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건국 이후 흑수말갈이 거듭 준동하자 대조영은 두 황자 대무예·대문예에게 토벌을 맡기며 후계 역량을 시험한다. 대무예는 기묘한 전술로 천금성을 함락하고, 대문예는 영자성을 평정하며 경쟁 구도가 형성된다. 그러나 대문예는 흑수말갈을 상대로 군공을 서두르다 조급한 추격으로 위기를 자초하고, 사사란 사건으로 명산성에 유폐된다. 또한 당의 정변(대장군 이다조의 무측천 축출 후 이융기 즉위) 속에서 정변의 공신 왕모중은 당에 숙위 중인 대문예에게 역심을 부추긴다. 당이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칭한 국서를 보내자, 대조영은 이를 빌미로 비사성 반환을 요구하는 등 압박 외교를 전개해 고토 수복을 완성한다. 719년 대조영 붕어 후 대무예가 즉위(연호 인안)하자 궁중에서 독침 암살 미수가 발생해 신재용이 사망하고, 이어 대문예는 반란을 획책해 당에 원군을 청하나 토벌군에 밀려 천문령으로 퇴각한다. 외부 위기와 내부 권력투쟁이 겹친 가운데 무왕 체제가 자리잡아 가는 과정이 4권의 핵심이다.

대조영의 출중한 무예와 대야발의 뛰어난 문필을 통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겠다던 진국장군 대중상의 뜻이 비로소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큰 나무는 바람 잘 날이 없으나 쉽게 뿌리 뽑히지 않나이다. 분한 생각으로 마음을 괴롭히면 몸이 긴장하니 무익하나이다. 좋은 생각은 돌에 새기고, 나쁜 생각은 얼음에 새기라 했나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남을 의심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달의 생김새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눈에 그리 보일 뿐이나이다. 그래서 세상을 어찌 바라보는가에 따라 현자가 되기도 하고 바보가 되기도 하옵니다

고사에 허유세이라는 말이 있나이다. 순임금께서 허유에게 천하를 물려주려고 청했더니,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듣지 못할 말을 들었다며 물로 양쪽 귀를 씻고 또 씻었나이다. 마침 소부가 말에게 물을 먹이러 나왔다가 허유가 귀를 씻는 자리에서 말머리를 돌렸나이다. 더러운 말로 더렵혀진 귀씻은 물을 어찌 말에게 먹일 수 있겠느냐며 그 또한 귀를 씻었다 하옵니다

나라 세운 공으로 보나, 따르는 신하와민심으로 보나 태자보다 과인을 따르는 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과인에게도 군사를 일으킬 힘이 있습니다

돌궐의 묵철은 당나라의 사주를 받은 힐질략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면초가의 신세가 되었다. 묵철은 당군보다 반란군을 먼저평정해야했다. 묵철의 운이 다한 것일까? 그는 반란군의 선봉인 발야고를 쫓다가 힐질략의 계략에 걸려들어 무참한 죽음을 맞았다. 한때북방의 강자로 당나라를 압박하며 중원까지 넘보려 했던 영걸 묵철은 어이없이 잡초 위에 피를 뿌리며 스러지고 말았다.

돈욕곡의 간청을 받아들인 비가는 즉시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화친했다. 묵철의 사위 고임무는 발해의 귀순을 거절하고 당나라에 귀순했다.

묵철의 어이없는 죽음과, 그의 사위이자 고구려 왕자였던 고임무가 당나라로 귀순해 버린 일은 발해에 변고나 마찬가지였다

잔당들을 설득하여 함께 투항한 고임무는 당제 이융기로부터 공을 인정받아 요서군왕에 봉작되었다. 고임무를 우대하여 잔당들을 투항하게 하고, 고구려의 적자인 그에게 발해의 확장을 저지시키려는 의도였다. 고구려 왕자 고임무가 요서에 있는 한 발해 군사들이함부로 넘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돌궐이 사분오열되고, 거란과 해가 투항했으며, 고임무는 투항하여 요서군왕이 되었다는 소식에 대조영은 착잡한 심정을 가누지못했다. 치아를 가려주던 입술처럼 요하 일대를 막아주었던 돌궐, 거란, 해, 습이물러났으니, 당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대치해야 했다.

병진(716)년 가을, 태자 대무예가 이끄는 3만 군과, 천리장성을 경계로 수성하고 있던 신성 일대의 2만 군, 요동성과 안시성일대의 2만 군을 합친 7만 군사는 3군으로나뉘어 천리장성을 넘었다.

우군은 손재가 2만 5천 군을 거느리고 통정진으로 달려가고, 좌군은 연충인이 2만 5천 군을 이끌고 회원진을 짓쳐들었으며, 중군은대무예가 2만 군을 이끌고 천통성에서 곧장 요하쪽으로 서진했다.

요하를 건너는 순간 중원은 운명을 건 사투를 벌일 것이옵니다. 때를 기다리옵소서.

그는 희대의 풍운아요 천기를 거침없이 누설했지만, 하늘을 거역하지 않았다. 가슴에 맺힌 것을 풀어헤치면서도 도리를 거스르지않았다. 해와 달과 오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칠요의 정기를 받아 황도를 이루지않았던가. 영웅호걸의 수가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대조영은 염려했던 것처럼 중도에서 쓰러졌다. 난중경의 간병으로 겨우 몸을 추스른 대조영은 대무예에게 부월을 주어 북정을 계속하라 이르고 1천 기만 거느리고 환궁했다. 뭇 신하들의 반대에도 완강히 주장을 굽히지 않고 떠난 북정길에서그만 병이 깊어진 것이다.

드디어 4월 초하루, 길일을 잡아 대조영은 천신과 지신 그리고 선조에게 제를 올려출정을 고하고 5만 군사를 점고하여친정길에 올랐다

정사(717)년, 당나라는 요서의 요충지 영주에 영주도독부를 설치하고 평로절도사를 겸직케 하여 군사 5만 명을 둔찰했다.또한 요충지인 유주에 범양절도사를 설치하여 10만 명이나 되는 대군을 주둔하게했다. 발해가 국경이던 천리장성을 넘어 요하 동쪽지경까지 차지하자, 위기를 느낀 당나라 조정에서는 동방 경략의 새 틀을짰다.

그러나 날이 밝은 뒤, 발해군의 드센 공성전을 견디지 못한 장도화는 반나절 만에항복하고 말았다

이틀 뒤 연충인이 이끄는 발해군이 회원진을 토평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태자가 이끄는 군사는 요하 일대를 장악했다. 황제가그리도 탐냈던 천리장성 너머의 요충지를 드디어 차지했다.

짐이 세상과 연을 끊거든 이레를 넘지 않게 장례를 치르되, 상례는 힘써 검약하라. 짐의 부황께서 그러하셨듯 화장하여 이 땅에 고루뿌려, 짐의 혼이누대에 번영을 누리는 것을 지켜보게 하라.이를 적어 준칙으로 포고하고 영승하라!

첫째는 발해 강역을 사방 5천 리로 넓혀 성조의 치세를 숭고하게 이어받아라. 둘째는 반드시 북정하여 흑수를 번속으로 삼으며,
셋째는 장차 힘을 길러 중원을 다스리고, 넷째는 같은 동족인신라와 화친하여 범하지 말고 남쪽바다 건너 일본까지를 경략하며,
다섯째는 사해를다스리되 그 근본을 열어야 하니, 천축(인도)에 가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오라. 그리하여 모든 백성이 한겨레로 일체가 되어 의좋고 정답게 살게 하라

용산으로 처소를 옮긴 지 하루 만에 대조영은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용산을 넘어 개국의 땅 동모산에 다다랐을 때, 대조영의 손에 든 것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옥채찍이었다. 대조영은 드넓은 천하를 진동하려는 상징으로 휘둘렀던 옥채찍을 아들 대무예에게 넘겨주었다. 그에게 천하를 넘겨준 것이다

황제의 붕어는삽시에 천통성에 알려졌고, 곧 사방에서 봉화가 올랐다. 발해 강역에 있는 모든 봉화대의 검은 연기는 곧 백성들의 통곡으로 변했다. 대발해의 개국 황제 대조영이 치세 22년을 마치고 예척했으니, 영걸의 성수는 예순아홉이었다.

스물두 해 전에 고구려 후손 대조영이 동모산에 이를 때 상봉에 황룡이 너울거리는 것을 무수한 사람이 보며 환호했던 것처럼, 용산의 산마루에 연기가 솟아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것을 백성들은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울음을 터뜨리며 목청껏소리쳤다."보라! 하늘의 자손, 우리 황제께서 용을타고 승천하시누나!"

대조영은 아버지 대중상보다 더 강건할것 같았지만 젊은 날부터 죽음을 넘나드는 전투를 하고, 독화살을 맞거나 칼날에 베이며 살아온탓인지, 안타깝게도 일흔을 넘기지 못하고 영가가 되었다

천하영걸 대조영이 예척한 그해 기미(719)년 6월에 황태자 대무예가 황위에 올라 연호를 인안으로 하니, 그의 보령 마흔둘이었다.

황제 대무예는 부황의 묘호를 개국 황제에 걸맞게 태조라 칭하고, 당나라와 돌궐에서 보낸 조문 사신들을 맞아들였다.

옛날에 한쪽 귀와 한쪽 눈이 없는 신하가 있었나이다.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은죄 때문에 귀가 잘렸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죄로한쪽 눈을 잃었나이다. 이 늙은것이 잠이 적어 밤하늘을 바라보니 객성이 자미를 치고 북쪽으로 떨어지는 걸 보았사옵니다.

황제는 북정을 거두어들이고, 대문예를 추스르기 위해 홀한왕으로 봉하고 식읍 5천을 내렸으며, 그를 따르는 신하들의 품계를 높여주었다. 또한 열여덟 살이 된 장자 대도리행을 계루군왕으로 삼았다. 행여라도 골육상쟁의 화가 생길까 염려한 스승의 간곡한 청을 황제가 받아들인 것이다

"예부터 귀가 청력을 잃으면 우레소리를듣지 못하고, 눈이 시력을 잃으면 태양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사옵니다. 천둥소리가 작지않고 태양빛이 희미하지 않음에도, 당나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니, 그걸 가르쳐주는 것이 군자 된 도리이옵니다

폐하, 소신이 사신으로 갈 때 해동청 (사냥매) 쉰다섯 마리만 가져가게 윤허해 주옵소서. 다른 물선을 가져가면 당나라에서는 분명조공을 바쳤다고 기록할 것이옵니다

하루살이가 산을 지고 날 수 없으며, 개미가 너른 바다를 다 건너갈 수 없나이다.당랑포선이라는 옛말이 있사옵니다. 나무에 매미가앉아 노래하는데, 사마귀는 당장참새가 달려드는 걸 모르고 매미 잡을 궁리만 하고 있으니, 이 아니 어리석다 하겠사옵니까. 평상시앞발을 들고 작은 벌레를 잡아먹던 것만 뽐내고 있으니 필경 화가 미칠까 두렵사옵니다.

변방에서 원숭이를 잡을 때, 주둥이가작은 항아리 속에 닭다리를 넣어두면 원숭이가 다가와 손을 집어넣어 움켜쥔다 하옵니다. 그때 몽둥이와 밧줄을 들고 쫓아가면 원숭이가 도망치는데, 무거운 항아리 때문에 금방 잡히게 되옵니다. 먹을 것을 얼른놓으면 손을빼내어 도망갈 수 있으련만,원숭이는 먹을 욕심에 잡히고 마는 것이옵니다.

"소녀의 성은 양가이옵고, 이름은 소화라 하옵니다. 박작성에서 태어났지만, 본향은 안시성 사람이옵니다."양소화의 아버지는양상궁이요, 할아버지는 양만춘 장군이라고 했다.

과연 장사무 장군의 기개가 살아 있는것 같도다. 박작구에 수군장수 장문휴가 있음에 동해가 고요하구나. 장하도다.

찰나였다. 남자 검무잡이와 여자 검무잡이가 별안간 황제를 겨냥하여 짧은 화살을 동시에 날렸다. 화살을 막은 것은 태사 신재용과수군장수 양소화였다. 그리고 연달아 날아든 비수를 양소화와 장문휴가 칼집으로 막았다.

임술년 가을, 신재용은 황후의 생신 잔칫날 고요하게 생을 마감했다. 대무예는 말리는 신하들을 물리치고 신재용의 거처까지 찾아가 엎드려 큰절을 올려 스승에 대한 예를 다했다. 신재용은 황제의 공경을 받으며먼 길을 떠났다.

본디 덕이 높은 자는 황천 밑바닥을 헤매고 다녀도 마음이나 얼굴에 사소한 동요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짐은 위험이 닥친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마구 뛰었으니 어디 군자라 할 수 있겠느냐.스승께서 짐에게 남긴 유언에 누구든 혈육살생을 금하라 하시면서 이를 위해 다 잊고용서하라 했도다. 그것이 마음 편히 사는 길임을 알았으니 어찌 치죄하겠느냐

짐의 아우 홀한왕과 많은 신료들은 홀한왕이 계위할 줄 알았으나 짐이 황위를 이었도다. 경들도 그 처지가 된다면, 그것이얼마나 큰상처겠는가? 짐이 문죄하는 순간 원치 않는 변고를 어찌 막을 수 있겠는고? 그러하니 관 뚜껑에 대못질을 하듯 모든 것을 덮기로 했다

세월은 속일 수 없었다. 갑자(724)년 정월에 원로대신 대내상 달신이 세상을 하직하여 개국공신들의 시대가 조용히 마감되고 있었다.

행여 당나라의 세력이 두려워 흑수를정복하지 않으면 이는 천하에 우둔한 생각이다. 우리는 두 마리의 흉맹한 짐승이 한꺼번에 달려들기 전에, 먼저 흑수를 정복하여 기를 꺾어야 한다. 짐은 이미 흑수를 치기로 결단했도다!

천통성을 떠난 대문예의 북정군은 곧장 북쪽으로 향했다. 흑수를 치려면 북동쪽으로 내달리는 게 지름길이자 닦인 길인데도 에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선행군을 이끄는 장수 대선정은 북진하라는 명을 받았다

거짓 성지인 줄 알면서 모반에 가담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가 어디 있겠사옵니까?

전하,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들짐승은 내달리게 마련인데, 나는 것은 주살로 쏘아 잡고, 헤엄치는 것은 낚시를 드리워 잡으며, 달리는 것은 그물을 쳐서 잡을수 있나이다. 그러나 용을 잡으려면 마땅히 구름과 바람을 거느려야 하고, 우레와 천둥을 부를 수 있어야하며, 사해를 굽어보는 혜안과 천군만마를 단칼에 쓰러뜨리는 웅혼함이 있어야 하옵니다. 전하께서는 순리를 거역하는 순간부터 가시밭길을 걷게 되는데 도대체 무엇이 부족하여 선조의 피로 되살려낸 땅을 어지럽히려 하시옵니까?

반란군 강화맹은 전투에 임해 관군 이익성과 재주껏 말을 주고받았다. 맞겨루는 척하면서 일부러 패하려고 교묘하게 수십 합을 다투었다. 한 명이라도 더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시간을 끌었다. 물론 장수들 중에는 이번 기회에 사직을 뒤엎고 공신 반열에 오르겠다는 장수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대문예에게 모반을 약조한 거개의 장수들은 이심전심으로 관군에 투항할 궁리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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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으로 적을 놀라게 하는 장수가 사사로이 인정에 빠지면 결국 백성을 놀라게하는 법이오.

돌치가 5백 기병을 거느리고 출진하자 고구려군은 즉시 군령을 내려군진을 바꾸고 군장과 기치도 바꾸었다. 적에게 군사기밀을누출한 뒤에 재빨리 적을유인하여 섬멸할 작정이었다. 계책을 지시한 손담은 옥에서 죽었다던 두만호와 윤수명의 가솔들이 숨어 있던토굴을 열었다.그제야 군사들은 두만호와 윤수명을 비롯한 가솔들이 계책을 위해 곡경을 치렀음을알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러운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밀을 은밀히 빼내는 자,적과 교묘하게 내통하는 자, 그 자를 찾지못하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천하없는 병법이 무슨 소용이며, 충성과 용맹으로 뭉친 백만 대군인들 패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들은 끌려나온 것이다. 세상에 사람처럼 소중한 존재가 어디 있겠느냐. 비록적군이지만 죽은 자를 존중하는 것은 곧 인륜이요,
사람의 도리이다

적군의 시체를 돌려주어 적의 내부를치는 게 병법임을 모르는가

시체를 버려두면 군심이 흩어지고 군사들이 조바심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게 곧적의 내부를 치는 것이다

만약 적이 시체를 거둔다 해도 장사 지내는 비용이며 인력 동원으로 허비하는 게 얼마나 많겠는가. 그 역시 적의 내부를 치는 것이다.

옛 고구려 땅을 회복하고 조상들이 거느렸던 저 너른 산천을 기필코 되찾겠소.힘을 길러 중원을 범할 것이니 나와 함께 천하를 호령합시다!

시신을 거두지 마시오. 대신 두 눈알을뽑아 태백산 영봉에 묻되 한 개는 서쪽을보게 묻고, 한 개는 북쪽을 보게 묻어주시오. 서로는너른 바다와 당나라를 바라보고, 북으로는 흑수와 돌궐, 거란을 지켜보겠소. 고구려 후손들이 나라 되찾는 걸보고 싶소이다.

첫째, 이근대원은 가까운 곳에 전투 지역을 설정해 놓고 적이 먼 길을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둘째, 이일대로는 아군은 편안히있으면서 적이 피로하기를 기다리며 셋째, 이포대기는 아군은 배불리면서 적이 굶주리기를 기다리고 넷째, 이유대래는 유인으로써 적이 말려들기를 기다리는 것이오

다섯째는 안정을 유지하면서 적이 조급해지기를 기다리는 이정대조, 여섯째는 아군은 신중히 기동하면서 적이 경솔하게 움직이기를기다리는 이중대경, 일곱째는 아군은 엄숙을 유지하면서 적이 해이해지기를 기다리는 이엄대해, 여덟째는 아군은 질서를 유지하면서•적이 혼란해지기를 기다리는 이치대란, 아홉째는 수비를 굳히고 적이 공격하기를 기다리는 이수대공이라하오

고구려여! 백성의 염원을 잊지 마소서.천지신명이시여! 환인, 환웅, 단군의 피를 들끓게 해주시옵소서. 선조들이시여! 복국의 위업을 지켜주옵소서.

대저 하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불과 7만 군사로 40만 대군을 무참히 깨뜨렸으니, 천문령 전투는 대첩이요 고구려의 복수설한이며고구려 백성의 해원이었고, 고구려의 혼이 드디어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 것이리라.

필부의 소견이어서 허물이 클 것이나,대업을 모색하는 데 낡은 터를 잡는 것은모양이 좋지 않습니다. 제가 영고성쇠를 어찌 알겠습니까마는, 언젠가 보현사의 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잊을 수 없습니다. 스님은 동모산에 새 나라를 세우는 것이 천리라 했습니다."

촉나라는 사마씨에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명장과 명상과 현자가 많은 촉나라가 왜 위나라에게 망했겠습니까? 그것은 이미 쇠하고망해버린 옛 나라를 복국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지난 상처를 건드리면 옛 아픔이 되살아나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만백성이 원하는 나라 이름이 고구려일 수는 없습니다.
백성은 고구려 사람이요, 혼도 고구려 혼이지만 나라 이름은 새롭게 하는 것이좋습니다

원오는 고구려의 혼을 잇되 칭제건원하여 천하를 놀라게 하고, 당나라와 어깨를 겨루는 새나라를 만드는 게 백성들이 원하는 거라고 했다

당조는 천문령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군사를 초모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창업하면 반드시 대군을 일으킬 것입니다.이때 요서에 준동하는 무리가 있어야 합니다.

대조영은 즉시 역밀과 측고에게 군사를주어 요서의 경계로 보내고, 환도성에 있는을사성을 요서 쪽으로 진병케 했다. 그리고 대사달에게 정예병 5천을 주어 통정진 쪽으로 출병케 했다. 요서 일대를 흔들어 놓아야만 당나라 토격군이 동모산으로 달려오지 않을 터였다

발해는 하늘의 자손들이 일으켜 세운 나라이니 마땅히 천하를 거느린다는 뜻으로 천통이라 부르십시오. "국호를 발해, 연호를 천통으로 정하고, 길일을 택해 동모산에서 창업하기로 했다

갑옷은 적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잠잘 때 입는 옷은 편안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백성은 누구나 화평하기를 원하나, 나라는 백성에게 갑옷을 입히려 하니 천하의 도가 부끄럽게 됐다. 지혜를 갖춘 장수는 잠잘 때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지않는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8풍 때문이옵니다. 8풍이란 여덟 개의 바람인즉이익, 쇠약, 비방, 명예, 칭송, 조롱, 고통, 즐거움을 말하는데, 참선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하면 내면이 그윽하게 보일 테니, 몇날 며칠이고 바라보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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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안정되고 강역이 넓어지자 황제는 널리 현사와 준걸들을 예로써 초빈했다. 고구려 유민들이 힘을 모아 당나라를 쳐부수고 옛고구려 땅을 수복하여 세운 나라였기에 여기저기 숨죽이고 있던 걸출한 동량들이 속속 도성을 찾아들었다.

고구려 말년에 전설처럼 이름이 떠돌던 현사 고정은 태백산 기슭에서 정진하고 있었다. 고정의 제자인 고원우와 고굉필이 무술의달인이라는 백제 후손 부여록과 흑치상간, 해명정을 데리고 왔다.

통문하(두만강) 하류에서 교역선을 거느리며 사병을 키워 일가를 이룬 고구려 후손 장원충, 장건충 형제는 배 만드는 재주와 뱃일에능한 자들을 무려 7백 명이나 데리고 왔다. 부여성 출신 공사량, 공무량, 공승량 삼형제도 북방의 양마 1천 필을 이끌고 3백 명이나되는 숙련된 말몰이꾼들을 데려왔다.

안팎으로 위기를 느낀 무측천은 돌궐과흑수에 은밀히 밀사를 보내 발해의 배후를치면 재화를 주고 발해의 땅을 나누어주겠다고약조했다.돌궐의 묵철은 무측천의 술수를 알았다.한두 번의 속임수가 아니었다. 묵철은 대조영과 겨루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이미 돌궐과 발해 두 나라는 굳게 화친을맺고 있었다.

척박한 북방에 한둔하던 흑수의 무리들은 무측천이 미끼로 던진 배부른 양식과 호사스런 옷감, 눈부신 금옥에 현혹되었다.이에군사를 초모하고 당나라가 보낸 병장기를 벼르며 침공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신재용은 도리행의 이름을 풀이하면서도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태어난 지 스무하루밖에 안 된 아이였지만, 왠지 단명할운세라는느낌이 들었다. 황자 대무예 탓이라고는 하지만 황자비가 제대로 태교를 한것 같지 않았다. 태자 자리를 겨루는 은밀한 혈투 속에서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끼며낳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황궁에서는벽에도 귀가 달렸고 바람결에도 소문이 묻어 다닌다고 했다. 황제도 어렴풋이 대무예가 총애하는 사사란을 대문예가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대문예를 북방으로 보내고, 사사란을 징치하여 화근을 없애려고 했다.

영자성을 평정했지만 북정군 통수 대문예는 도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명산성에 머물러야 했다. 사사란의 죽음이 가져다준 형벌이었다. 북정군이 모두 돌아가고 불과 2천 명밖에 안 되는 수성군을 거느린 채 금족령으로 묶인 것이다.

대조영은, 대무예의 후궁이면서 친아우인 대문예를 유혹하여 황실을 어지럽힌 사사란보다 대문예의 죄가 더 크다고 여겼다.결국대문예는 흑수 정벌의 공이 컸음에도북방의 작은 성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말이 금족령이지 유배형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문예도 명산성에서 쉽게 풀려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태자위는 빼앗는 것이지 결코 기다리는 것이 아니리라. 대문예는 한바탕 세상을 휘젓고 싶은 욕망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대장군 이다조는 현무문을 부수고 들어가 무측천이 거처하던 장생전으로 진입하여 무측천이 그토록 총애했던 환관 장역지와 장창종을 궁전 뜰에서 쳐 죽였다. 그런 다음 성문을 닫아건 채 무씨 일가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주살했다.

그해 11월 초이튿날, 무측천은 상궁선거전에서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죽음이 임박하자 황제에게 무씨들을 보살펴주라는 청과 함께 자신을 황제로 칭하지말고 태후라 칭하여 측천대성황후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학살당한 황후, 재상 저수량과 한애 등의 가솔을 사면해달라고 요청했다. 무측천은 자신의 묘비에 아무 글자도 새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스스로 천하에 부끄러운 짓을 많이한 걸 깨달았던 것일까.

그해 초가을, 이융기와 사냥터에 나가 야숙을 하던 대문예는 발해 황자 대무예가 태자로 책봉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대문예가 숙위로 와 있는 동안, 대무예는 북방의 철리와 불열을 대부분 토평하고 동방까지 밀고 들어가 우루말갈도 일부 복속시켰다. 대무예의 공적을 인정한 좌우 권신들은 황제께 주품하여 대무예를 태자로 책봉했다.

세상을 거머쥐려면 어떤 일에도 얼굴에 동요가 없어야 합니다. 아랫것들 앞에서 이러시면 대업을 이룰 때 목숨 거는 자가 없습니다.
태자의 자리는 불변의 자리가 아니고 황제의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디 고정하십시오

지금 발해를 치려면 백만 대군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러나 백만 대군이 덤벼도안 될 일을 한 사람이 해낼 수 있습니다.

천군만마로 안 되는 일을 자객지변으로 능히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옛날에 도척이 있었는데, 졸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도둑이 남의 집안에 있는 재물을 귀신같이 알아내는 것이 성이고,
목표한 곳에 남보다 먼저 뛰어드는것이 용이며, 쫓길 때 잘 도망치는 것이 의이고, 실행 가능한지 여부를 잘 판단하는것이 지이며,
훔친 것을 고루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인이라고 했습니다. 도둑질도 이럴진대, 하물며 나라를 훔치겠다는 전하께서 이리 나약해서야어찌 큰일을 도모할 수있겠습니까?

발해의 강역이 넓었지만, 대조영은 옛 고구려 영토를 다 수복하지 못했고 동북방의 흑수도 평정하지 못했으며 흑수와 손잡은 여러부족도 복속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남쪽의 신라가 언제 칼끝을 내밀지 모르며 서쪽의 당나라와 북서의 돌궐, 그리고 북방에 웅거한 거란도 신경이 쓰였다.

대조영은 친정군을 거느리고 서북쪽으로 진군했다. 당나라와 화의를 맺어 서쪽이 안정된 대신 서북쪽에 있는 부여성 일대가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여성은 고구려 때 축성한 천리장성의 북쪽 끝에 있는 성지였다

대조영이 태자 책봉을 서두른 것은, 도성을 태자에게 맡기고 몸소 천하를 평정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남쪽을 파고들어 평양성을 취하고, 동쪽을 밀어붙여 동쪽 바다까지 평정하고, 북쪽으로 흑수를 징치하여 복속시키며, 서쪽으로 비사성에서 부여성까지 차지해야 했다. 대조영은 그렇게 될 때까지 쉼없이 군사를일으켜 고구려 고지를 살아생전에 되찾을 각오였다.

드디어 6월 20일 밤, 이융기는 황궁의 북문인 현무문을 치고 들어와 위태후와 안락공주의 목을 베고, 위후의 측근 세력을 모두척결했다. 정변의 주역은 이융기였고,모사는 고구려의 후손 왕모중이었다. 왕모중은 천하를 안정시킨 공로로 노예 신분을 벗고 장군의 반열에 올랐다.

원한에 사무쳐 잃었던 땅을 되찾고, 고구려를 계승하여 대발해를 세웠도다. 짐은 천손으로 마땅히 황위에 올랐는데, 당제 이융기가감히 발해군왕이라 칭하려 하다니,위로는 선조를 모독한 것이요 아래로는 짐의 백성들을 힐난한 것이로다. 이는 마땅히 치죄할 일이기에, 당제가 정중히 진사를 보내 엎드려 죄를 청할 때까지 사자를 가두겠다

진사를 보내 사죄하고, 사죄의 뜻으로 비사성을 비우지 않으면, 짐이 친정하여 요하를 건너 장성을 무너뜨리고 중원을 범하겠다. 당제 이융기의 수급을 현무문 위에높이 걸어두고, 만백성에게 죄상을 알려 후세에 교화를 삼게 하겠도다. 즉시 전군을 강무토록 하라!

발해는 마침내 뱃길로 중원을 넘볼 수있는 요충지 비사성을 칼날 한 번 휘두르지않고, 화살 한 대 날리지 않고, 호령 한 번내지르지않고 수복했다. 고구려가 멸망한지 30년 만에 나라를 세웠고, 발해를 건국한 지 17년째 되는 봄에 드디어 옛 고구려땅을 모두 수복했으니 이 감격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잃었던 조상의 땅을 47년 만에 되찾은 것이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 환인 성제로부터 단군왕검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백성은 한순간도 하늘의 자손임을 잊지 않았사옵니다. 천명을 받들고 정혈을 찾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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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3 - 개국 황제 대조영 김홍신의 대발해 3
김홍신 지음 / 아리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독서보고] 김홍신의 『대발해』 3-개국 황제 대조영, 천문령 대첩과 발해 건국의 대업 완성

1. 대발해 3권 개요
가. 목적
ㅇ (핵심요약) 김홍신 저 대발해 3권의 천문령 전투 전개, 대중상과 대조영의 리더십, 발해 건국 선포 및 영토 수복 과정을 구조적으로 분석
나. 시대적 및 공간적 배경
ㅇ (시대적배경) 698년 전후, 당의 40만 대군 추격을 물리치고 고구려 유민이 새로운 독립 국가를 창업하는 격동기
ㅇ (공간적배경) 요하, 요동, 천문령으로 이어지는 퇴각로 및 새로운 도읍지인 동모산 일대
다. 핵심요지
ㅇ (전력극복) 40만 대군의 압박을 8만 연합군이 지형, 전술, 심리전으로 극복함
ㅇ (국가선포) 대중상의 유훈으로 정신적 정통성을 완성하고 698년 동모산에서 국호 발해, 연호 천통을 선포함
ㅇ (영토확립) 요동 수복과 말갈 병합을 통해 실질적 국가 체제 구축

2. 주요 내용 전개
가. 천문령으로의 유인과 결전 준비
ㅇ (전력열세) 이해고가 이끄는 40만 대군에 맞서 고구려, 말갈 등 8만 연합군은 요하를 건너 동진함
ㅇ (희생과유인) 걸사비우 전사 등 막대한 손실 속에서도 평지 결전을 피하고 양도가 허술한 험준한 천문령으로 적을 깊숙이 유도함
ㅇ (첩보전) 적과 내통하는 자를 색출하고 이중 기만 전략으로 적 판단력을 교란하여 수적 열세를 상쇄함
나. 대중상의 순국과 정신적 완성
ㅇ (백전노장) 고구려 복국 일념으로 살아온 대중상이 79세에 갑옷을 입은 채 순국함
ㅇ (풍장유훈) 죽은 뒤 시신을 불태워 장쾌한 바람 부는 산에 뿌려달라는 유언으로 군의 상징적, 정신적 유산을 남김
ㅇ (민본사상) 고구려 백성은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들이 나라의 근본이라 역설하며 민심을 천심으로 수용함
다. 천문령 대첩의 결정적 승리
ㅇ (지형우위) 하늘의 육기인 음, 양, 풍, 우를 다 품은 천문령의 험준한 산악 지형을 활용하여 대군 운용의 한계를 찌름
ㅇ (심리전) 적군의 시신을 돌려주어 적 내부의 군심을 흩트리고 조바심을 내게 만드는 병법을 구사함
ㅇ (결정적승리) 병력을 집중하고 복병을 운용하여 40만 당군에 궤멸적 피해를 입히고 열세를 극복한 역사적인 승리를 달성함
라. 승리 이후 정치 전환 및 건국
ㅇ (도읍선정) 보현사 원오선사의 가르침을 수용하여 동모산을 새로운 나라의 굳건한 도읍지로 결정함
ㅇ (건국선포) 698년 칭제건원하고 하늘의 자손이라는 뜻으로 국호를 발해, 연호를 천통으로 선포함
ㅇ (과거극복) 쇠망한 옛 나라의 복국이라는 한계를 넘어 만백성이 원하는 새로운 국가로 정통성을 계승함
마. 영토 수복과 통합
ㅇ (고토수복) 요동의 당 잔당을 몰아내고 비사성과 박작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을 수복함
ㅇ (장사무전사) 장문휴의 부친인 장사무의 장렬한 전사로 마자수 요충지 박작구까지 완전히 점령함
ㅇ (다민족통합) 말갈 부족을 병합하여 고구려 유민과 이민족을 아우르는 다민족 국가 구조를 확립함

3. 대중상과 대조영의 리더십 분석
가. 대중상의 정신적, 철학적 리더십
ㅇ (도덕기준) 자, 비, 희, 사의 사무량심과 사섭법 등 불교적 애민 철학을 바탕으로 인명 존중과 책임 윤리를 실천함
ㅇ (준비의정치학) 멸망 이후 감정이 아닌 축적과 인내를 선택하여 국가의 정신을 설계한 원로형 지도자의 표본임
나. 대조영의 실행적, 전략적 리더십
ㅇ (결전형지도자) 이근대원, 이일대로 등의 병법으로 수적 열세를 전술, 지형, 정보전 결합으로 극복함
ㅇ (통수책임) 전투 실패의 책임을 백성에게 전가하지 않고 백의종군을 자처하며 실패를 책임지는 윤리를 보여줌
ㅇ (의로움실천) 가솔 보호를 통해 군사들의 강력한 결속력과 목숨 건 충성 구조를 형성함

4. 역사적 함의 및 거시적 고찰
가. 천문령의 승리와 건국으로의 승화
ㅇ (전력역설) 수적 우위는 지형, 보급, 지휘 한계 속에서 약점으로 전환 가능하며 천문령은 전략적 승패를 가르는 공간으로 작동함
ㅇ (결전의국가화) 전투 성과를 즉각 국가 선포로 연결하고 영토, 인구, 군사 기반 확보를 통해 실질 국가를 형성함
나. 애민과 희생의 리더십
ㅇ (살신성인) 대중상의 평생에 걸친 헌신과 박작성 전투에서 전사한 장사무의 피흘림은 새로운 국가 창업의 숭고한 밑거름이 됨
ㅇ (백성중심) 천문령의 대승과 건국은 영웅 한 사람의 무용이 아닌, 백성을 긍휼히 여긴 지도자의 의로움과 고구려 혼의 승리임
다. 과거의 계승과 미래의 창조
ㅇ (정신적계승) 원오선사의 일갈처럼 고구려의 혼을 잇되 과거의 영광에만 매몰되지 않고 당나라와 어깨를 겨루는 새 나라를 염원함
ㅇ (자주적독립) 연호를 천통이라 명명하여 중국 중심의 천하관에서 벗어나 발해만의 독자적인 세계관과 위업을 천명한 역사적 사건임
라. 다민족 통합 국가의 출현
ㅇ (통합전략) 배제보다 병합을 통한 장기 안정 기반 형성을 위해 고구려, 말갈, 거란 잔여 세력의 통합을 이룸

5. 종합 결론
가. 단계적 결합의 완성
ㅇ (역사적결단) 대발해 3권은 단순한 전투 서사를 넘어 정신적 계승, 수적 열세 극복, 승리의 제도화, 영토 통합이 결합된 국가 탄생의 완성 단계임
나. 새로운 질서로의 재탄생
ㅇ (역사의부활) 대중상의 정신적 유산과 대조영의 결단이 맞물리며, 고구려의 혼은 천문령을 넘어 동모산에서 발해라는 새로운 국가로 부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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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사비우를 잃는 등 큰 손실을 입은 대조영은 군을 재정비하여 가솔들과 함께 천문령에 이른다. 이는 패주가 아니라, 지형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이동이었다. 그곳에서 고구려 복국을 평생의 뜻으로 삼았던 대중상은 79세로 생을 마치며, 자신의 재를 바람 부는 산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의 죽음은 개인의 최후를 넘어 공동체 정신의 계승을 상징한다.

천문령 결전에서 이해고의 당군은 중대한 피해를 입고 후퇴한다. 이 승리는 단순한 전투의 성과가 아니라, 고구려 계승 세력이 독자적 정치 공동체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된다. 이후 연합군은 동진하며 재정비에 들어가고, 당 조정은 이해고를 처벌하기보다 변경 통치에 활용하기로 결정한다.

대조영은 동진 과정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원오선사의 조언에 따라 동모산을 도읍지로 삼는다. 698년 그는 칭제건원하고 국호를 ‘발해’, 연호를 ‘천통’으로 선포한다. 이어 요동의 당 잔여 세력을 축출하고 대부분의 고토를 수복하며 말갈 세력을 병합한다.

박작성 함락 과정에서 장사무가 전사하고, 그의 아들 장문휴는 아직 태중에 있었다. 이는 발해의 미래 확장을 예고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남는다.

고구려와 말갈이 연합하면 이기기 어렵습니다. 고구려군은 궁술과 단병접전에 능하고 화공과 진법이 전광석화 같습니다. 반면,
말갈군은 기마술과 기습전에 능하고 유격술이 뛰어납니다. 그러니 두 군사를 갈라놓아야 합니다.

가솔부대를 끝까지 지키면 고구려 군사가 위험해지고, 가솔부대를 버리면 고구려 군사들이 훗날 통곡합니다.

그러나 적진에서 일부러 길을 터준 계책이었다는 걸 어찌 알았으랴. 짓쳐들던 말갈의 대수령 걸사비우는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걸사비우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그러자 얼른 달려든 적의 무수한 칼날과 창이 그의 몸에 박혔다.걸사비우는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하고 창졸히 피 절은 주검이 되었다.

말갈의 대수령으로 천하를 호령하던 용장 걸사비우. 달신과 함께 대조영의 한 팔로 고구려 유민들을 보살피는 한편, 말갈을 세우기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영걸은 그리허망하게 황천객이 되고 말았다.

한 부족의 우두머리답게 누구한테도 조아리는 법 없이 한 세상을 풍미한, 언제 어디서나 당당했던 사나이였다. 그는 요동벌을 평정하고 나라를 세우기 위해 동북방으로 진군하다가 거친 벌판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은 것이다.

군사의 주장은 백번 옳으나 한번 더 생각해 보시오. 물과 불은 기운이 있으나 생명이 없고, 풀과 나무는 생명은 있으나 지각이 없으며, 새와 짐승은 지각은 있으나 의로움이 없다 했소. 사람은 기운과 생명과 지각과 의로움을 가졌기에 존귀한 것이라했소. 사람의 힘은 소만큼 세지 못하고, 달리는 건 말보다 못하며, 새처럼 날아다닐수도 없소. 그런데도 사람이 소와 말을 부리고 새를 잡아 기르는 것은 여럿이 합심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곧 의로움이오.

사람이 힘을 합치는 것은 분별이 있기때문이고, 그 분별심은 인간의 의로움 때문에 가능하다 했소이다. 대조영이 끝까지 가솔들을보호하는 것은 당장 큰 손실이 될것이나, 훗날에는 큰 공덕이 되어 따르는 무리가 목숨 걸고 추종할 것이오.

세상사는 매번 이길 수만은 없소이다.질 줄도 알아야 크게 이기는 기쁨도 누리는것이오. 대조영은 연전연승해서 기가 너무승해있소이다. 당나라 대군을 천문령까지유인해서 크게 이기려면 적어도 두세 번은패해야 하오

고구려를 복국하는 것만 골몰했기에 병법에도 없는 전술을 구사했소이다. 천문령은 험준산령이고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양도가 허술할 것이니 능히 대군을 섬멸할 수있을 것이오.

대중상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밭은 기침을 하느라 목에 힘줄이 드러났다. 전장에서 죽은 군사들을 위해 정성껏 제사 지내는 대중상의 덕성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적을 위해서도 제사 지내주었고, 부상병이면 적이나 아군을 가리지 않고 돌봐주는 성품이었다.

선봉에 선 골사각과 걸초비우, 그 뒤를 따르는 말갈군들의 위세는 자못 당당했다. 게다가 나란히 달려오는 군사들은 역밀과 거란군사들이었다. 연합군이 당나라 진영을 휘저어 혈로를 뚫자 대조영의 군사들이 사기가 올라 드세게 적진을 휘몰았다. 뒤따라 대중상과 송채륜이 이끄는 고구려 군사들까지 합세했다.

예로부터 덕업을 닦는 데 적선입공을 강조했는데, 이는 장생을 구하는 자는 반드시 선행을 쌓고 공덕을 세우고자 분투해야하니,
만물에 자비심을 베풀며, 남을 용서하고 어짊이 미물에까지 미쳐야 하고, 남잘되는 것을 즐거워하며 남의 고통을 가엾게 여기고, 남의 위급함을 도와주며 남의 궁색함을 구제하고, 손으로는 생물을 손상치 않아야 하고 입으로는 화를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남의 이득을 내 이득처럼 기뻐하고, 남의 손해를 내 손해처럼 안타까워하고, 자신을 뽐내거나 칭찬하지 말고, 남이 나보다 나은것을 질시하지 말고, 은근히 미운 자에게 못되게 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절로 덕을 이루어 하늘의 복을얻지 않을 수없으며 성취하지 못할 게 없다고 했다.

전투에 실패한 장수에게 죄를 묻는 건당연한 통수권이오. 그렇다면 통수권자의 잘못 또한 백성들이 물어야 마땅하오. 나는 지금부터 일개 군사가 되어 통회하겠소. 지금부터 전군 통수권은 손담 군사에게 있음을 알리시오.

해동하면 당나라 대군이 공격을 감행할것이오. 대적하기 벅찬 듯 퇴각하여 천문령에서 대승을 거둬야 하오. 패한 당나라가 다시 침공하려면 족히 반 년은 걸릴 테니 그때 나라를 세우시오. 미리 돌궐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꾀하고 요서를 점령하게 설득하시오. 그래야 당나라를 묶어둘 수 있소.

널리 현사를 초빙하시오. 처처에 탁월한 동량지재들이 숨어 있으니 부지런히 청하시오. 각별히 거란과 말갈을 우대하고 다른부족들도 기꺼이 받아주시오

특출한 장졸을 뽑아 미리 천문령으로 보내 지세를 상세히 염탐하고 강역도를 그리시오. 방책은 어디에 세우고, 의병은 어찌 운용하며, 복병은 어디에 숨길지를 미리정하시오. 봄이 되면 홀한해에서 조련한 수군과 지하삼림에서 조련한 정진대를 천문령으로 진발하시오. 또한 재주를 이용한 별동대와 한을 이용한 별동대를 만드시오

고구려 이전에는 더 넓은 강역이 우리 선조들의 땅이었소. 그 모든 땅을 되찾아야 하오. 내가 죽거든 반드시 불태워 재를 만드시오.
그리고 장쾌하게 바람 부는 산 위에 올라 천하에 뿌려주시오. 결코 후하게 장사 지낼 생각하지 마시오. 그냥 바람에 날려만 주시오

도탄에 빠졌던 고구려 유민들을 구원한자였다. 온갖 수모와 학대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불길을 당겨주었고, 보잘 것 없던 자들에게 무기를 주어 용맹한 군사로 만들었다. 당나라 사람들의 비복으로 노리개 취급받던 백성들을 깨어나게 해준 영걸이었다. 그럼에도저리 성찰이 깊어 모여 앉은 자들의 가슴을 뒤흔들고 있으니 그를 아니 떠받들겠는가.

첫째, 보시바라밀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으로, 재물, 진리, 평안을 나누며 색, 소리, 냄새, 맛, 촉각을 아무 집착 없이보시하는 것이다.

둘째, 지계바라밀은 계율을 잘 지키는 것으로, 마음에 허물이 없을 만큼 스스로 자율하는 것이다.

셋째, 인욕바라밀은 괴로움과 뜻에 거슬림을 참는 것이다. 내 마음이 외부의 경계를 만났을 때 움직이지 아니하고 무심의 경지에드는 평온이다.

넷째, 정진바라밀은 부지런히 노력하여 게으르지 않는 것이다. 선법을 증진시키는데도 정진은 가장 중요하고,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직전의 마지막 부촉도 이 정진바라밀이다.

다섯째, 선정바라밀은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를 사색하는 것이다. 스스로 깨달아 자기 내면을 관찰하는 내관이다.

여섯째, 열반바라밀에서 반야는 실상을비추는 지혜로, 나고 죽는 이 언덕을 건너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는 배나 뗏목과 같다. 이는 곧열반의 묘경에 이를 것이다.

대중상이 말하는 사무량심은 이웃과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가져야 할 네 가지마음이다.

첫째, 자무량심은 사랑을 뜻하며 이웃에게 끝없이 기쁨만 주는 것이다.

둘째, 비무량심은 연민을 뜻하며 이웃의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받아들여 제거하는 마음이다.

셋째, 희무량심은 따라서 기뻐해 주는 것으로, 이웃의 기쁨을 한없이 즐겨 나누는 것이다.

넷째, 사무량심은 평등심을 뜻하고 선과 악, 사랑과 미움을 평등하게대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이웃을 편케 하는 네 가지 방편을 가리켜 사섭법이라 하는데, 첫째, 보시섭은 나누어 가짐으로 이웃을 부처님 진리의 세계로 섭수하는 것이다.

둘째, 애어섭은 부드럽고 온화한 말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셋째, 이행섭은 이웃을 이롭게하는 행동을 스스로 해나가는 것이다

넷째, 동사섭은 이웃의 고뇌를 해결해주기 위해함께 살면서 부처님 진리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정유(697)년 섣달 햇살이 맑은 날 아침, 고구려 유장 진국장군 대중상은 갑옷을 차려 입은 채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일흔아홉 살이었다.

대중상은 무리를 이끌고 홀한해와 지하삼림에서 둔전병을 길러가며 고구려를 되찾을 일념으로 평생을 보냈다. 고구려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고구려 유민이 가장 많은 영주를 근거지로 삼아 참으로 오랫동안 은밀히 백성을 규합했다.

천시가 도래했음을 예감한 대중상은 거란의 대수령이자 송막도독인 이진충을 설득하고, 말갈 대수령 걸사비우를 채근하여 영주봉기를 주모했다

일 년 반 동안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거란과 말갈이 멸망 지경이 되었는데도 고구려군을 흔들림 없이 이끌었다. 돌궐의묵철가한조차 고구려군을 넘보지 못한 것은 바로 대중상이라는 영걸때문이었다.

천문령 같은 험준산령에서는 가솔들도 일기당천의 병력이 될 것이오. 그래서 천하에는 오묘한 이치가 무수히 깔려 있소.

세상에 불학무술이라 하여, 배우지 않으면 지식이 부족하고 재주가 없다고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소이다. 밥을 떠먹는 것도 재주이며, 제 부모를 기억하는 것도 지식이오. 오히려 아는 게 많고 재주가 좋은 자들이 저 혼자 잘 살 궁리를 하기에 세상이 편치 않은것이오. 고구려 백성들은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들이 나라의근본이오."

백성을 섬기고 다스리되 지극히 아끼고, 엄격하되 한없이 다사롭고, 하늘의 법도를 따르되 사람을 중히 여기기 때문이오. 거란이나말갈이 우리 대장군 앞에 왜 조아리는지 아시오

내 백성 대하듯 배려하기 때문이오. 창검궁시가 능란한 자는 장수가 되지만 제왕이 되기 어렵소이다. 제왕은 하늘이 내는게 아니라백성과 천시와 민심이 만드는 것이오. 이번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오. 사력을 다 하시오. 끝까지 대장군을 지키시오

대조영은 군사를 분별하여 대사에 신재용, 대군사에 손담, 좌군사에 역밀, 우군사에 손재를 명하고, 달신을 보국대장군, 대야발을 위군대장군으로 삼아 통수부를 꾸몄다.

전투 제일선에 서게 될 장수를 선별하였는데, 좌맹장군에 연충인이요 우맹장군에 고지경이며, 좌웅장군에 목원결이요 우웅장군에대사정이었다. 송채륜을 좌비장군으로 삼고, 우비장군에 고양신이며 남좌장군에 걸초비우, 남우장군에 검연각이었고 북좌장군에 골사각이요 북우장군에 주석모를 명했다

군통수겸 운휘장군에 대화인, 귀덕장군에 대무예, 충무장군에 대문예와 최명율이 임명되었다. 목원식과 걸주매를 운보장군으로삼고, 두만호와 함습훈은 의유장군에, 신대방과 고두겸은 유군별장에 임명했다.

대조영을 목숨으로 사수하는 시위 장군에는 조인구와 을지모사가 명받았으며, 의방부별장에 난중경과 고명주, 가솔별장에는 안무와신기소, 여말구를 배치했으니, 위용만으로는 당나라 황제의 친정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대조영이 이끄는 고구려군과 가솔들은 천사만생 끝에 천문령에 당도했다. 강을 끼고 도는 거대한 산자락의 위용은 자못 하늘을 찌를듯했다. 몇 번이나 계곡과 능선을타며 지형을 익혔지만 매번 그 장엄함에 절로 옷깃이 여며졌다. 장졸들 역시 탄성을 지르며 천문령의위용에 숙연했다.

천문령은 본디 고구려 땅이었다. 천문령의 위용은 하늘의 육기인 음, 양, 풍, 우, 회, 명을 다 품고 있었다.

이번 전장에 창검이나 활을 가지고 싸울수 있는 고구려 군사는 고작 8만여 명 정도였다. 이해고가 거느린 당나라 군사는 무려 40만명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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