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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 ㅣ 네오픽션 ON시리즈 11
박해수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5월
평점 :
한국에서 짓는 아파트는 얼마나 될까. 짓는 아파트는 많지만, 집이 없는 사람은 많다. 아파트를 다 지어도 사람이 살지 않는 건지, 빈 집은 누가 사두기만 한 걸지도. 돈이 있는 사람이 그러겠다. 집에 투자하는 것 말이다. 이젠 그것도 안 하던가. 주식인가. 집이든 주식이든 나와는 참 멀구나. 세상엔 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있는데, 어딘가에선 얼마 안 되는 돈마저 사기 당하기도 한다. 어쩌다가 한국에서 엄청난 전세사기가 나타났을까. 이렇게 말하지만 전세사기 자세한 이야기는 모른다. 어쩐지 그런 것도 소설로 나올 것 같다(전세사기 잠깐 나온 이야기 보기는 했다). 누군가 그런 걸 생각하고 소설 썼다고 한 듯하다. 집 하면 전세사기가 먼저 떠오르다니. 앞으로 세상 사람 어떻게 믿을지. 내가 집을 사거나 전세를 구해야 할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몰라서 걱정이다.
이 책 《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박해수)에는 단편 일곱편이 담겼다. <블랙홀 오피스텔 601호>는 제목부터 뭔가 일어날 것 같구나. 블랙홀 아닌가. 블랙홀이 실제 보기는 어렵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딘가에는 뭐든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월세가 낮은 곳을 찾다가 ‘나’가 흘러들어간 삼송동 변두리에 있는 ‘블랙홀 오피스텔’. 본래 이름이 블랙홀이었구나. ‘나’는 615호에 살았는데 601호 앞을 지날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갔다. 그 집 문이 조금 열려 있을 때. ‘나’는 경비실에 가서 601호를 물어봤는데, 경비 아저씨는 601호 초인종을 누르지 마란 말만 했다. 초인종을 누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느 날 ‘나’는 602호에 살던 아저씨가 601호 초인종을 누르고, 얼마 뒤 602호 아저씨 몸이 늘어나고 601호로 빨려 들어가는 걸 보게 된다. 601호는 정말 블랙홀일지. ‘나’는 어쩌다 잘못해서 601호 초인종을 누르고 만다. ‘나’는 601호에서 달아나려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어쩐지 오싹하구나.
두번째 이야기 <세컨드 헤븐, 천삼백하우스>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난한 사람은 시간을 판다고 하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난 천삼백하우스가 뭔가 했다. 천삼백만원일까 했는데 천삼백은 가구 숫자였다. 이 집은 땅속에 있다. 그런 곳 좋을까. 거기는 가난한 사람이 들어가 사는 곳으로 한번 들어가면 쉽게 나오지 못했다. 해원은 천삼백하우스에 들어가는 면접을 보고 붙었다.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목 뒤에 칩을 넣는다. 거기에 산다고 해도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된다. 하루에 다섯 시간 가상현실에 접속해야 한다. 처음엔 진짜는 아니어도 가상현실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이튿날부터는 일을 해야 했다. 가상현실에서 어딘가에 가는 것도 포인트가 있어야 했다. 공짜는 공짜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죽도록 일하고 부자는 좋은 걸 누리는 그런 거였다. 이야기는 극단스럽지만 현실에도 이런 일 있을 거다.
책 제목과 같은 <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는 평행우주 이야기로 피를 집한테 마시게 하면 차원의 문이 열린다. 화영이 살기 전에 살던 사람도 그걸 알고 다른 차원에 사는 자신을 죽였을까. 그건 모를 일이구나. <범인은 로봇이 분명하다>에서는 가사 도우미 로봇이 사람을 죽였다. 가사 도우미 로봇은 왜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 시스템 오류였을지, 사람 장기를 바꾸는 드라마를 봐설지. 어떻게 보면 이것도 좀 무서운 이야기구나. <몰락한 나무들의 거리>에서는 사람들한테 뼈가 자라기 시작한다. 소설가인 해수는 뼈가 자라지 않았다. 실제 많은 사람과 다른 사람 있기도 하겠지. 이 이야기를 볼 때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많은 사람은 누구나 휴대전화기를 쓴다고 생각하지만 난 쓰지 않는다. 내가 휴대전화기 안 쓴다고 하면 이상하게 여긴다.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 있을 텐데.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빛나기도 하겠지. 사는 게 쉽지는 않지만. <신의 사자와 사냥꾼> 속 세상은 죽음이 없었다. 죽음이 없는 세상도 돈이 없으면 살기 힘들어 보인다. 사람이 살려면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그렇구나. 죽음이 두려운 걸지 몰라도 편안함을 줄 것 같다. 자신의 죽음은. <한때 홍대라고 하던 곳에서>는 바이러스로 세상이 거의 망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나’는 오피스텔에서 세해나 살다니, 그럴 수 있으려나. 물은 어쩌고. ‘나’만 바이러스에서 살아 남은 건 아닐 텐데. ‘나’는 세해가 지나고 먹을 게 떨어져서 오피스텔에서 나온다. 그 뒤 ‘나’는 어떻게 될지. 살아 있는 다른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고 아무도 없는 거리를 떠돌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없고 혼자 살아 남으면 어떨지. 그럴 때는 다른 사람을 찾으려고도 하던데. 자기 혼자만 남는 세상 조용하고 두렵겠다. 그런 곳에서 다른 사람 만나는 건 반갑기보다 무서울 것 같다.
희선
☆―
땅속 깊숙한 곳에 자리한 천삼백하우스.
지금까지 아무도 그곳에서 퇴거하지 않았다. (<세컨드 헤븐, 천삼백하우스>에서, 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