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이마를 쓰다듬는 꿈속에서 창비시선 480
유혜빈 지음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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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을 자고 일어나도 하나도 편하지 않아.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가벼워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일어나기 힘들고 몸은 자꾸 무거워. 꿈 때문일까. 이런저런 꿈을 꾼다는 건 기억하지만, 뚜렷하게 생각나지 않아. 그저 별로 꾸고 싶지 않은 꿈이군 할 뿐이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나와서. 만났으면 하는 사람은 꿈에 잘 나타나지 않기도 하지. 언젠가 겪은 안 좋은 일을 꿈속에서 또 겪기도 하고. 똑같지는 않지만. 꿈은 꿈일 뿐이겠지. 그러기를 바라. 꿈은 자신을 해치지 못할 거야. 안 좋은 꿈도 즐겨야 할까. 그러면 좀 더 나을 것 같아.


 한번은 과학소설 같은 꿈을 꾸기도 했어. 이건 깨고 나서 생각한 거야. 그 꿈을 잊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이 시집 《밤새도록 이마를 쓰다듬는 꿈속에서》를 보고 꿈을 잠깐 생각했어. 여기 나오는 시에서는 꿈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아. 그래도 꿈이어서 다행이군. 아니 그건 다른 일이 안 좋은 꿈으로 나타난 걸지도 모르겠어. 꿈이 좋으면 좋을 텐데. 꿈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군. 자기 무의식은 다스리기 어렵기도 하지. 깨어 있을 때 좋게 생각하면 무의식을 달랠 수 있으려나. 나도 잘 못하는데 이런 말을 했군. 아니 이런 생각을 하니 깨어 있을 때 우울하고 어두운 생각보다 좀 더 나은 생각을 해야겠다 싶기도 해.




 꿈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가만히 누워 잠을 기다리고 있으면 오래된 기억들이 초대를 시작하지 좋은 기억이든 슬픈 기억이든 이미 지나온 길을 거슬러 가는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시간의 일이니 유리 조각을 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따가울 따름이야 그건 당연한 거야 발이 만신창이인데 피는 흐르지 않는 꿈 나 혼자서만 이게 아프구나 할 수 있는 꿈 손톱으로 아무리 긁어도 자국만 남고 흉터는 남지 않는 꿈


 너덜너덜한 발로 꿈의 세계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두 발은 깨끗하겠지 나는 버려지고 쫓기고 두려움에 잠기기도 하며 누군가의 시선 끝에 있기도 하다 내가 들고 있는 사랑이 산산조각 나기도 하고 연인은 하얀 금 바깥에 영원히 서 있을 뿐이다 운이 좋으면 금방 죽임을 당할 수 있다 나는 꿈에서 운 적 없고


 잠이 온 것인지 꿈이 온 것인지 나는 모른다

 오랜 꿈의 말로는 바다를 보는 것이었지 파란 바다가 밑으로 흐르며 햇빛에 빛나고 있는 장면 곧 세상이 바다에 잠긴다고 하던가 약속된 시간에 밀려오기로 한 바다를 바라보는 건 아름답고 다급하고도 평화로운 일이었는데


 밤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 몇 개를 끌어안고 가라앉는 배일까


 지나간 꿈이 쪽지를 남겼나


 나를 보라고 나를 기억하라고 나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것이란다


 -<고요의 바다>, 64쪽~65쪽




 꿈을 말하는 시는 여러 편이야. <고요의 바다>는 거기에서 하나야. 마지막 말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는군. ‘나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것이란다’ 가. 이건 어린시절 겪은 슬픔이나 아픔 같은 걸까. 그때만 아픔이나 슬픔을 느끼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신 안에는 어린아이가 살기도 하지.




그건 정말이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잠들도록

한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잠들 수 있도록

이마를 쓰다듬어주는 일이야


늦은 여름 아침에 누워

새벽을 홀딱 적신 뒤에야

스르르 잠들고자 할 때


너의 소원대로 스르르

잠들 수 있게 되는 날에는


저 먼 곳에서

너는 잠깐 잊어버리고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한 사람이 너를 잠들게 하는 것이라는 걸

멀리서 너의 이마를 아주 오래 쓰다듬고 있다는 걸


아무래도 너는 모르는 게 좋겠지


-<낮게 부는 바람>, 66쪽~67쪽




 이 시 <낮게 부는 바람>은 <고요의 바다> 다음에 실린 시야. 여름에 낮잠 잘 때가 생각나게 하는 시야. 여름이어도 바람이 살살 불면 잠이 스르르 들잖아. 그 바람은 누군가 멀리서 자기 이마를 오래 쓰다듬어주는 거군. 난 누가 이마 쓰다듬어주면 잠 못 잘 것 같아.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나 할 수 있겠군. 난 그저 낮게 부는 바람만 좋아할래.


 다른 시 더 옮겨볼까 했는데 그만 할래. 내가 게을러서 그렇지. 시를 잘 보고 나도 멋진 시나 글 쓰고 싶은데, 시를 봐도 잘 못 쓸 것 같아. 소설 봐도 이야기 못 쓰는데. 그것보다 뭘 써야 할지 모를 때가 더 많군. 내게 다가오는 건 별로 없어. 없어도 생각하지만. 잘 못 써도 쓰는 걸 즐겁게 여겨야겠어. 쓰기 힘든 것도 있겠군. 그런 것도 쓰고 나면 좀 나을지. 유혜빈은 쓰기 힘든 것을 쓴 것 같기도 해. 뚜렷한 건 모르겠지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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