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치유 라이팅북 필사 네번째
윤동주, 1917년~1945년
일제강점기에 짧게 살다 간 젊은 시인.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고민하는 철인이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옥중에서 타계하였으며 <별 헤는 밤>, <자화상>, <서시>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김영랑, 1903년~1950년
본명 김윤식, 1930년 『시문학』 동인지에 서정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어 <내 마음을 아실이>,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작품을 내며 1935년 첫 시집 《영랑시집》을 간행하였다. 잘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해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한국어의 시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시인이다.
한용운, 1879년~1944년
독립운동가 겸 승려이자 시인.
일제강점기 때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했다. <님의 침묵>의 시 전편은 고도의 상징적 수법과 여성적인 정감의 어조로 사랑을 노래한 서정시이다. 하지만그 내면에는 잃어버린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향한 강인한 신념과 희망이 담겨 있다. 사상과실천을 일치시켜 저항운동에 앞장선 대표적 민족시인이다.
김소월, 1902년~1934년
본명은 김정식. 한국의 전통적인 한을 노래한 시인이다. 짙은 향토성을 바탕으로 서정적인 작품을 발표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산유화> 등 수많은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
백석, 1912년~1996년
본명은 백기행.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시들을 발표했다. 1938년 시집 <사슴>으로 문단에 데뷔하였고, 토속적이고 민족적인 작품으로 특이한 경지를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광복 이후에는 고향인 북에 머물렀으며, 대표작으로는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모닥불>, <고향> 등이 있다.
박용래, 1925년~1980년1955년
『현대문학』에 <가을의 노래>로 박두진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왔다. 향토적인 사물이나 지나쳐버리기 쉬운 것들을 시적으로 여과시켜 전원적·향토적인 서정의 세계를 심화하였다. 한국적 정서를 간결한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시인으로 평가받으며 《싸락눈》, 《강아지풀>, <먼 바다》 등의 시집을 발표했다.
이용악, 1914년~1971년
일본 조치대학 재학 중인 1935년, 『시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시집 《분수령》과 《낡은 집》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조선 민중의 궁핍한 현실을 예민한감수성과 풍부한 사상으로 작품에 녹여냈으며, 서정주 · 오장환과 함께 3대 시인으로 불렸다.
<오랑캐꽃》, 《이용악집》 등의 시집을 펴냈다.
신석정, 1907년~1974년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불전을 연구한 신석정은 1931년 김영랑, 정지용 등과 함께 시문학』동인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전개했다. 1939년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가 수록된 처녀 시집 <불>을 통해 전원시인, 목가시인이라는평가를 받으며 동양적 낭만주의에 입각한 작품을 남겼다.
박목월, 1915년~1978년
본명 박영종, 1940년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장』에 <길처럼>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민족 정서를 깊이 있게 탐구하여 우리 민족의 감수성과 상상력의 높은 경지를 보여준 시인이다. 저서로는 박두진, 조지훈과의 3인 합동 시집 《청록집》과 개인 시집 <산도화>, <난· 기타>, <청담>등이 있다.
이병기, 1891년~1968년
시조학자이자 국문학자였던 가람 이병기는 시조 부흥운동을 주도한 한국 대표 시조 시인이다. 주시경 선생의 조선어문법 강의를 들었고, 조선어연구회와 시조회를 발족해 민족 문학을보급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시조는 낡은 규범을 그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 창작하는 것이라고주장하며 새로운 운동을 펼쳤다. 저서로는 《가람시조집》, 《가람문선》 등이 있다.
노자영, 1898년~1940년
낭만적 감상주의에 기초하여 1920년대 청춘기의 정서를 표현하는 시를 썼다. 시와 산문에서 소녀적인 취향의 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임화, 1908년~1953년
시인, 문학평론가, 영화배우, 혁명가로 활동하며 ‘조선의 랭보‘라 불렸다.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계급혁명 운동을 주도했다.
박두진, 1916년~1998년
청록파 시인 중 한 명으로 자연을 통해 시대의 부정적 가치를 비판하면서도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함형수, 1916년~1946년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했다. 불안과 비애, 사랑과동경에 관한 3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조지훈, 1920년~1968년
민족 정서를 섬세하고 우아하게 노래한 시인으로 유명하다. 청록파 시인 중 한명으로 서정적이고 동양적인 미를 추구했다
이장희, 1900년~1929년
섬세한 감각과 심미적인 이미지를 작품에 표출시킨 시인이다. 주요 작품으로 <봄은 고양이로다>, <하일소경> 등이 있다.
오장환, 1918년~1948년
15세 어린 나이에 등단하여 <성>, <헌사>, <병든 서울> 등의 시집을 냈다.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시단의 천재‘로 화려한 주목을 받았다.
박인환, 1926년~1956년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의 시를 썼고, 도시 문명의 우울과 불안을 감상적인 시풍으로 노래했다.
이상화, 1901년~1943년
식민지 치하의 민족적 비애와 일제에 항거하는 저항의식을 기조로 삼은 민족주의시인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침실로>가 유명하다.
신동엽, 1930년~1969년
<껍데기는 가라>를 쓴 1960년대 대표적인 민족주의 시인이자 참여 시인이다. 치일한 현실의식과 역사의식,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시를 썼다.
이육사, 1904년~1944년
시인이자 독립운동기. <광야>, <절정>처럼 강인하고 담대한 민족시 외에도 <청포도>처럼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작품을 남겼다.
강경애, 1907년~1943년
사회의식을 강조한 사실적인 작품으로 억압받는 하층 여성을 대변했던 식민지시기 최고의 소설가다. 1930년대 문단에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