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듐 걸스 - 빛나는 여인들의 어두운 이야기
케이트 모어 지음, 이지민 옮김 / 사일런스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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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보았다. 라듐 이야기. 방송에서 본 건 라듐이 들어간 페인트로 시계 숫자판을 칠하는 것과 라듐이 들어간 건강 식품을 마시는 모습이었다. 라듐이 어떤 건지 난 잘 모른다. 라듐은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가 1898년 12월에 찾아냈다. 마리 퀴리는 이것을 아주 좋게 여기고 자꾸 보다가 병으로 죽는다. 피에르 퀴리는 어땠을까. 자연에는 방사능 물질이 조금 있다고 한다. 아주 조금은 사람한테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아주아주 많으면 안 좋다. 암이 많이 생긴다는 것만 아는데, DNA가 무너진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아주 많은 방사능에 드러난 사람은 살 수 없다. 피는 멈추지 않고 자꾸 나온다. 소설에서 그런 거 봤던가. 아니 이건 소설에만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났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방사능이 사고로만 흘러나오는 건 아니다. 방사능 물질을 연구하거나 그걸 다루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괜찮지 않다. 라듐은 1901년에 벌써 위험하다고 했다. 그래도 그걸 어딘가에 이용할 수 없을까 여긴 사람이 많았다. 위험하지만 도움되는 일도 있겠지 한 건가. 라듐이 위험하다는 말은 잘 알려지지 않고 만병통치약으로 퍼지기도 했다. 어떤 것에든 라듐을 넣었다고 한다. 실제 넣은 건 적었겠지. 어쩌다가 그렇게 됐을까.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에 라듐 루미너스 머티리얼스 코퍼레이션 사장 사빈 폰 소쵸키는 야광 페인트를 발명했다. 의료 연구비를 마련하려고 했던 건데 돈이 되자 회사를 만들었다. 야광 페인트는 시계 숫자판에 칠하고 항공 계기판에 칠했다. 제1차 세계전쟁이 일어나고는 더 많이 있어야 했다. 시계 숫자판을 칠한 건 여자아이들이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조금 있었지만 거의 십대였다. 러시아에서는 여자아이들이 전쟁에 나갔다는 게 생각났다. 제2차 세계전쟁에 더 많이 나갔겠지만.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 오렌지에서 일한 사람에는 이민자가 많았다. 일리노이주 오타와는 시골이다. 그런 곳에 공장이 들어서면 일할 곳이 생겼다고 여기겠지. 많은 사람이 거기에서 일하고 싶어했다. 돈을 많이 주기도 했으니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더 많은 사람이 일했다.

 

 시계 숫자판은 낙타털로 만든 얇은 붓으로 칠했다. 유럽에서는 하지 않는 립 포인팅(붓을 입에 넣고 붓끝을 뾰족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일하는 사람은 그게 어쩐지 걱정됐지만 회사쪽 사람은 괜찮다고 했다. 사장인 폰 소쵸키는 붓을 입에 넣는 사람을 보고 그렇게 하지 마라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폰 소쵸키는 손가락 하나 끝을 잘라냈다. 그건 라듐 때문이다. 여자아이들은 라듐을 얼굴에 칠하고 놀기도 했다. 일하는 곳에서 손도 씻지 않고 점심을 먹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해서였다. 안전을 생각하지 않은 이런 일은 한국에도 있었다. 내가 그걸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반도체 회사던가. 그런 데서 일하다 백혈병이나 암에 걸린 사람 많았다. 1920년대도 아닌 1980년대 1990년대 일어난 일이던가. 아니 2000년대에도 이어진 듯하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도 건강이 안 좋고 그 둘레에 사는 사람도 다르지 않겠다. 돈보다 먼저 사람을 생각해야 할 텐데, 산업혁명 뒤 사람은 쓰고 바꿀 수 있는 부품처럼 되었다. 라듐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자리가 비면 바로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일리노이주 오렌지에 있던 라듐 루미너스 머티리얼스 코퍼레이션(나중에는 유나이티드 라듐 코퍼레이션 USRC가 된다)에서는 라듐이 비싸서 붓을 씻을 물도 없애고 물통에 가라앉은 걸 또 쓰게 하고 머리나 몸에 묻은 라듐을 털어서 쓰기도 했다. 오타와에 생긴 라듐 다이얼사에서는 라듐을 마음대로 쓰게 했다. 비싸서 아끼게 하는 거나 마음대로 쓰게 하는 거나 위험하다. 라듐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여자아이들이 다니면 빛났다. 밤에는 그 모습이 유령처럼 보였다. 지금이라고 방사능 물질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그때는 그걸 신기하고 재미있게 여겼겠다. 만병통치약이라는 말까지 있었으니 위험하다 생각하지 못했겠다. 하지만 얼마 뒤부터 아픈 사람이 나타났다. 이가 아프고 팔이나 다리 여기저기가 아팠다. 치과에 가서 이를 빼도 그 자리가 낫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왜 그런지 몰랐다. 그런 일이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매독이나 세균에 감염돼서 죽었다고 여겼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야 방사성 물질 중독이라는 걸 알게 된다. 바로 라듐. 라듐을 다루는 사람은 그냥 만지지 않고 안전장치를 해야 했다. 야광 페인트에 들어가는 라듐은 아주 적어서 괜찮다고 생각한 것 같다. 여자아이들 몸에는 그게 쌓였다. 라듐에서 나오는 알파선은 해가 없다고 여겼는데 몸속에서는 달랐다. 라듐은 뼈에 침투해 알파선을 끝없이 내 보내고 뼈에 구멍을 내고 뼈를 무너뜨렸다. 시계 숫자판을 칠한 여자들은 이가 다 빠지고 턱뼈가 빠지고 다리 길이가 짧아지고 척추뼈가 부서졌다. 그걸 알고 회사(USRC)를 고소하니 회사는 잘못이 없다고 한다. 공소시효도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다른 지역 일리노이주 오타와에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정보가 아주 천천히 전해지거나 전해지지 않기도 했다. 오타와 라듐 다이얼에서는 여자들 건강검진을 하고 결과는 알려주지 않고 모두 건강하다고 했다. 그걸 믿게 한 의사가 있다. 플린 박사다. 플린 박사는 의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그런 사람을 그대로 두다니. 플린이 라듐이 위험하다는 걸 몰랐을까. 아니다 알았다. 그런데도 거짓말을 하다니. 뉴어크에서 소송이 일어나고 다음에는 일리노이주 오타와에서 일어난다.

 

 병원비도 많이 들고 방사능 중독은 고칠 방법도 없었다. 그런데도 여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싸운다. 그 싸움을 함께 한 변호사는 그리 많지 않다. 아주 없는 건 아니어서 다행인가. 뉴어크에서 싸운 변호사는 끝까지 못했다. 오타와에서 싸운 변호사는 잘했다. 그런 일이 있어서 제2차 세계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달라졌다. 시계 숫자판을 칠한 사람에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있고 아이를 바랐지만 끝내 갖지 못한 사람도 있다. 아이 낳았다는 말 보고 아이 낳으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일과는 조금 다르지만 1970년대에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사람이 생각났다. 그때는 일하는 곳에 창이나 환기장치가 없어서 병이 생기고 죽기도 했다. 지금은 예전보다 일하는 곳이 달라졌겠지만 여전히 회사는 사람보다 돈을 더 생각하겠지. 언제쯤 사람을 더 생각할까. 그런 날은 올지. 오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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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불꽃튀는 만남도 있지만

천천히 스며드는 만남도 있어요

무엇이 더 좋다 말할 수 없지만

전 천천히 스며드는 게 더 좋아요

어쩐지 오래 갈 것 같잖아요

 

아니

사람 사이란 아주 작은 차이로

돌아설 수도 있군요

돌아서면 돌아서는대로 두어야겠어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천천히 조금씩 알아가면 괜찮겠지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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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고 사람은 오래 살게 되었다. 이런 말을 들어서 나도 썼는데, 예전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겠지.

 

 먼저 사람은 생각하고 연장을 쓴다. 아주 옛날에는 간단한 연장을 써서 먹고 살았다. 그때는 사람이 병으로 일찍 죽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동물한테 공격받고 죽은 사람도 많을 거다. 지금은 그런 일이 별로 없다. 사나운 동물이 얼마 남지 않아서기도 하고 사람이 쉽게 잡을 수 있어서기도 하다. 지금이라고 동물 때문에 죽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구나.

 

 여러 가지 기계(연장)를 만들고 사람이 해야 하는 힘든 일을 기계가 하게 되었다. 그것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은 위험하고 힘든 일을 덜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래 살기도 하겠지. 이제는 병을 낫게 하는 의술이나 약도 많다. 여전히 고칠 수 없는 병도 있지만.

 

 오래 살아도 늘 아픈 사람도 있을 거다. 아프지 않고 살면 참 좋을 텐데. 그러려면 건강할 때 자기 몸을 잘 돌봐야 한다. 지금 건강하다고 몸을 함부로 다루면 시간이 흐른 뒤에 아주 안 좋을 거다. 나도 그걸 알지만 달리 하는 건 없다. 가벼운 운동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것도 즐겁게 해야 한다.

 

 나이를 아주 많이 먹고 달리 하는 거 없이 하루하루 지내는 것도 괜찮다. 그때는 세상을 좀더 천천히 바라볼까. 지금도 난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많고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나 하지만 책을 읽는다. 책을 읽기만 해도 좋을 것 같지만 쓰기도 한다. 어쩐지 이건 오래오래 할 것 같다. 나이를 더 먹으면 책을 조금 쉽게 볼까 싶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모르는 게 많을 것 같다.

 

 난 지금보다 나이를 많이 먹어도 책을 읽고 시간을 보낼 테지만, 다른 걸 하고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 나이를 많이 먹었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게 없는 것보다 하나라도 있는 게 낫겠지. 자신이 좋아하는 거 놓지 않기를.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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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언제나 한자리에서 기다린다

사람을

새를

나비와 벌을

바람을……

 

나무는 언제나

사람이 하는 이야기

새가 하는 이야기

나비와 벌이 하는 이야기

그리고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나무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알까

 

늘 한자리에서 기다리고

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나무는 마음이 넓고 깊구나

 

나도 나무를 닮고 싶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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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9-01-27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닮고 싶어요~~그래서 늘 나무를 닉넴으로 달고 살아요^^

희선 2019-01-27 23:24   좋아요 0 | URL
나무 좋지요 언제든... 저는 전자편지 보낼 때 쓰는 게 나무예요 예전에는 가끔 쓰기도 했는데 지금은 거의 안 쓰는군요 그래도 편지는 여전히 써서 다행입니다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희선
 
일본 도자기 여행 : 규슈 7대 조선 가마 편 일본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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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그릇으로 쓰는 것에는 어떤 게 많을까. 그것도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스테인레스나 유리로 만든 게 많지 않을까. 잘사는 집은 도자기 그릇을 쓸지. 어쩐지 그건 부잣집에서 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도자기는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도자기 그릇이어서 아주 비싼 것도 있겠지만 많이 만드는 건 비싸지 않을 것 같다. 예전에 한국에서는 놋쇠도 많이 썼다. 도자기 그릇을 아주 쓰지 않은 건 아닐 거다. 항아리는 한국에서 많은 사람이 썼지만 지금은 별로 안 쓸 것 같다. 냉장고 때문에. 그래도 여전히 장 담그는 곳에서는 항아리 쓰겠지. 항아리에 물을 담아도 괜찮을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다니. 도자기 만드는 사람이 나오는 소설도 있겠지만, 도자기와는 조금 다르면서도 비슷한 항아리를 생각하면 황순원 소설 <독 짓는 늙은이>가 떠오른다. 백자, 청자 구울 때 사람이 가마에 들어가는 이야기 있던가. 예전에 그런 거 본 것 같기도 하다.

 

 일본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일으키고 그때 아주 많은 조선 사기장을 끌고 갔다. 조선은 그걸 막지 못하다니. 그냥 어쩔 수 없다 여긴 걸까. 그때 일본은 전국시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 뒤에 명에 쳐들어가려고 조선을 지나가겠다고 한다. 조선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자 조선에 쳐들어오고 많은 사람을 죽였다. 정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과 명을 다 차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까. 명을 넘어서까지 차지하려고 했던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그때 생각이 나중에 러일전쟁 청일전쟁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이 섬나라여서 늘 넓은 땅을 바라는 것일지도. 이제는 어느 나라든 멋대로 쳐들어갈 수 없다. 이건 다행이다 싶다. 힘으로 땅을 빼앗는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다. 지금은 다른 건가. 문화, 기술, 산업(예술도 넣어야겠구나). 도자기도 거기에 들어가겠다.

 

 조선에서는 도공을 잘 대우하지 않았다. 조선은 유교 사회로 계급이 있었다. 양반이 가장 위고 기술을 가진 사람을 가장 낮게 여겼던가. 조선시대에 도공을 잘 대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일본으로 가지 않았을지도 모를 텐데. 억지로 끌려간 사람이 훨씬 많겠지. 그때 사람은 그것을 제대로 적지 않고 사기장이 길을 알려주거나 스스로 일본으로 갔다고 했다. 사기장 정보를 장군한테 말한 사람도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으로 싸우러 간 장군한테 사기장을 끌고 오라고 했을까. 아니면 그때 다도가 널리 퍼져서 조선에 온 장군이 사기장을 일본으로 데리고 가면 괜찮겠다고 여겼을까. 도요토미 히데요시한테 잘 보이려고 한 사람도 있었겠지. 사기장뿐 아니라 양민도 끌고 갔단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그저 일본이 조선에 쳐들어온 걸로만 생각한 적도 있다. 학교 다닐 때 사기장 이야기 못 들어본 것 같다. 그때 내가 못 들은 것일 뿐일지도.

 

 일본에 조선 사기장을 끌고 가고 잘 해주기는 했지만 달아나지 못하게 험한 곳에 살게 했다. 여기에서 가마나 가마터에 가는 방법도 말하는데 거의 가기 힘들다. 지금도 가기 힘들다니, 옛날에는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일본 사람의 차별도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갔을 때 번주는 그걸 숨겼다. 조선으로 돌아오고 싶어한 사람도 있었는데. 조선에 오기보다 일본에 있는 게 낫다 여긴 사람도 많았다. 조선 사기장을 일본으로 끌고 가서 일본은 도자기를 아주 많이 만들고 수출도 하게 된다. 일본은 도자기를 생활에 많이 쓴다. 아리타 도자기. 조선 후기에는 일본 도자기가 조선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어쩌다 그런 일이. 전국시대에 일본 다도를 정립한 센노 리큐는 조선 막사발을 좋게 보았다. 일본에는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이 얼마 없고 그리 잘 하지 못했다. 조선 사기장이 일본에 가서 일본 도자기 문화를 꽃피웠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삼평이나 백파선은 일본 백자를 만들었다. 이름이 남은 사람도 있지만 이름이 없고 일본 이름으로 고친 사람도 있다. 시간이 흐르고 조선 사람이다 말하는 게 힘들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조선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거겠지. 그렇다 해도 그건 일본 도자기다. 조선 사기장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 거겠지만. 여기에서는 도자기가 메이지 유신에 도움을 줬다고 한다. 그 말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도자기를 다른 나라에 팔고 무기를 사고 메이지 유신을 일으켰다고. 하지만 메이지 시대가 오고는 도자기 굽는 가마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메이지 유신을 일으켰지만 그 뒤는 그리 좋지 않았구나. 그때 절도 많이 없앴다고 들었다.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어서 되돌릴 수 없다. 아쉽지만 그런 일이 또 일어나게 하면 안 된다. 조선시대 사기장이 그대로 있었다면 우리나라 도자기도 많이 달랐을 텐데.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나라에서 도자기에 관심을 갖고 마음을 쓰면 좋겠다. 그러고 있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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