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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 ㅣ 에밀리 디킨슨 시선 4
에밀리 디킨슨 지음, 박혜란 옮김 / 파시클 / 2020년 9월
평점 :
에밀리 디킨슨 이름은 알았지만 이렇게 시집 한권을 보기는 처음이야. 그렇다고 시를 하나도 안 본 건 아니지만. 다른 책에 실린 시 한두편밖에 못 봤어. 그런 시와 여기 담긴 시는 조금 달라 보이기도 하는군. 에밀리 디킨슨은 시 제목을 안 썼나 봐. 제목이 없다니. 에밀리는 많은 시를 썼지만 책으로 내지 않았다고 해. 그저 시를 쓰고 가까운 사람한테만 보여줬대. 에밀리는 처음부터 자신이 쓴 시를 책으로 낼 마음이 없었을까, 무슨 일이 있어서 그렇게 됐을까. 에밀리 이야기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텐데 그건 것도 본 적 없어. 아니 《에밀리》라는 그림책은 봤군. 이웃집 아이가 에밀리를 알게 되고 만나는 이야기. 그리 길지 않지만 괜찮았어.
언젠가 에밀리가 지금 시대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한 적 있어. 에밀리는 좋아하지 않았을까. 실제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만날 수 있으니 말이야. 이건 내 이야기군. 에밀리가 모르는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해도 가까운 사람은 가끔 만났겠지. 에밀리를 만나러 온 사람도 있었을 거 아니야. 에밀리가 늘 집 안에만 있었던 건 아닐 거야. 에밀리한테는 자신이 돌보는 뜰도 있었어. 사람보다 그런 걸 더 자주 만나고 글로도 썼겠어. 여기 담긴 시를 보면 에밀리 자신이 만난 꽃, 벌, 나비, 새, 바람 이런 걸 말하는 것 같은데. 분명한 건 나도 잘 모르겠어. 꽃이름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떤 건 은유로 쓴 느낌이 들기도 해. 에밀리가 가꾼 뜰에는 여러 가지 꽃이 피었을 것 같아.
나의 나라와 ─ 다른 이들 사이에 ─
바다가 하나 있지만 ─
꽃들이 ─ 우리 사이에서 중재하는 ─
직무를 다한다
-<나의 나라와 다른 이들 사이에>, 51쪽
여기에서 시 제목은 첫 연을 썼어. 이건 차례에 쓰인 거고 책속에는 제목 안 쓰였어. 앞에서 에밀리가 가까운 사람한테 시를 보여줬다고 했잖아. 에밀리는 뜰에서 본 걸 시로 썼어. 그게 있어서 에밀리는 다른 사람한테 말할 수 있었겠어. 실제 하는 말이 아닌 글말일지라도. 어떤 책에서 보니 에밀리는 2층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을까. 나도 밖에 나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오랫동안 집 안에만 있지는 않아. 걸으려고 밖에 나가고 나무나 꽃을 보러 밖에 나가. 하늘도 보는군. 에밀리가 살았을 때는 둘레가 걷기에 좋았을 것 같아. 나무 꽃 새와 벌이 많이 보였을 테니. 이제 그런 곳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 아주 사라지지 않아야 할 텐데. 사람은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해. 에밀리가 밤에 아주 안 나온 건 아니겠지.
정말 “아침”은 올까?
“낮” 같은 게 있을까
내 키가 산 만하면
산에서는 볼 수 있을까?
수련 같은 발이 있을까?
새 같은 깃털이 있을까?
나는 거의 들어본 적 없는
유명한 나라에서 가져온 걸까?
오 어떤 학자! 오 어떤 선원!
오 하늘에서 내려온 어떤 현자!
작은 순례자에게 꼭 알려주세요
“아침”이라 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정말 “아침”은 올까?>, 97쪽
앞에 옮겨쓴 시 잘 모르겠지만 조금 마음에 들었어. “아침”은 올까 하고 생각하는 게. 아침은 늘 오지. 밤이 가면. 밤이 가는 모습을 보고 아침이 오는 걸 보고 잠들 때가 많다니. 이젠 좀 그러지 않아야 할 텐데. 아침이 와서 반갑기는 해. 이 세상에는 아침을 맞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거야.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기쁜 일이지. 세상에는 기뻐할 일 고마워할 일이 많아. 그런 걸 가끔 잊어버리지만. 다른 생각에 빠져서. 에밀리는 어땠을까. 에밀리는 고마운 일 기쁜 일 자주 생각했을 것 같아. 그걸 시로 썼겠지. 시로 쓸 걸 잘 찾아냈을 것 같아. 그런 거 부럽군.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빨강머리 앤뿐 아니라 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에밀리 이야기도 썼어. 그 에밀리는 시인 에밀리와 상관있을까. 앤이나 에밀리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 분신이었겠지만, 이름이 같은 에밀리는 시인 에밀리도 생각나게 해. 언젠가 또 에밀리 시 만나고 싶어.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