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서 보낸 아홉해
(달에서의 9년, 스위트피)
내가 달에서 아홉해를 살았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가 달에서 살았던 적이 있나 싶다. 하지만 나는 정말 달에서 아홉해를 살았다.
풀 한포기 없는 사막 같은 곳에서 어떻게 아홉해를 살 수 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가끔 꿈을 꾼다. 여전히 달에서 살고 있는, 그러면 무서운 꿈이라도 꾼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난다. 무척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느 하루 좋았던 날이 있기는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어린왕자를 달에서 만난 날이다. 어린왕자를 쓴 사람은 내 이야기를 빼놓았다. 어쩌면 어린왕자가 말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어린왕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함께 있기만 했다. 누군가와 말하고 싶었던 나였는데, 말하지 않아도 기분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느끼기 어려운 것이다.
달에서는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 어쩌면 내가 계산한 시간이 아홉해가 아닐 수도 있다. 지구에 와서 스위트피 노래 <달에서 9년>을 듣고 나도 아홉해를 살았던 것이라고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스위트피도 달에서 살았던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스위트피와도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달에서 살아본 사람은 말보다는 마음으로 말하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달은 마음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게 해주는 곳이다.
달에서 바라본 지구는 무척 아름답지만 지구에서 살아가는 것은 조금 힘들다. 그렇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달에서 사는 것보다는 많은 일이 일어나는 지구에서 사는 것이 더 재미있다.
종이비행기(델리스파이스)
종이비행기, 제목은 정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종이비행기에 소원을 적어서 날리는 소년, 아니면 친구를 그리는 소녀……. 이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도 썼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종이비행기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눈을 감고 종이비행기한테 마음으로 말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나는 그저 종이비행기라는 글자한테 물어보았다는 것을.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종이비행기를 접었다. 잘 안 될 줄 알았는데 작은 종이비행기가 내 손에서 태어났다.
"종이비행기야 반갑다."
작은 종이비행기는 수줍은 듯 말했다.
"나도 반가워."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
"뭔데……?"
"나는 너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어떻게 쓰면 좋을까?"
종이비행기는 오래 생각했다. 뭔가 떠올랐는지 천천히 말했다.
"내가 종이비행기면 하늘을 날 수 있겠지? 나를 높은 곳에서 날려보내줘. 날아다니면서 본 거 너한테 말해줄게."
나는 놀랐다. 종이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는 있지만 오랫동안 떠 있지는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나한테 돌아올 수 있단 말인가? 이 말은 해줄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종이비행기는 자신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종이비행기를 날려주기 위해 산으로 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늘을 나는 것일 테니 조금이라도 더 오래 날게 해주고 싶었다.
"종이비행기야, 날아다니면서 본 거 나한테 꼭 말해줘."
"그래, 그리고 고마워. 내가 하늘을 날 수 있게 도와줘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을 타고 날 수 있게 종이비행기를 살짝 놔주었다. 날다가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꽤 오랫동안 하늘에 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반짝하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그곳을 바라보았다. 종이비행기는 산 밑으로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 날 수 있는 세계로 넘어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은 여기에서 끝나지만 종이비행기는 아직도 하늘을 날고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당신 앞에 하늘을 나는 종이비행기가 나타나면 어떤 모험을 했는지 물어봐주기 바란다.
달려라 자전거(델리스파이스)
-달리고 싶은 자전거
나한테는 꿈이 있어요. 그것은 힘차게 달리는 거예요. 그렇지만 혼자 달릴 수는 없답니다. 누군가 페달을 밟아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자전거 가게에 있어요. 나를 타고 달려줄 아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 둘 다른 동무들은 아이들이 데리고 가서 힘차게 달리는데 나는 오랫동안 서 있었어요. 나한테는 바퀴가 좀 많답니다. 그렇다고 아주 어린 아이가 타는 자전거는 아니예요. 중심 잡기 힘든 아이가 탈 수 있게 만들어졌어요. 언젠가는 그런 아이가 내 앞에 나타날거라고 믿어요.
"준호야, 이제 자전거 타면서 다리 운동 열심히 해야 해."
"……."
목소리에 눈을 떠서 보니 엄마와 아이가 있었어요. 아이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얼굴이 어두웠어요.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자전거를 사주면 무척 좋아하는데……. 아이가 한쪽 다리를 잘 쓰지 못한다는 것을 곧 알아봤습니다. 더 어렸을 때는 걷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아이가 나를 좀더 편하게 탈 수 있게 조금 고쳐야 했어요. 나도 이제 달릴 수 있다 생각하니 무척 기뻤어요. 아이가 나를 좋아해주면 좋겠습니다.
준호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어요. 엄마가 유치원에 갔다 오면 나를 타라고 말했는데 안 타고 끌고만 다녔습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을 엄마가 알았지만 준호한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준호가 나를 한번도 타지 않은 것은 아니예요. 나를 데리고 온 첫날 타봤는데 다리에 힘이 없어서 페달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잘 했다고 말했어요. 자주 연습하면 다리에 힘이 들어갈거라고 했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유치원에 갔다 온 준호는 나를 끌고 집 밖으로 나왔어요. 도시가 아닌 시골이어서 차들은 다니지 않았습니다. 나를 타고 달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천천히 끌어주는 것도 나름대로 좋았어요.
"준호 오빠, 뭐 해?"
예쁘게 생긴 작은 여자아이가 준호한테 말했어요. 준호 얼굴은 빨개졌어요.
"오빠, 나 뒤에 태워줘."
"…… 싫어!"
준호는 화난 사람처럼 크게 말했어요. 여자아이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그런 여자아이를 본 준호도 어쩔 줄 몰라했어요. 그냥 모른 척하고 나를 끌고가다 뒤돌아서서 말했어요.
"은영아, 내가 자전거 타는 거 연습 많이 해서 나중에 태워줄게."
"……."
은영이와 길에서 마주친 뒤부터 준호는 나를 끌고 다니지 않았어요. 다리에 힘은 없었지만 페달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아직은 천천히 달리지만 언젠가는 바람을 가르며 달릴 거예요. 그때는 뒤에 은영이가 타고 있겠죠.
☆
말 그대로 옛날에 쓴 이야기다
그냥, 오늘이기에...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