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도시 이야기
최정화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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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도시에 알 수 없는 병이 생긴다. 그곳은 L시고 병 이름은 다기조다. 처음에는 그 병을 무서워하기도 하는데 어느 순간 L시 사람은 그걸 받아들인다. 그리고 잊는다, 지난날을. 한 손을 떨어뜨리고 어제를 기억 못하고 그저 오늘만 산다. 아이가 사라졌을 때는 찾으려 했는데 자신한테 아이가 있었다는 것조차 잊는다. 아이들이 어딘가로 사라진 건가 했는데 아이들은 다기조병에 걸리고 모두 죽었다. L시에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다. 이건 슬퍼하고 잊지 않아야 할 일인데 L시 사람은 슬픔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걸 병 탓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기조병에 저항하는 흰개들은 한 손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온몸으로 다기조병을 앓았다. 저항한다 해도 다기조병에 걸리지 않는 건 아니다. 흰개들은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모래마을에 살았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그곳을 나와야 했다. 모래마을에서는 L시로 들어오는 쓰레기를 태웠다. 제대로 된 시설도 없이 그냥 태웠다. 모래마을은 안 좋은 걸 버리는 곳이었다. 흰개들은 정부가 거짓말한다고 하고 L시를 버리려 한다고 말하지만 L시 사람은 그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건 기억이 없어설까. 기억이 없는 것에 적응하고 사는 거구나. 지금 괜찮으면 되지 않느냐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전염병이 생긴 한 도시를 막고 버리는 이야긴가 했는데 그것과 조금 다른 듯하다. 아니 정부가 L시를 버린 건 맞다. 다기조병에 걸리면 한 손을 떨어뜨리고 기억을 잊듯 정부도 L시를 떨어뜨리고 그런 곳이 있었나 하는 걸지도. 그런 걸 L시 사람이 다 알면 좋겠지만 L시 사람은 잘 모른다. 그 일에 관심없다. 기억이 없어설까. 모래마을에 사는 흰개들은 저항했는데 그게 쉬워 보이지 않는다. 다기조병이니 기억을 잊기도 한다. 그래도 보통 L시 사람과는 다르게 모두 잊지 않았다. 교역소에서 일하던 이동휘는 L시를 떠나 모래마을에 가고는 떨어졌던 손이 생기고 잊어버린 기억도 돌아온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한데. 다기조병에 저항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건지도.

 

 이 이야기를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이동휘는 자신한테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는 걸 잊었다. 이동휘도 다기조병에 걸렸다. 아내가 먼저 걸리고 아내는 이동휘를 잊었는데, 이동휘가 모래마을에 갔을 때는 아내가 이동휘를 알아봤다. 아내도 다기조병에 저항한 걸까. 고요는 이동휘 딸인 듯한데 앞에서는 경마장에서 만났다고 한다. 혹시 그건 다기조병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걸까. 다기조병에 걸리면 손에 각질이 일어나고 기억이 뒤죽박죽 되는 듯하다. 눈이 안 보이기도 하다가 감각이 달라진단다. 다기조병은 손이 떨어지고 다른 사람한테 옮기고 낫는다는데 손이 떨어져도 낫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을 잊는 걸 보니. 어른은 그 병에 걸리고 어느 정도 지나면 전과 달라져도 죽지는 않지만(달라진 걸 견디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있다), 아이는 죽는 듯하다. 아이들이 모두 죽었다는 걸 보니.

 

 내가 조금 느낀 건 정부에서 속이는 걸 그대로 믿지 않고 저항해야 한다는 거다. 기억을 잊으면 편할지도 모른다. 힘들고 아프고 슬픈 기억. 아이들이 사라진 일. L시에는 아이가 없어서 지금 사람이 모두 죽으면 빈 도시가 될 거다. 그렇다고 아주 절망스럽지는 않다. 다기조병에 저항하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이동휘뿐 아니라 모래마을을 나온 사람은 여전히 다기조병에 저항했다. 그런 사람이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거다. 그러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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