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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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이어서 일어나면 이상할 것 같다. 안 좋은 일은 그렇게 잇달아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건 그저 우연일 뿐이겠지. 료스케는 함께 일하고 사귀는 지에를 어머니 아버지와 동생한테 소개했다. 그때는 괜찮았지만, 얼마 뒤 지에가 사라졌다.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는데, 아버지보다 먼저 어머니가 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있는 외할머니를 만나러 간 날 료스케는 집에 온다. 그날 료스케는 아버지 서재 옷장문이 조금 열린 걸 보고 그 안을 본다. 아버지가 옷장문을 제대로 닫지 않다니. 그런 일이 없었다면 이 소설도 없었겠구나. 옷장 안에는 상자가 있었다. 아버지 몰래 그런 걸 보는 건 좀 그랬지만 료스케는 상자를 열어본다. 거기에는 오래된 여성 핸드백이 있었다. 그 안에는 종이와 머리카락이 있었다. 종이에는 미사코라 쓰여 있었다. 어머니 이름이 미사코지만 료스케는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료스케는 어릴 때 폐렴으로 병원에 오래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때 료스케는 어머니가 바뀌었다고 느꼈다. 그런 기억이 떠오르다니.

 

 상자 밑에는 서류 봉투가 있고 그 안에는 공책이 네 권 있었다. 그런 거 보면 읽어보고 싶을까. 그러고 보니 그건 비밀 상자나 판도라 상자 같기도 하구나. 료스케는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까지 공책 첫번째 것을 읽었다. 거기에는 누군가의 고백 같은 게 쓰여 있었다. 그건 그리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과 사람을 죽인 기록이었다. 자신한테는 유리고코로가 없다는 걸 알았는데, 사람을 죽이면 유리고코로가 생겼다. 하지만 이 유리고코로는 잘못 들은 거였다. 요리도코로라는 말을, 요리도코로는 ‘마음의 안식처’ 같은 거다. 어릴 때는 그런 거 별로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내가 어릴 때 어땠는지 모르겠다. 그 글을 쓴 사람과는 달랐겠지. 그 사람은 감정이 없었다. 그게 혹하고 상관있을까. 그 사람은 어릴 때 머리 뒤에 혹이 있었는데.

 

 공책에 글을 쓴 사람은 누구고 료스케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바뀐 건 정말일지. 어머니가 바뀌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여겨야 하는데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어른이 아이 하나 속이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까. 나도 네다섯살 때 일은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걸 기억하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겠지만. 료스케는 결혼하기로 한 지에가 사라진 일과 공책이 마음 쓰였다. 첫번째 것밖에 못 봐서. 료스케는 동생 요헤이한테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외할머니를 만나러 갈 때 요헤이도 함께 갔다. 료스케는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는 요헤이 전화를 받고 부모님 집에 가서 두번째 공책을 읽었다. 세번째를 읽는데 동생이 연락해서 세번째 것은 가지고 가기로 했다. 다음에 집에 갔을 때는 공책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알아챈 거겠지. 료스케는 아버지가 집에 오기를 기다렸다가 네번째 공책을 보여달라고 한다. 이제와서 숨길 수는 없겠지. 아버지는 순순히 네번째 공책을 료스케한테 건넨다.

 

 난 이 책 처음 봤는데 왜 뒷부분은 한번 본 것 같은지. 내가 책을 보다 넘겨봐설지도. 그때 내가 본 글이 무의식에 남아서 그 부분 볼 때 한번 본 듯한 느낌이 들었나 보다. 책을 보다가 다음이 알고 싶어도 넘겨 보면 안 되는데.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본 부분 때문에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알았을지도. 책을 보다가 어렴풋이 깨달은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맞았다. 지금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같은 말을 하기도 하는데, 여기 나온 사람은 뭘까. 사이코패스라 해도 사람을 죽이지 않게 되기도 할 거다. 예전에 없던 마음이 아이를 낳거나 아이가 생기면 조금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만나도. 여기 나온 사람은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몇해 전에 이 책이 나왔을 때는 못 봤는데, 이번에 다시 나오고 봤구나. 그때는 유리고코로에서 유리가 백합인가 했다. 이번에 책 보면서 요리도코로가 아닌가 했다. 이건 앞에서 말했구나. 여기 나온 사람을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산 어머니 마음은 어땠을지. 가끔 나도 어쩐지 사는 게 덧없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그건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느끼는 거겠다. 나한테 마음의 안식처가 있는지 없는지 이것도 잘 모르겠다. 그냥 산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책을 보면서. 내 마음의 안식처는 책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인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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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17 07: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내용이 흥미롭네요 ㅋ 어머니가 바껴있는데 물어보지는 못하겠고 ㅎㅎ 공책에는 어떤 내용이 쓰여있을지 궁금해요~! 이야기를 위해 제대로 닫지않은 옷장이라니 ㅋ
희선님의 요리도코로는 책이 맞습니다~!!

희선 2021-11-19 01:01   좋아요 1 | URL
병원에 조금 있다가 나오니 어머니가 전과 달라지다니, 료스케가 병원에 있을 때 어머니는 한번도 안 왔을 거예요 딱 그때 바뀌다니... 어른은 다 모르는 척하고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자신이 잘못 안 건가 한 듯합니다 살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다가 핸드백을 보고 그걸 떠올렸네요 세상에 책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희선

scott 2021-11-17 11: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주부, 승려, 기업 CEO 까지 한 작가‘누마타 마호카루 ’ 56세에 쓴 작품이 일본에서 돌풍을 일으킬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는 이작가의 작품 희선님이 읽어 보셨군요
전에는 각종 수상작들 신간 나오는데로 읽었는데 요즘은 도통 일본 수상작품을 찾아 읽지 않게 되었네요
일본에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중에 승려 생활을 한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가는 [렌조 미키히코]

이책 만화로도 출간 될 정도 인데 꼭 읽어봐야 겠습니다.

희선 2021-11-19 01:10   좋아요 0 | URL
여러 가지를 하다가 소설을 쓰다니, 이 책 예전에는 못 보고 이번에야 봤습니다 이런저런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렌조 미키히코 이름은 알지만 책은 못 봤네요 일본에는 승려를 하다 작가가 되는 사람도 많군요 한국은 스님이 글을 쓰시기도 하네요 스님이 이런 소설 쓰면 어떨지... 일본 스님과 한국 스님은 조금 다른 듯합니다 종교가 조금 다른 거겠네요 일본은 신불이라던가

찾아보니 만화로 나왔더군요 이런 게 만화로도 나오다니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 소설은 만화로도 나오는 거 많네요 미스터리도...


희선

서니데이 2021-11-17 17: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이번에 새로 개정판으로 새로 나온 모양이네요. 이전 표지보다 디자인이 더 나은 것 같아요.
이 책 제목 <유리고코로>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소개를 읽어봤는데, 전개가 독특했던 기억이 나요. 동명의 영화가 있어서 책도 찾아봤던 기억이 있고요.
잘 읽었습니다. 희선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희선 2021-11-19 01:13   좋아요 1 | URL
시간이 흘러서 개정판을 냈나 봅니다 나오면 그런가 보다 하는군요 예전에 못 봐서 이렇게 보기도 했습니다 다른 건 개정판 나오면 예전에 봤는데 하는군요

이거 영화로도 만들었군요 일본은 소설로 영화나 드라마 많이 만들기는 하지요 그런 거 생각하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썼더니 영상으로 만들자고 하는 것도 있겠지만...


희선

서니데이 2021-11-18 2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오늘은 날씨가 어제보다 따뜻했습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셨나요.
좋은 밤 되세요.^^

희선 2021-11-19 01:15   좋아요 1 | URL
어제는 수학능력시험 보는 날이었는데 춥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제 은행 같은 데 문 늦게 여는 것도 모르고 본래 여는 시간에 갔다가 한참 기다렸습니다 다른 때는 시험 보는 날 쉬던가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쉬지는 않고 늦게 시작하는군요

이번주 따듯하고 다음주에 춥다고 합니다 서니데이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