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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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도 쓰기도 힘든 책을 만났습니다. 며칠 동안 기분이 안 좋은 건 다른 일보다 이 책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무리 지나간 일이라 해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아니 역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피해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이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일흔해가 넘게 흐르고 일본 위안부 피해자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소설에 나온 것처럼 언젠가는 한 사람만 남을지도 모르겠어요. 예전에 일본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지요. 피해자한테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고 없었던 일로 하려 했어요. 누군가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피해자가 돈을 받고 그 일을 했다고도 했습니다. 아무리 돈을 준다고 해도 누가 그걸 하려고 할까 싶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군요. 몸을 팔고 먹고 사는 사람이 그랬고, 그 사람들은 억지로 끌려간 게 아니었어요. 일본은 전쟁을 하는 곳 여자들을 군인이 성폭행하는 일이 많아지자 몸 파는 사람을 그곳에 데리고 갔어요. 병에 걸리는 사람이 많자 한국 여자아이들을 끌고 갔습니다.

 

일본한테 지배받는 조선은 아주 가난했습니다.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이름도 제대로 지어주지 않고 먼저 죽은 아이 이름을 물려주기도 했어요. 여자아이는 집안에 보탬이 될까 싶어서 일을 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돈을 더 준다는 곳으로 가려 했고, 식모살이를 다른 데서 하려고도 하고, 좋은 데서 일한다는 말에 속고, 야마다공장에 실 푸러 간다고도 했어요. 여기 나오는 사람은 열세살에 다슬기를 잡다 남자들한테 끌려갔습니다. 누군가는 엄마와 일하다 끌려가고 간호사 일을 가르쳐준다는 말에 속고, 돈 벌어서 동생 배를 곯게 하지 않으려 집을 나온 아이도 있었습니다. 양반집 딸을 대신한 아이도 있었겠지요. 여자아이들이 끌려간 곳은 만주로 일본군을 받는 위안소였어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곳에서 여자아이들은 일본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하하가 붙여주고 군인이 붙여주기도 했어요. 하하(母), 오토상(お父さん), 엄마 아빠라는 말이지만 실제 엄마 아빠와는 달랐습니다. 누가 자기 딸한테 일본군을 받게 하겠어요(그런 일 아주 없었던 건 아니군요). 하하한테는 딸도 있었습니다. 여자아이들은 그곳에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닌데 거기까지 타고 온 기찻삯을 내라고 하고, 물건을 주면서 모두 빚이라 했어요. 빚을 갚으면 돌려 보내주겠다니.

 

한반도에서는 여자를 다른 나라에 보낸 일이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 있었어요. 고려 시대에는 공녀로 중국에 보내고 조선 시대에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인질 같은 거로.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위안부로. 인조 때 돌아온 여자를 환향녀라고 했다지요. 그때 돌아온 여자를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였던 사람이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한 사람 많았을 거예요. 피해자가 숨어 살아야 했다니.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님이 처음으로 증언을 하고 이어서 많은 사람이 증언을 했습니다. 그곳에 끌려간 사람은 이십만명이고 돌아온 사람은 겨우 이만명이었어요. 1991년 뒤에 알린 사람은 이백서른여덟(238)명이고 지금은 마흔 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소설에는 한 사람만 남은 것으로 나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른 한 사람은 지금까지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합니다. 한 사람이 말하는 거지만 많은 사람 이야기예요. 드라마에서 그런 것을 봤을 때도 저런 일이 있었다니 했는데, 이 소설은 더 현실에 가깝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말한 것을 바탕으로 써서군요.

 

지금도 인도에서는 여자아이를 억지로 끌고 가서 성노예로 만들기도 합니다. 집이 가난해서 돈을 벌려고 미국에 가지만 성노예가 되는 유럽 여자아이도 많습니다. 그런 건 쉽게 사라지지 않는군요. 일제강점기에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에는 열한살 열두살 아이도 있었어요. 나라에 힘이 없어서 그걸 그대로 보고 있었을까요. 어린아이가 겪어야 했을 일을 생각하니 끔찍합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 죽임 당한 사람도 많을 거예요. 힘들게 살아 돌아온 사람은 죄인처럼 살았겠지요. 여기 나오는 사람은 3인칭 대명사로 나와요. 한 사람 남은 분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풍길’이라는 자기 이름을 말합니다. 일흔해가 넘어서야 자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겠지요. 남은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말을 할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언젠가는 그때가 올 거예요. 그전에 일본이 제대로 사과를 하면 참 좋을 텐데요. 아니 그것보다 나라에서 먼저 그런 일 겪게 해서 미안하다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지금까지 그런 말한 사람 있는지. 제가 모르는 거고 있었다면 좋겠군요.

 

일본한테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목숨을 바친 분도 잊지 않아야 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도 기억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분도 거의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르겠군요. 자신이 살지 않았다 해도 오래전에 일어난 일 알아야 합니다. 저도 역사 공부 자주 하지 않지만, 가끔 이렇게 소설을 보고 알기도 합니다. 소설은 개인의 삶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삶이 모여 역사가 되지요. 작다고 해도 한 사람은 중요합니다.

 

 

 

희선

 

 

 

 

☆―

 

위안소에 있을 때 그는 몸뚱이가 하나인 것이 가장 원망스러웠다. 하나인 몸뚱이를 두고 스무 명이, 서른 명이 진딧물처럼 달려들었다.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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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9 0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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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0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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