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 시리즈
이판사판이란, 이판합쳐진 말로 불교 용어다. 조선이 고려의 국사판事判이교였던 불교를 탄압하자 계급의 사다리 아래로 추락한 승려들은 살 길을 도모해야했다. 이때 잡역에라도 종사하며 사찰을 유지하고 불법의 맥을 잇던 ‘사판승과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참선을 통한 수행으로 불법을 잇던 ‘이판승‘으로 각각 나뉘었다. 조선이라는 파고를 통과하여 지금의 불교가 있기까지는, 불법의 맥을 잇기위해 자신들의 소임을 다한 사판승과 이판승의 역할이 컸다.
한데 오늘날 ‘이판사판‘은 조선시대에 계급의 최하층인 승려가 된다는 것은 막장이나다름없었기 때문에 ‘끝장‘을 의미하는 말로 전이되었다. 이판사판 시리즈는 지금껏북스피어가 만들어 온 장르문학의 맥을 이어 나갈 도서들로서 어차피 이렇게 이름지어도 기억하지 못할 테고 저렇게 이름 지어도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이판사판시리즈‘라는 이름은 안 잊어버리겠지. 라는 의미를 담아 만들었다. 이 시리즈로 딱10권만 만들고 끝장을 볼 생각이다.

하라다 마하
1962년 도쿄도 출생. 간사이가쿠인대학 문학부 일본문학과, 와세다대학 제2문학부 미술사과 졸업. 이토추상사 주식회사모리빌딩 모리미술관 설립준비실, 뉴욕 근대미술관 근무를 거쳐2002년 프리랜서 큐레이터 · 컬쳐 라이터가 되었다.
2005년 후를 기다리며』로 제1회 일본 러브스토리 대상을 수상2006년 작가 데뷔.
2012년 낙원의 캔버스로 제25회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이규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문학, 인문, 역사, 과학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기획하고 번역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얼간이」, 「하루살이」 「미인」, 「진상」 「피리술사 괴수전 「신이 없는달 기타기타 사건부 덴도 아라타의 가족 사냥 마쓰모토 세이초의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10만 분의 1의 우연」, 「범죄자의 탄생」 「현란한 유리 우부카타 도우의 천지명찰 구마가이 다쓰야의 어느 포수 이야기, 모리 히로시의 작가의 수지 하세 사토시의 당신을 위한 소설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고서 수집가의기이한 책 이야기 도바시 아키히로의 굴하지 말고 달려라 사이조 나카의 오늘은뭘 만들까 과자점」 「마음을 조종하는 고양이 하타케나카 메구미의 요괴를 빌려드립니다 아사이 마카테의 야채에 미쳐서 연가 미나미 교코의 ‘사일런트 브레스」 등이있다.

남녀평등지수 120위,
여성 국회의원 수 세계 꼴찌,
여성 관리직 비율 12%근로 의욕이 강한 여성일수록회사를 그만두는 나라—일본에 여성 총리가 취임했다!

"언젠가 이런 총리가 나타날 거라는 예언서"
하라다 마하_소설가
"현실이 원작을 따라잡았습니다."
나카타니 미키_소마 린코 역
"소마 린코에게 깨끗한 한 표를 부탁드립니다!" 다나카 케이_소마 히요리 역
"한숨이 나올 정도로계속되는 남성 우위 사회의안티테제로서의 여성 총리"
구니야 히로코_ NHK 앵커

일본 독자들의 호평의 목소리!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를 지탱하는 남편의 일기. 정말이상적인 승리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소설처럼, 여성이사회 제일선에서 활약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
@yu_ki_dokusyo
정치란 어려워 보이면서도 본질은 단순한 것임을 이이야기를 읽고 느꼈다. 국민을 위해 오로지 돌진해 가는총리 소마 린코가 눈부시다. 그 모습을 총리와 가까운듯하면서도 먼 듯한 ‘총리의 남편‘ 시점에서 이야기하기때문에, 거기에서 진실을 읽을 수 있었다. @alisa81237930
일본에 여성 총리가 탄생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하는 생각을 일깨워 주는 책. 내게도 잠재의식 속에고정관념이 있음을 깨달았다. @books_momo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 린코 씨와 남편의 인간성과관계성을 좋아해. 이런 두 사람이라면 응원하고 싶다.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진심으로 나라를 바로세우려고 움직이는 정치인이 일본에는 얼마나 있을까?
린코 씨 같은 총리가 가까운 미래에  탄생하기를 기대하고 싶은 작품.
@Udokusho
일본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으로 치유계 조류학자가등장한다는 독특한 설정이 안성맞춤인 소설. 항상용감하면서 늘 소소한 관계를 중시하는 총리 린코의모습도 눈부셨다. 재미있고 하트풀하며 감동적인 정계엔터테인먼트☆@lakimemobook 무슨 일에 있어서도 ‘무관심인 것‘이 제일 게으른 것같아. 안테나를 치고 관심을 가질 것. 스스로 의지를가지자.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서. 앞일을 조금상상하며 용기를 얻은 작품이었다.@books_7310 난 당신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아요. 하라다 마하 씨의작품은 항상 마음속 깊은 곳에 뭔가 따스한 것을 주고, 앞으로 희망을 갖게 해 준다. 또 내일부터 열심히해야겠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또 만났다.
@ribonbonbom

20××년 9월 20일 맑음
오늘을 절대 잊지 말자는 생각에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지금도 매일 ‘고코쿠지 숲의 새 관찰일지’를 쓰고 있지만 나 개인의 일상을 일기로 쓰자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가끔 그녀는 나에게 물을 때가 있다. "히요리 씨, 나, 이런 일을 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아무리 기겁하더라도 가슴 속에 꾹 감추고 어김없이 이렇게 대답한다. "괜찮은데. 해 보지그래."

오늘 일기를 쓰자고 결심한 이유도 다른 건 제쳐놓더라도 아내 소마 린코의 ‘행적’을 글로 남겨 놓고 싶다는 기분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본래 일기란 사적인 기록이다. 그러나 나는 훗날 일반에 공개되는 것을 전제로 이 일기를 써 나갈까 생각하고 있다.
언제 공개될지는 알 수 없다. 나나 린코가 세상을 뜬 뒤, 혹은 그보다 더 먼 미래의 일일지도 모른다.

장차 일급 역사 자료가 될 일기를 쓰기 시작한 기념할 만한 오늘.
나의 아내는, 총리가 된다.
제111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소마 린코.

사상 최초 여성 총리 탄생
사상 최초 최연소 여성 총리 탄생
사상 최초 여성 총리 오늘 국회에서 지명

"만약에 내가 총리가 된다면 말이야, 당신한테 무슨 곤란한 일이라도 생길까?"

그것은 별로 웃기지 않는 농담처럼 들렸다. 동시에 굉장한 아이디어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는 대답했다. "전혀. 무슨 곤란한 일이 생기겠어."

20××년 9월 27일 맑다가 가끔 흐림
장차 일본 역사에 돌멩이 하나를 던지겠다는 일념과 각오로 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20××년 9월 30일 맑음
미래 어느 시점에 이 일기를 읽고 있을, 아마도 내가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조금 엉뚱하긴 하지만 내 전공 분야인 조류가 보여 주는 ‘사회’에 대하여 잠시 설명해 두고자 한다.

많고 많은 둥지 중에 하필이면 린코의 둥지에 연립내각이란 알을 까 놓았다. 이 경우 ‘린코의 둥지’는 직진당이 아니라 내각을 뜻한다. 뻐꾸기 하라 씨는 종이 다른 새의 훌륭한 둥지에 알을 까 놓고는 거기에 개개비 린코를 끌어들여 알을 품게 한 것이다. 그런 마술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는 새가 실재하는지는 확인된 바가 없지만.

20××년 10월 4일
아내 소마 린코가 총리에 취임하여 소마 내각이 발족한 지도 2주가 지났다.

속시커먼 씨. 뒤에서 내각을 조종하겠다는 겁니까. 그런데 과연 그렇게 쉽게 될까.

저래 봬도 내 아내는 대단한 인물입니다. 각오하셔야 할걸요.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때 린코가 응시하던 것은 카메라가 아니라 카메라 너머에 있는 국민의 시선이라는 것을.

20××년 11월 10일 대체로 맑음
이 일기를 미래의 어느 날 어딘가에서 읽고 있을 당신.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과연 알아맞힐 수 있을지. 아니, 아마 결코 알아맞히지 못할 것이다.

지난 정권은 세력을 지키고 정권을 연장하려고 우리 국민에게 오랫동안 미사여구로 포장된 환상을 심어 놓았습니다.

‘우리 국민은 인내심이 강하다’, ‘우리는 고난을 잘 참는다’, ‘고통을 나누고 더 강하게 단결하자’. 이제 그 환상을 벗겨내야 합니다.

1. 국민주권의 재인식, 구체제 청산
2. 사회보장의 재원 확보를 위한 추가 증세
3. 지방자치제 강화, 자치 시스템의 개혁
4. 저출생, 고용, 경제 활성화를 하나의 맥락으로 보고 개선책 실시
5. 탈원전을 위한 에너지 정책과 친환경 정책 실시

20××년 11월 17일 흐림
인간은 정을 쏟은 상대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어 한다. 세련된 레스토랑에서 데이트하자고 유혹하거나 과감하게 아파트를 구입해 놓고 구애하거나……. 그런데 이것이 꼭 인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0××년 11월 22일 맑음
이사한다는 뜻밖의 통보를 받은 것은 본가에서 어머니, 형과 불온한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다음 주의 일이었다.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자기 일은 스스로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생활했다. 상대방 일상에 관심은 갖되 간섭은 하지 않았다. 서로 도와야 할 때는 도왔다. 조부처럼 관대하고 널찍한 이 저택에는 그런 생활이 어울렸다.

"남편이 아내 손님을 위해 차를 내는 일이 어떻게 아내가 남편을 부려먹는 게 됩니까. 그러면서 아내가 남편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일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겁니까? 당신 직장에서는 지금도 꼭 여성 스태프가 손님에게 차 대접을 합니까?"

20××년 12월 5일 맑음
12월의 첫 주말, 린코와 나는 수상관저로 이사했다.
"히요리 씨를 번거롭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라는 후지노미야 씨의 말대로 나는 무엇 하나 들거나 옮기지 않았다. 작업을 돕기는커녕 "본가에 가 계실래요?"라는 후지노미야 씨의 지시를 받고 맥없이 본가로 물러가지 않을 수 없었다. 린코는 공무로 외출 중이라 나 혼자 본가로 갔는데, 너 잘 만났다는 듯이 어머니가 쇼핑하러 나가자며 손을 끌었다.

하지만 두 눈은 글자를 제대로 좇지 못하고, 지면에 떠오르는 장면은 내 집의 숲 풍경이다. 나는 그 환영을 좇는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아아, 알름 산으로 돌아가고 싶어, 라던 향수병 걸린 하이디의 심정을 어쩐지 알 것 같았다.

20××년 12월 12일 맑음 때때로 흐림
수상관저로 이주하고 일주일 동안 내 주위에서 이변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처음 느낀 것은 이변이라고까지 할 만큼 두드러진 건 아니었다. 문밖에서 내가 나오기만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 남성의 비율이 미묘하게 높아진 정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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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 시리즈

“그래. 어릴 때는 어딘가에 영웅이 있다고 믿었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짠, 하고 나타나 구해주는. 정의가 이기고 짝짝짝, 박수 치며 끝나는 해피엔딩. 하지만 말이야, 나이가 듦에 따라 영웅은 있다, 정의는 이긴다, 그렇게 순진하게 믿을 수 없게 되지. 다들 거악을 두려워해.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지만 정작 수갑을 내미는 사람이 없어. 영웅은 없다, 세상은 불합리하다고 삐딱하게 말하는 사람이 정의를 올곧게 외치는 사람을 비웃지.”

“올바름을 관철한다는 거, 굉장히 어려운 거야. 올바름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회피하는 사람들이 주로 어떤 말을 하는지 가르쳐줄까. 양쪽 다 일리가 있고 각자 나름대로 정의롭다, 세상의 정의는 사람 수만큼 있다, 정의의 폭주다, 정의를 강압한다. 나, 이런 말, 다 싫어해.”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만 정의라고 부르더라고. 그치만 올바른 일을 해야지. 당신, 공무원이니까.”

“하지만, 올바른 일을 한 결과 사망자가 나와도 되나요?”

“올바른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사망자가 나오는 것보다는 낫잖아.”

고가가 명쾌하게 대답했다.

“카르텔, 담합, 하청 갑질. 그런 위법 행위 때문에 궁지에 몰려 목숨을 놓는 사람도 있어. 그런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곳은 공정위뿐이야. 가혹한 현실에 시달리며 영웅이 달려와 주기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그러니까 우리는 결코 적발의 손길을 늦춰서는 안 돼…… 나는 이제 현역이 아니지만.”

고가는 장난꾸러기처럼 혀를 쏙 내밀고 웃었다.

그때 고가가 웃던 얼굴은 며칠이 지난 지금도 시로쿠마 머리에 들러붙어 있다.

가혹한 세상이다. 회사는 도산하고 경영자는 자살하고 어린 자식들은 가난에 허덕인다. 어디에도 안전한 길은 없다. 어떻게 해야 사망자가 나오지 않을지 알 수 없다.

공정의 파수꾼 | 신카와 호타테 저자, 이규원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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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나는 일본의 섬나라 근성이라든지 혈연·지연 같은 끈적끈적한 환경이 싫은 겁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각자 알아서 살게 그냥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기분 나쁜 폐색감을 찢어 버리는 일, 현존하는 직업 중에서는 공정위가 가장 가깝지 않습니까."

"연애도 경쟁이죠."

"그렇잖아요. 상대방에게 1번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니까. 그게 경쟁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한쪽으로 시로쿠마 씨를 독점해 두고 다른 쪽에서는 바람을 피운다. 그게 바로 불공정한 거래죠. 그런 상태를 넘겨 버리려고 하다니, 공정거래위원회 직원으로서 납득하기 힘드네요."

"어떤 상황에서도 배신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배신해 버린 나가사와 씨는 역시 약한 사람인 거죠. 고쇼부 씨는 강한 사람이니까 약한 사람의 마음을 모르겠지만─."

"나, 별로 강하지 않아요. 약하지만 싸우고 있을 뿐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부전패가 되어 버리잖아요. 이길 가망이 희박해도 싸우는 것 말고는 길이 없어요."

정부는 국민의 신임 위에 성립한다. 선거로 뽑힌 정치가가 법률을 만들고 법률에 따라 세금을 걷는 민주적 기반이 있는 것이다.

운카이는 누구의 부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독단으로 다른 사람 돈을 가로채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쓰고 있다. 절차가 민주적이지 않다.

운카이 혼자 결정하면 다른 사람들은 복종할 뿐이다. 운카이를 정점으로 하는 지역사회에서 얌전히 있으면 생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부케두페’의 아오야기처럼 도전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배제된다. 건전하지 못한 방법이다.

한 무리의 우수한 사람, 강한 사람에게만 맡겨 두면 안 되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부족하고 약하더라도 각자 의사를 가지고 움직이며,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고 때로는 타격을 받기도 한다. 경제 전체로서는 효율이 떨어지는 방법인지 모른다. 하지만 선택을 남에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시민 개개인의 도전과 시행착오가 쌓이고 쌓여서 경제가 돌아가고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야말로 경쟁이고, 우리 공정위는 경쟁을 수호하는 지킴이인 것이다.

"그래. 어릴 때는 어딘가에 영웅이 있다고 믿었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짠, 하고 나타나 구해주는. 정의가 이기고 짝짝짝, 박수 치며 끝나는 해피엔딩. 하지만 말이야, 나이가 듦에 따라 영웅은 있다, 정의는 이긴다, 그렇게 순진하게 믿을 수 없게 되지. 다들 거악을 두려워해.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지만 정작 수갑을 내미는 사람이 없어. 영웅은 없다, 세상은 불합리하다고 삐딱하게 말하는 사람이 정의를 올곧게 외치는 사람을 비웃지."

"올바른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사망자가 나오는 것보다는 낫잖아."

고가가 명쾌하게 대답했다.

"카르텔, 담합, 하청 갑질. 그런 위법 행위 때문에 궁지에 몰려 목숨을 놓는 사람도 있어. 그런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곳은 공정위뿐이야. 가혹한 현실에 시달리며 영웅이 달려와 주기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그러니까 우리는 결코 적발의 손길을 늦춰서는 안 돼…… 나는 이제 현역이 아니지만."

고가는 장난꾸러기처럼 혀를 쏙 내밀고 웃었다.

그때 고가가 웃던 얼굴은 며칠이 지난 지금도 시로쿠마 머리에 들러붙어 있다.

가혹한 세상이다. 회사는 도산하고 경영자는 자살하고 어린 자식들은 가난에 허덕인다. 어디에도 안전한 길은 없다. 어떻게 해야 사망자가 나오지 않을지 알 수 없다.

정의를 관철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영웅은 있다.

정의는 이긴다.

"침착해. 우리는 공무원이야. 어디까지나 적법한 절차를 밟아서 싸워야지."

사악한 자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 온다. 하지만 정의의 편은 비상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법령을 준수하며 싸워야 한다.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공무원이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입니다. 법을 어겨도 벌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여기는 정의가 살아 있는 나라니까."

바로 옆에는 미도리카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 있었다. 시로쿠마 입에서 하아, 하고 한숨이 새어나왔다. 운카이의 운도 여기서 끝났군. 미도리카와를 선택했다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당신을 지켜줄 때도 사용했던 기술인데, 이번엔 당신을 상대로 쓰게 될 줄이야."

"저는 미야베 선생님을 신으로 추앙하는 종교의 구도자거든요. 예전에 누군가 ‘미야베 작가가 목표야?’라고 물으셨는데 목표라니 말도 안 돼요. 어떻게든 치열하게 연구하고 공부해서 그 길을 따라가 보자고 생각할 뿐이지요. 저는 원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좋아했거든요. 그러다가 미야베 선생님의 소설을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모 저택 사건』과 ‘미시마야 시리즈’를 정말 좋아합니다. 어른들이 읽을 수 있는 판타지이자 미스터리이며…… 아, 너무 좋아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예요. 이 이야기들은 다른 작가가 썼다면 현실성이 없는 설정이 되기 쉬웠을 텐데, 현대의 학생이 2.26 사건 당시로 타임슬립하는 이야기도 미시마야에서 기이한 체험이나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다는 이야기도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이 쓰니까 리얼해 보이는 것이겠죠. ‘이 장르의 작법에 따라 썼습니다’가 아니라 장르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미야베 미유키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이 쓸 수 있는 내용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문장으로 쓰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는 신카와 호타테. 그가 장차 미야베 미유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대가의 반열에 오르는 순간을 저도 목도할 수 있기를. 멀리서나마 바라봅니다.

이판사판이란,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합쳐진 말로 불교 용어입니다. 조선이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를 탄압하자 계급의 사다리 아래로 추락한 승려들은 살 길을 도모해야 했지요. 이때 잡역에라도 종사하며 사찰을 유지하고 불법의 맥을 잇던 ‘사판승’과,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참선을 통한 수행으로 불법을 잇던 ‘이판승’으로 각각 나뉘었다고 합니다.

조선이라는 파고를 통과하여 지금의 불교가 있기까지, 불법의 맥을 잇기 위해 자신들의 소임을 다한 사판승과 이판승의 역할은 지대했지요. 한데 오늘날 ‘이판사판’은 ‘끝장’을 의미하는 말로 전이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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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칠 줄 모르는 비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9월인데도 숨 막히는 무더위가 계속되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까지 미지근했다. 화장터 여자 화장실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조사 대상은 도로공사를 수주한 건설사였다. 담합하여 서로 돌아가며 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도요시마는 공사를 발주하는 시청 직원이어서, 참고인으로서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노인들이 밀실에 모여 뭐든지 다 정해 버립니다. 이런 짓은 이제 막아야 해요. 일본이라는 나라가 금방 못쓰게 될 겁니다. 의욕 있는 젊은이가 창업을 하고 열심히 영업한들 소용없습니다. 수십 년간 내려온 지역 인맥에 들어가 노인들의 인정을 받고 밑바닥 생활을 거치고 나야 겨우 수주할 기회가 돌아옵니다. 그런 시스템이 완성되어 버렸어요.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처럼 계속 달리는 체제.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 막아야 합니다."

고쇼부는 종합직 채용, 이른바 캐리어 출신이다. 일반직 채용이며 논캐리어인 시로쿠마보다 승진 속도가 빠르다.

같은 연차에 입사했는데도 고쇼부는 계장이고 시로쿠마는 계원이다. 의견이 갈릴 때는 고쇼부의 의견이 우선시될 게 분명하다.

정의를 외면하지 않으려 했던 정보 제공자가 얼마나 어두운 길을 걸어야 하는지 고쇼부는 모르고 있다. 인맥으로 똘똘 뭉친 지역 사회에서 빠져나와 고발을 하는 일이 얼마나 큰 두려움을 동반하는지. 얼마나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지. 고발 후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랭킹이 매겨지는 경쟁의 장에서는 그런 묘한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어쨌거나 얼른 정리나 합시다."

직접 손을 댄 사업이 쑥쑥 자라면 배 속에서부터 행복감이 차오른다. 힘차게 빨대를 빠는 입가는 일그러져 있지만 그것은 운카이 나름의 미소였다.

호텔이 납품업자에게 과도한 요구를 해 왔다는 사실은 증거를 보더라도 분명한데 그런 거래 상대를 왜 속박할까. 남들 눈을 피해 폭행을 일삼는 애인에게 오히려 집착하며 관계를 끊지 않는 피해자 같지 않은가.

어릴 때부터 가라테를 수련해 온 시로쿠마는 승부의 엄격함을 몸으로 배웠다.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 안 될 때도 있다. 컨디션의 소소한 차이나 타이밍으로 승패가 갈리기 때문에 임기응변과 집중력, 절대 지지 않겠다는 강한 승부욕이 중요해진다.
하지만─약자가 패배하고 강자가 승리하는 세상이어도 과연 괜찮은 걸까.
가슴속에 의문이 똬리를 틀고 있지만 일손을 멈출 수도 없다.

늘 그랬다. 앞장선 적도 없는데 어느새 구정물을 뒤집어쓰는 역할을 떠맡는다. 학창시절에 학급에서 담당자를 정할 때도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제일 귀찮은 역할로 떠밀렸다. 늘 잡다한 동네일을 도맡는 어머니 미나에를 한심하게 생각하곤 했는데, 어머니를 닮은 자기 처신이 싫었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못하니까 번거로운 일만 떠맡게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 물렁함이 내 생활 구석구석을 침범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 사회는 대련 같은 게 아니잖아요. 약한 사람이 지고. 이번에는 아쉽게도 제가 졌네요, 라는 말로 끝나지 않죠. 진 쪽은 치명상을 입고 죽음에 이르기도 해요. 경쟁이란 게 그렇게 좋은 걸까요? 강자가 이기고 약자가 지는 거. 그런 세상이어도 괜찮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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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한심한 소리니. 좋아서 한 일을 두고 이제 와서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다. 이사할까 말까 망설이다 어쩔 수 없이 택한 집도 아니고 마음에 쏙 들어서 이사했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해야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해! 정신 똑바로 차려!"

"네 형부 말이야, 어쩌면 바람을 피우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활짝 갠 8월 오후,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보리차를 마실 때 언니가 불쑥 말했다. 깜짝 놀라 언니의 옆얼굴을 돌아보았지만, 언니는 평소와 다름없었고, 불안에 사로잡히거나 감정적으로 흥분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안색도 좋았다. 볼살이 도톰하게 올라 있기까지 했다.

죽은 여자와 외도하는 건 애초에 가능한 일도 아니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나는 그날 차가운 안개비가 내리던 밤, 퇴근한 형부가 이웃집에서 나오던 모습을 떠올렸다. 택시가 멈추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고 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집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형의 것인 줄 알면서도 나는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다. 이에서 딱딱 소리가 날 만큼 무서웠지만 그것은 비명을 내지르게 만드는 종류의 공포는 아니었다. 이승과 저승이 한순간 통할 때의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공포라고 하면 좋을까. 도망치고 싶어지는 공포가 아니라 그 자리에 못 박힌 듯한…… 무섭지만 시선이 빨려 버리는 듯한 그런 공포였다.

하지만 죽은 첩은 분명히 나에게만 제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뭔가 헤아릴 수 없는 목적이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뭔가를 호소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제 모습을 생전의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을까. 육신을 잃은 채 고독에 시달리며 망연히 빈집을 헤매고 있기가 쓸쓸했던가? 이해받고 싶었던 걸까.

선명한 붉은색을 칠한 네모난 틀 안에 한 여인을 그린 것이었다. 네모난 창틀 주위에는 나뭇잎으로 보이는 검은 그림자가 무늬처럼 여러 개 흩어져 있다. 창틀 안에 그려진 여인은 뒤로 단단히 맨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두 눈을 크게 뜨고 먼 데 있는 뭔가를 응시하고 있다.

여자가 입은 옷이 비백 무늬 유카타임을 안 순간부터 나는 그림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럴 리 없다, 우연이다, 하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너무나 충격적이라 위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승과 저승을 잇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음매 같은 것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 이음매에는 언제나 그 여자가 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많은 일들을 떠올려 봐도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고 아무런 설명도 들은 적 없지만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오싹해지곤 한다. 동시에 한없이 그립고 감미롭기까지 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젊은 날의 아득한 정경이 거기 있다. 내가 죽어 재가 되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타오르는 듯한 불길한 저녁놀이 비치는 창문에 이번에는 내 모습이 비쳐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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