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오늘처럼 늦은 밤에 비가 아주아주 많이 왔어. 겨우 일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어.
늦은 밤에 그것도 비가 많이 내리는데 왜 밖에 나갔느냐고. 그건 내 마음이지. 본래 난 비 오는 날 다니는 거 싫어하는데 며칠 동안 집에만 있어서 답답해서 비가 와도 잠깐 걷고 싶었어. 내가 밖에 나갔을 때는 이슬비였어. 갑자기 빗발이 굵어지고 내가 그걸 본 건 아주 잠시였어. 어쩌면 그건 비가 보여준 환상일지도 모르겠어.
집을 나가 잠시 걸었더니 가늘었던 비가 굵어졌어. 다시 돌아갈까 하려다 좀 더 걸어야겠다 했어. 빗발은 더 굵어지고 다른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땅을 때리는 빗소리만 들렸어. 그런데 한순간 그 소리가 들리지 않고 내 몸은 얼어붙은 듯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어.
가위 눌리는 거 알아. 정신은 깨어 있는데 몸은 움직이지 못하는 거. 그때 그런 느낌이었어. 비도 이상하게 보였어. 내리는 것 같기는 한데 그림 같았달까. 그림처럼 멈추었다고 해야겠군. 아주 많은 빗방울이 내 둘레에 멈추어 있었어. 처음에는 좀 무섭기도 했는데 몸이 조금씩 움직이잖아. 손을 뻗어 빗방울을 만져보려 하니, 다시 비가 마구 쏟아지고 세찬 빗소리도 돌아왔어.
그 뒤에 또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아니, 그때 한번뿐이었어. 한번만이라도 그 조용하고 멈춘 세계에 들어 가 보려고 비가 오는 날이면 걷는데. 아주 잠시였지만 편안했거든.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