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伊豆)의 시모다(下田)에서 남쪽으로 해상 7리쯤 떨어진 곳에 지도에도 없는 작은 섬이 있어, 그 이름을 월금도(月琴島)*라고 한다.

월금도…….

물론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옛날에는 바다 섬이라는 극히 흔해빠진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지금도 그것이 이 섬의 진짜 이름이다.

‘그 아가씨 앞으로 많은 남자의 피가 흐를 것이다. ……그녀는 여왕벌이다. ……접근하는 남자들을 차례차례 죽음에 이르게 할 운명이다…….’

도모코여,
섬으로 돌아가라.
그대가 도쿄에 와 봐야 좋을 일이 없다.
그대의 신변에는 피 냄새가 난다.
그대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도모코여,
섬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두 번 다시 그곳을 떠나서는 안 된다.

패닉이란 그리스의 목양신 판에 사로잡힌 상태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이 생각한 바에 의하면 사람들이 판에게 사로잡히면 당황해 어쩔 줄 모르고 지독한 공황상태에 빠진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그날 호텔 쇼라이소는 분명 판이 사로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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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는 너도 괴물 중 하나잖아."

"적? 적이 누군데."
"자기 자신의 불민함."
"어이, 그런 현학적인 대사는 집어치워. 그보다 당장 우린 뭘 하면 좋지?"

류 님은 전에도 말했듯 인형처럼 아름답다. 교토인형처럼 오목조목하고 섬세하다. 교토인형처럼 차갑고 새침하다. 하지만 이런 타입의 여자들일수록 성적인 욕구는 보통이 아닌 사람이 많은데 류 님도 그런 인상이었다.

아,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센고쿠 데쓰노신, 그도 역시 몽유병자였던 것이다.

그는 서른네다섯쯤 되어 보였는데 이렇다 할 장점이 없는, 말하자면 평범한 생김새를 한 사람이었다. 열차 안의 혼잡함 때문에 후줄근해진 모직 옷에, 이 또한 오래된 것인 듯 낡은 하카마를 입고 있었고 약간 더러워진 펠트 중절모 아래로는 더벅머리가 비어져 나와 있었다. 아무리 봐도 그다지 출중한 생김새는 아니었다. 키도 작고, 평범함을 넘어 궁상맞았다. 나는 한눈에 그가 마을사무소 서기일 거라고 짐작했다.

단지 신경 쓰이는 것은 남자의 눈매였다. 눈만은 아주 아름답고 맑았다. 맑을 뿐만 아니라 예지의 빛마저 어려 있었다. 그렇다고 차갑지는 않았다. 은은한 온화함을 띠고 가라앉아 있었다.

"혹시 당신들, 귀수촌(鬼首村)의 후루가미 댁에 가시는 거 아닙니까?"

이상한 남자가 내민 명함을 보니 긴다이치 코스케(金田一耕助)라고만 적혀 있었다.

이번 사건의 충격이 나오키의 몸 안에 잠복해 있던 병을 유발시킨 모양인지 그는 이른바 조발성치매증이라고, 살아 있는 시체나 마찬가지인 상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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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곤란해. 어쨌거나 제대로 된 상황이란 생각은 안 든다. 미쳤어, 정말이지. 뭐...... 옛날부터 제멋대로인 성격이긴 했지.

하지만 그 운모 속에서 뭔가 영문을 알 수 없는 기묘한 위협이 뜨겁게 엿보이는 게 느껴져, 이 자식 진짜 취한 게 아니군...... 하고 퍼뜩 경계심이 들었다. 나오키도 그런 내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당황해서 눈을 내리깔더니 다시금 위스키를 따랐다.

대상이 되는 실체를 공들여 묘사하는 것은 자연의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에도 사상이 없으면 안 된다. 사상이 없는 소설은 실없는 글에 지나지 않는다. 사상이 없는 그림도 마찬가지로 실없는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그림을 보고 모르겠다는 놈이 있는데, 그런 놈들은 사상이 없다는 걸 자백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실은 말이지......."
하고 개처럼 입술을 날름 혀로 핥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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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번째 대멸종의 목격자로서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남긴다. 최고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한다. 또 최고 포식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생물량이 가장 많았던 생물은 반드시 멸종한다.

보통 두 가지를 겸하는 일은 없다. 먹이 피라미드의 가장 위를 담당하는 최고 포식자는 생물량이 적고, 생물량이 가장 많은 생물은 먹이 피라미드의 아래쪽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 아는가? 최고 포식자이면서 생물량도 가장 많은 별난 생명이 등장할지. 만약 그렇다면 그 생물 종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생명일 것이다. 가장 성공적이지만 대멸종의 시기에는 가장 파멸적인….

잠자리는 3억 년 전부터 이미 비행의 천재였다. 빠르게 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지 비행, 후진 비행, 그리고 빠른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 유연한 날개 구조와 비행을 제어하는 복잡한 근육 구조가 민첩성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광합성의 결과는 무엇인가? 첫 번째 결과는 화학에너지 생성이다.

광합성의 두 번째 결과는 산소 기체 생성이다.

석탄을 사용하려면 그 이전보다 훨씬 넓은 숲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금씩 더워질 것이다. 이 쉬운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나의 추위는 그대들의 더위가 될 것이다. 나는 추워서 사라진다. 그대들은 더워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알면서 당하면 바보다.

빛은 빅뱅의 순간부터 있었다. 하지만 캄브리아기 이전에는 눈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빛은 큰 구실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단 눈이 생기고 나자 가장 큰 선택압력으로 작용했다.

생존을 위한 먹이 동물의 첫 번째 법칙은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다. 먹이는 대개 눈이 양쪽에 있다. 선명한 상을 형성하지는 못해도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포식자의 첫 번째 생존 원칙은 먹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다. 포식자나 경쟁자에 대한 걱정은 그다음이다.

사냥을 위해서는 정확한 거리 측정이 필요하다. 이들은 한 쌍의 눈을 앞쪽에 배치했다.

눈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모든 동물은 빛에 적응해야 했다. 벌레 같았던 동물들은 갑옷을 두르고, 경고색을 과시하고, 위장 형태와 위장 색을 띠거나, 추적하는 적을 따돌릴 수영 실력을 갖춰야 했다.

"포스가 늘 당신과 함께하길
May the Force be with You!"

여기서 포스Force란 무엇일까? 영화 〈스타워즈〉의 정의로운 제다이 기사에 따르면 포스, 즉 힘은 ‘미디클로리안’이라는 물질의 산물이다.

생명의 초기 역사에 섹스란 없었다. 암컷과 수컷이 없었다는 말이다. 모든 생식은 무성생식이었다. 먹고살 만하면 분열했다.

배우체 중 작아서 운동성은 있지만 영양분은 난자를 만나러 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있는 것을 정자라고 한다. 반대로 덩치가 커서 운동성은 없지만 수정 후 개체로 성장할 만큼 충분한 영양분이 있는 것을 난자라고 한다.

정자-정자 조합은 둘 다 운동성이 좋아서 수정될 확률은 높지만 개체로 성장할 양분이 없다. 난자-난자 조합은 영양분은 충분하지만 운동성이 없으니 수정될 확률이 낮다. 그래서 운동성 있는 배우체와 영양분이 충분한 배우체의 짝, 바로 정자-난자가 최선의 조합이다.

"죽음이란 또 하나의 위대한 모험이란다."

죽음은 언제나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불러온다. 죽음이 있기에 생명도 있다.

인간들이여, 미토콘드리아를 우습게 보지 마라. 다스베이더 버전으로 말한다.

"내가 네 아빠다 (I am your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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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우리를 불행하게 할 거예요."

저장할 게 없으니 부자와 가난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다 같이 배불렀고 다 같이 배고팠으며 도구와 무기를 공유하고 옷도 같이 지어 나누어 입는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딱히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도 없다.

"두란이 말이 옳네. 아란, 그들처럼 살지 마시게. 내가 죽거들랑 다시 떠나시게들."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싶은 게 있다. 바로 건강이다. 하지만 현대인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또 뭔가를 가지고 싶어 한다. 명예, 권력, 돈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세 가지 가운데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다. 하나만 가져도 행운이다. 가끔가다가 두 가지를 가진 사람이 있다. 정말 부럽다. 그런데 세 가지 모두 가지려는 사람이 있다. 행운이 반복되어 한 사람에게만 올 리가 없다. 부정이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감옥에 간다.

어느 인간이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나는 대형 포유류를 대표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행복한 대형 포유류는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평화롭게 살지만, 불행한 대형 포유류는 모두 같은 이유로 멸종한다. 바로 인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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