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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 ㅣ 문학동네 시인선 210
권민경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평점 :

처음엔 ‘잘 몰라도 읽고 쓰지’ 하는 제목을 쓰려고 했어. 시집에 담긴 시를 보고 바로 알지 못하기도 해. 어떤 시집이든 비슷할지도. 천천히 보면 좀 다를지도 모를 텐데, 바쁜 일도 없는데 다른 글을 읽는 것처럼 시를 읽어. 시를 소리 내서 읽어보면 다른 느낌이 든다고도 하던데, 그런 거 해 본 적 없어. 언젠가는 해 볼지. 아마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아. 어떤 책이든 난 그저 눈으로 조용히 보니까.
아픈 일이 너무 많아서
나는 오히려 오래전에 죽은 자들에 씌는데
죽어간 혼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습니다
뭉텅이로 뭉텅이로 (<자연-X-선>에서, 64쪽)
이번에 만난 권민경 시집은 《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야. 권민경 시인은 이 시집으로 처음 알았어. 이게 세번째 시집인가 봐. 시인은 시를 쓰고 시간이 흐른 뒤 시집으로 묶으면 기분 좋을 듯해. 그동안 쓴 걸 한권에 담을 테니 말이야. 시는 자기 일을 쓸 때가 많겠지. 그런 거 알아도 시를 보면서 시인한테 있었던 일일까 생각만 해. 권민경 시인이 아팠다는 건 해설을 보고 나서 알았어. 그런 말이 시 곳곳에 나오는데, 그걸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 시를 쓰면서 자신이 아팠던 일이나 아픈 걸 떠올릴 것 같아. 시집에 담긴 시를 봐도 그러겠어. 그런 게 많이 힘들지 않기를 바라.
나는 고요하게 몸을 부풀리는 중
일 초 일 초 아주 조금씩 늘어나는 중
내일 보면 모르겠어 일 년 후에도 모를 거야
멀리서 돌아보면 나는 커져 있을 예정
스멀스멀 징그럽게
한이나 화 나뭇가지 이것저것 모아서
너를 지우기 위해 말이지
약한 자라 참고 있는 거 아니냐 하면
맞아 난 강해져도 티내지 않는
식물성 힘을 갖게 될 거야
크게 자라
신령하게 될 거야
기도하는 손들 점점 늘어
술과 떡을 바치게 될 거야
어느 말 벼락을 맞을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알 바 있니 늘어나는 중인데 부푸는 중인데
세상의 이치를 거슬러 시간을 뛰어넘어
고요하게 날뛰는 중인데
불을 머금고 공기와 스킨십하며
-<자연-복수>, 54쪽
시집 2부는 ‘자연’ 연작 시가 담겼어. ‘복수’는 무엇에 하는 걸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잘 알지 못해도. 그냥 ‘자연-복수’ 시를 옮겨 봤어. ‘한이나 화 나뭇가지 이것저것 모아서 / 너를 지우기 위해 말이지’ 하는 말이 눈에 띄는군.
놀랍게도
시인도 노동의 기쁨을 안다
한참 이빨을 까고 집에 돌아가는 길
오늘도 빵 한 덩이 뜯을 자격이 생겼다는
그런 생각 한다
창밖은 검고 보이는 건 유령 같은 내 얼굴
직장인은 누구나 느낄 멜랑콜리
하지만 우린 퇴근하면 일 얘기 안 하는 거잖아요
퇴근 시간이 분명한데 내게 연락하는 편집자의 카톡
그가 직업인임을 생각한다
거기서 빠져 나오는 심란한 마음을
동정심이라 할 수 없다
보편의 야근 기피증
나는 직업은 있는데 직장이 없다는 얘기를 되뇌며
오롯이 나에게 소속되어 있음을 느낀다
세상만사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
한 신선이 온천에서 반신욕하며 중얼거릴 말
요샌 무협 대신 선협이 유행이다
신선이 되려고 도를 닦지만
온갖 더러운 술수가 판친다
도는 선이 아니고
시도 선이 아니다
도를 다 닦으면 이제 뭘 닦아야 해
온천에서 나온 일본원숭이들 다이슨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시인이라는 유행 직장>, 104쪽~105쪽
다시 읽어본 시집에는 죽음이 많이 담겼다는 걸 알았어. 아프면 그런 생각 많이 하겠지. 그렇다고 시가 가라앉기만 하지 않아. 피식 웃게 하는 시도 담겼어. 시만 그런 건 아니고 난 재미있는 글을 봐도 크게 웃기보다 피식 웃는 듯해. 나만 그럴까. 영상을 볼 때는 조금이라도 웃던가. 그럴지도. 글을 보면서도 조용히 웃고 조용히 울어. 누가 그런 모습 안 봐서 다행이야.
여기 담긴 시를 다 잘 보지는 못했지만, 권민경 시인이 아프지 않았으면 해. 그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권민경 시인은 시를 쓸 거다 말해. 시가 시인한테 위로와 힘이 되겠지. 자신한테 힘을 주는 시를 써도 괜찮다고 생각해.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