를 언제 봤는지 잘 모르겠다. 2014년에 했던 건데. 그때 봤는지 나중에 봤는지. 죽은 사람이 말을 하면 조금 웃길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 웃기지 않다. 반대로 어둡다. 죽임 당한 사람이 말을 해서 그런가(다른 사람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나왔는데). 이시카와는 자신이 범인을 잡는 걸로 죽임 당한 사람의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풀리기를 바란다. 누군가한테 죽임 당한 사람은 자신을 죽인 사람이 경찰한테 잡히고 벌을 받으면 마음이 조금 나을까. 정말 그렇다면 좋겠다.

 

 

 

*더하는 말

 

 이시카와가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에 있다 했는데, 그것도 있지만 선과 악 사이에 있는 것도 나타내는 듯하다. 이시카와는 죽은 사람과 이야기해서 정의를 지켜야 한다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늘 정의가 이기지 않는다. 9화에서 이시카와는 선을 넘고 만다. 마지막이 그랬다니. 오래전에 봐서 잊어버렸다. 다음은 어떨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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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장 행복한 탐정 시리즈 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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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소설을 여러 권 봤는데도 난 사립탐정 하면 살인사건만 해결하는 사람으로 안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한 건 명탐정 코난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코난 겉모습은 초등학교 1학년이지만 실제로는 고등학생인 쿠도 신이치다. 코난은 대체 몇해나 초등학교 1학년인지. 언젠가는 성탄절 일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러고도 해가 바뀌지 않다니. 이 말은 예전에도 했다. 어쨌든 코난이 가는 곳에서는 언제나 사람이 죽었다. 범인을 알아내는 건 코난이지만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어른이다. 코난이 고등학생으로만 보여도 스스로 말했을 텐데. 하지만 코난이 쿠도 신이치 모습으로 돌아가도 문제다. 아직 그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지만 검은 조직한테선가 쫓겼다. 아니 죽은 걸로 되어 있던가. 코난이 쿠도 신이치가 되면 이건 끝나겠지. 언제 끝날까. 코난만 보고 탐정을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 것 같다. 탐정이 나오는 책에서는 거의 사건을 조사하고 어떤 탐정은 경찰한테 도움을 주기도 했다. 요코미조 세이시가 만든 탐정 긴다이치 고스케도 있구나. 탐정이라고 해서 사건만 해결하는 건 아니다. 무언가 알아봐 달라거나 사람을 찾아달라는 일도 한다. 어떤 탐정은 동물을 찾았던 것도 같다.

 

 스기무라 사부로를 뭐라고 하면 좋을까. 《누군가》 《이름없는 독》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 나왔을 때는 탐정이 아니었지만 탐정 같은 일을 조금 하다, 아내와 헤어지고는 사립탐정이 된 사람. 이 책 뒤에 실린 편집후기를 보니 미야베 미유키는 처음부터 스기무라가 혼자가 될 것을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그걸 느낀 건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서였는데. 아니 그것보다 스기무라가 처가와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했다. 결혼하고 시간이 흘렀는데도. 스기무라가 나오는 책 많이 나온 것 같았는데 이번이 네번째다.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헤어졌다고 하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내 아버지 집안하고 문제도 있지 않았을까. 처가와 가까이에서 살지 않았다면 좀 나았을 것 같기도 한데 나도 잘 모르겠다. 스기무라는 결혼하기 전에는 출판사에서 어린이 책을 만들었다. 결혼하고는 아내 아버지 회사 사보 만드는 곳에서 일했다. 그게 결혼하는 조건이었다. 조건이 붙은 결혼은 처음부터 안 좋은 걸까. 스기무라 집안에서는 결혼을 반대하고 연락을 끊었다. 미야베 미유키 책에는 이런 사람이 가끔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일본에는 이름이 잘 알려진 탐정이 정말 있을까. 소설에는 그런 사람이 나오기도 하는데. 탐정은 혼자 하는 사람이 있고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보다. 스기무라는 큰 회사에서 조사원으로 일하면서 자기 탐정사무소를 열었다. 아는 사람이 소개해서 일을 맡았다. 마지막에는 그 일이 돈이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그러고 보니 앞에 나온 책에서도 어쩌다 보니 무언가를 알아봤구나. 네가지에서 세번째 <모래 남자>는 스기무라 사부로가 탐정 일을 하기로 한 일이 나온다. 여기에는 단편이라고 말하기에는 긴 이야기 네편이 실렸다. 첫번째 <성역>은 스기무라와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 자기 집 밑에 살던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우연히 길에서 그 사람을 보고 어떻게 된 일인지 스기무라한테 알아봐 달라고 하는 이야기다. 스기무라는 탐정에 어울린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 못했는데, 뭐랄까 사람들한테 이것저것 잘 물어보고 가끔 거짓말도 한다. 형사는 형사다 하는 게 보인다고 하는데 스기무라는 평범한 얼굴이어서 사람들이 경계하지 않는가 보다.

 

 난 스기무라 사부로가 탐정이 되고 뭔가 다른 일을 하려나 한 것 같다. 스기무라가 하는 일은 오래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는 일(<희망장>)과  3·11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고 사람 찾는 일(<도플갱어>)을 했다. 스기무라가 많은 사람한테 잘 알려져서 손님이 찾아오는 게 아니고 아는 사람이 스기무라를 소개했다. 시간이 흐르면 소문 듣고 오는 사람도 있을까. 이 다음 이야기도 나올지. 두번째 이야기 <희망장>에서 의뢰인은 스기무라한테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오래전에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한 게 마음에 걸려서 그 일을 알아봐 달라고 한다. 계획하고 사람을 죽일 때도 있겠지만 무언가에 씌어서 할 때도 있겠지. 사람을 죽이는 것만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훔치거나 누군가한테 나쁜 짓하는 것도 그럴지도. 그럴 때는 참아야 하는데, 참지 못하면 일을 저지르고 만다. <도플갱어>도 비슷한가. 거기서도 충동으로 사람을 죽이고 지진을 이용해서 그것을 묻으려 했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환야》에도 비슷한 게 나왔는데. 난 마지막에서 찾아달라는 사람이 지진이 일어난 걸 이용해서 다른 곳으로 달아난 건가 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봤다면 알아챘을지도 모를 텐데. 누군가의 마음을. 왜 이런 생각을 했느냐 하면 두번째 이야기는 앞에서 알아채서다. 하지만 세번째 이야기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구나.

 

 자신의 식구를 지키려고 사람을 죽이고 그것을 숨기고 살면 괴롭겠지. 죗값이라도 치렀다면 괜찮았을 텐데, 그것을 하지 못한 건 식구 때문이었을까. 스기무라 사부로가 나오는 이야긴데 지금까지 본 미야베 미유키 다른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다. 부모가 감당할 수 없는 아이가 나오는 소설, 여기에도 그런 게 나와설지도. 부모가 아이를 더 사랑한다 해도 어딘가 이상한 아이는 그대롤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 아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을 것 같기도 한데, 부모는 그렇게 하는 거 힘들지도. 어떻게 저런 애가 자기한테서 나왔을까 해서. 여기 나오는 일은 큰일이라면 큰일일 수도 있고 우리 둘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같기도 하다. 스기무라 사부로는 앞으로도 그런 일을 맡아서 하겠지. 스기무라는 안타까운 일을 겪은 사람이 마음 쓰여도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건 가까운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 말을 스기무라가 잘 들어주면 괜찮겠다.

 

 

 

희선

 

 

 

 

☆―

 

 “할아버지는 나한테 왜 물건을 훔쳤냐고 묻지 않았어요. 그런 건 알고 있다면서.”

 

 ─미키오, 어쩐지 짜증이 나서 그랬지?

 

 “바로 조금 전까지는 그럴 생각이 하나도 없었는데 정신이 들어보면 나쁜 짓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고 했어요. 그런 거, 할아버지는 안다고.”

 

 ─하지만 다시는 하지 마라. 아무리 짜증이 나도, 해서 안 되는 일은 절대로 해서 안 돼. 너만 한 나이일 때 그런 걸 제대로 배워둬야 하는 거란다.

 

 “그러지 않으면 터무니없는 것에 씌어서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르게 된다, 고.”  (<희망장>에서, 204~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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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세상은 조금씩 어둠에 물들었다

땅에서 하나 둘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하늘에서도 하나 둘 별이 반짝였다

 

반, 짝, 반, 짝,

 

“오늘 하루 잘 지냈어요

좋은 꿈 꾸세요”

 

귀를 기울이면

별이 속삭일 듯하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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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09 2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리뷰말고 올리시는 글들 희선 님의 자작글들 인가요??
혹시 시인?? 이 시가 서정성이 가득차있어서 궁금해요^^

희선 2017-12-09 23:31   좋아요 1 | URL
잘 쓰고 싶은 마음은 많지만, 잘 못 써서 아쉬운데 이런 말씀을 해주시니 기분 좋네요 제가 썼어요 고맙습니다


희선

munsun09 2017-12-09 23:34   좋아요 1 | URL
부럽습니다. 제가 보기보다 정적인 글을^^좋아하는데
읽을 때마다 잔잔하니 좋아요. 꼭 희선님 맘에 차는 좋은 글 쓰시길 바랄게요^^

희선 2017-12-10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일 글쓰기, 그런 책을 보고 저도 백일 쓰면 글 쓰는 버릇이 들까 해서 쓰는데 쓸 게 바로 떠오르지 않기도 합니다 잘 쓰지 못해도 쓰는 게 좋겠지요


희선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는 음식점이 있었다. 그전에는 뭐가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었던가. 건물이 없을 때도 있었을 텐데. 건물을 지을 때 어땠는지 모르겠다. 가까운 곳인데도 잘 모르는구나. 오래전 일이어서 그렇겠다.

 

 음식점이 되고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늦은 밤까지 하기만 했는데, 다른 음식점으로 바뀌고는 음악을 크게 틀어두었다. 그 가게를 지날 때 보니 바깥에 달린 스피커가 우리 집 쪽을 보았다. 새로운 가게로 바뀐 날도 하루 내내 음악을 크게 틀었다. 음식점 안에 음악을 크게 들어두는 건 상관없지만 바깥에 들리게 하는 건 좀 이상한 거 아닌가. 지났지만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음악소리 때문에 괴로워서 가게에 말해서 소리 좀 줄여달라고 했다. 그 말 했을 때는 소리를 줄였지만 다시 크게 튼 적도 있다.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사는 곳에 사람이 많이 다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렇게 많이 다니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 곳은 음식점 하기에 안 좋을 텐데. 그래서 오래 하지 못한 건 아닌지. 지난해에는 그곳에 불이 났다. 그때 그 가게는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불이 나다니. 혹시 누군가 들어가서 뭔가 했던 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큰불로 번지지 않아 다행이다. 그곳하고 우리 집은 가깝다.

 

 불이 나고 오랫동안 건물은 잠겨 있었는데, 며칠전에 바깥에서 공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땅이 팔린 건지, 땅주인이 다른 걸 지으려는 건지. 만약 건물을 짓는다면 음식점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 음식점 해도 상관없구나. 음악 크게 트는 가게만 아니면 괜찮다. 집에서 나가 오른쪽으로 가면 세차장이 있는데 가끔 거기에서 음악을 크게 튼다. 음악 좋아해도 바깥에서 들리는 음악은 시끄러운 소리일 뿐이다.

 

 이제 건물 부수는데 벌써 걱정하는구나. 앞으로 건물 짓는다면 한동안 시끄럽겠다. 가게보다 집을 지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이 둘레 조용했다. 지금도 그렇게 시끄러운 건 아니다. 지난 봄, 여름에 멀지 않은 곳에서 공사해서 좀 시끄러웠지만. 새 건물이 들어서도 시끄러운 곳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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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의 운동화
김숨 지음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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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말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책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처음에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김숨 소설은 이번이 세번째예요. 이 책이 아닌 다른 책을 먼저 봐서 다행입니다. 제가 만약 김숨 소설에서 이것을 가장 처음 봤다면 다른 두권은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이 책 좀 어려웠습니다. L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이야기지만 그것만 말하지 않더군요. 이런 생각도 잠깐 했습니다. 운동화 꼭 복원해야 해, 그 운동화로 뭐 하려고, 하는 생각입니다. L의 운동화는 그때(1980년대) 많이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이 신었습니다. L의 운동화는 많은 운동화에서 하나지만 L이 신었기에 뜻이 있겠지요. 한켤레도 아니고 한짝이지만. 신발 한짝은 어쩐지 쓸쓸해 보입니다. 두짝이 한결레여서 그렇겠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신발 한짝 잃어버린 적 있어요. 남은 한짝은 어떻게 됐는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무서운 어른이 나타나서 저는 밭인가 논인가에서 달아났어요. 그렇게 하다 신발 한짝이 벗겨졌는데 다시 신지 못하고 그대로 뛰었습니다. 큰 잘못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어른이 크게 소리쳐서 그게 무서웠나 봅니다. 어릴 때는 그럴 수도 있지요. 꿈도 꿨습니다. 신발을 잃어버린 건 아니고 어딘가에서 나가려고 신발을 찾아도 보이지 않더군요. 사람이 많은 곳에 있기 싫어서 그런 건지 신발을 잃어버린 건 아니니 안 좋은 꿈은 아니겠지요. 그 꿈꾸고 안 좋은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 그 꿈을 꿨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데. 신발하고 상관있는 꿈을 꾼 적 있다니 조금 신기하네요. 그런 말을 여기에서 채 관장이 L 운동화를 복원하는 ‘나’한테 물어봅니다. 채 관장은 죽은 새를 외투 주머니에 넣어둔 걸 까맣게 잊었다가 시간이 흐른 다음에 그 외투를 다시 입을 때 떠올리고 외투 주머니를 보니 죽은 새는 없었다더군요. 이건 알 것 같아요. 아무리 기억력 좋은 사람이라도 자신이 한 일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채 관장도 자신이 한 일 잊어버린 거겠지요.

 

 아주 엄청난 일이라 해도 시간이 흐르고, 살다보면 희미해집니다. L(이한열)이나 한국에 있었던 일도 그렇겠지요. L이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죽은 일은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더군요. 저도 예전에 그 사진 봤습니다. 우연히 그런 사진을 보다니. 그뿐이었습니다. 다른 걸 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는 6월 항쟁뿐 아니라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 그리고 4.3 사건, 5.18,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도 잠깐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질 일. 피해자는 아직도 그때에 머물러 있을 텐데요. 시간이 흘러도 제대로 정리해야 할 텐데. 흐지부지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독일은 1940년에 나치 친위대에 지원하고 1942년부터 1944년까지 폴란드 아우슈비츠 경비원으로 일한 오스카 그로닝을 93세에 법정에 세웁니다(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나오는군요). 시간이 흘러도 죄, 잘못은 사라지지 않지요.

 

 여기에서 역사만 이야기 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개인을 말하기도 합니다. 똑같은 물건이라 해도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 쓰면 그건 아주 다른 게 됩니다. 같은 물건도 쓰는 사람에 따라 닳는 모습이 다르기도 하지요. L의 운동화를 복원하려는 ‘나’는 예전에 동양화 복원을 하다 일을 그만두고 다시 나타난 이소연을 보고 그동안 이소연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이건 ‘나’만 그런 건 아니예요. L의 운동화를 복원한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서른해 가까이 L을 잊고 살았다고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와 이소연이 친한 건 아니었지만 조금은 생각해도 괜찮았겠지요. 이걸 보고 저는 잊고 사는 사람 없을까 생각해 봤는데, 워낙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상대가 저를 잊고 살 것 같고, 다들 저보다는 잘 살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나’는 자신도 모르게 이소연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진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나’는 좀 괜찮아졌지만 이소연은 여전히 손이 마비됩니다. 자폐증 발달장애 2급 아들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소연은 아들한테 신발을 짝짝이로 신기고 걷게 한 날 일을 오래 잊지 못했습니다. 이소연이 아들과 함께 살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지금까지 저는 잘 몰랐습니다. 조선시대 그림이나 그때 것이 옛날 그대로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흐르면 이상이 생길 텐데. 그런 것을 복원하는 사람이 있어서 옛날 미술품을 복원하고 보관한 거였습니다. 지금보다 시간이 더 흐르면 또 해야겠지요. 복원은 지금보다 100년, 200년 뒤를 생각하고 한답니다. 복원하는 것에는 역사에 남는 것도 있지만, 개인한테 중요한 것도 있더군요. 한 나라 역사뿐 아닐 개인의 역사도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다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 같습니다.

 

 

 

희선

 

 

 

 

☆―

 

 오래오래 살겠다고 다짐하는 한 어머니를 보았다. 죽은 자식을 오래오래 기억하려고, 자신이 죽으면, 죽은 자식을 기억해 줄 이가 아무도 없을 것 같아서.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죽은 자식이 무척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104쪽)

 

 

 “나는 역사를 기억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억은 뚜렷한 매개물로 형성되고 유지되는데, L의 운동화 같은 물건이 그 매개물이 아닌가 싶어요.”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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