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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진찰실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박수현 옮김 / 알토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나쓰카와 소스케는 의사면서 소설을 쓴다. 내가 아는 건 이것뿐이던가. 나쓰메 소세키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나쓰메 소세키 소설 《풀베개》로 이름을 지은 작가. 몇해 전에 만난 《신의 카르테》와 이번에 만난 《스피노자의 진찰실》은 비슷한 느낌이 든다. 과도 같지 않을까. 소화기내과의사라는 것이. ‘신의 카르테’에 나오는 의사는 구리하라 이치로 신슈 혼조병원에서 일했다. 구리하라는 괴짜라는 말을 들었는데, 여기 나오는 마치 데쓰로도 괴짜라는 말을 듣는다.
혼조병원과 여기 나오는 하라다병원도 비슷하다. 나이 많은 사람이 많은 게. 이런 병원은 마음 편해서 가도 괜찮을 것 같다. 내가 사는 곳에는 이런 느낌을 주는 병원은 없는 듯하다. 개인 병원이라고 환자 얼굴 잘 볼까. 아닌 것 같다. 난 병원에 잘 안 가서 모르기는 하지만. 병원에 간다 해도 거기에서 누군가와 말을 하지도 않는구나. 난 어디에서든 다르지 않다. 잠깐 스쳐가는 사람과 왜 말을 해야 하나 한다. 이런 성격 안 좋은 거겠지. 본래 그런 걸 어떻게 하나. 오래 볼 사람이라고 다를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사람이 오래 산다. 고령화 시대라고 해야겠다. 이제 초고령화던가. 태어나는 사람은 얼마 없고 나이 많은 사람만 많은. 의료도 거기에 맞춰야 할 듯한데 그러지 않는 듯하다. 여기 나오는 하라다병원은 다르다. 이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는 네 사람이다. 아주 큰 병원은 아니지만 작지도 않다. 나이 많은 사람이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많지만, 수술도 하는 병원이다. 왕진도 다닌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도 병원에서 지내다 죽는 것보다 집에서 마음 편하게 죽는 게 좋지 않을까. 그것도 아픈 사람을 돌봐줄 사람이 있어야겠다. 혼자 사는 사람은 그러기 어렵겠다.
혼자 살고 돈이 별로 없어서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어 치료받지 않겠냐고 하니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내가 죽은 다음에 날마다 술을 마셔서 몸이 안 좋아진 사람이다. 치료 받는 데 돈이 많이 들어서 그런 치료를 안 받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하겠다는. 약만 먹겠다고 했다. 나도 그런 것과 비슷할 것 같다. 돈 많이 드는 치료는 못할 것 같고 남한테 도움 받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말이다. 아주 먼 일일지 갑자기 뭔가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한테 뭐라 하지 않고 그대로 받여들여주는 의사가 바로 마치 데쓰로다. 제목에 ‘스피노자’가 들어가는구나. 구리하라 이치는 나쓰메 소세키 책 《풀베개》를 좋아했는데. 데쓰로는 스피노자 사상을 좋아하는구나. 그거 보니 스피노자한테 조금 관심이 갔다.
데쓰로는 도쿄에서 태어나고 학교도 도쿄에서 다니고 대학병원에서 일했고 내시경 치료를 아주 잘했다. 한창 고도 의료기술을 익히려 했을 때 동생이 죽고 동생 아이를 돌봐야 했다. 데쓰로는 대학병원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돌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교토 작은 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시간은 여섯해가 흘렀다. 데쓰로는 대학병원에서 병만 봤는데, 하라다병원에서는 아픈 사람 얼굴을 보게 됐다. 데쓰로는 과학자일 뿐 아니라 철학자기도 했다. 이건 데쓰로 선배가 한 말이기도 하다. 실제 이런 의사 있을까. 거의 없을 것 같다.
소설 앞부분에서 병원에 실려온 쓰지는 이야기가 끝날 때쯤 죽는다. 쓰지는 데쓰로한테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죽은 사람한테 그런 말을 듣다니. 데쓰로는 아프다 세상을 떠난 사람한테 고생했다고 말한다. 아픈 사람을 돌본 식구한테도. 그런 말도 위로가 되겠지. 의사라고 병을 다 낫게 하지는 못한다. 그럴 때는 의사뿐 아니라 아픈 사람도 절망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데쓰로는 병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걸 아픈 사람과 함께 하려 했다. 수술을 잘 하는 의사도 있어야겠지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과 함께 하는 의사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일하는 의사는 힘들까.
희선
☆―
“의료라는 것에 큰 기대도 희망도 갖고 있지 않아.”
미나미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의사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의료의 힘이란 정말 미미하다고 생각해. 인간은 덧없는 생물이고 세상은 끝까지 무자비하고 냉혹해. 나는 그 사실을 동생 임종을 지켰을 때 정말 뼈저리게 느꼈어.”
잠시 입을 다문 데쓰로는 깊은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무력감에 사로잡혀서도 안 돼. 그걸 가르쳐 준 것도 동생이지. 세상에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넘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있다고 말이야.” (2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