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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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살면서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을 텐데 만나지 못하다니. 어쩌면 나도 모르게 스쳐지나간 적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텔레비전 방송 같은 데서도 한두번 정도밖에 못 보았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뿐 아니라 몸이 편하지 않은 사람을 길에서 본 적은 별로 없다. 한국은 장애인이 살기 어려운 곳이고 바깥에 잘 내보내지 않는다고도 하던데. 학교 다닐 때 몸이 안 좋은 아이를 하나 본 적 있다. 소아마비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한쪽 다리와 한쪽 팔을 잘 못 썼다. 그랬지만 그 아이는 아무렇지 않았다. 비장애인은 몸이 편하지 않거나 말을 어눌하게 하면 머리도 안 좋다 여긴다. 나도 그런 생각 아주 안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도 말하는 걸 배우기도 하지만 귀가 들리는 사람하고 다르게 말한다. 들리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말을 잘 못한다고 머리가 안 좋은 건 아니다. 갑자기 내가 말을 안 해서 말을 못한다거나 무언가를 잘 몰라서 귀가 안 들리느냐는 말 들은 게 생각난다. 정말이지 이 세상은 잘 모르거나 조금 느리면 모자라게 생각한다.

 

 예전에 한번은 정신이 이상한 척할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이것저것 하기 싫어서. 그러지 않았다 해도 지금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구나. 비장애인도 무언가를 잘 못 알아들으면 업신여기기도 하는데 장애인한테는 얼마나 더할까 싶다. 그래서 밖에 잘 다니지 않는지도.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귀가 들리지 않는 것뿐이지 다른 건 다 비장애인과 똑같다. 몸이 편하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구나.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귀가 들리는 사람과는 다른 말을 쓴다. 이 부분은 귀가 들리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점자를 쓰지만. 그것 또한 알기 어려운 거구나. 수화도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 문화다 생각하면 괜찮겠다. 그걸 다른 사람이 배우기는 어렵겠지만.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런 걸 배울 수 있는 곳이 아주 없지 않기는 하겠다. 얼마 안 되는 사람만 배우겠지만. 내가 사는 곳에 수화 가르친다는 곳 있었는데, 거기는 교회였다. 그것만 알고 배워본 적은 없다. 들리는 사람이 글로 말하는 것과 들리지 않는 사람이 글로 말하는 건 조금 다르겠지.

 

 귀가 들리지 않는 부부가 아이를 낳는다고 아이도 귀가 들리지 않는 건 아니다. 부모와 똑같이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를 낳을 수도 있지만 귀가 들리는 아이를 낳기도 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부모 사이에서 난 귀가 들리는 사람을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라고 하는가 보다. 그런 사람은 한국에도 있겠지. 언젠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그런 사람 본 적 있다. 귀가 들리지 않는 부부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들렸다. 아기를 돌볼 때 다른 사람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여기 나오는 아라이 나오토가 바로 코다다. 아라이는 어렸을 때 부모와 형과 자신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자라면서 부모와 형과 조금씩 멀어졌다. 아라이는 들리는 아이여서 부모가 자신보다 귀가 들리지 않는 형을 더 걱정하고 사랑한다 여겼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과 멀어졌던 아라이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수화통역사를 하기로 한다.

 

 일본은 수화가 한가지가 아니고 두가지인가 보다. 그것도 배워야 할 수 있지 그것도 배우지 못하고 집에서 식구만 아는 손짓 같은 것만 아는 사람도 있었다. 장애인도 배울 권리가 있다. 인권은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하지만 장애인이라고 그게 없는 건 아니다. 장애인뿐 아니라 이런저런 사람한테도. 난 장애인도 동성애자도 아니지만 어쩐지 난 많은 사람쪽보다 얼마 안 되는 사람쪽에 들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얼마 안 되는 사람 느낌이 어떤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귀가 들리지 않는 부모 사이에서 난 귀가 들리는 코다 마음도. 코다는 귀가 들리는 사람이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고 여긴다. 그건 비장애인이 그렇게 보는 걸까. 아라이는 그것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아라이는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한테 통역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 주는 도움도 있지만, 죄를 지었을 때도 수화통역사가 있어야 한다. 아라이는 부모가 귀가 들리지 않아서 그런 사람이 쓰는 수화를 잘 알았다. 그 수화를 쓰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수화도 하나가 아니고 두가지면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도 서로 말을 알아듣기 어렵겠다.

 

 장애인 시설에서는 가끔 이런저런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여기에도 그런 일 때문에 시설 이사장이 죽임 당하고 열일곱해가 지나고는 그 시설 지금 이사장이 죽임 당했다. 열일곱해 전 시설 이사장과 지금 이사장은 부자 사이다. 어떤 일은 바로 알 수 있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사건보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더 말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만 말하는 건 아니겠구나.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과 비장애인을 잇는 건 코다겠다. 코다는 자신이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인지 귀가 들리는 사람인지 혼란스럽기도 하겠지만 둘을 다 알아서 더 좋지 않을까. 내가 그런 처지가 아니어서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누구든 말할 수 있다. 그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이 소설을 보고 생각한 게 하나 있다. 그건 작가가 수화를 잘 아는 사람이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을 알까 하는 거였다. 잠깐 그렇게 생각했다가 자료나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이런 소설을 쓴 건 아닐까 했다. 그 생각이 아주 틀리지 않았다. 작가와 가까운 데 장애인이 있어서 관심을 가졌지만. 소설은 혼자 쓰는 거지만 세상에 사람이 있기에 쓰는 것 같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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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티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미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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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수 없다고 하지만 죄를 저지른 사람 심판은 판사가 한다. 처음부터 그러는 건 아니구나. 사건이 일어나면 경찰이 범인을 잡은 다음 여러 절차를 밟고 재판이 열리던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잘 모르겠지만 재판이 열리기 전에 범인은 검사와 만날지도 모르겠다. 검사와 판사는 서류만 볼까. 그런 사람도 있고 서류를 보고 사건이 일어난 곳에 가 보는 사람도 있을 거다. 다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쓰는 사람이 없도록, 아쉽게도 그 반대도 있다. 진짜 범인이 맞는데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 거짓말 하는 사람 말이다.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믿지 않아야 할지 헷갈릴 듯하다. 경찰은 증거를 모으고 그게 가리키는 사람을 범인이라 여긴다. 하지만 증거가 다 옳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를 범인으로 만드는 증거도 있고 증거를 찾지 못하게도 한다. 그런 건 잘 알아봐야 하겠다.

 

 재판관이었던 가지마 이사오 옆집에 가지마 이사오가 마지막으로 무죄 판결을 내리고 풀려난 다케우치 신고가 이사온다. 다케우치 산고는 옆집에 사는 마토바 부부와 아이까지 죽였다는 용의자였다. 그때 가지마 이사오는 다케우치가 자기 몸에 상처를 낼 수 없다 여기고 누군가 다른 범인이 있다 여겼다. 다케우치가 마토바 부부와 아이를 죽였다는 증거가 없었다. 가지마 이사오 옆집에 이사 온 다케우치는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돌보는 가지마 이사오 아내 히로에와 친하게 지낸다. 다케우치가 히로에 마음에 들게 말을 한다. 히로에는 다케우치가 시어머니 간호를 도와주겠다고 하자 그것을 받아들인다. 다케우치는 가지마 집안 사람과 친하게 지내려 하고 여러 가지를 주기도 했다. 가지마 이사오 아들 도시로는 다케우치와 친하게 지냈지만 도시로 아내 유키미는 다케우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이 판결 내린 사람이 옆집에 살면 그리 편하지 않을 것 같다. 가지마 이사오가 예전에 다케우치한테 무죄 판결을 내린 건 증거가 없어서기도 했지만, 유죄 판결을 내리면 다케우치가 사형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지마 이사오는 사형을 내리는 걸 꺼렸다. 그런데 재판관이 되다니. 왜 그랬을까. 재판관이 되면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도 있지만 자신이 내린 판결의 무게도 견뎌야겠다. 가지마 이사오가 재판관을 그만둔 건 어머니가 아파서 모시려는 거였다. 하지만 가지마 이사오는 집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집안 일이나 자기 어머니 돌보기는 모두 아내 히로에한테 맡겼다. 히로에는 다케우치가 자기 마음을 잘 알아준다 여겼다. 지나치게 친절하면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그때 히로에는 다른 걸 생각하기 어려웠겠다. 시어머니가 치매기는 해도, 정신이 멀쩡할 때는 히로에를 조금 안 좋게 대했다. 히로에는 나름대로 한다고 여겼지만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 걸 아쉽게 생각했다. 시어머니가 자기 통장에 든 돈을 아주 조금 물려준다 했을 때는 기가 막혔다. 일부러 그런 것처럼 보였다. 자기 아들이나 딸만 좋게 여기고 며느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생각한 건 아닐지. 그런 시어머니는 한국에도 있겠다. 아들이 그렇게나 좋을까.

 

 가지마 집 옆집에 다케우치가 살게 되고는 가지마 집안에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시어머니가 죽고 아들 부부 도시로와 유키미 사이가 안 좋아진다. 유키미 앞에 죽임 당한 마토바 부부에서 아내 오빠 이케모토 부부가 나타나고 다케우치가 어떤지 말한다. 이케모토 부부는 유키미가 자기들 편이 되기를 바랐다. 책을 읽는 사람은 다 다케우치가 이상하다 여길까. 난 이상하다 생각했다. 유키미는 처음에는 믿지 않다가 믿었는데, 다케우치가 조금 비틀어서 말하니 그쪽으로 마음을 기울이기도 했다. 어떤 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니. 난 책을 봐서 그게 아닌데 하지만, 실제 그런 일이 있다면 잘못된 쪽이 맞다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세상에는 자신한테 좋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 그렇다 해도 시간이 흐르면 거짓말이 들통나겠다.

 

 자신이 한 판결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기는 어렵겠지. 가지마 이사오는 유키미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다케우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잘못했을지도 모른다 여긴다. 마지막에는 가지마 이사오가 재판을 받는다. 그걸 재미있다 해야 할까. 가지마 이사오는 재판관이 하는 말이 자기 마음과 다르다 여긴다. 다른 사람 마음을 다 알기는 어렵고 잘못 생각하는 일은 있다. 다케우치도 신사 같고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은 많이 뒤틀렸다. 그런 걸 어떻게 알아보나. 다케우치가 그렇게 된 건 어린시절 때문일까. 다케우치가 어렸을 때 다케우치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혼내는 사람이 있었다면 다르게 자랐을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다케우치는 자기 엄마와 살았다 해도 비뚤어졌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사람은 자라는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생각하지만, 그것과 상관없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아니 그렇다 해도 사랑은 힘이 있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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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JOR 2nd(メジャ-セカンド)(1) (少年サンデ-コミックス) (コミック)
滿田 拓也著 / 小學館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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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세컨드 1

미츠다 타쿠야

 

 

   

 

 

 

 몇해 전에 <메이저>라는 만화영화를 보았다. 메이저는 고로가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야구 하는 꿈을 갖고 그것을 이루는 이야기다. 고로가 메이저 리그에 가는 건 한참 뒤다. 고로 아버지도 야구 선수였다. 그래서 고로는 자연스럽게 야구를 좋아했다. 고로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미국에서 온 야구 선수 깁슨과 경기를 하다 깁슨이 던진 공에 머리를 맞는다. 단단한 것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면 아무렇지 않아도 병원에 가 봐야 한다. 머리를 세게 맞은 건 바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고로 아버지는 야구공에 머리를 맞고도 괜찮아서 병원에 가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에 쓰러지고 죽는다. 고로는 혼자가 됐는데, 그 뒤 고로는 아버지와 결혼하려던 유치원 선생님과 산다. 작가가 그렇게 그렸지만,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선뜻 아이를 기르겠다고 하다니, 대단하다. 엄마도 아버지도 없는 고로가 안됐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메워주어 다행이다. 고로를 기르던 엄마는 몇해 뒤에 고로 아버지 친구고 야구 선수인 시게노와 결혼한다. 그렇게 해서 고로 성은 혼다에서 시게노가 된다. 이젠 거의 나오지 않는 성 혼다지만. 그래도 고로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메이저 리그에 갔을 때도 고로를 혼다라고 한 친구가 있었다. 그건 고로와 결혼한 시미즈던가.

 

 고로는 초등학생 때 오른쪽 어깨를 다치고 야구를 그만둬야 하나 했다. 그때 새아버지 시게노가 고로한테 왼팔로 공을 던지라고 한다. 고로는 엄청나게 연습하고 왼팔로도 공을 잘 던지게 된다. 고로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힘들어도 즐겁게 야구를 한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가고 마이너부터 시작하고 메이저에도 올라간다. 많은 만화 속 시간은 잘 흐르지 않지만 <메이저>는 흐른다. 이런 만화도 괜찮지 않나 싶다. 아다치 미츠루도 부모와 자식 이야기를 그렸던가. <나루토>도 나이를 먹고 지금은 아들과 다음 세대가 주로 나오는 <보루토>가 한다. 보루토 조금 봤는데 나루토와는 다르게 뭐든 잘했다. 고로 아들 다이고는 어떨까.

 

 부모가 무척 대단하면 자식은 별로 빛을 보지 못하기도 한다. 부모한테 재능을 물려받은 사람은 다르겠지만. 부모와 자식이라고 같지는 않을 거다. 이건 부모와 자식뿐 아니라 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다이고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아빠 고로처럼 멋진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동네 야구 팀 돌핀스(엄마 아빠도 들어갔다)에 들어가지만 한해도 안 되고 그만두고 다른 운동도 오래 하지 않았다. 다이고는 자신이 아빠와 다르게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고로는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하는 재능이 보였다. 친아버지한테 잘 물려받은 건가. 다이고 아빠뿐 아니라 엄마도 야구랑 소프트볼을 했는데. 엄마 아빠가 가진 좋은 유전자는 모두 세살 많은 다이고 누나 이즈미가 물려받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즈미는 운동뿐 아니라 공부도 잘했다.

 

 다이고가 초등학교 1학년 때나 4학년 때 모습이 조금 나오는데, 지금 다이고는 초등학교 6학년이다. 운동뿐 아니라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게임만 하는. 게임을 아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이때 다이고 학교에 사토 토시야 아들 사토 히카루가 전학 온다. 토시야는 고로와 어릴 때 야구를 함께 하고 메이저 리그에서도 같은 팀에서 했다. 히카루도 2세다. 그런 히카루가 다이고를 찾아오고 야구 할 만한 곳을 묻는다. 얼마 뒤 다이고는 오랜만에 야구 경기에 나가게 된다. 히카루도 거기에 있었다. 히카루는 그날 처음으로 야구를 했는데 재능이 있었다. 히카루는 다이고를 보고 다이고가 야구를 아주 잘하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나 다이고를 비슷하게 여겼다. 다른 사람보다 다이고 자신이 자신한테 실망한 건 아닐까 싶다. 아빠는 아빠고 다이고는 다이곤데. 고로가 있었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 같은데. 고로는 아직도 야구 선수다. 일본이 아닌 대만에서 야구를 했다. 벌써 마흔두살이라니, 그 나이 듣고 조금 놀랐다.

 

 고로가 나온 <메이저>는 만화책은 못 보고 만화영화만 봤다. 몇달 전에 두번째가 나왔다는 거 알고 만화책 볼까 말까 하다가 보기로 했다. 다이고도 나중에 메이저 리그에서 야구 할까. 벌써 이런 생각을. 고로는 아주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였는데, 다이고는 어깨가 약하다. 야구공은 어깨로만 던지지 않고 온몸으로 던진다는 말을 봤는데. 다이고는 그걸 배우지 않아서 더 못하는 건 아닐까. 이제 초등학생이니 앞으로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 다이고 아빠 고로가 대단한 야구 선수가 아니었다면 평범한 자신을 더 빨리 받아들였을까. 난 잘하지 못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걸 즐겁게 하는 거 좋다고 생각한다. 고로도 야구 좋아하고 그것밖에 모르지만. 다이고는 다이고만의 야구를 하기를 바란다. 앞으로 그런 모습 볼 수 있겠지. 히카루가 나타나서 잘됐다. 히카루는 다이고가 야구를 잘하거나 못하는 것보다 야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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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로 살고 있니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숨 지음, 임수진 그림 / 마음산책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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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으로 사는 건 어떤 걸까. 이 책 제목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무언가에 끌려가지 않고 자기 마음이 가는대로 사는 것이라는 말도 떠오르는데 이건 어떨까. 내가 생각하는 것과 이 책에서 말하는 건 다른 것 같아. 이 책 우연히 알았을 때는 따스한 이야기가 아닐까 했는데 읽어보니 다르군. 그렇다고 차갑거나 어둡다고 말하기도 어려워. 어딘가에는 이런 사람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이런 사람은 식물인간이 되고 열한해 동안 산 사람인지, 연극를 하다 그것을 그만두고 식물인간 여자를 돌보는 사람일지. 그밖에도 여러 사람이 나오는군. 암으로 아프거나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지금 생각하니 아픈 사람 이야기가 많네. 병원이어서 그럴 수밖에 없겠어.

 

 가끔 오랫동안 잠들었다 깨어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지. 그런 것을 실제 본 적은 없고 드라마에서 봤어. 소중한 사람이 식물인간이 되어도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람을 돌보는 데 지치는 사람도 있겠지. 누군가한테 아픈 사람을 맡겨도 그 사람이 그만 세상을 떠났으면 하는 사람도 있더군.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엄마가 언니를 돌보다 아프고 세상을 떠나서였어. 열한해 동안 식물인간인 여자 동생이 그랬어. 식물인간 여자한테는 지금 열여섯살인 아들이 있지만 아들은 큰아버지와 캐나다에 산대. 식물인간이어서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아들이 여자를 찾아오지 않는 게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될 텐데. 식물인간인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 영혼은 식물인간이 되기 전으로 돌아갈까. 식물인간이 된 때 일도 다 알까. 별거 다 생각했지.

 

 식물인간인 사람은 정말 자기 생각이 없을까, 없겠지. 그 사람을 돌보게 된 ‘나’는 연극배우였어. ‘나’는 무대에서 쓰러지고 연극을 그만두었어. 그런데 갑자기 식물인간인 여자 돌보기를 하다니. ‘나’는 식물인간 여자를 보고 자신과 같다고 느끼기도 해. 왜 그런 생각을 한 걸까. 배우는 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잖아. 그것 때문에 ‘나’는 늘 ‘나’로 살지 못했다 생각했을지. 식물인간 여자와 ‘나’가 자신을 같게 생각한 건 연극을 하다 쓰러져서일지도. 두 사람은 나이도 같았어. ‘나’는 식물인간인 여자를 알고 싶어하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겠지. 식물인간 여자 남편은 아내를 요양병원으로 보낸다고 해. 열한해가 지나고 그렇게 보내다니. ‘나’는 여자를 요양병원에 보내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무 사이도 아닌 ‘나’가 바란다고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 식물인간 여자가 갑자기 깨어나는 기적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그건 그것대로 괜찮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겠어.

 

 책 제목 ‘너는 너로 살고 있니’는 무슨 뜻으로 지은 걸까. 어딘가 아픈 사람은 자신으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건 아닌가. 그것보다 사람은 바뀔 수도 있다인가. 자신은 언제나 자신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바뀌기도 하잖아. 사람은 누군가한테 영향을 주고받아. 나라는 건 한 사람일지라도 다른 사람이 없으면 나도 없는 거 아닐까. 그러면 남과 함께 사는가를 묻는 걸까. 사람이 혼자 산다 해도 혼자 힘으로 살 수는 없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이게 아니면 어떤가 싶어. 책을 보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좋은 거지. 아픈 사람이 나와서 조금 우울해 보이기도 하지만, 책을 볼 때는 그런 느낌이 덜해. 이상하군. 이런 생각은 책을 보고 쓸 때 들기도 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들어. 여기 나오는 사람은 자신이 맡은 역을 잘 해 내는 배우인가 싶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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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둑투둑투둑투둑

땅으로

나뭇잎으로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마른 세상을 적시고

버석버석 버석버석

마른 마음도 적신다

 

투둑투둑투둑투둑

듣고 있으면 눈이 감기는

비가 부르는 자장가

잠 못 자는 아기도 재울까

 

때로

투둑투둑투둑투둑

내리는 비는 땅을 두드려

씨앗을 깨운다

 

 

 

*어쩐지 봄비같은 느낌, 봄에 썼으니 그럴 수밖에……

 

 

 

 

 

 

 

여름이 오면 생각하는 것

 

 

 

 

 

 저는 비를 좋아하지 않아요. 이런 말을 비가 들으면 슬퍼할까요. 비 오는 건 싫어도 세상에 비가 오지 않으면 큰일이겠지요. 지구에 사는 모든 것은 물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사람 몸에도 물이 가장 많군요.

 

 꼭 여름이 아니더라도 비가 많이 온다고 하면 걱정스러워요. 제가 사는 곳에도 엄청 쏟아질까 봐. 예전에는 여기는 비가 아주 많이 오지 않겠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2012년 8월 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비는 어디에든 많이 쏟아질 수 있습니다.

 

 비는 장마철에만 많이 오지 않지요. 몇해 전부터는 장마가 끝난 팔월에도 비가 많이 내리게 됐습니다. 가을 장마라는 말도 하지만 팔월은 아직 가을이 아니군요. 구월, 시월에도 비가 많이 내리기도 합니다. 한국은 아니지만, 몇해전 미국에는 겨울에 비가 엄청나게 내려서 홍수가 났지요. 허클베리핀이 생각나는 미시시피강이 넘쳤어요.

 

 시간이 흐르면 걱정하지 않을까 했는데 여전히 걱정합니다. 또 같은 일이 일어날까봐. 물난리는 한번만 겪어도 잊지 못하는가 봅니다. 이렇게라도 써서 걱정을 털어버리고 싶은 건지. 그런 것 같네요. 여름뿐 아니라 해가 바뀌면 언제나 ‘여름에는 비 조금 오기를’ 하고 생각해요. 비가 많이 온다는 말을 들을 때면 언제나 생각하는군요. 그렇게 하는 것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는 거겠지요. 기도와 같은 거네요. 신을 떠올리고 하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여름이 오면 생각하는 것’이 아닌 ‘비가 오면 생각하는 것’이 됐군요. 2012년 뒤 한두 해 동안은 여름에만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여름이 아닐 때도 ‘비 조금 오기를’ 합니다. 비가 아주 안 올 때는 비가 한동안 안 왔구나 해요. 그때는 반대로 비가 오기를 바라요. 적당히 오기를.

 

 비가 중요하지만, 엄청 많이 와도 아주 조금 와도 안 되는군요. 언제나 적당히 오면 좋겠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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