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이룬 저지

 

  데가미바치 16

  (레터 비 Letter bee)

  아사다 히로유키

  슈에이샤(集英社)  2013년 06월 04일

 

 

 

 

 

 

 

폭풍의 언덕

 

 

 

이 책 15권을 언제 보았는지 모르겠다. 한해이상 넘은 것 같다. 15권 언제 보았는지 찾아보니 2012년 4월이었다. 한해가 아니고 두해 넘게 지나다니. 이 책 16권은 2013년 6월에 나왔다. 그러니까 <원피스>보다 권수 덜 나왔다. 자주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앞에 것을 본 지 시간이 많이 지나서 내용을 많이 잊어버렸다. 라그 엄마가 라그한테 ‘깜박임의 날’ 태어난 아이를 찾으라는 말을 남긴 것밖에는(라그를 넣어서 다섯이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 이 세계를 바꾸어야 한다, 고. 그 말을 들었다고 해서 바로 그런 아이들을 찾으러 간 건 아니다. 일(편지배달)을 하면서 우연히 만나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싶다. 아니 지금은 그래도 언젠가는 그 아이들을 찾는 데 힘을 쓸지도 모르겠다. 나도 잊어버렸는데 이 세계를 대충 이야기한다면, 이곳은 밤만이 있는 앰버그라운드다. 수도 아카츠키에는 인공태양이 있고, 유사리, 요다카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유사리는 좀 보통이고 요다카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계급이 나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보다 땅이 그렇다고 해야겠다(이곳은 아카츠키에서 요다카로 갈수록 빛이 약해진다). 보통사람은 유사리와 요다카를 쉽게 넘나들 수 없구나. 통행증 같은 게 있어야 한다. 이곳에는 사람 마음을 먹는 엄청 커다란 곤충처럼 생긴 갑충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다른 곳에 잘 다니지 않는다(위험한 걸 알아도 다니는 사람도 있다). 갑충한테 마음을 먹히면 얼마 못 가 죽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멀리에 사는 친척이나 식구와 소식을 주고받고 싶다. 그 일을 도와주는 게 비(벌)다. 비는 국가공무원으로 갑충과 싸워서 쓰러뜨릴 수 있다. 비는 위험한 곳이어도 편지를 전해준다. 어쩐지 비는 어른보다 어린이가 더 많은 것 같다. 심탄총에 넣을 마음 때문일까.

 

라그와 코너도 나오는데 저지 이야기가 많다. 저지가 비가 된 건 부모 마음을 빼앗은 갑충 라프로이그를 쓰러뜨리기 위해서였다. 예전에는 이렇게만 알았다. 이번에 저지가 부모 없이 시설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지 부모가 저지를 고아원에 버린 건 빚대신 아이를 달라고 해서다. 그렇게 팔려간 아이는 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부모는 저지를 고아원에 버리고 빚을 갚으면 꼭 다시 데리고 오리라고 마음먹었다. 부모가 저지를 데리러 고아원에 찾아왔을 때 저지는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저지 부모는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갔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에 저지 부모는 갑충을 만나고 마음을 빼앗겼다. 저지 부모가 쓰러진 곳에는 저지한테 남긴 편지가 있었다. 저지는 부모가 죽을 때까지 그 곁을 지켰다. 이때 저지는 부모가 왜 자신을 고아원에 버렸는지 몰랐다. 빚 때문에 그랬다는 건 나중에야 안다. 라프로이그를 쓰러뜨리고 부모가 남긴 편지를 본 다음에. 편지에 라그가 심탄을 쏘았다. 라그 심탄은 물건에 담긴 사람 기억을 보여준다. 저지라는 이름은 ‘올곧게 사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 저지 부모는 저지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고 이름을 지었다. 저지가 부모와 함께 살지 못했지만 나중에라도 부모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아서 다행이다. 그런 것을 아주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까.

 

어쩌다 보니 끝을 먼저 말했다. 이런 게 처음은 아니지만. 저지는 라프로이그가 나타난 마을에 가서 폭풍의 언덕이라는 여관에 머물렀다. 며칠 동안 저지는 라프로이그를 찾아다녔다.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 소설이다. 재미있게도 여관 주인 부부 이름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었다. 저지가 폭풍의 언덕에서 만난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는 여자아이 에밀 브론테였다(이름을 조금 바꾸다니). 에밀도 저지처럼 고아였다. 여관 주인 부부가 에밀을 고아원에서 데려와 일을 시켰다. 주인 부부는 마음 따듯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도 에밀한테 잘해주지 않았다. 에밀 마음은 어둠에 물들었다. 저지도 고아원에서 그렇게 잘 지낸 건 아니었다. 거기 원장이 별로였다. 그래도 저지는 부모를 잠깐이라도 만나서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은 건지도. 에밀은 정령호박반지로 라프로이그를 조종했다. 마을 사람과 여관 주인 마음을 라프로이그한테 먹게 했다. 저지는 좀더 빨리 에밀과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했다. 그건 에밀도 마찬가지였다. 에밀이 마음을 바꿨으면 좋았을 텐데. 에밀과 라프로이그가 하나가 되고 에밀 마음을 모두 갑충한테 주었다. 라그, 코너가 와서 시간을 끌면서 라프로이그 약점을 찾아냈다. 그곳을 저지가 공격해서 라프로이그를 쓰러뜨렸다.

 

에밀을 보니 나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나중에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게 생각났다. 에밀은 이제 열두살인데. 나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구나. 그동안 힘들고 괴롭게 지냈을 테니. 아이가 느끼는 시간은 길기도 하다. 에밀 기억에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게 나왔는데, 에밀이 깜박임의 날 태어났다는 말이었다. 한사람 찾았는데 제대로 말도 못해보다니 라그는 아쉬웠겠다. 다른 사람은 좋게 만나기를 바란다. 갑충 이름을 라프로이그라고 했는데, 어쩌면 러프로이그일지도. 저지가 찾던 갑충이 맞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라프로이그가 얼마나 있는지 확실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지는 이제 자기 할 일은 끝났다고 여겼다.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 산 것처럼 생각하다니. 저지는 앞으로도 라그, 코너와 함께 비로 살아가겠지.

 

어떻게 다른 사람 기억을 볼 수 있을까 할 텐데 심탄(마음탄)이 본래 그렇다. 갑충을 쓰러뜨릴 때 쏜 심탄 때문에 사람 기억이 보이기도 한다. 말로 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보이면 좋을 텐데, 이건 만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구나. 이상한 게 하나 더 있다. 갑충은 사람 마음을 먹는데, 그 마음으로 갑충을 쓰러뜨린다니 말이다. 그냥 마음은 아니구나. 정령호박과 마음을 모을 총같은 연장이 있어야 한다(총이 아닌 것을 쓰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나오는 것은 그냥 마음과는 다른 것이겠다. 저지가 지내던 고아원 존그리어는 진 웹스터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서 주디가 있던 고아원 이름이라고 한다. ‘키다리 아저씨’ 내용은 아는데 소설은 아직 못 보았다. 만화도 제대로 다 봤다고 말하기 어렵다. 전에 ebs에서 라디오 소설 시간에 읽어주는 것을 듣고 좀더 알았다.

 

 

 

 

 

 

 

본래 만화책 한권 보고 쓴 것만 올릴까 했다. 나는 읽은 지 오래된 것은 거의 못 쓴다. 아마 그 책을 오래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누군가는 책 한권을 만나고 그게 아주 좋아서 읽고 또 읽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다. 읽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무언가를 쓰는 사람도 있구나.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내가 줄거리를 많이 쓰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기도 하고 벌써 썼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을 보고 두번 쓰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어쩌다 한번 더 쓴다). 꼭 써야 하는 것도 아닌데, 한번 쓰고 나면 못 쓰다니.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예전에 본 게 가끔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 보는 책과 비슷하거나 그냥 문득 떠오르는 거겠지. 어떤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과 같다. 내가 읽은 책에 자신을 갖지 못하는 탓도 있다. 좋으면 좋은대로 별로면 별로다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책을 잘 못 봐서 그런 데 자신 없다. 좋은 건 좋다 말하지만 별로인 건 말하지 않는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을 테니까. 잠자기 전에 어떻게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 아쉽다, 그렇게 생각하기보다 써야 했다. 그때 생각한 것을 그대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그 생각이 다 좋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책을 본 기억을 쥐어짜내볼까 한다.

 

 

 

 

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2014, 자음과 모음)

 

다른 책보다 이 책은 빨리 우리나라에 나와서 놀랐다(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다른 나라에서 나오는 때와 같거나 조금 차이 나게 나오는 건 이 책만은 아니다. 지난해 무라카미 하루키 책은 일본과 거의 비슷한 때 나왔다. 이런 말은 전에도 했구나. 히가시노 게이고가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어느 작가나 비슷하다. 내가 작가를 생각하고 책을 보기보다 그저 책만 보기 때문에. 책을 보면서 작가가 어떤지도 생각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에서도 이름이 아주 잘 알려진 추리소설 작가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구나. 히가시노 게이고는 처음에는 본격 추리를 썼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누가 사람을 죽였는지 추리해나가는 이야기보다 왜 죽였는지를 더 생각하게 하고, 사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조금 건드린다. 깊게가 아니고 조금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그 책을 보고 그것을 생각해볼 수 있으니 괜찮은 거 아닌가 싶다.

 

사형제도가 아주 좋은 건 아니다고 다룬 소설은 예전에도 나왔다. 그런 것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죄를 지은 사람이 죗값을 치르기 위해 사형을 받거나 형무소에서 형을 사는 것을 ‘공허한 십자가’라고 말한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짓는다. 어떤 사람은 형무소에 잠깐 들어갔다 오면 되잖아, 하기도 한다. 이것은 드라마에서 들은 거지만 실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폭력조직은 밑에 사람이 다른 사람 죄를 대신 짊어지고 형을 살기도 한다. 형무소에서 형을 살거나 사형 선고를 받아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본래는 길었는데 형무소에서 모범수가 되면 더 일찍 사회에 나오기도 한다. 그 사람이 정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살아갈지 알 수 있을까. 모범수인 척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 것은 잘 알기 어려울 거다. 그래도 잘 알아보도록 해야 한다. 자기 죄를 뉘우치고 앞으로 제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그런 사람을 안 좋게 보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가까운 곳에 잘못해서 사람을 죽인 사람이 있다면 무서워하고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할 거다. 자기 죄를 뉘우치고 평생 죄를 갚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제대로 봐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속에 나온 사람 가운데 한사람은 사람은 언젠가는 죽을 테니, 사형을 받는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피해자는 범인한테 무엇을 바라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범인이 잘못했다고 말해도 용서하기 어려울 텐데, 자기 죄는 뉘우치지 않고 사형을 받아도 괜찮다고 말하다니.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가둬두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뒤에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은 나도 모르겠다. 죄를 지은 사람이 죄를 깊이 생각하고 뉘우치게 해야 할 텐데, 형무소에서 그런 걸 하고 있을까. 몸이야 가두어둘 수 있지만, 마음까지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래도 사람을 믿고 싶다, 달라질 수 있다고. 감옥에서 온갖 나쁜 짓을 배우는 사람도 있다는 게 생각났다. 예전에 일어난 일이 나올 때는 청소년한테 성교육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그 일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죄가 되었다. 한사람은 죗값을 치른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지만, 한사람은 그 죄에 짓눌려 망가졌다. 둘레 어른(학교 선생님)이 관심을 갖지 않고 보고도 못 본 척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도 아주 없지 않을 것 같다.

 

 

 

“내 목숨이니까 어떻게 하든 내 마음이다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 목숨은 당신 한사람 것이 아닙니다. 벌써 돌아가셨다고 해도 부모님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친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 것이기도 하지요. 아니, 이제 제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죽으면 나도 슬플 테니까요.”  (312쪽)

 

 

 

 

조선직업실록, 정명섭 (2014, 북로드)

 

본 지 좀 오래된 책이다. 조선시대에 있었지만 잊힌 직업을 소개해준다. 여기 나오는 건 스물하난데 그때 일이 이것만 있지 않았을 거다.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실제 하지 않는다. 이것도 우리나라 역사 공부를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백성 이야기라고 하면 되겠다. 나는 조선시대 백성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것을 찾아보지 않았다. 어떻게 하다 겨우 하나 보고 뭔가 한 것처럼 생각했구나. 라디오 방송에서 잠깐 우리나라 조선시대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지나면서 들은 건데, 그때 양반이 정치에 참여하려면 과거시험을 봐야 했다. 그게 좋은 제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과거시험에 합격해도 문관과 무관이 차별받았다. 문관이 되어야 높은 벼슬을 할 수 있었다. 이런 말이 나왔다. 이것은 양반 이야기구나. 이 책에는 조선후기 과거시험에 부정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벼슬을 하지 못한 양반이 한 일은 전기수나 재담꾼이었다. 글을 알아야 글을 읽고 외워서 이야기해주니까. 다른 나라 때문에 생긴 일도 있었고 남편이 죽은 여자가 하는 일도 나온다. 장례식에서 곡을 하고 돈을 받기도 했다. 대신 매 맞아 주는 일도 있었구나. 이런 건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을 텐데, 할 게 없으면 그거라도 했겠다.

 

 

 

 

혼돈의 도시, 마이클 코넬리 (2014, 알에이치코리아(RHK))

 

이 책은 마이클 코넬리가 쓰는 해리 보슈 시리즈 가운데서 하나다. 몇 번째인지 나도 잘 모른다. 이것을 차례대로 죽 본 것은 아니고 빼먹고 보기도 했다. 마이클 코넬리 책을 처음 볼 때는 이상하게 읽는 속도가 느렸다. 이 책은 보통으로 본 듯하다. 이것보다 먼저 나온 《에코 파크》는 못 보았다. 그때 어떤 일이 있어서 해리 보슈는 한달 동안 일을 쉬고 여기에서 첫일을 맡았다. 해리와 함께 일하는 사람도 바뀌었다. 해리와 짝을 이루는 사람은 해리와 나이 차이가 스무살 이상 났다. 해리가 엄청 선배라고 해야겠다. 그렇다고 해도 해리는 자신이 선배인 척하지 않는다. 예전처럼 자기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수사를 한다. 위에서 하지 마라 하는 것도 하고. 해리는 죽은 사람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그 사람을 죽인 사람을 찾는 일 말이다. 이제야 해리 보슈는 죽은 사람을 가장 첫째로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은 사람한테는 남은 식구도 있는데, 그런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고도 하지 않는가. 가장 불쌍한 사람은 죽임을 당한 사람이다. 그것을 가끔 잊는 건 아닌가 싶다.

 

큰일에 진짜 뜻을 숨겼다. 이것만 말해야겠다.

 

 

 

“난 살인범들을 찾을 테니까, 당신들은 세슘을 찾으라고.” 보슈가 큰 소리로 말했다.  (83쪽)

 

 

“국민 안녕과 사회안전은 산마루에 죽어 자빠져 있는 저 남자에서 시작되는 거야. 우리가 그를 잊으면, 다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고.”  (130쪽)

 

 

 

 

 

기억을 쥐어짜내보겠다고 했는데 별로 짜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쓰려고 한 건 《천강에 비친 달》(정찬주, 작가정신)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거의 세종과 집현전 학자가 힘을 모아 한글을 만들었다고 배운다(국어사전에서 훈민정음으로 찾으면 이렇게 쓰여 있다). 그런데 실제는 그게 아니었다. 세종이 글자를 모르는 백성을 생각하고 한글을 만들도록 한 사람은 신미 대사다. 그러니까 승려다. 조선시대 때는 유교를 따르고 불교를 없애려고 했다. 세종은 다른 왕과 다르게 불교 가르침을 따랐다. 왕이기에 신하가 그 일을 뭐라 하지 못했겠지만, 아무리 왕이라 해도 밝힐 수 없는 것도 있다. 바로 한글을 만든 게 승려 신미라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가 알고 있지만 잘못 알고 있는 우리 역사가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려지지 않는 것도 많겠지. 신미가 범어에서 우리 글자를 만든 것은 이 소설보다 먼저 다른 사람이 썼다. 나는 이 책을 보고 알았다.

 

한글이 있어서 우리가 어려운 한자나 영어를 잘 몰라도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말은 있지만 글자가 없는 나라 말은 쉽게 사라진다(이건 내가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자가 없어서 말이 사라지기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사라지는 건지도). 지금도 어딘가에서 사라지고 있는 말이 있을 거다. 일본한테도 빼앗기지 않은 우리말과 글이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말과 글을 잘 가꾸고 쓰는 거다.

 

 

 

 

편지를 떠나보내자

 

 

글이 완성되는 건 누군가 그 글을 읽을 때,

마찬가지로 편지가 편지가 되는 건 누군가한테 제대로 갈 때다

빨간 우체통을 지날 때 한번 살펴보자

우체통 속으로 채 들어가지 못한 편지가 보이면

편지가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자

 

 

 

가끔 길을 걷다 우체통 속으로 다 들어가지 못한 편지를 본다. 아니 어쩌면 그건 편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런 게 보이면 우체통 속으로 집어넣는다. 뒤에 다른 게 생각났다면 좋았을 텐데, 편지가 다른 곳에 갈 수 있게 해주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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