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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노는 내 눈을 응시하며 잠시 침묵하더니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원고지 뭉치의 맨 첫 장을 내게 건넸다. 거기에는 소설의 제목이 적혀 있었다. ‘만가(卍家) 살인 사건’.

"앞으로는 이런 소설의 시대가 옵니다. 저는 이 소설로 혁명을 일으킬 겁니다." - P-1

"저주는 존재합니다. 그리고 지금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 P-1

나는 전에 살던 세계에서 내가 해 왔던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대체 무엇을 그리도 열심히 해 온 것일까. 소설을 통해 매력적인 세계를 구축해 보려 했지만, 매력적이란 게 과연 무무엇일까.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세계? 그렇다면 언제쯤 만족하게 되는 걸까. - P-1

꽤 오래전,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세계를 만들려고 했다. 그것이 행복이었다. 그 세계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었다. 나 자신이 기분 좋게 놀 수 있는 곳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 P-1

감정을 잊어버린 게 언제부터인지 생각해 보았다. 너무도 아득한 옛날의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모래사장에 성을 쌓고 있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눈 같은 건 개의치 않는다. 그 아이의 성은 그 아이에게만 보이는 것이다. - P-1

나는 지난날 내가 만들었던 몇 개의 모래성을 떠올렸다. 슬프게도 나는 그 성들을 모조리 내 발로 밟아 무너뜨렸다. 그때 내가 내뱉은 말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 P-1

"누구라도 나이를 먹으면 지난날의 놀이터가 그리워지는 법이지. 하지만 그뿐이야. 그보다 나는 네가 기억해 냈으면 해, 그 놀이터를 버린 건 다름 아닌 너였다는 사실을. 누가 명령해서 한 일도 아니야. 네가 자신의 뜻에 따라 결정한 것일 뿐." - P-1

"그런지도 모르지. 하여간 이번에는 전처럼 여기를 봉인하고 싶지 않아.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는 나만의 놀이터로 남겨 두고 싶어." - P-1

나는 다시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WHO DONE IT?’이라고 새겨진 문구를 유심히 바라봤다.
‘살인범은 누구인가?’ - P-1

살해당한 건, 말할 필요도 없이 그 미라다. 그리고 그 미라의 정체는 다름 아닌 명탐정 덴카이치다. - P-1

전에 이 세계를 떠나면서 나는 그를 죽였다. 그때 내가 내뱉은 대사를 지금도 선명히 기억해 낼 수 있다. - P-1

"명탐정 따위는 필요 없어."

나는 그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고 나서 그의 이마에 총을 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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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등과 램프의 빛이 닫혀 있던 어둠 속을 비집고 들어갔다. 안으로 한 걸음 내디딘 순간 나는 그만 움찔하며 비명을 지를 뻔했다. 바로 눈앞에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물론 살아 있는 인간은 아니었다. - P-1

"범인은 누구일까요, 탐정님. 그는 왜 살해됐을까요?"
"글쎄요……, 그런 거라면 150년 전의 탐정에게 부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 P-1

"그거야 뻔한 것 아닌가. 역사를 손에 넣으려는 거지. 기념관을 산다는 건 이 마을의 역사를 사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 P-1

"이렇게 거창한 집이 여기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답을 어디서 찾아야 하지?" - P-1

"여기서 왜 영화 얘기가 나오지?"
"영화 얘기 안 했는데요."
"했잖아. 트릭인가 뭔가."
"네? ……그건 살인 트릭을 말한 건데요."
"살인 트릭? 뭔데, 그게?"
"뭐라니요. 그걸 지금……." - P-1

"풀 수 있고말고. 인간이 만든 트릭을 인간이 풀지 못할 이유가 없어."

"마음대로 상상하는 거야 자유지만 더는 개입하지 말게. 이건 현실의 사건 아닌가. 마법 얘기는 소설 속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거참, 전형적인 유산 다툼이로군.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미도리의 등을 살짝 밀어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건 그렇고 미즈시마 씨가 죽다니, 정말로 뭐라고 해야 할지. 인생이란 건 계단을 손으로 더듬어 가며 올라가는 거라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에겐 돌연 무대의 막이 내려진 셈이지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불과 며칠 사이에 살인 사건이 두 건이라니. 더구나 모두 자네가 찾아간 상대야.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는 거야?"

"그렇게 말씀하시면 곤란하죠. 저도 이만저만 당황스러운 게 아니라고요. 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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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연료를 수송하는 트럭을 미행하며 비디오로 찍어 달라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장난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냥 상상 속에 묻어 버렸다. - P-1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멋대가리 없는 건물. 중앙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 쓸데없이 넓기만 할 뿐 장서 규모는 그다지 자랑할 것이 못 된다. 하지만 소설을 쓰기 위해 간단한 조사를 하는 데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 P-1

내 책도 몇 권 꽂혀 있었다. 몇 명이나 대출해 갔나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래 봐야 자신감만 잃을 게 뻔하니까.

하지만 이 세계에서 내가 덴카이치라는 이름과 탐정이라는 역할을 부여받은 점, 게다가 나를 필요로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뭔가 필연성이 있어서 이곳에 휩쓸려 왔고 또 이런 골치 아픈 상황에 몰린 거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수수께끼를 푸는 지름길이 아닐까.

나는 봉투를 집어 들고 속을 들여다보았다. 만 엔짜리 지폐 수십 장이 들어 있었다.
"그러면 감사히."
봉투를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양할 도리가 없지.

"그거야 문 뒤쪽이 건물 바깥이니까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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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들 사이를 헤매고 있자니 꼭 묘지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 P-1

‘그래, 여기는 책의 묘지야.’ - P-1

어쩐 일인지 늘 갖고 다니던 수첩이 없다. 대신 찻집에서 가져온 성냥갑이 나오기에 거기에 메모하기로 했다. 성냥갑을 꺼내다가 성냥개비 몇 개를 바닥에 흘렸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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