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 가리지 않고 읽는다. 내게 비 오는 날 책 읽기는 특별하지 않다. 비 오는 날 좀 다른 일을 하려면 걷기일 텐데, 비 오는 날 걷는 건 싫어한다. 하루 내내 비가 내린 건 아니다. 아침에는 해도 뜨고 맑았는데 하늘에 구름이 깔리더니 낮에는 조금씩 내렸다. 비가 내릴 때는 하늘을 보지 않았는데 알고 있다니, 보아야만 날씨를 아는 건 아니다. 소리로도 알 수 있다(비는 냄새로도 알 수 있구나). 빗길을 달리는 차 소리가 들려서 알았다. 언젠가는 큰 빗소리를 듣기도 했다. 비가 엄청나게 내려도 빗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빗소리를 듣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빗물이 빠지지 않고 차오르는 곳에 끊임없이 내리면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바닥이 아닌 물에 떨어져서 소리가 흡수된 것일지도. 지난 여름에 비가 얼마 오지 않아서 가끔 비 내리는 건 괜찮겠지 했지만, 너무 많이 오는 건 싫다. 날씨가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러기를 빌 수는 있겠지. 그건 나만이 하는 마음 가라앉히기 방법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닐지도.

 

이번 악스트는 탁하고 연한 노랑이다. 연하고 어두운 노랑이라 해야 할까. 지난번 분홍도 밝은 건 아니었다. 분홍에 검정 물감 한방울을 떨어뜨린다면 그런 색이 나오지 않을지. 이번 건 노랑에 검정 조금, 하얀색도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노랑 하니 노란 은행잎이 떠오른다. 한국소설과 다른 나라 소설로 나뉘었는데 다른 나라 소설은 이번부터 주제를 정했다고 한다. 이번 주제는 ‘여자’다. 올해 나온 책을 보면 페미니즘이 많은 것 같다. 여성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도 커졌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일까. 여성이 예전과 다르게 바깥에서 일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를 잘 길러야 한다는 말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지금은 집안 일이나 아이 기르는 걸 부부가 함께 한다. 그런 사람이 늘고 있겠지.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아이를 가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한동안은 두 사람이 일해도 집안 일은 여자가 다해야 했다. 바깥에서 똑같이 일하고 와서 집안 일까지 해야 한다니, 여자 힘들구나. 지금이라고 그런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 남자 여자 다 슈퍼맨이나 슈퍼우먼을 바라지 않는 게 좋겠다.

 

서양 동양 할 것 없이 예전에는 여자가 글쓰기 쉽지 않았다. 루이자 메이 올컷은 그런 시대에 글을 썼다. 올컷은 네 자매에서 둘째로 집안 일도 도맡아 했단다. 《작은 아씨들》에 나오는 둘째 조가 떠오르는데, 조는 올컷이 바라는 모습이었다. 올컷은 《작은 아씨들》 같은 소설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아버지와 빚 때문에 썼다. 쓰기 싫은 것을 써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다니, 본래 삶이 그렇기는 하다. 김연수는 시를 쓰려 했지만 소설을 쓰게 되었다. 시간이 나서 소설을 썼는데 그것을 본 사람이 소설 같다 했다. 김연수는 소설을 응모했다. 꼭 해야지 하고 되는 사람도 있고, 그냥 했더니 되는 사람도 있다. 그게 끝은 아니다.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 애써야 한다. 김연수는 그래서 지금 한국 소설가겠지. 소설을 안 쓰고 일을 한 적도 있다. 김연수는 마지막으로 써 보고 싶은 것이 떠올라서 《꾿빠이, 이상》을 썼다. 소설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쓰는 것이라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써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쉬운 게 아니다. 소설을 쓰려면 자신을 잊는 연습을 해야 할지도. 그래야 자신이 하지 않는 것을 쓰기도 하겠다.

 

한국소설에는 내가 읽어본 것도 몇권 있다. 이문구가 시골에서 쓰는 한국말을 잘 살려 썼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걸 알았다. 이문구는 토속말을 만드는 실험으로 소설을 썼다. 다시 김연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노트북 컴퓨터 왼쪽 시프트가 고장 나서 글을 못 썼다는. 그럴 때는 종이에 쓰면 될 텐데 했다. 난 왼쪽 시프트 새끼손가락으로 누르지 않는다. 어떻게 쓰느냐 하면 오른쪽 손가락으로 다 누르려고 한다. 왼쪽 시프트를 누르고 ‘얘’를 쓰는 게 편하겠지. 난 왜 그런 버릇이 들지 않은 걸까. 다른 건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 내가 한국소설을 조금이라도 보는 건 <악스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것도 있고 다른 사람이 읽고 쓴 글을 보고 한번 보고 싶기도 하다 생각하기도 한다. 글만 읽는 것과 소설을 읽는 건 많이 다르다. 여전히 한국 단편은 읽기 힘들다. 힘들어도 읽어보는 게 좋겠지, 가끔일지라도. 다 알지 못해도 조금이라도 느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시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난 밤에 어디 다니는 건 싫어한다. 낮이라고 좋아하는 건 아니구나. 요즘은 늦은 밤에도 문을 여는 책방이나 미술관이 있는가 보다. 늦은 밤에서 새벽까지 문 여는 빵집이 나오는 소설이 있는데, 그런 책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문화가 있는 수요일’ 이라는 정책으로 수요일에는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창덕궁에 그냥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다니는 도서관도 지난 8월부터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책을 두 배로 빌려준다(세권에서 두 배니 여섯권이다). 여기에서 그런 걸 생각하고 하는 게 아니었구나. 누가 만들었든 여기저기에서 써 먹는 거 나쁘지 않겠다. 서울시립미술관은 한달에 두번 화요일에 밤 10시까지 미술관을 열고 영화도 보여준단다. 그런 것도 관심이 있어야 가겠다. 밤에는 집에서 편하게 책 읽는 게 낫기는 하다. 나나 그럴지도.

 

 

    

 

 

 

*더하는 말

 

소설가 백가흠과 악스트 편집장 백다흠은 두 사람이었다. 백가흠 백다흠 이렇게 다른데 그동안 한 사람으로 생각했다니. 좀 이상하긴 했다. 지난번에 백다흠으로 소설을 찾았더니 나오지 않았다. 그때는 그저 내가 이름을 잘못 봤나보다 하고 백가흠으로 찾았다. 지난달(9월)에 백가흠과 백다흠이 형제라는 걸 알았다. 백가흠은 소설을 쓰고, 백다흠은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책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악스트에 실린 사진을 보고 백다흠은 소설도 쓰고 사진도 잘 찍는구나 했다. 백가흠 소설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아서 그랬을 거다. 잠깐 백가흠 소설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악스트에 실린 짧은 소설을 보니 다른 것도 읽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백가흠 백다흠 두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다행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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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0-20 0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농담처럼 백나흠도...있어야하는데...그랬다는 ㅎㅎㅎ

붉은돼지 2016-10-20 11:34   좋아요 2 | URL
저도 그 생각했어요..검색해보니 백나흠이라는 분도 계시는 계시더군요 ㅎㅎㅎㅎ
가흠, 다흠...이름이 특이하면서도 예쁜 것 같아요 ^^

[그장소] 2016-10-20 14:47   좋아요 1 | URL
으헉~ 그...저 , 생각만 했을 뿐인데 ! 진짜 있으면 ...어쩐지 미안해지는...( 있을 법한 일이었다는걸 ...알면서..이런!)설마 이번에도 가족입니다 ㅡ그런건 아니겠죠?!^^ㅋ

희선 2016-10-22 01:24   좋아요 1 | URL
혹시나 하고 백나흠 쳐보니 나오네요 형제는 아닐 것 같습니다 백나흠보다 백라흠이 더 예쁘지 않나요 나는 라가 되기도 하니까요 발음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그장소] 2016-10-22 12:24   좋아요 0 | URL
마흠 ~ 바흠 ~ 말리지 마세요! 우리 끝까지 가는고야~^^ ㅎㅎㅎ
사흠 ! 아흠 , ㅋㅋㅋ ( 백씨댁네 분들껜 송구합니다~꾸벅꾸벅~)

붉은돼지 2016-10-22 13:14   좋아요 1 | URL
송창식 노래가 떠오릅니다. 가나다라마바사아...에헤이 으헤으헤으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