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알기로 권신들이나 변방의 성주와장수들이 사사로이 죄인을 궁형에 처한다고 들었도다. 이는 당나라의 못된 제도를본뜬 것이요, 국법을 어긴 것이니 마땅히문죄하겠노라."
추상 같은 옥음은 곧장 변방의 뇌옥에까지 전달되었다. 이로써 죄인을 궁형으로 다루던 관습이 일거에 사라지게 되었다.

북정군 본진을 영자성에 설치한 양소화는 동쪽으로 군진을 넓혀 월희 말갈의 동태를 파악했다. 흑수와 인접해 있으면서 흑수의 완력에 복종하거나 눈치를 보는 부족이었다. 월희 쪽을 주시한 것은 월희를 먼저장악하여 흑수를 고립시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동양 대해를 정복한 장문휴가 어느정도 토평했지만 완전히 굴복시키지는 못했는데 그가 사직하고 떠난 뒤에는 흑수의조종을 받았다.

"적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해서는 안된다. 명심하라!"양소화는 진병하는 순간에도 결코 적이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라는 장령을잊지 않았다.

남흑수의 맹장 오소걸몽은 발해의 북정군 통수가 여장군이라는 데 놀라움과 함께승리를 자축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북흑수의 수령낙길몽과 연합하여 발해를 치기로하고 월희부의 발문계와 발기계 형제에게선봉에 서서 발해군을 유인하게 했다.

오소걸몽이 발해 군사가 강병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대일하가 영자성을 지키고 있을 때만 해도 감히 발해 지경을 넘볼 생각조차못했다. 그러나 황제가 바뀌고 여장군이 북정군 통수가 되었다니 흑수의 존재를 부각시킬 호기라 여겼다. 발해를무찌르기만 하면당나라의 지원을 받을 수있고 발해의 집요한 공격도 피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잠깐이었다. 영자성으로부터 생각지 못한 흉보가날아들었다. 영자성 북동방의 전진기지인자림성이 흑수의침공을 받아 함락됐다는급보였다. 군사를 보호하기 위해 적을 유린하느라 여러 날 지체한 사이에 흑수군이 발해의 요충지인 자림성을침공한 것이다."아! 내가 어리석었도다."

영자성의 방어벽이자 흑수를 경략하는 제일 요충지가 오소걸몽의 수중에떨어졌기에 앞으로 적잖은 희생을 각오해야 했다. 자림성수성장 방철은 끝내 순절했고 포로가 된 군사만도 5백 명이 넘었다.

"대장군께서는 여자니까 행여라도 전공을 크게 세워야 한다고 고심하십니까? 대화인 장군께서는 적을 물리침에 힘보다는지혜를빌렸다고 들었습니다." 심복 장수 왕치장이 끝내 듣기 거북한소리를 했다.

태백산 일대의 사냥꾼과, 화전을 일구며칩거해 있던 현사들이 장문휴를 따르기로한 것은 법연스님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3백 명밖에안 되었지만 날이 갈수록 수효가불어나 북쪽으로 진병할 때는 1천여 명이나 되었다. 넉넉하지 못한 대로 군자금도충당되었고 군마와군막, 병장기와 수레도

모양새를 갖추었다. 발해의 제일 맹장이요보국대장군이었던 장문휴는 1천여 기밖에안 되는 민병으로 소소한 말갈 부족을 차례차례•굴복시키며 북진했다.

"우리가 쳐부숴야 할 적은 흑수가 아니냐. 흑수와 가장 가까운 부족이 월희와철리와 불열이 아니겠느냐. 그들을 앞세우면 흑수를가볍게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장문휴가 발해인보다 말갈인들을 선호하고 중용하는 까닭을 알게 된 양두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 양소화가 얼마나 노심초사하고있을까 걱정했다. 발해 역사상 두 번째 여자 대장군이지만 북정군 통수가 된 것은 정말 대단한일이었다. 임무를 완수하면 응당황성으로 올라가 중신의 반열에 오르게 될것이다. 그런 막중한 임무를 띠고 북방으로와서 요충지를적에게 내주었다니 지금쯤마음의 고통이 크리라고 생각했다.

"아, 속았구나!"
낙수몽은 말달리기 어려운 험로에 들어선데다 수효를 짐작할 수 없는 복병을 만났고, 뒤에는 추격병이 무서운 기세로 덤벼드는 걸 보고 맥이 풀렸다. 군사들은 제멋대로 도망치느라 경황이 없었다.
"혈로를 뚫어라!"

혈로를 뚫기 위해 장검을 들고 앞장선 낙수몽은 산자락에 우뚝 선 장수를 보았다.
"발해 대장군 장문휴가 낙수몽의 목을가지러 왔다. 항복하면 살려주겠지만 거역하면 몰살하겠다!"

쩌렁쩌렁 울리는 저 우렁찬 목소리, 발해제일 명장이요 당나라를 놀라게 한 그의 용맹은 신화처럼 떠돌았다. 동양 대해를 평정하고 말갈 제부를 속복케 한 대장군이 아니던가. 보국대장군이 전장에 나섰으면 적어도 수만 군사가 따르고 있을 것이다.

적장이 장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낙수몽도 장창을 꼬나잡고 말을 달렸다. 낙수몽이 뒹굴었다. 장문휴의 칼날에는 무서운 힘이 실렸다. 칼자루를 잡은 손이 얼얼할 만큼 상대의 장력이 느껴졌다.
낙수몽은 항복을 선언하고 군사들에게도 도망가지 말고 병장기를 버리라고 소리쳤다.

"나라의 근간을 바로잡고 태평성대를 구가하려면 무릇 밖으로는 변방이 조용해야하고, 안으로는 충절이 가득해야 합니다.당나라가 두려워하는 대장군께서 군권을쥐고 천하를 호령해야 나라의 안녕을 도모합니다. 저를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젊은 시절, 그들은 서로 좋아하면서도 황자대문예 때문에 결합할 수 없었다. 그 시절이 지나자 양소화는 장문휴를 오라버니 대하듯 했고, 장문휴 역시 누이 대하듯 정을나누었다.

"하룻밤만이라도 제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연정을 달래 주십시오."
장문휴는 그제야 양소화가 못 마시는 술을 부러 마셨다는 걸 알았다. 그녀도 이제서른 중반의 여인이었다. 장문휴는 말없이양소화를 끌어안았다. 건장한 사내의 품에안긴 여인은 기다림에 매여온 지난 세월이서러운지 나지막이 흐느꼈다. 장문휴는 그런 양소화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대문예가아니었던들 두 사람은 혼례를 치르고 자식도 낳았을 것이다.

"폐하, 세상에 널리 알려진 대로 장문휴는 천하 명장이옵니다. 장문휴가 군권을 다지면 밖으로는 당나라를 견제하고 번족들의 경거망동을 막으며, 안으로는 충직한 장수를 널리 중용하는 성덕이 되옵니다. 지난날 성무고황제께서는 장군기만 휘날려도당나라 군사들이 지레 겁을 먹었사옵니다.사해를 다스리기 위해서 장문휴가 폐하의곁을 지켜야 하옵니다."
대신 미발계는 오히려 장문휴를 중용하라고 간했다.

"장문휴의 선대를 살펴보아도 충직하지않은 자가 없었나이다. 부친 장사무는 선제를 모시고 비사성을 빼앗고 장렬히 전사했으며, 조부 장작명은 반당투쟁으로 목숨을버린 충신이었나이다. 장문휴의 피 속에는반심이 있을 수 없으니 장문휴을 곁에 두옵소서."
태사 신승도 미발계와 같은 뜻을 피력했다.

"황명의 지엄함을 어찌 모르십니까?"
양소화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장문휴를전장에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전투가 그에게는 마지막 교전이 될지도 모른다. 도성으로 올라가 군권을 쥐게 되면다시는 일선에서 직접 칼을 휘두르지 않을것이다. 그렇기에 온몸을 던져서라도 흑수를 물리치고 오소걸몽을 사로잡으려는 것같았다.

적장을 사로잡은 장문휴는 추격을 늦추지 않았다. 오소걸몽의 본진을 섬멸하는 것은 오소걸몽을 사로잡는 것만큼 긴요했다.

양소화가 비보를 접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아, 하늘이시여! 아니 됩니다. 아니 됩니다."
양소화의 울부짖음이 너무 처절해 보는이도 눈물을 쏟게 했다. 당나라를 놀라게했던 일세의 영웅 장문휴가 적이 쏜 독화살에 쓰러졌으니 하늘이 무심했다. 비로소 대수령을 사로잡아 남흑수를 토평했거늘 어찌하여 일세의 영웅을 거두어가는가. 부친장사무가 장렬히 전사하며 비사성을 되찾아 발해 품에 안겨주었듯이, 유복자로 태어나 불굴의 의지로 무시에 장원급제하고 수군을 길러 당나라를 거침없이 침공한 대장군은 독화살을 뽑지 못한 채 한세상을 마감했다.

"나라의 봉공을 받는 대장군은 법도를지켜야 하고 황상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아니 됩니다. 군국대사라면 바른 진언과 간쟁을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정녕 사사로운 것입니다."
"황제는 사사로이 남의 여인을 취해도그만이고 대장군은 법도를 따라야 하느냐?법도란 물이 흐르는 것과 같아야 한다."
신달미는 양소화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표문을 어람한 대흠무는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양소화의 청을 받아들였다.
"양소화의 표문은 방자할 정도로 당돌하지만 밉지 않은 수작이로다. 술관 선수종은태사와 의논하여 영가혼례를 주선하라."

예상치 못한 대흠무의 찬찬한 배려에 모두 놀랐다. 지나간 일이지만 비빈 공사량과장문휴와의 인연도 그렇고, 양소화의 표문이 법도에 없는 간청이었음에도 황제가 친히 영가혼례를 주선하는 걸 보고 모두마음을 쓸어내렸다. 누가 보아도 도량이 넓은황제임에 틀림없었다.

대흠무는 국기를 바로세우고 부국강병을 꾀하기 위해 관제를 정비하고, 드넓은강역을 다스리기 위해 5경과 부, 주, 현을정비하기로 했다. 이는 당나라와 맞설 수있을 만큼의 치세를 굳건히 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황제를 보필하는 최고의 통치기관으로정당성을 두고, 그 아래에 선조성과 중대성을 두었다. 그 밑으로는 좌육사인 충부,인부, 의부와, 우육사인 지부, 예부, 신부를두어 당나라 관제와 겨루어도 모자람이 없었다.

3성 6부 외에도 1대, 9시, 1원, 1감, 1국을 두어 문관의 작제를 보강했다. 무관 작제도 과거보다 2위를 늘려 좌맹분위, 우맹분위, 좌웅위, 우웅위, 좌비위, 우비위, 남좌위, 남우위, 북좌위, 북우위, 10위를 두었다.
각 위에는 대장군, 장군, 도장, 낭장이 있어 군사들을 통솔했다.

고구려 때보다 강역이 넓어졌고 호구도많이 늘어난 터라 대흠무는 치세를 원활히하기 위해 다섯 개의 도읍지를 두었다. 5경은 숙신 땅의 상경 용천부와 조선 땅이자지금의 도성인 중경 현덕부, 예맥족이 살던곳으로 바닷가와 가까워 일본 가는 길로 통하는 동경 용원부, 옛 옥저 땅으로 신라 가는 통로인 남경 남해부, 고구려 때 국내성이 있던 곳으로 당나라 가는 통로인 서경압록부였다.

한편 대흠무는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서쪽 바다로 흐르는 마자수를 압록수로, 동쪽바다로 흐르는 통문하를 두만하로 고쳐 부르게 했다.

대흠무가 크게 흥한다는 뜻으로 대흥이라 연호를 정한 것도 다 까닭이 있었다. 당나라를 경계하고 신라가 발호하지 못하게하기 위해서는 당나라와 화의하고 일본과화친해야 했다.

예인 이구년을 불러 가무를 즐기던 이융기는 문득 구룡전 연못에 비친 여인의 치맛자락을 보고 환관 고력사에게 풍류를 아는여인인 듯하니 데려오라 일렀다. 여인은 태자위에 오를 뻔했던 수왕 이모의 비인 양옥환이었다. 예전에 수왕과 같이 알현하던 자리에서도 잠시 느꼈지만 과연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천하절색이었다. 스물두 살의 여인을 반갑게 맞은 황제의 나이는 쉰여섯이었다

사사로이는 며느리요, 맺어져서는 아니 될 여인에게 한눈에 반해버렸으니, 이비극 서린 만남이 훗날 경국지색의 참화가될 줄 누가 알았으랴. 옛날 한나라의 성제가 조비연에게 빠지고, 은나라 주왕이 달기에게 빠져 나라가 기울었던 걸 외로운 황제가 어찌 기억했겠는가.

양옥환은 남방의 촉 태생으로 촉주사호양현염의 딸인데, 아버지가 일찍 죽어 숙부인 양현교 밑에서 자랐다. 풍만한 몸집이어디 한군데 빠진 데 없이 고르게 균형이잡혔으며 오관이 바르게 놓였고, 크고 해맑은 눈이 보석처럼 빛나는 여인이었다. 입술은 단물이라도 흐를 듯 촉촉이 젖어 미소가잔잔히 묻어나며, 희고 고른 치아가 유난히돋보였다. 살결은 희다 못해 푸른빛이 날정도여서, 마치 막 잠을 잔 누에가 고치를지을 때처럼 핏줄마저 투명했다. 엷고 붉은연지와 풀어놓은 머리채가 탐스러웠고 사향각시를 품었는지 향긋한 향내가 풍겼다.
"천하절색이 아니더냐?"

영남도호부가 있는 광주(광동성)는 도성에서 남쪽으로 수만 리 떨어져 있어 오가는데 오랜 시일이 걸렸다. 다행히 수왕 이모는 싫어하는 내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황제의 신임을 얻어 대임을 잘 마무리하면 태자위에 오를 수 있다 생각했다.
그것이 천하 대란의 시발이 될 줄 누가알았으랴.

여인은 금세 새로운 요지경에 빠진 듯신음소리로 사내의 애욕에 불을 지폈다. 입술과 혀끝으로 이융기의 몸을 핥아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천하의 음탕이 무슨 수로양태진의 육신에 스며들었는지 모르지만 황제의 늙은 몸을 펄펄 살아 움직이게 했다. 황제는 중원을 호령했지만 양태진은 그런황제를 옥문과 혀와 입술, 눈웃음과 자지러지는 신음, 금방 숨이 넘어갈 듯한 교태와온몸을 불사르는 열정으로 휘어잡았다.
그 무렵 동방의 전략기지 유주에서는 야심가인 안녹산이 평로병마사가 되어 동방의 맹주 발해를 노려보고 있었다.

발해를 둘러싸고 있는 당, 거란, 흑수, 신라와 항시 부딪혔다. 국운을 건 대전이 언제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니 부지런히 군마를 늘려야 했다. 말을 강건하게 조련시켜전장에 나서면 당연히 승산이 높아질 것이다. 대흠무는 친히 봉희대까지 달려가 군사들을 독려하고 군마와 비둘기들을 살폈다.

"폐하, 때로는 바다 속 암초같이 모습을감추었다가 큰 파도 칠 때 모습을 드러내고, 때로는 바람 앞의 버드나무처럼 세상과같이 흔들리며, 때로는 돌밭을 경작하는 소처럼 우직하게 밀어붙이고, 때로는 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처럼 악착같이 적을 이겨야하며, 때로는 큰 바위 밑에 오래 된 불상처럼 꿈쩍하지 않으셔야 하옵니다."

사방에서 상주문과 표문이 올라오면 반드시 고력사가 먼저 본 뒤에 황제에게 올렸고, 고구려 후손으로 황제의 권위에 도전했던 왕모중을 제거한 실력자였다. 간사한재상 이림보조차 고력사를 두려워했으니고력사의 위세는 나는 화살도 멈추게 할 정도였다.
"그대는 발해 황제가 되고 싶지 않은가?"

당나라는 5년간이나 끌어오던 안서 땅을평정하고 이제 동쪽으로 눈을 돌렸다.
북방의 대초원을 지배하던 서돌궐의 한부족 돌기시 가한 궐특근이 사망하자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소록이란 걸출한 인물이등장했다. 소록은 백성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며 근면하고 검약하여 존경받았다. 전쟁에서 획득한 재화를 모두 부하에게 나누어주었으니 소문이 근동으로 퍼져 나가 여러부족이 충성을 바쳤다. 하지만 5년 동안이나 당나라와 맞서 싸우면서 많이 쇠락해졌다.

"전하, 거대한 동쪽의 용 한 마리를 낚아채는 데 울안에 기르는 어여쁜 고기 한 마리쯤 낚시에 걸어두는 게 천하 장부의 묘책임을 아십니까?"

그곳에는 과부나 이혼녀, 기녀로 입적하지는 않았지만 자유분방하게 즐기려는 처자들과 서방 몰래 정념을 풀려는 여인들까지 이른바 여자도사라는 이름으로 거룩한채 좌정하고 있었다. 여도사들의 기묘한 음행을 묵인하며 짭짤하게 이득을 챙기는 도관 중에 함의관은 제일 소문난 곳이었다.

격노한 신하들은 끝까지 추격해 대청천을 사로잡아 능지처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신 명림무흥은 대청천을 주살하여국기를 바로세우기를 강력히 주청했다.
"폐하, 공이 있는 자에게는 상을 내리는것이 좋은 규범이고, 죄가 있는 자는 주형하는 것이 선제의 영전이옵니다. 기릉과 무염이 극에 달해 흉사한 자를 잡아들이고,난역에 가담한 무리들을 징치하는 것은 천하의 도리이옵니다. 다행히 천지의 살핌과종묘 신령의 힘을 입어 옥체를 보전하실 수있었으나, 효경(어미를 잡아먹는 새와 아비를 잡아먹는 짐승)과 같은 흉측한 자들을 결코살려두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닷새 만에 안녹산은 또 다시 이징관의 집을 찾았다. 별채에 마련한 술상 앞에서 안녹산은 이합비의 손을 덥석 잡았다.
"네 소원을 들어 주기로 했다."
이합비가 곱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소녀의 꿈은 드넓은 황궁에서 3천 궁녀, 3천 내시와 뭇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리게하는 것입니다. 온 천하를 둘러보아도 천번지복하여 황룡 위에 앉을 분은 절도사 어른밖에 없습니다. 제 한목숨 언제든지 바칠수 있으니 기꺼이 밟고 용상에 오르셔야 합니다."

"발해의 운명을 네 마음과 몸으로 짊어진 것이니 어떤 신고가 따르더라도 이겨내거라. 목숨 바칠 일이면 기꺼이 바치고 몸바칠 일이면 아끼지 마라. 이합비의 충절은사관의 일필로 후세에 기록될 것이다."
난삼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이합비는 안녹산의 마음과 몸을 사로잡기 위해 비법을배우고 익혔던 것이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연모하는 정인을 두고 당나라 땅에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리게 될 것을.

위기의 순간에 양소화를 구한 것은 놀랍게도 금군장수 임도빈이었다. 양소화가 어사를 제수받고 도성을 떠날 때부터 은밀히그녀를 뒤따르며 지키라 명한 것은 태부 신석정이었다. 양소화는 얼른 말에서 내려 동쪽을 향해 세 번 절을 올렸다.

그 순간 소리를 지른 것은 뜻밖에도 서경압록부의 운휘장군 검두삭이었다. 백전노장이지만 자원하여 변방 장수로 나가 젊은 장수들에게 규범을 보여주던 덕장이었다. 비록 공심지의 아랫자리에 있지만 청렴하고 결백하여 군사들이 어버이 섬기듯했다. 군사들이 머뭇거리자 검두삭은 또 한번 소리 질렀다.
"이 칙서는 가짜다. 죄상이 드러날까 두려워한 공심지가 꾸며 만든 것이다. 알겠느냐? 모두 무기를 내려놓아라!"

"탐관오리는 백번 죽어 마땅하옵니다.기군망상의 죄상은 반드시 참해야 국기가바로 서며 척신 공심지의 죄상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고 크나이다. 지금양소화를 징치하면 반드시 어질지 못한 무리들이 음흉한 간계로 날뛸 것이옵니다. 멀리 보신다면 오히려 양소화에게 후한 상을내리심이 마땅하옵니다. 그러하면 척신과근신은 물론이고 탐관오리들이 사라질 것이옵니다."

자고로 충성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애국은 맹세를 저버리지 않는 법이로다. 근자에서경압록부 도독 공심지가 간악하고 요사스런 꾐에 빠져 국고금을 훔쳐 사욕을 채우고,백성들의 골육을 짜낸 뇌물로 사방을 어지럽혔으며, 국법을 어기고 기군망상하여 그 폐해가 극심했더라.
또한 공공연히 인륜을 어기고 무수한 여인들을 농락하며 음란을 자행했고, 국법으로 금지한 사형을 자행하매 죄 없는 남자들을 강제로 고자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도다. 범법이있는 곳에 악이 따르고, 악이 있는 곳에 벌이따르게 마련이라. 짐은 양소화를 어사로 삼아국기를 엄히 다루게 했으며, 죄를 다스리매먼저 행하고 후에 장계하라 명했도다. 이에 어사 양소화가 위급한 지경에 공심지를 참한 것은 짐의 명을 따르고 법을 지켰으며 예를 벗어나지 않았다. 어찌 자식의 잘못이 부모의 죄가 되겠느냐만, 사공 공진방은자식의 죄를 감추고 짐을 속였으니 멀리 안변부로 귀양 보내 지은 죄를 씻게 하겠노라. 이에 짐은 조서를 내리니 진신들은 함부로공론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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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쿠사이, 그림에 미친 노인
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김희경 옮김 / 이숲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책소개] 프랑수아 플라스 『호쿠사이, 그림에 미친 노인』

1. 개요
• 도서명 : 호쿠사이, 그림에 미친 노인
• 출판사 : 이숲
• 출간일 : 2015년 2월 15일
• 저자 : 프랑수아 플라스, 1957년 프랑스 출생으로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해 온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임
• 역자 : 김희경
• 작품 성격 : 일본 에도 시대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삶과 그림 세계를 소년 도지로의 눈으로 따라가는 그림책 형식의 문학 작품임

2. 책의 기본 내용
• 내용 개요 : 이 책은 에도에서 쌀 과자를 팔며 살아가던 소년 도지로가 호쿠사이를 만나면서 시작됨. 도지로는 호쿠사이가 유명한 화가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가, 과자 배달 중 호쿠사이 집에서 벌어진 소동을 계기로 그의 집과 그림 세계에 들어가게 됨
• 주요 내용 : 도지로는 처음부터 화가가 되겠다고 호쿠사이를 찾아간 인물이 아님. 우연히 호쿠사이를 만나고,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의 곁에 머물게 됨. 이후 호쿠사이의 집과 판화 작업실을 드나들며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조금씩 그림을 배우는 제자 같은 자리로 들어감
• 공간적 범위 : 19세기 전반 일본 에도를 중심으로, 거리와 집, 판화 작업실, 에도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오가며 전개됨
• 전개의 방식 : 호쿠사이의 생애를 연보처럼 설명하기보다, 도지로가 낯선 노화가를 만나 그의 그림 세계로 들어가는 흐름으로 전개함
• 핵심 흐름 : 처음에는 허름하고 괴팍한 노인처럼 보이던 호쿠사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 하나에 평생을 건 예술가로 다가오는 흐름을 가짐

3. 책의 특징
• 도지로의 시선 : 호쿠사이를 처음부터 위대한 화가로 소개하지 않고, 한 아이가 낯선 노인을 만나 조금씩 알아가는 방식으로 풀어냄
• 호쿠사이의 인간적인 모습 : 호쿠사이는 허름하고 괴팍하며 고집도 센 인물로 나옴. 그래서 오히려 실제 사람처럼 느껴지고, 그 안에 있는 그림에 대한 집요함이 더 잘 보임
• 그림을 배우는 과정 : 도지로는 처음에는 심부름 때문에 호쿠사이의 집을 오가지만, 점차 판화 작업실을 보고 그림 수업도 받게 됨. 도지로에게 호쿠사이는 이상한 노인에서 점차 스승 같은 사람으로 바뀜
• 우키요에와 에도 분위기 : 책에는 에도 거리, 판화 작업실, 사람들의 생활이 함께 나옴. 호쿠사이의 그림이 방 안에서 혼자 나온 것이 아니라, 그가 살던 거리와 사람들, 자연을 오래 보고 만들어진 것임을 짐작하게 함
• 문체/분위기 : 어렵지 않고 차분하게 읽히는 편임. 그림책 형식이라 부담은 적지만, 다 읽고 나면 한 사람이 자기 일을 끝까지 붙들고 산 태도가 묵직하게 남음

4. 읽어볼 만한 이유
• 호쿠사이를 쉽게 만나는 책 :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로 익숙한 호쿠사이를, 작품 설명이 아니라 이야기 속 인물로 만날 수 있음
• 예술가의 집념 : 호쿠사이는 이미 이름난 화가였지만, 자기 그림을 쉽게 완성된 것으로 여기지 않았음. 더 오래 살 수 있다면 더 나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는 태도가 오래 남음
• 그림을 다시 보게 하는 책 : 파도와 후지산 그림을 단순한 유명 이미지가 아니라, 오랜 관찰과 집념 끝에 나온 그림으로 다시 보게 함

5. 종합 평가
• 평가 : 『호쿠사이, 그림에 미친 노인』은 호쿠사이의 대표작을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태도와 집념을 보여주는 책임
• 인상 : 가장 오래 남는 것은 호쿠사이가 백서른 살, 백마흔 살이 되어서야 점 하나와 획 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경지에 이를 것이라고 말한 대목임. 이미 뛰어난 화가였지만, 자기 부족함을 알고 끝까지 배우려 했다는 점이 인상 깊음
• 한줄 정리 : 괴팍한 노화가의 삶을 따라가며, 유명한 그림을 그린 사람을 다시 보게 하는 책임


<그림보다 먼저, 그림을 그린 사람이 남는 책>
이상한 노인을 따라가다 보면 예술가의 집념이 보이는 이야기

프랑수아 플라스의 『호쿠사이, 그림에 미친 노인』은 일본 에도 시대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은 호쿠사이를 처음부터 위대한 화가로 소개하지 않는다. 에도에서 쌀 과자를 팔며 살던 소년 도지로가 호쿠사이를 만나고, 그 인연으로 호쿠사이의 집과 그림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유명 화가의 이야기라기보다, 한 아이가 이상한 노인을 만나게 된 이야기처럼 읽힌다.

도지로는 호쿠사이가 이름난 화가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과자 배달 중 호쿠사이 집에서 벌어진 소동을 계기로 그의 집을 드나들게 된다. 이 시작이 자연스럽다. 도지로가 처음부터 화가가 되겠다고 찾아간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만나고 어쩌다 휘말리면서 그 사람 곁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도지로가 호쿠사이를 알아가는 과정도 억지스럽지 않다.

호쿠사이는 허름하고 괴팍한 노인이다. 성격도 만만하지 않고, 생활도 반듯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그림 앞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다. 뭐든 오래 보고 또 보며, 그것을 어떻게 그림으로 옮길지 생각한다. 도지로는 처음에는 심부름 때문에 그 집을 오갔지만, 차츰 판화 작업실을 보고 그림도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도지로에게 호쿠사이는 이상한 노인에서 스승 같은 사람으로 바뀐다.

책을 읽다 보면 우키요에와 에도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거리의 사람들, 판화 작업실, 생활 속 풍경이 함께 나오기 때문이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도 다시 보게 된다. 거대한 파도 아래 작은 배가 있고, 멀리 후지산이 보인다. 전에는 그냥 유명한 그림으로만 보았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 그림을 오래 보고 또 보며 그려낸 사람이 먼저 떠오른다.

가장 오래 남는 부분은 호쿠사이가 자기 그림 인생을 돌아보며 한 말이다. 그는 여섯 살에 자연을 그리기 시작했고, 쉰 살에 명성을 얻었지만, 일흔 살 전에 했던 것은 모두 쓸모없는 짓이었다고 말한다. 또 백서른 살, 백마흔 살이 되어서야 자신이 그린 점 하나와 획 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경지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이 참 대단하다. 이미 이름을 얻은 화가가 자기 그림을 완성이라고 여기지 않고, 아직도 더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호쿠사이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보인다. 그림 한 장이 제대로 살아 움직이려면 재능만으로는 부족하고, 오랜 노력과 고난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뛰어난 예술가였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부족함도 더 잘 알았던 사람 같다. 그래서 호쿠사이의 말은 자랑처럼 들리지 않고, 끝까지 배우려는 사람의 겸손으로 남는다.

이 책은 호쿠사이를 너무 멋있게만 포장하지 않는다. 허름하고 괴팍하고 고집스러운 모습까지 함께 보여준다. 그래서 오히려 실제 사람처럼 느껴진다. 위대한 예술가라는 이름 뒤에, 한 가지를 끝까지 붙들고 산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 잘 보인다.

결국 『호쿠사이, 그림에 미친 노인』은 호쿠사이의 대표작을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유명한 그림을 그린 사람을 보게 하는 책이다. 도지로가 호쿠사이의 집으로 들어가듯, 읽는 사람도 괴팍한 노인을 따라가다가 그의 그림과 집념을 조금씩 알게 된다. 책을 덮고 나면 호쿠사이라는 유명한 이름보다, 늙어서도 그림 앞에서 계속 배우려던 노인의 모습이 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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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성 암과 같은 군산복합체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다.
《커커스리뷰Kirkus Re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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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비 확충에는 돈만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의 땀과 과학자의 뛰어난 두뇌, 어린이의 희망도 소모됩니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철의 십자가〉 연설(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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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보고]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분단의 벽이 허락하지 않은 우정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

1. 작품 개요
가. 기본 정보
ㅇ (제목/원제) 「공동경비구역 JSA(Joint Security Area)」
ㅇ (감독/주연) 박찬욱 / 송강호, 이병헌, 이영애, 김태우, 신하균
ㅇ (제작국가/개봉연도) 한국 / 2000년
ㅇ (작품의 위상) 분단이라는 무거운 현실을 수사극 형식으로 풀어낸 대표적인 한국영화임.
나. 작품의 기본 성격
ㅇ (시대적 배경) 남북이 군사적으로 팽팽하게 대치하던 분단 현실을 배경으로 하며, 남북 사이의 사소한 정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던 시대임.
ㅇ (공간적 배경) 남과 북이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으면서도 철저히 갈라져 있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과 군사분계선 초소로, 분단의 벽이 그대로 서 있는 공간임.
ㅇ (작품의 성격) 사건의 진실을 좇는 수사극의 외피를 쓰고 있으나, 본질은 체제가 허락하지 않은 우정과 그 파국을 다룬 비극임.
ㅇ (핵심 문제의식) 적대적 대치 속에서도 사람 사이의 정이 과연 가능한지, 그리고 그 정을 끝내 무너뜨리는 진짜 주범이 누구인지 질문함.

2. 줄거리 및 서사 구조
가. 기본 줄거리
ㅇ (사건의 시작) 판문점 북측 초소 총격 사건으로 북측 병사 2명이 사망하고 남측 병사 1명이 부상을 입으며 조사가 시작됨.
ㅇ (수사 과정) 중립국 소속 소피 장 소령이 양측의 엇갈린 진술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네 병사가 나누었던 비밀스럽고 따뜻한 우정이 드러남.
ㅇ (진실의 실체) 사건의 본질은 무력 충돌이 아니라, 체제가 심어놓은 공포 때문에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눌 수밖에 없었던 비극임.
ㅇ (결말의 의미) 진실이 밝혀져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만 그 기억을 짊어진 채 남는다는 점이 이 영화의 더 큰 슬픔으로 남음.
나. 서사 전개의 특징
ㅇ (현재와 과거의 대비) 총격 사건을 조사하는 현재와, 그전에 남북 병사들이 몰래 만나 정을 쌓던 시간이 번갈아 나오면서 마지막 비극이 더 크게 다가옴.
ㅇ (돌이킬 수 없는 결말) 결국 한 번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고, 살아남은 사람에게도 오래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는 점이 이 영화의 더 큰 슬픔으로 남음.

3. 주요 인물 분석
가. 인물 관계의 본질
ㅇ (오경필의 위상)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스러운 너그러움을 지녔으며, 남북 병사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살피는 큰형 같은 역할을 함.
ㅇ (휘파람의 의미) 오경필이 휘파람을 가볍게 부는 장면은 차가운 대치 공간 안에서도 인간적인 여유와 온기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며, 친구를 부르는 소리처럼 들려 더 오래 귓가에 남음.
ㅇ (이수혁의 변화) 처음엔 적군을 두려워하던 병사였으나, 초소를 넘나들며 이념보다 정이 앞서는 사람다운 모습으로 변화함.
ㅇ (정우진과 남성식) 평범한 청년들이 분단이라는 괴물에 휘말려 파멸하는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대목임.
ㅇ (우정의 비극성) 결국 이 영화의 가장 큰 슬픔은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끝내 친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있음.
나. 소피 E. 장 소령
ㅇ (경계에 선 인물) 한국계 스위스인으로서 제3의 자리에 서 있으려 하지만, 본인의 아픈 가족사 때문에 분단의 현실에 깊이 얽히게 됨.
ㅇ (인물의 배경) 한국전쟁 당시 제3국행을 택한 인민군 전쟁포로 출신 아버지의 내력은, 그가 이 사건을 단순한 외부자의 일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배경이 됨.
ㅇ (소피 장의 아픔) 겉으로는 사건을 조사하는 중립적인 위치에 서 있지만, 결국 분단의 진실 앞에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그 아픔을 함께 떠안는 인물로 보임.
다. 권력과 체제의 얼굴
ㅇ (윗선의 태도) 군 수뇌부는 사건의 실체보다 국가와 체제 유지를 앞세우며, 그 앞에서 인간의 삶과 우정은 얼마든지 뒤로 밀려날 수 있음을 보여 줌.
ㅇ (제도의 폭력성) 총을 쏜 개인보다, 사람보다 체제를 먼저 지키려는 구조 자체가 더 큰 폭력일 수 있음을 드러냄.

4. 핵심 주제 및 메시지
가. 분단체제와 파괴된 우정
ㅇ (우정의 한계) 서로에게 정을 주고받는 마음이 있어도, 분단의 현실 앞에서는 끝내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아프게 보여 줌.
ㅇ (넘을 수 없는 선) 바로 곁에 있으면서도 그 선 하나를 넘지 못해, 서로 정을 나눈 사람들마저 결국 총을 겨눠야 하는 현실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비극으로 남음.
ㅇ (비극의 본질) 결국 이 작품의 비극은 개인의 악의보다, 인간적 관계를 허용하지 않는 구조 자체에서 비롯됨.
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
ㅇ (생존의 무게) 죽은 자의 비극보다, 함께 웃던 동무들을 잃고 그 기억을 평생 짊어진 채 살아갈 오경필의 얼굴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음.

5. 인상 깊은 장면과 기억에 남는 요소
가. 총격 장면과 김광석의 노래
ㅇ (비극의 정점) 서로를 향해 정신없이 총을 퍼붓는 장면은 우정과 체제가 정면으로 충돌하여 산산조각 나는 가장 처절한 순간임.
ㅇ (음악의 힘) 총성 위로 흐르는 「부치지 않은 편지」는 닿지 못한 진심과 돌이킬 수 없는 관계의 슬픔을 더 깊게 느끼게 함.
ㅇ (슬픔의 완성) 거친 총소리와 애절한 목소리의 대비는 이 영화를 단순한 사건극이 아닌, 깊은 상실의 비극으로 완성시킴.
나. 초소라는 아지트의 역설
ㅇ (공간의 아이러니) 가장 삼엄한 경계의 장소인 초소 내부가 한때는 웃음과 농담, 몰래 오가는 정이 살아 있던 아지트처럼 그려진다는 점이 이 영화의 큰 아이러니임.
ㅇ (파국의 슬픔) 한때 가장 따뜻했던 그 공간이 결국 총격과 죽음의 공간으로 바뀐다는 점에서 비극은 더욱 크게 다가옴.
다. 마지막 흑백 사진의 여운
ㅇ (기록의 의미) 네 사람이 환하게 웃고 있는 마지막 흑백 사진은 영화 전체의 비극을 가장 조용하고도 아프게 압축함.
ㅇ (만약이라는 상상) 그 사진을 보고 있으면 결국 “만약 분단이 아니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듦.

6. 개인적 체험과 성찰
가. 시절의 감각과 기억
ㅇ (종로 극장의 추억) 2000년 개봉 당시 종로의 극장에서 가까이 지내던 사람과 함께 숨죽여 보았던 기억은, 이 영화를 내 인생의 한 페이지로 남게 했음.
ㅇ (극장에서의 울림) 김광석의 노래가 흐를 때, 장면이 슬픈 걸 넘어 우리 조국의 현실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생생함.
ㅇ (지워지지 않는 정서) 극장 문을 나설 때 가슴 한구석을 저리게 만들었던 그 정서는 세월이 흘러 다시 봐도 여전히 또렷하게 살아 있음.
나. 오늘의 삶과 연결
ㅇ (관계의 본질) 조직과 체제 속에 살면서도 결국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사람에 대한 예의와 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김.

7. 종합 평가 및 결론
가. 작품의 성취
ㅇ (작품의 강점) 이 영화의 강점은 분단을 큰 구호가 아니라, 결국 사람 몇의 우정과 상실로 보여 준다는 데 있음.
ㅇ (진실의 무게)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도 누구도 구원받지 못하고 아무것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끝까지 무거운 슬픔을 남김.
나. 결론, 소회
ㅇ (조국의 비극) 25년 전 종로의 극장에서 흘렸던 눈물은 단순히 영화 때문이 아니라,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동포를 두고도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조국의 현실이 너무도 처절했기 때문임.
ㅇ (변하지 않은 벽) 세월이 흘러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했어도 분단의 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으며,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또한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옴.
ㅇ (한줄 정리) 이 영화는 남과 북의 총성이 아니라, 끝내 서로의 손을 잡지 못한 채 멀어져 가야만 했던 우리 조국의 슬픔이 더 오래 사람을 아프게 한다는 사실을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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