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신화 11 - 제3부 개벽
이현세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훗날, 12세기에 나타났던 영웅 징기스칸은 겨우 10만 군대로 세계를 재패했다. 그것은 적을 포로로 잡아그 군대를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번 기세가 꺾인 군대는 대부분 항복했고, 결사전이란 그리 흔한 전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징기스칸은 처음에는 몽골군으로 적을 쳤지만 그후로는 대부분 현지 포로군으로 정복전을 치러냈다.
이처럼 황제 헌원군이 번번이 치우군에게 패했다지만 실은 한번 전투에서 수백 명 내지 수천이 죽거나 포로로 잡혀가는 것 말고는 큰 손실을 입지 않았다. 패하고 나면 헌원은 다시 이를 물고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기를 수없이 했다. 그 사이 황제 헌원의 군대는 철기문명을 받아들였고,
천군 포로들을 통해 군사 전략이나 무기 제조법을 배웠다.
그가 비록 치우에게 끝내 무릎을 꿇었다지만 실은 이미 그들은 천군에 맞먹는 전략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 황토인은 결국 중원을 차지하였고, 승리한 천족은 한반도에 주저앉고 말았다. 결과적으로는 말이다.
역사의 흐름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승리하고도 졌다니...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진 게 아닌지도 모른다. 아직도 역사는 흘러가고 있으니까.
역사의 강은 어느 순간에 물줄기를 확 바꿀지 모른다.
우리 조상들의 무덤이 있고, 살던 터가 있고, 조상들이 마시던 물과 바람이 있는 땅이 저 멀리 다른 나라에 포함되어 있는 한 우리는 언젠가 눈을 뜨고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어쭙잖은 중화사관(中華史觀)과 식민사관(植民史觀)에 무릎꿇고 감히 주장을 하지 못했다. 조선 5백 년 내내 그러했고, 20세기에도 그러했다. 역사는 순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길게 멀리, 깊게 보아야한다. 역사는 점(點)이 아니라 선(線)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흐름이 끊기는 강줄기가 아니다.
역사는 한강보다 길고 황하(黃河)나 장강(長江)보다 길다.
그러므로 몇몇 부족의 소멸(消滅)은 간혹 있어도 역사가정지하지는 않는다.
탁록벌을 적셨을 물줄기는 오늘도 도도히 흐르고 있으며,
고구려군의 함성에 물결을 쳤던 압록강은 푸른 물줄기를한 번도 그친 적이 없다.
5천 년 전의 이야기라고 해서, 그런 엄청난 세월이흘렀다고 해서, 그 역사가 화석(化石)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호호탕탕 흘러가는 황하의 강물처럼...
그 비옥한 탁록의 뜰에서는 사람이 태어나고 풀이 자라고 바람이 분다. 그렇게 흘러온 5천 년의 역사는 결코 이끼가 끼지도 않으며 탁해지지도 않는다.

천국(天國)의 신화(神話)는 그러한 역사의 강을 타고 우리 후손들을 향하여 쉼없이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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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1925년~1980년
1955년 『현대문학』에 <가을의 노래>로 박두진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왔다. 향토적인 사물이나 지나쳐버리기 쉬운 것들을 시적으로 여과시켜 전원적 • 향토적인 서정의 세계를 심화하였다. 한국적 정서를 간결한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시인으로 평가받으며 《싸락눈>, <강아지풀>, <먼 바다》 등의 시집을 발표했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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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12세기에 나타났던 영웅 징기스칸은 겨우 10만 군대로 세계를 재패했다. 그것은 적을 포로로 잡아그 군대를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번 기세가 꺾인 군대는 대부분 항복했고, 결사전이란 그리 흔한 전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징기스칸은 처음에는 몽골군으로 적을 쳤지만 그후로는 대부분 현지 포로군으로 정복전을 치러냈다.
이처럼 황제 헌원군이 번번이 치우군에게 패했다지만 실은 한번 전투에서 수백 명 내지 수천이 죽거나 포로로 잡혀가는 것 말고는 큰 손실을 입지 않았다. 패하고 나면 헌원은 다시 이를 물고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기를 수없이 했다. 그 사이 황제 헌원의 군대는 철기문명을 받아들였고,
천군 포로들을 통해 군사 전략이나 무기 제조법을 배웠다.
그가 비록 치우에게 끝내 무릎을 꿇었다지만 실은 이미 그들은 천군에 맞먹는 전략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 황토인은 결국 중원을 차지하였고, 승리한 천족은 한반도에 주저앉고 말았다. 결과적으로는 말이다.
역사의 흐름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승리하고도 졌다니...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진 게 아닌지도 모른다. 아직도 역사는 흘러가고 있으니까.
역사의 강은 어느 순간에 물줄기를 확 바꿀지 모른다.
우리 조상들의 무덤이 있고, 살던 터가 있고, 조상들이 마시던 물과 바람이 있는 땅이 저 멀리 다른 나라에 포함되어 있는 한 우리는 언젠가 눈을 뜨고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어쭙잖은 중화사관(中華史觀)과 식민사관(植民史觀)에 무릎꿇고 감히 주장을 하지 못했다. 조선 5백 년 내내 그러했고, 20세기에도 그러했다. 역사는 순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길게 멀리, 깊게 보아야한다. 역사는 점(點)이 아니라 선(線)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흐름이 끊기는 강줄기가 아니다.
역사는 한강보다 길고 황하(黃河)나 장강(長江)보다 길다.
그러므로 몇몇 부족의 소멸(消滅)은 간혹 있어도 역사가정지하지는 않는다.
탁록벌을 적셨을 물줄기는 오늘도 도도히 흐르고 있으며,
고구려군의 함성에 물결을 쳤던 압록강은 푸른 물줄기를한 번도 그친 적이 없다.
5천 년 전의 이야기라고 해서, 그런 엄청난 세월이흘렀다고 해서, 그 역사가 화석(化石)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호호탕탕 흘러가는 황하의 강물처럼...
그 비옥한 탁록의 뜰에서는 사람이 태어나고 풀이 자라고 바람이 분다. 그렇게 흘러온 5천 년의 역사는 결코 이끼가 끼지도 않으며 탁해지지도 않는다.

천국(天國)의 신화(神話)는 그러한 역사의 강을 타고 우리 후손들을 향하여 쉼없이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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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1912년~1996년
본명은 백기행,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시들을 발표했다. 1938년 시집 (사슴)으로 문단에 데뷔하였고, 토속적이고 민족적인 작품으로 특이한 경지를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광복 이후에는 고향인 북에 머물렀으며, 대표작으로는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모닥불>, <고향> 등이 있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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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도시가 아니다, 우주다Lutetia non urbs, sed orbis"

"나는 나폴레옹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히틀러

파리시 문장에 적힌 라틴어 모토는 "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는다Fluctuat nec mergitur", 즉 시련이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뜻이다. 2015년 파리에서 테러가 일어났을 때 파리 시민들은 이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침묵시위에 나섰다.

런던의 상징 빅 벤Big Ben 옆에는 전차를 몰고 있는 여인의 동상이 서 있다. 오른손에 창을 쥔 여인과 그녀를 보필하는 여성 2명의 모습이 보인다. 동상의 주인공이 여인인 것으로 보아 언뜻 대영 제국의 초석을 놓은 빅토리아 여왕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동상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브리튼섬의 원주민이었던 켈트족의 여왕이다.

그녀의 이름은 부디카Boudica다. 그녀는 로마의 지배에 항전한 켈트족의 여전사이자 여왕, 혹은 왕비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부디카는 지금의 노포크Norfolk 지역에 살던 이케니 부족의 족장 프라수타구스Prasutagus의 부인었다.

"로마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들은 우리보다 많지도 않고 용감하지도 않다. 게다가 이 나라는 우리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반대로 그들은 우리의 땅을 잘 모른다. 우리는 헤엄을 쳐서 강을 건널 수 있지만, 저들은 배를 타고 건너기에도 힘들어한다. 저들을 추격하여 우리의 자신감을 보여주자! 저들이 산토끼나 여우라면 우리는 그들을 뒤쫓는 사냥개나 늑대들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부디카라는 이름이 켈트어로 ‘승리’를 의미한다고 한다.10 훗날 대영 제국의 상징인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 역시 라틴어로 ‘승리’를 의미한다. 켈트족의 승리의 여신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빅토리아 여왕은 명실상부한 승리의 여신이 되었다.

"파리는 프랑스이다. 그 위대한 나라의 모든 중요한 관심사는 수도에 집중되어 있다. 독일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우리에게는 그런 도시가 없다. 우리는 ‘여기가 곧 독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곳도 가지고 있지 않다."
괴테

탁록벌을 적셨을 물줄기는 오늘도 도도히 흐르고 있으며,
고구려군의 함성에 물결을 쳤던 압록강은 푸른 물줄기를한 번도 그친 적이 없다.
5천 년 전의 이야기라고 해서, 그런 엄청난 세월이흘렀다고 해서, 그 역사가 화석(化石)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호호탕탕 흘러가는 황하의 강물처럼...
그 비옥한 탁록의 뜰에서는 사람이 태어나고 풀이 자라고바람이 분다. 그렇게 흘러온 5천 년의 역사는 결코 이끼가끼지도 않으며 탁해지지도 않는다.

스페인 내전 최후의 보루

《이방인》을 쓴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정의도 패배할 수 있고, 무력이 정신을 굴복시킬 수 있으며, 용기를 내도 용기에 대한 급부가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바로 스페인에서."

서양 문명을 지탱하는 2개의 기둥이 있다. 첫 번째 기둥은 기독교로 대표되는 헤브라이즘Hebraism이고, 두 번째 기둥은 그리스 문명을 가리키는 헬레니즘Hellenism이다. 이 두 기둥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 서양 문명, 나아가 서양인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어렵다.

헬레니즘은 인간 중심, 현세 지향, 자유, 다신교, 디오니소스 같은 키워드로 대표되는 반면, 헤브라이즘은 신 중심주의, 내세 지향, 일신교, 아폴론 같은 키워드로 대표된다. 두 문명의 정신을 대비하는 신 중에서 아폴론은 냉철한 이성을 상징하며, 디오니소스는 감성적인 인간의 본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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