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다 읽고 무슨 말을 어떻게 쓰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자 버렸다. 자고 일어나서 써야겠다 했다. 난 자면서도 이걸 생각했다. 어떤 때는 꿈에서 쓰기도 하는데, 그게 현실에 도움된 적은 한번도 없다. 이번에도 꿈속에서 어떻게 쓸지 걱정한 듯하다. 뭔가를 썼느냐 하면 하나도 못 썼다. 어차피 꿈이지만. 이상한 꿈만 꿨다. 어딘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난 나중에 버스표를 사야겠다 하고 기다렸다. 여러 사람이 줄을 서 있어서 그 줄이 다 사라지면. 조금 있다 줄 선 사람 뒤로 갔는데 내 앞에 있던 사람이 모두 사라지고 표 팔던 곳은 문이 닫히고 안에는 불도 꺼졌다. 난 깜짝 놀라서 창구를 두드리면서 표 사야 한다고 했다. 그곳은 내가 사는 곳에서 멀어서 직행을 타지 않으면 집에 가기 어려웠다. 꿈속이 밤이었지만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10시 정도였는지. 표를 사지 못해 집에 가지 못한 난 어떻게 됐을지. 그 꿈이 끝이 아니다. 책을 넣었던 상자였는지 모르겠는데 그 안에 새끼 돼지가 있었다. 네 마린가(이거 돼지 꿈?). 책을 사면 새끼 돼지를 주기도 하나, 꿈이니. 꿈속에서 난 그걸 어떻게 키우나 했다. 그걸 한달 정도 내버려둬서 한마리는 죽었다. 나중에 돼지는 작은 캥거루가 되었다. 꿈이니 그런 거겠지.

 

 재미없는 꿈 이야기로 시작하다니. 내가 잠을 잔 건 한시간 반쯤이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표를 못 산 건 이 소설에 그런 내용이 있어서 그랬을지도. 새끼 돼지는 모르겠다. 2017년에 마흔해 전인 1977년 일을 생각하다니. 1977년에 스무살이었다면 2017년에는 예순살이다. 옛날 예순살과 지금 예순살은 다르겠지만 조금 놀랐다. 왜 마흔해가 다 지나고 1977년을 생각했을까. 소설가 김희진 사인회에 김희진이 쓴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들고 온 누군가의 딸 때문이었을까(이 소설 제목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제목과 비슷하다). 김유경은 예전에 김희진이 소설가가 됐다는 걸 알았지만 소설은 읽지 않았다. 1977년에 김희진과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는데 김희진이 김유경 일터 상사였던 적도 있고 가끔 만나기도 하면서 오래된 친구가 됐다. 김유경은 김희진을 친구라 여기지 않고 그저 아는 사람으로 생각하는지도. 왜 김희진은 김유경을 가끔 만났을까. 자신이 김유경보다 낫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지도. 왜 1977년일까. 사실 난 1977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른다. 그저 1970년대에는 대학생이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기도 했지 할 뿐이다. 1980년대는 군사 정부와 싸웠다고 해야겠구나. 1977년 모습이 나오려나 생각하지 않기를. 그런 말이 아주 없지 않지만 여자대학 기숙사에 사는 여자 이야기 같다. 난 여자와 여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 같은 거 잘 모른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관심을 가지면 그런가 보다 한다(누가 날 좋아하겠어 하는 생각에 빠지는구나). 김희진은 좀 달랐다. 한사람도 아닌 두 사람이나 자신이 아닌 김유경한테 관심을 가진 게 마음에 안 들었을지도. 김희진 소설과 김유경 기억은 조금 달랐다. 김유경은 그걸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다니. 김유경이 은희경 같은 느낌이 조금 들기도 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은희경 이야기는 아닌 것 같지만, 그런 게 아주 없지 않을지도.

 

 시작이 뒤죽박죽이다. 2017년에 김유경은 친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지만 오래 알고 지낸 친구 김희진이 쓴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읽고 1977년을 떠올린다. 김유경은 1977년에 스무살로 대학에 붙고 기숙사에 들어간다. 기숙사에는 지방에서 온 사람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계층 이야기도 했구나. 학교에 가면 서울과 지방으로 나눈다는 말도 했다. 그때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고시생을 뒷바라지 하면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고. 유경이 같은 방을 쓰는 선배가 고시생과 사귀었는데 남자는 시험에 붙고 선배한테 집에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고 했단다. 김유경이 살던 지방 남자 고등학생은 여자 고등학생 인기 투표 같은 걸 했다. 인기 투표는 왜 하지. 이런 건 예전부터 있었다니. 기숙사에서 김유경은 322호고 김희진은 417호였다. 김유경 기억에 김희진은 자주 나오지 않는데 김희진은 자기 소설에서 김유경을 세번째 공주라 했다. 실제 있었던 사람으로 실제와 조금 다른 이야기를 쓰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까. 김희진은 소설에서는 자신이 주인이다 했다. 사람은 다 자기 이야기 주인이기는 하다.

 

 그때 사회 정치는 양념이고 스무살 대학생이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를 사귀고 헤어지는 이야기로 보인다. 기숙사에서 일어난 큰일은 수배중인 남학생이 기숙사에 누구나 오는 날 와서는 돌아가지 못한 일이다. 평범한 남학생이었다면 안 좋은 말 듣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텐데 수배중인 사람이어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 그 남학생이 기숙에 있다가 나갔다는 걸 김희진이 사감한테 말했다. 김희진은 왜 그랬을까. 기숙사 사람이 자신을 따돌린다고 여긴 건지. 김희진은 소설에 기숙사 사람을 공주라 썼다. 김희진이 어떤지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집이 부자는 아니었나 보다. 지방에서 오고. 김희진한테 다른 사람 처지는 좋아 보이고 자신은 안 좋아 보였는지도. 누가 일부러 김희진한테 뭐라 하지 않았지만 혼자 상처받는. 그건 마음속으로. 내가 이 소설에서 느낀 건 이런 거다. 다른 것도 있을지도 모를 텐데.

 

 스무살을 좋은 때다 말하는데 그때만 빛나고 좋을까. 나이를 먹으면 빛나는 시절은 다 갔다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을 거다. 갈수록 빛이 사그라들지 몰라도 사람은 어느 때든 빛날지도. 이런 말로나마 내가 나를 위로하는 건가.

 

 

 

희선

 

 

 

 

☆―

 

 1977년을 보냈던 사람들은 그 해를 무엇으로 기억할까. 김승옥이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첫번째 이상문학상을 받았고 리영희의 《우상과 이상》이 필화 사건에 휘말린 해였다. 의료보험이 시작되었고 제1회 대학가요제가 열렸고 이리역에서 화약을 싣고 가던 열차가 폭발했다. 매스컴은 수출 백억 달러 시대와 함께 1인당 국민총생산이 8백 달러를 넘어섰다고 떠들어냈다.  (315쪽)

 


 우리 둘 중 누군가의 기억이 틀린 것일까. 아닐지도 모른다. 기억이란 다른 사람 기억을 만나 차이라는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한사람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차이 나는 것만이 반복되어 돌아온다”는 말처럼.  (337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0-07-11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77년도 나름 빛나는 해였군요.
의료보험이 그때 시작됐다니
저는 김대중 정부 전후에 생긴 건 줄 알았더니...
대학가요제 생기고 대학 가겠다는 사람 꽤 많이 생겼을 걸요?
이리역 폭발 사건은 저도 기억합니다.
저는 그때 초등학생이었는데 담임을 좀 안 좋은 분을 만나서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었네요.ㅎㅎ

희선 2020-07-12 01:30   좋아요 1 | URL
해마다 무슨 일이 많이 일어나기는 하겠습니다 올해는 코로나19랑 많은 비... 중국에 비 많이 왔다는 소식은 몇해 전부터 들은 것 같기도 하네요 사막이 늘어서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제가 어릴 때도 대학가요제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안 한 듯해요 텔레비전을 안 봐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아쉽기도 합니다 안 봤으면서 이런 말을... 대학가요제 생기고는 대학에 들어가고 한번 나가볼까 한 사람 많았겠습니다 담임 선생님을 잘 못 만나다니, 다른 건 나았다면 괜찮았을 텐데... 담임 선생님이 별로면 학교 가기 싫을 것도 같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이 점심 시간에는 학교 방송 못 듣게 하고 일요일에도 학교에 오라고 해서 무척 싫었습니다 선생님이 무서워서 빠지지도 못했네요 아침에도 일찍 갔던 것 같아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