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이 날이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아침에 눈에 떴을 때, 문득 ‘아 오늘이구나’ 했다. 다행하게도 아파서 고생하지는 않았다. 다만 한달쯤 전부터 무언가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먹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아 물만 마셨다. 사람이 물만 마셔도 한달은 살 수 있다던가, 아니 보름인가. 그렇다 해도 난 그것과는 달랐다.
한때는 정리를 못해서 집안이 좀 엉망이었다. 그런 집에 누가 찾아오는 것도 싫고 나도 딱히 어딘가에 가고 싶지 않았다. 늘 정리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못하다가 마음먹고 했다. 한번에 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들여서 조금씩 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집안이 조금 나아졌다. 그래도 책은 버리지 못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더 늘리지 않으려 애썼다.
무엇이든 한번에 하기보다 꾸준히 조금씩 하는 게 낫다. 하루하루 사는 것도 그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내가 이룬 건 별거 없다. 그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밖에는. 그게 누군가한테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을까. 그것도 모르겠다. 아니 한사람 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한 게 나한테라도 도움이 됐다면 괜찮은 거 아닌가. 아쉬움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좀더 잘해서 인정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거기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했으면서도 끝내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앞으로 하루가 열다섯시간쯤 남았다. 열다섯시간 동안 뭘 할 수 있을까. 내 소식을 기다리는 친구한테 짧게라도 마지막 편지를 써야겠다. 편지쓰기는 내가 평생동안 한 거다. 답장 받는 것도 좋았지만 쓰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마지막 편지라고 하면 그걸 받는 사람이 놀라겠지만 어쩔 수 없다.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이 있다는 게 어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마지막 날인지도 모르고 떠나는 것보다는 낫다.
사는 동안 좋은 일도 힘든 일도 있었다. 누구나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자라고 단단해지겠지. 하루하루 지낼 때는 느리게 가는 시간이었는데 뒤돌아보니 순식간이구나. 내가 혼자라도 그리 쓸쓸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나한테는 편지 쓸 친구와 책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