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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스티븐 네이페.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 지음, 최준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거의 한주에 걸쳐서 이 책을 만났다. 내가 조금 알고 책을 읽은 화가는 핀센트 판 호흐밖에 없다. ‘빈센트 반 고흐’라고 알려졌는데 네덜란드 말로는 핀센트 판 호흐라고 한단다. 이 책에서는 핀세트라 했으니 핀센트라 쓸까 한다. 호흐보다는 고흐가 더 익숙하고 화가 이름처럼 들린다.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지 모를 텐데. 핀센트는 네덜란드보다 프랑스 사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핀센트가 세상을 떠난 곳이 프랑스여서일지도 모르겠다. 책 제목을 알았을 때는 빈센트 반 고흐 이야기를 소설처럼 쓴 건가 했다. 소설이라면 책이 이렇게 크게 나오지 않을 텐데. 그림 <호흐의 방>을 보고 핀센트 판 호흐가 내가 아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걸 알았다. 지금까지 만난 책은 핀센트가 테오와 여러 사람한테 쓴 편지밖에 없다. 내가 본 건 한권으로 나온 책(중에 두번째도 나왔지만 그것은 못 보았다), 두껍게 나온 책, 두권으로 나온 책이다. 소설은 자세한 것은 기억 못해도 줄거리는 기억한다. 편지는 여러 번 봐도 기억 못하는 건지, 한국말로 옮긴 사람이 다 달라서 그랬는지 책을 볼 때마다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책마다 다른 편지가 실려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핀센트 하면 동생인 테오가 함께 생각난다. 이건 예전에 편지를 본 다음에 생각한 거겠지. 핀센트는 누구보다 테오한테 편지를 많이 썼다. 그런 것을 보고 핀센트한테 테오 같은 동생이 있어서 좋았겠다 생각했다. 그건 한쪽만 본 거였다. 테오가 핀센트를 도운 건 형제를 생각해서겠지. 그런 마음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닐 거다. 둘 사이가 안 좋을 때도 있었고, 테오는 핀센트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했다. 아니 테오만 그런 게 아니고 부모와 다른 동생도 그랬다. 핀센트 때문에 가장 애먹은 건 부모겠지. 핀센트는 어릴 때부터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거의 혼자 지냈다. 그런 아이도 있는 거겠지만 오래전에는 그런 생각을 안 했을 거다. 테오는 핀센트보다 네살 어린데 사교성이 좋았다. 사람들이 테오를 좋아했다. 핀센트는 삼촌 화랑에서 일하기 힘들어했지만 테오는 잘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니 그랬겠지. 그렇다고 거기에서 일한 게 핀센트한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은 건 아니다. 핀센트는 화랑에서 일하면서 그림을 많이 보았다.
예전에는 핀센트가 다른 사람보다 그림을 늦게 시작했다고만 생각했다. 이 책을 보고 핀센트 집안이 그림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름이 잘 알려진 건 아니지만 핀센트 호흐라는 화가가 집안에 있었다. 핀센트는 둘째인데, 첫째가 죽고 그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예전에는 그런 일이 많았다. 한국에도 없지 않았다(소설에서 본 거지만). 핀센트 식구는 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다. 핀센트가 이것저것 하다 못하고 그림을 그리게 된 건 집안 영향도 크겠지. 핀센트는 어렸을 때는 안데르센 책을 읽었다. 자라서는 에밀 졸라 모파상 발자크를 읽고, 밀레 그림을 좋아했다. 좋아했으니 그것을 그리기도 했겠지. 핀센트 그림은 지금 봐도 개성 있다. 핀센트가 살았을 때는 더하지 않았을까. 책을 보다보니 핀센트가 정말 자기 그림을 팔고 싶어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림 그리는 건 좋아해도 자기 이름이 많이 알려지는 건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건 잠깐 받은 인상이다.
두꺼운 책을 보느라 시간 많이 걸렸으니 하고 싶은 말도 많으면 좋을 텐데 생각나는 게 별로 없다. 핀센트 집안에는 정신질환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었다. 핀센트와 테오는 매독에도 걸렸다. 매독균은 뇌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것 때문에 이상하기도 했겠지. 핀센트는 누군가와 가정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이루지 못했다. 가정이라기보다 공동체라고 해야 할까. 핀센트는 자신이 누군가를 힘들게 하리라는 걸 몰랐을까. 왜 그렇게 다른 사람과 함께 살거나 함께 그림 그리고 싶어했을까. 쓸쓸함 때문일지도. 고갱과 함께 지내고 헤어진 게 핀센트한테는 안 좋았다. 그 뒤에 핀센트는 자기 귀를 자르고 발작을 일으키고 요양원에 들어갔다. 핀센트는 요양원에서도 그림을 그렸지만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래도 핀센트는 괜찮을 때도 있었다. 테오는 핀센트가 죽은 다음에 건강이 나빠지고 정신도 이상했다. 자신이 돌보아야 하는 핀센트라는 끈이 끊어져서 그랬을까. 테오가 좀더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싶다.
요양원을 나온 핀센트는 오베르에서 지낸다. 핀센트는 그곳에서 테오 식구와 함께 살기를 꿈꾼다. 핀센트가 그런 생각하는 게 안되어 보였다. 그건 이루기 힘든 일이니까. 핀센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알려졌지만 그렇지 않았다. 르네 세크레탕은 그때 열여섯살로 총을 가지고 다니고 친구와 핀센트를 놀리고 괴롭혔다. 핀센트는 르네 형 가스통과 그림 이야기를 하고 친하게 지냈다. 그것 때문에 핀센트는 르네가 자신한테 나쁜 짓을 해도 참았다. 가끔 술도 함께 마셨던 것 같다. 핀센트는 총을 맞고 서른 시간 뒤에 숨을 거두었다. 서른 시간이라니. 그때 무척 아팠겠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테오를 만나서 좀 나았을까. 테오는 핀센트가 잊히지 않을 거다 여기고 뒤처리를 했다. 테오 말처럼 핀센트 판 호흐는 잊히지 않았다. 테오 또한 그렇다.
핀센트가 사람하고는 잘 지내지 못했지만 그림이 있어서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 외로움을 잊으려고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겠다. 그런 게 부럽기도 하다. 난 식구라 해도 신세지고 싶지 않다(내가 말하는 식구는 형제 자매다. 부모한테도 신세지지 않아야 할 텐데). 나한테는 어떻게 해서든 하려는 게 없는 건지도, 자신도 없다. 핀센트가 식구한테 걱정을 끼치기는 했지만 자신을 다치게 했다. 그림을 그려도 잘되지 않아 미안한 마음도 컸겠지. 테오가 핀센트 마음을 다 받아준 건 아니지만, 핀센트한테 오랫동안 돈을 보낸 건 대단하다. 핀센트가 있는 건 테오가 있어서구나. 핀센트와 테오는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두 사람은 저세상에서 어떻게 생각할까. 서로 자신 때문에 잘됐다 하는 건 아닐지.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무언가를 남기고 죽는 건 멋진 일이다. 아니 무언가를 남기지 못해도 자기 삶을 살다 가면 괜찮겠지.
희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