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석기시대에서 자동차시대까지 수천수만 년의 시간을지나오면서 우리 선조가 쏟아부은 노력, 먼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서양인을 이끌어온 역사의 무게를 잊고 있다.
우리는 자동차나 비행기를 만들고 그 사용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 같은 기계류에 대한 애착을 사람의 마음속에 만들어내는 일은 단숨에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적어도 몇세기는 걸려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 아이작 디네센, 아웃 오브 아프리카 중에서 - P268

산더미처럼 쌓인 재고를 줄이는 방법 등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그 사례 중 하나로 국가가 수출하는 커피에
100퍼센트의 세금을 붙여서 그 세수로
재고를 사들이고 그 후 폐기하는 것이었다. - P307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헤스가
유대인을 가스실로 몰아넣으며
‘목욕이 끝나면 따뜻한 커피를 주겠다‘고 거짓 약속한 이유 - P313

오래전 도스토옙스키가 궁핍한 밑바닥 생활을 하며 신음할 때
‘내가 지금 한 잔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라고 절규한 울림을 그럽게 떠올립니다. - P314

"내 그림자를 벗 삼아 마시다보니 혼자서 다 비우고 어느 틈에 취해버렸네"
도연명 - P314

저 계곡 아래로 길을 나서기 전에
커피 한 잔만 더.
떠나기 전에 커피 한 잔만 더, 커피 한 잔만 더.
-밥 딜런, <커피 한잔더>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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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독일이 뒤늦게 제국주의적 식민지 경쟁에뛰어든 이유는 피임기구 개발이 늦어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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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 섬 아침이슬 청소년 1
시어도어 테일러 지음, 김석희 옮김 / 아침이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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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폭발용과 수중폭발용 원자폭탄 두 발이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조립되었다.
이 연구소는 1945년에 트리니티에서 
시험 폭파된 폭탄과 일본에서 실제로  투하된 폭탄을 제작한 곳이었다.
새로 조립된 폭탄들은 콰잘린 섬으로 가는 배에 실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차로‘라는 작전명은 실로 적절했다.
이 작전과 함께 과학은 핵 시대로 가는 문을열었고, 인류는 핵의 평화적 이용으로  이어지는 길과 지구 전체의 죽음과 파괴로  이어지는 길이 엇갈리는 교차로에 서 있었다.
-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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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왜 느닷없이 커피 수입을 전면 금지했을까?
자신이 내린 대륙봉쇄령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는데, 커피가 최적의 척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 P223

여하튼 이 모든 것이 나폴레옹이 내린 대륙봉쇄의 결과였다. 독일 낭만주의 작가이자 음악가, 법률가였던 호프만(E. T. A.Hoffmann)은  1809년을 시대 배경으로 한 
단편「기사 글루크(RitterGluck)」의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넣어 이 시대의 향취를짙게 자아냈다.

사탕무로 만든 커피향기가 자욱하게 퍼졌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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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 무스타파파샤가 이끄는 오스만제국의 대군이
아드리아노플을 출발한 것은 1683년 3월 30일의 일이다.
이는 제국이 탄생한 이래 가장 사치스러운 출전으로 기록될 만했다. - P151

1669년 11월에 이루어진 루이 14세의
오스만튀르크 대사 접견 장면은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당시 대사의 나이는 쉰 살, 언동에 무게가 있고 기품이 넘쳤다.
접견은 유례없이 호화롭게 진행되었다. - P156

영국과는 달리 카페의 발전도 여성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왜 그럴까? 아마도 프랑스에서 맨 처음 커피를 받아들인 이들이 베르사유궁의 귀족부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 P167

그해, 프랑스혁명 무대를 준비하는
‘지나가는 사람 역할‘ 배우가 아르메니아인 복장으로
파리에 돌아왔다. 그는 바로 장 자크 루소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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