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빵집 : 새벽 3시의 잠자는 공주
이 책이 네권이나 나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네번째가 새벽 3시여서 새벽 5시까지 나오는 거 아닐까 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긴 첫번째 거는 가게를 여는 밤 11시가 아닌 새벽 0시였군요. 그렇게 생각하다니 단순하지요. 구레바야시 빵집에 새벽 0시에 찾아온 건 노조미였을 거예요. 첫번째 거 써둔 거 찾아봤다면 좋았을 텐데, 이 기억이 맞는지. 새벽 1시에는 히로키(빵 만드는 사람)가 중학생 때 사귄 여자친구가 찾아오고, 새벽 2시에는 노조미 학교에 전학온 미마사카 고타로였습니다. 누군가 짠 하고 나타나는 형식이군요. 이번에도 찾아왔어요. 노조미 사촌 사야가. 사야가 노조미를 찾아온 건 노조미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구레바야시 빵집에 노조미 엄마는 없었지요. 사야가 노조미한테 제멋대로 구는 게 저는 안 좋아 보였습니다. 사야는 어렸을 때 노조미를 괴롭혔거든요. 자신이 그때 한 일을 잘못했다 생각했지만, 노조미를 잘못 알고 있더군요. 자신이 괴롭혀도 울지 않았다고. 그거야 겉으로 울지 않은 것뿐이죠. 노조미는 구레바야시 빵집에 살면서 많이 밝아졌지만, 사야한테 제대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때 버릇이 없어지지 않아서. 사야는 사야대로 힘들었다고 하지만, 자기보다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다니. 지나간 일이니 잊으라고 해야 할지. 제가 그런 일 겪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하니 제가 노조미보다 비뚤어졌나 봅니다.
부모라면 아이를 지켜야 하는데 그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사야 부모예요. 노조미한테는 외삼촌, 외숙모군요. 노조미가 그 집에서 산 게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는데 노조미도 사야와 같은 환경에서 지낸 적이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때렸어요. 사야, 사야 오빠 그리고 노조미도. 사야 엄마 아빠는 아이들이 할아버지한테 맞아도 아무 말 못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집안 사람을 꽉 잡고 살았군요. 할머니도 맞았습니다. 할아버지 자식인 사야 아빠나 노조미 엄마도 어렸을 때 맞았을 것 같아요. 노조미는 어렸을 때 왜 다른 어른이 할아버지 폭력을 피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오랫동안 맞으면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할머니도 할아버지 폭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야 엄마는 참는 게 식구를 위한 거다고 사야한테 말했습니다. 사야는 엄마 때문에 참고 공부도 잘하려고 애썼는데, 엄마가 일을 하고는 다른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야가 그것을 알았을 때 사야 엄마는 사야한테 아무한테도 말 안 하는 게 식구들을 위한 거다 했습니다. 그런 말을 하다니. 사야는 그때부터 불량스러워지고 나쁜 아이들과 사귀다 집을 나갔습니다. 지금은 예전 남자친구한테 쫓긴다면서,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와 찾아왔습니다.
집을 나가면 그렇게 이성을 사귀는 게 당연한 건지. 거의 그런 식으로 흘러서 진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얼마전에도 비슷한 말을, 이걸 먼저 썼네요.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해야 하는데). 청소년이 집을 나가면 할 수 있는 게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야는 노조미 엄마가 자기 엄마와 다르게 살아서 멋지게 보였다고 합니다. 노조미한테는 그렇게 좋은 엄마는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같은 사람도 가까이에서 사는 사람과 조금 떨어져서 사는 사람이 다르게 보기도 하죠. 저는 멀리에서 보는 사람보다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 마음을 더 생각하는군요. 사야보다 노조미한테 마음이 기운 건지도. 노조미 엄마는 마음과 다르게 노조미한테 행동했습니다.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그 마음을 나타내야 하는데. 노조미한테는 공부해도 소용없다 그랬지만, 일하는 곳에서는 노조미 자랑을 하고 노조미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랐더군요. 다른 때는 진짜 마음을 알면 그렇구나 했는데, 이번에는 ‘그래서 어쩌라구’ 했습니다. 이것도 노조미 마음이군요. 노조미와 같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군요. 사람한테는 좋은 면도 있고 안 좋은 면도 있지요. 제가 누군가의 좋은 면보다 안 좋은 면 때문에 안 좋은 일을 겪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어떤 거냐 말하라고 해도 뚜렷하게 말하기 어려워요. 소설에서는 그런 일 뚜렷하게 말하는데 현실에서는 애매하군요. 이 책이 저도 잘 모르는 제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나 봅니다.
두번째였는지 세번째였는지를 보면서는 노조미가 부러웠습니다. 노조미가 구레바야시 빵집에 오기 전에는 그렇게 좋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구레바야시와 히로키가 노조미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 둘뿐 아니라 구레바야시 빵집에 자주 오는 손님 고다마, 소피아, 마다라메도. 고다마 엄마 오리에, 지난번에 나온 수상한 의사 아베, 고타로, 고타로와 고다마 아빠 미마사카.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는군요. 히로키가 빵을 새로 만들면 모두 불러서 먹어보기도 했습니다. 소피아한테 안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했을 때는 도우려고 하고 걱정했어요. 사야와 형사 야스다, 사야 남자친구 무라카미 준야, 무라카미 준야 엄마도 나왔네요. 무라카미 준야와 엄마인 무라카미 료코 이야기도 나옵니다. 료코는 준야 친엄마가 아니고 새엄마예요. 료코는 준야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고 사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정인지 말 안 했군요. 두 사람을 보면 피가 섞이지 않아도 식구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준야와 준야 엄마 사이만 그런 건 아니군요. 구레바야시와 노조미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구레바야시 빵집을 중심으로 만나는 사람이라고 해야겠네요.
구레바야시 빵집은 구레바야시 아내 미와코가 하려던 거예요. 미와코가 밤에 빵집을 열려고 한 건 노조미 때문이었더군요.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었을 테고, 그 뒤에는 우산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였습니다(노조미한테도 우산이 있어야 했군요). 실제 그렇게 됐네요. 구레바야시 빵집을 찾아오는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가졌으니까요. 이 세상에 마음 다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겠군요. 누군가 때문에 다친 마음이 다른 누군가 때문에 낫고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도 하겠지요.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어두운 밤이 가면 밝은 아침이 온다는 것도. 어두운 밤을 구레바야시 빵집에서 보내고 밝은 아침을 맞는 것도 괜찮겠네요. 구레바야시 빵집이 불을 밝힌 모습을 보면, 자신을 위해 불을 밝혔구나 하는 사람 많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처음 볼 때도. 소설 속이 아닌 현실에도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이것은 꿈이군요. 꿈이기에 더 좋아 보이는 거겠지요. 아니 현실에서도 사람은 서로 돕고 살아가겠지요. 구레바야시 빵집 같은 곳 어딘가에 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미처하지못한말
사야는 어떻게 되고 노조미 기억은 어떻게 됐을까 할지도 모르겠군요(그게 뭐야 할지도). 사야는 자신이 엄마가 한 말 ‘식구를 위해서’ 에 저주받았다고 생각하고 저주를 풀려고 눈썹을 밀고 머리를 금색으로 물들였다고 하더군요. 그런다고 달라질까 싶지만, 어리니까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요. 노조미는 이 세상이 별볼일없다 해도 사야와 무라카미 준야가 보낸 시간이 있다면 그런 것(저주)은 뛰어넘을 수 있다 말해요. 노조미는 구레바야시와 여러 사람을 만나서 지금 웃을 수 있으니까요. 노조미는 미와코와 만난 일을 기억해내요. 부모는 아이를 버려도 아이는 부모를 버리지 않는다고 하던데, 노조미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네요. 노조미 엄마는 노조미가 미와코를 좋아하는 것을 시샘한 듯합니다. 자신이 잘 돌보지 못해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는 것처럼 보이면 그런 마음이 드는가봐요. 노조미 엄마는 노조미한테 자신하고 살려면 미와코를 싫어하라고 했어요. 노조미는 미와코를 싫어할 수 있을까 하다가 아예 잊어버렸습니다. 그런 일 있을 수 있을까요. 《추억의 시간을 고칩니다》(다니 미즈에)에도 그런 사람이 나왔군요. 할머니 할아버지를 더는 찾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그때 일을 잊어버린 사람. 어른은 제멋대로군요. 자기 사정이 안 좋을 때는 그곳에 보냈으면서, 가면 안 된다 하고 싫어하라고 하다니.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건 어른보다 아이 마음에 가깝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괜찮다면 그때 응어리 풀어야겠지요. 예전에 텔레비전 드라마 보면서 쉽게도 마음을 풀어서 뭐 저런 게 다 있어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생각한 건 그때가 아니고 나중이군요(살다보니 마음이 비뚤어져서). 저는 그게 어려운 듯해서요. 좋은 마음으로 사는 게 훨씬 낫겠죠. 부모자식뿐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 지켜야 할 건 잘 지키면 좋겠습니다. 저라고 아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힘이 있을 때는 그 힘을 휘두르기보다 힘없는 사람을 지켜야죠. 제가 어릴 때 맺힌 걸 잘 풀지 못했나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뚜렷하게 말하기 어려워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할 텐데. 누구의 마음이든 ‘그렇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렵네요. 이 이야기는 좋게 끝났습니다. 그거면 될 텐데,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희선
☆―
“상관있어요! 당신 마음이 당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그렇게 멋대로 상처받거나 슬퍼하면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 (2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