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삶
정소현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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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100세 시대라 하지만, 진짜 백살까지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고 백살이 됐을 때 자신을 잊지 않을 사람은 얼마나 될지. 일흔 여든도 참 먼 느낌인데 백살은 더 멀다. 난 백살까지 살기 어려울 것 같다.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든다. 별일 없어도 우울하기도 한데. 큰 걱정도 없으면서 우울하다 하면 안 되겠지.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나도 모르는 바람이 마음속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게 없어지면 마음이 편해지고 덜 우울하려나. 나이를 먹으면 여러 가지를 덜 생각한다고 하던데, 내게도 그런 때가 찾아올지. 그때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아서 다른 마음은 생기지 않을지도.

 

 난 나중은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산다. 아니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고 준비하지 않았다고 해야겠구나.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살기 어렵다. 그런 준비 말이다. 맨 처음에 나오는 소설은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이다. 이 소설은 지금이 아니고 앞날이구나. 2055년, 2058년. 그래서 110세였다. 지금은 100세 보험일지도. 나윤승이 든 보험은 집에서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고 집에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거다. 윤승은 마흔까지는 노후를 생각하지 않았는데, 쉰이 되고 생각하게 됐다. 자식도 남편도 없고 믿을 건 돈밖에 없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윤승이 그랬던 건 아니다. 아버지가 알츠하이머에 걸리고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자 나윤승과 어머니는 아버지를 안락사시켰다(지금은 안락사 안 된다. 여기 나온 때는 지금보다 나중이다). 그 뒤 어머니는 우울증에 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윤승은 결혼하고 아이가 생겼는데 아이한테 사고가 나고 뇌사 상태가 되었다. 그때는 남편과 아들 호흡기 떼는 데 동의한다. 의사인 남편은 오지로 의료 봉사활동하러 가고 윤승은 일만 한다. 그러다 ‘품위 있는 사람-110세 보험’을 알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윤승이 만 일흔살이 되자 보험 혜택을 받게 된다. 집으로 음식을 해주러 사람이 오고 청소하는 사람도 온다. 윤승은 문화생활을 하고 즐겁게 산다. 하지만 여든이 되고 조금 이상해진다. 치매가 나타났다고 해야겠구나. 여든 넷에는 더 심해진다. 그렇다 해도 윤승은 즐겁게 산다. 보험회사에 앞으로도 보험을 한다는 동영상을 찍어 보낸다. 하지만 이 보험에는 치매증상이 나타나고 검사받고 치매 판정을 받으면 치매 안락사라는 특약이 된다. 윤승은 다른 것보다 그게 있어서 많은 돈을 내고 보험에 든 거다. 아버지와 자식을 죽게 한 자신은 즐거우면 안 된다면서. 보험을 들 때는 그랬지만, 여든넷이 된 윤승은 나아 보였다. 지난 일을 잊어서 그랬지만, 무엇이 좋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치매라 해도 그때를 즐긴다면 더 살아도 나쁠 건 없지 않나 싶은데. 보험료도 냈으니 보험회사에서 돌보면 되는 거 아닌가. 소설 보고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내가 그렇게 된다면 살기 싫을지도. 아직 오지 않은 걸 벌써부터 걱정하는구나. 지금을 즐겁게 살아야 할 텐데.

 

 다음 소설 <어제의 일들>은 예전에 본 적 있다. 세번째 소설인 <지옥의 형태>와 이어진 소설이기도 하다. ‘어제의 일들’에서 상현은 고등학생 때 아이들의 괴롭힘과 괴로운 일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머리를 다치고 기억을 잘 못하게 됐다. 상현은 자신을 돌봐준 간병인을 어머니라 하고 함께 살다가 어머니가 하는 주차장 일을 한다. 거기가 잘 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데 주차장이 생겨서 손님이 거의 오지 않았다. 그래도 상현한테는 그곳이 가장 좋았다. 어느 날 오랜만에 손님이 오는데 그 사람은 상현을 알아보고 자신은 중학생 때 친하게 지낸 율희라 한다. 율희는 상현한테 자꾸 무언가를 주었다. 그리고 중학생 때 있었던 일도 말했다. 상현은 잊어버린 일을. 지금은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일들을. 상현은 처음에는 율희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걸 공책에 적었지만 곧 하지 않게 된다. 율희가 주는 물건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다. 상현이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한 건 율희가 한 말 때문이었다. 난 율희가 상현한테 미안해서 이런저런 거 주는 건가 했는데, <지옥의 형태>를 보니 그게 아닌 듯했다. 율희는 상현한테 물건을 주고 자신한테 붙잡아두려한 건 아니었을까 싶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죽은 사람은 율희 같다. 율희는 자신이 딸이어서 부모한테 인정받지 못했다고 여겼다. 늘 마음이 바깥으로 갔다. 난 상현보다 율희와 비슷할지도. 나도 상현 같은 사람 부럽다. 뭐가 부럽냐면 혼자만의 세계에서도 잘 사는 게. 율희는 사람들이 다 자신을 떠난다 여긴다. 남편과 딸도. <지옥의 형태>에서 ‘나’는 죽어서도 그 기억을 되풀이한다. ‘나’한테는 그게 지옥이다.

 

 청계천에 정말 개미촌이 있었구나. 그러면 <그 밑, 바로 옆>은 예전 이야길까. 꼭 그렇지는 않다. 청계천 복원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니. 견이는 할머니가 죽고 땅속에 홀로 남았다. 할머니는 죽었는데 견이한테 삼촌한테 돈을 달라고 하라거나 어딘가에 찾아가라는 말을 한다. 할머니 말대로 했더니 견이는 진짜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와 동생도 만났다. 견이는 좋은 아파트에 살게 되지만 그곳은 추웠다. 견이는 다시 할머니한테 돌아온다. 그 뒤 견이는 어떻게 됐을지. 식구라 해도 오래 떨어져 살면 남이나 마찬가지다. 견이는 가난해도 할머니와 살 때가 더 따듯했겠지. <엔터 샌드맨>은 같은 사고를 겪고 살아 남은 두 사람 지수와 지훈의 이야기다. 지수는 친구 은하와 함께 있었는데 혼자 살아 남아 죄책감을 가졌다. 사고가 나고 살아 남은 사람은 죄책감을 느끼겠지. 그런 두 사람이 오래 잘 지낼까. 처음에는 괜찮아도 시간이 흐르면 달라질 것 같다. 그래도 친구로라도 지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마지막 소설은 거의 끝날 때쯤 반전이 기다린다. 삼촌과 철완(<꾸꾸루 삼촌>). 이 말만 쓸 거였다면 한번만 봐도 괜찮았을 걸 그랬다. 두번 봐도 잘 못 쓰는구나. 한국 단편소설은 늘 그렇다.

 

 

 

희선

 

 

 

 

☆―

 

 처음에 불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훗날 행운으로 바뀐 것이 꽤 있는 걸 보면, 살아 있는 게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의 일들>에서, 63쪽)

 


 “모든 게 화무십일홍인 거라. 후회하고 원망하고 애끊으면 뭐 해. 좋은 날도 더러운 날도 다 지나가. 어차피 관 뚜껑 덮고 들어가면 다 똑같아. 그게 얼마나 다행이야.”  (<어제의 일들>에서,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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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0-12-25 0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있을지 모를 미래군요. 희선님 쓴 글을 보니 소설이 궁금해집니다. 검색 돌입^^ 근데요, 희선님 글에선 목소리도 들리고 표정이나 몸짓이 전해져요. 신기하죠^^;;

희선 2020-12-26 00:19   좋아요 0 | URL
언젠가 이런 세상이 올 것 같기도 합니다 그전에 인류가 살아 남을지... 지금 기후변화가 심해서... 이런 생각하면 안 되겠지요 지금부터라도 더 나빠지지 않게 해야죠 글에서 말하는 것 같은 걸 느끼시다니 그건 좋은 거겠지요


희선

서니데이 2020-12-25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메리크리스마스.
성탄의 기쁨을 나누며
즐거운 크리스마스 연휴 보내세요.^^

희선 2020-12-26 00:2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성탄절 잘 지내셨어요 그날이 지나고 말았네요 저는 게으르게 지냈습니다 요새 늘 그러네요 서니데이 님 주말입니다 주말 편안하게 지내세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