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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8월
평점 :
일본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작가가 되고 서른다섯해 기념으로 이 소설 《백조와 박쥐》를 썼다 한다. 몇해 전에는 서른해 기념으로 소설을 여러 권 썼는데, 그새 또 다섯해가 흘렀구나.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안 게 언젠지 잘 생각나지 않는데, 책을 본 건 열해 조금 넘은 것 같다. 일본 추리 범죄 소설이라는 걸 본 것도. 처음 알았을 때는 책 많았던 것 같다. 소설 쓰는 공장이라 한 사람도 있었다. 일본에만 그렇게 책을 자주 내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닌 듯한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워낙 잘 알려져서 더 눈에 띄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쓰는 소설은 볼 만하고 생각할 거리를 준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처음에는 본격 추리소설을 썼는데 언제부턴가 사회파추리소설을 쓰게 됐다. 이번에 만난 《백조와 박쥐》도 그런 소설이다. 책을 보면서 이 책 제목이 뜻하는 게 뭔가 했다. 백조는 밝고 박쥐는 어둡다. 이 정도만 생각했던가. 누군가한테 원한 살 일 없는 변호사 시라이시 겐스케가 배에 칼이 찔려 차 안에서 죽어 있었다. 형사 고다이와 나카마치가 수사를 하다가 구라키 다쓰로라는 사람을 알게 된다. 구라키 다쓰로는 도쿄가 아닌 지방에 살았는데, 도쿄에 사는 아들을 찾아갈 때면 혼자 시간을 보내고 늦게 아들 집에 갔다. 구라키가 다니는 곳은 야스나로라는 식당이었다. 야스나로 식당을 하는 어머니와 딸은 1984년에 살인용의자로 경찰에 잡히고 취조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아내와 딸이었다. 고다이 형사는 구라키가 1984년에 일어난 사건과 상관있다고 여기고 구라키를 찾아가니, 쉽게 자신이 시라이시 겐스케를 죽였다고 한다. 1984년 일도 자신이 했다고 했다.
앞에서 바로 자신이 범인이다 하는 사람이 있다니. 이만큼 보고 이건 대체 무슨 이야기지 했다. 구라키는 우연히 야구 경기장에서 시라이시를 만나고 변호사라는 걸 알게 됐다. 얼마 뒤 구라키는 자기 재산을 식당을 하는 어머니와 딸한테 주고 싶다고 말하고, 1984년에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 때문에 엉뚱한 사람이 잡히고 식구가 힘들게 살았다면서 속죄하고 싶은 마음으로 자기 재산을 주려고 했다. 시라이시는 구라키한테 살았을 때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하고 편지도 썼다고 한다. 구라키는 시라이시가 자기 일을 식당 사람한테 말할까 봐 시라이시 겐스케를 죽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누군가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하면 그걸 그대로 믿겠지. 구라키 아들 가즈마는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여겼다. 시라이시 겐스케 딸 시라이시 미레이도 구라키가 말한 아버지와 자신이 아는 아버지가 다르다고 생각했구나. ‘백조와 박쥐’는 피해자 딸과 가해자 아들인가 보다.
이 소설을 보니 예전에 본 《살인의 문》이 생각났다. 지금 생각하니 그 소설 배경이 1980년대였구나. 거기에서도 나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았다. 그렇다 해도 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겠지. 1984년에 죽임 당한 사람은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사기 치는 사람도 인권을 생각해 줘야 하다니. 예전에는 사람을 죽인 데 공소시효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이건 없어져야 하는 거겠지. 그렇게 되기 전에 일어난 사건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 것 같다.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식구여서 한사람이 죄를 지으면 다른 식구한테도 공격한다. 그건 언론 때문일까. 지금은 그게 더하구나. 인터넷은 정보가 아주 빠르게 퍼진다. 구라키 아들 가즈마는 그것 때문에 힘들었다. 피해자 식구라 해도 괜찮지 않겠다.
가즈마와 미레이는 지금 일어난 일이 1984년에 일어난 일 때문이다 여기고 그 일을 알아본다. 오래전 일에 여러 사람이 상관 있었다니. 그때 제대로 했다면 지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구라키는 그때 한 일을 또 하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건 진짜 범인을 안다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 사람이 스스로 자수하기를 바라고 경찰에 알리지는 못할 것 같다. 그것도 범인을 숨겨주는 걸까. 죄를 짓고 그걸 숨기고 사는 것도 편하지 않을 텐데.
이 소설을 다 보니 어렵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것도 있지만 섣불리 어떻게 해야 한다 말할 수 없다. 난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생각하니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겠다. 이러면 소설이 안 되겠다. 소설을 보고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 처지를 생각하기도 하는구나. 그건 괜찮은 거겠지.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