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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사생활 - 이토록 게으르고 생각보다 엉뚱한 ㅣ 프린키피아 6
알베르 무케베르 지음, 이정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름 기억력이 좋다고 자부한다. 주변 사람들도 종종 말한다. 별걸 다 기억한다고. 그래서 나는 꽤 정확하게 과거를 저장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타인과의 기억이 엇갈리는 일을 마주할 때면 괜히 억울하기도 했다.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팩트 체크를 하다가 언성이 살짝 올라간 적도 있다. 그래도 강하게 밀어붙이는 타입은 아니라 금세 수그러드는 편이지만.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우리는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기억을 갖게 되는 걸까? 어느 쪽이 틀린 걸까? 아니면 둘 다 틀린 걸까?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에 이 질문을 풀어줄 것 같아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책은 크게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는가?', '나의 뇌, 타인의 뇌 그리고 세상' 2부로 구성되고 세부적으로 10가지 챕터의 글로 진행된다.
책은 먼저, 우리가 세상을 보고 듣고 기억하는 방식부터 조용히 파헤친다. 뇌는 모든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늘 빠르게 추론하고, 짐작하고, 비워진 부분은 상상으로 메꾼다. 그래서 종종 착시도 생기고, 누군가는 존재하지도 않은 말을 들었다고 확신하기도 한다.
어제의 일도 비슷했다. 분명히 내가 아는 확실한 팩트만 떠올렸지만, 당사자의 기억은 달랐다. 추후 알아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었다. 기본의 스타일을 적용했기에 개인사가 있어 텀이 생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내가 놓친 부분, 뇌가 얼른 스킵 해버리는 부분들이 떠올랐다. 그나마 나는 팩트 체크를 즐기는 편이라 캘리브레이션을 다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이가 그렇지는 않다.
2부에서부터 더 재미있어진다. 스트레스에 대한 부분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음은 알지만 실질적 경험은 부정적인 내용들이었음을... 가끔 확신에 차서 우기는 사람들을 만나면 속에서 열이 올라온다. 왜 자기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배제한 채, 그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싸움으로 번지지 않으려 말을 돌린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그나마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들도 그 순간에는 최선을 다한 것뿐이니까. 오히려 뇌가 그들을 속여서 확신하게 만든 거다. 나 역시도 그런 적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웃음이 나온다.
아홉 번째 챕터의 제목은 군대 시절의 내게 했던 포대장의 말이 떠오른다. 물론, 상황이 달랐기에 그때의 행동은 달라졌을 뿐. 마지막 챕터에서 '가짜 뉴스의 홍수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섯 가지 생존 지침'은 많은 이들이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았다.
책에서 강조하는 핵심은 간단하다. 우리 뇌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살아남았다. 그래서 때로는 틀린 기억도, 어설픈 판단도, 근거 없는 자신감도 우리에게 필요했다. 다만 중요한 건, 그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확신보다 질문을, 비난보다 이해를, 완벽함보다 유연함을 선택하는 것.
이 책은 과학 심리를 기반으로 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내가 늘 겪던 인간관계의 오해들, 스스로에 대한 회의들, 감정의 폭풍들이 사실은 뇌의 전략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책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너의 뇌도, 그들의 뇌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고. 그래서 나도 조금은 관대해지기로 했다. 타인의 기억이 다르다고 바로 발끈하지 않고, 내 확신이 틀렸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며, 서로의 맥락을 이해하는 노력. 그것이 곧 이 책이 이야기하는 정신적 유연성 아닐까?
『뇌의 사생활』은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곳들을 이해하게 하고, 결국 더 나은 관계,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내 뇌의 이야기를 알고 싶은 사람, 타인과 덜 싸우고 싶은 사람, 스스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 전하며 리뷰를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