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사이코패스 살인마 - 친밀하고 친숙한 사이코패스 살인마
박성종 지음 / 북오션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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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찬성

물론 인혁당 사건, 조봉암 등과 같이 어처구니 없는 사법 살인은 없어야 한다.
내가 존경하는, 작년에 타계하신 홍세화 선생께서는 사형제도를 반대하신다마는.....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기는 자
이런 인간들은 없어져야 한다.
교화란 웃기는 개살구다.
강호순, 유영철 같은 인간들이 교화될 수 있나. 절대 교화되지 않는다.
굳이 이런 인간들을 인간 만드느라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강호순 같은 인간을 교도소에서 편하게 먹고살게 해야 하는가
법무부 장관은 하루 빨리 강호순의 형을 집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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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는 ‘반사회성 성격 장애’로 불리기도 한다. 평소에는 정신병적 폭력성이 내면에 잠재되어 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을 제어하지 못하고 범행을 저지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살인마들의 잔혹성은 상상을 초월했다.

1991년 5월 24일, 휴스의 시체는 밀워키에 있는 노스 25번가 아파트에서 고기처럼 썰렸다. 
그곳은 훗날 17명의 남자를 죽여 ‘밀워키의 식인귀’라고 불리게 될 제프리 다머의 집이었다.

삼촌은 조증이었고, 형제 중 한 명은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또 다른 형제는 심뇌(心惱,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병)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의 이복형 또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 또 다른 친척 세 명은 모두 정신 질환을 앓았다. 어머니는 환각과 환청에 시달렸다. 그의 엽기적이고 기괴한 성향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 지지직!
"크헉!"
아주 짧게 꿈틀대던 피시는 그대로 고개를 떨구었다. 고기를 태운 듯한 냄새가 사형실 안에 가득 찼다.
그렇게 해서 숱하게 많은 어린이를 죽이고, 심지어 그 인육까지 먹었던 희대의 살인마는 쓸쓸히 그 생을 마감했다.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녀가 위험한 컬트 집단인 이른바 ‘맨슨 패밀리(Manson Family)’의 일원이라는 걸 알게 됐다. 맨슨 패밀리는 수십 명의 히피들이 찰스 맨슨이라는 전과범을 추종해 만든 단체로, 성인 32명과 아이 7명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엔 히피 문화가 유행하던 시기라, 이런 히피 집단이 여기저기서 생겨났던 것이다.

"난 그들의 지도자가 아니야. 난 그들의 아이였을 뿐이야. 왜냐고? 난 평생 감옥에만 있었어. 내 정신 상태는 어린아이인 채로 머물러 있다고. 그런 내가 무슨 범죄를 계획하겠어?"

밥은 찰스 맨슨이 악마가 된 게 단지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임신시킨 연인을 버리고 도망친 아버지란 작자의 악, 아들을 내팽개치고 술만 먹거나 도둑질을 한 엄마의 악, 학교에서 칭찬 없이 오로지 꾸짖기만 한 선생들의 악, 감옥에서 만난 수많은 범죄자들의 악, 표절을 한 뮤지션의 악, 그리고 절제하지 못하고 포주가 되거나 마약을 한 찰스 맨슨 본인의 악까지.

이 모든 악이 쌓이고, 증폭되면서 마침내 그는 희대의 악마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악은 대단히 전염성이 강해, 갓 스물의 순수한 청년들을 살인마로 만들었다.

"Get that thing away from me(그걸 나한테서 치워버려)!"

게이시는 머리가 참 좋았는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로 졸업장을 딴 뒤 명문 노스웨스턴 대학의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게이시 같은 악마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사실 어떻게 보면 그도 피해자였을 뿐이다. 성장 과정을 보면 게이시는 악마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간병 전문 간호사의 서약>
나는 진심과 충성심으로 이 직업의 명예를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
인류의 복지를 향상할 의료봉사를 수행하는 의사와 전문 간호사를 돕고,
나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 위해 항상 행동강령을 따를 것입니다.
내 힘의 원천인 하느님의 뜻에 따라, 간병 전문 간호사로서 직업 의료인들을 돕는 것이 나의 최우선 사항이자 의무가 될 것입니다.

그런 짓을 한 이유에 대한 그녀의 설명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간호사는 백의의 천사잖아요? 그래서 아프고 힘든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죠. 그런데 아이가 아프면 아플수록 그 아이를 보살피는 저의 모습이 더 아름답지 않겠어요?"

그녀는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을 가지고 있었다.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란 아동학대의 한 유형으로, 일부러 아이를 병들게 하고 그들을 보살펴 주변으로부터 칭찬받는 걸 즐기는 정신 질환이다.

필자는 그녀를 조사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 물질 만능주의, 돈이라면 양심이든 도덕이든 내팽개치는 사회, 돈이라면 인간의 목숨은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 그들은 인간이길 포기하고 점차 짐승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게 바로 인간성과 양심, 죄책감은 사라진 ‘짐승들의 사회’이다.
오늘날 우린 어쩌면 이러한 짐승 사회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데, 이유가 필요합니까?"
인간으로선 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녀석은 이죽거리며 싸가지없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이거 <공공의 적>에서 이성재가 한 대사입니다, 흐흐."

강호순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인데, 이들은 전두엽이 일반인의 15%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방의 감정이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특히 사이코패스들은 동물 학대도 예사로 하는데, 한 연구에 의하면 사이코패스의 46%가 동물 학대를 경험했다고 한다. 강호순의 경우 개 사육장을 운영하면서 개들의 목을 올가미로 졸라 죽이거나 전기충격기로 고문하면서 죽였다.

사형이 확정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2024년 현재 강호순은 여전히 감옥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른바 ‘인권’을 소중히 생각해 사형 집행을 안 하는 ‘착한’ 나라니까.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사람들은 왜 ‘인간의 의무’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을까?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 권리와 의무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뜻이다. 권리만 있고 의무가 없는 사람은 폭군이나 독재자가 될 것이고, 의무만 있고 권리가 없는 사람은 노예가 될 뿐이다.

인간이 만든 어떤 사상과 이념도 완벽한 것은 없다. 특히 종교, 사상, 이념 등이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교조화(敎條化, dogmatism)다. 십자군이나 30년 전쟁이 일어난 것도 종교의 교조화 때문이며, 조선이 망한 것도 성리학의 교조화 때문이며, 소련 및 동유럽 공산 정권이 망한 것도 공산주의의 교조화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21세기의 현대 문명도 교조화되어가고 있으며, 그 부작용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당연히 인권이란 단어도 너무나 교조화되어 있다.

요컨대 지금 우리는 인권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무인 ‘인무(人務)’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이다. 따라서 필자는 인간의 의무를 저버린 강호순은 인권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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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 세 개의 가르침

옛날에 서당 선생이 삼 형제를 가르쳤다. 어느 날 서당 선생은 나란히 앉은 삼 형제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봤다. 첫째가 대답하길 “저는 커서 정승이 되겠습니다”라고 하니, 서당 선생이 “그렇지! 사내대장부는 포부가 커야지”라고 응수하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둘째가 “저는 커서 장군이 되겠습니다”라고 하니, 서당 선생이 이번에도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아암, 그래야지. 사내대장부라면 큰 뜻을 품어야지”라고 했다. 그러고는 막내를 바라보며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라고 물었다. 막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저는 장래희망은 그만두고 지금 여기에 개똥 세 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엉뚱한 대답에 서당 선생이 “개똥 세 개? 그건 왜?”라고 물을 수밖에. 막내가 대답하길 “저보다 글 읽기를 싫어하는 맏형이 정승이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니 그 입에 개똥 한 개를 넣어주고 싶고… 저보다 겁이 많은 작은형이 장군이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니 그 입에도 개똥 한 개를 넣어주고 싶고….” 여기까지 말한 막내가 우물쭈물하니, 서당 선생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럼 마지막 한 개는?” 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기까지 말씀하신 외할아버지가 잠시 뜸을 들이시다가 나에게 물었다. “얘야, 막내가 뭐라고 했겠니?” 나는 주저 없이 “그거야 서당 선생 먹으라고 하지 않았겠어요?”라고 대답했다. “그건 왜 그러냐?” 나는 또 서슴없이 “큰형과 둘째 형의 그 엉터리 같은 소리에 맞장구치며 좋아했으니까 그렇죠, 뭐!”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에는 주저함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자 외할아버지는 나를 넌지시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마지막 세 번째 개똥은 서당 선생이 먹어야 마땅하지. 그런데 얘야,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잊지 마라. 앞으로 네가 살아가면서 오늘처럼 세 번째 개똥을 서당 선생이 먹어야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 말을 하지 못할 때엔, 그땐 네가 그 세 번째 개똥을 먹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알았어요.” 나는 작은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 번째 개똥을 하나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세 번째 개똥은 당신 몫입니다!”라고 발언했어야 마땅했음에도 침묵하고 지나갔던 나 자신을 자주 발견했다. 그렇지만 세 번째 개똥을 되도록 적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의 속내 한구석에 께름칙한 무엇인가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것은 내가 나를 ‘개똥 세 개’ 이야기에 등장하는 삼 형제 중에서 막내와 일치시킨 것과 관련되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있나?’ 나는 첫째와 둘째를 타자화했고 능멸했다. ‘그런 나는 첫째보다 글 읽기를 즐기고 있나?’ ‘나는 둘째보다 겁이 없나?’ 이런 물음들이 나를 헤집었다. 나는 글 읽기보다는 놀이를 훨씬 더 즐겼다. 또 겁도 많다. 나는 막내보다 첫째와 둘째에 가까웠다. 나는 나의 진짜 모습에 가까웠던 첫째와 둘째를 타자화하고 업신여겼던 나 자신을 되돌아봐야 했다. ‘개똥 세 개’의 등장인물이 ‘세 자매’가 아니라 ‘삼 형제’라는 점을 알아차린 건 그보다 또 한참 뒤의 일이었는데, 그러자 삼 형제의 바깥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프랑스 땅에서 가난한 난민의 처지가 되었을 때, 막내는커녕 첫째나 둘째도 아닌, 서당 마당을 쓰는 개똥이가 된 내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결 : 거칢에 대하여 | 홍세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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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일 것만 같은 광란의 역사를 만든 것도 인간이었지만, 성찰의 자세를 보여준 것도 인간이었다. 어느 때곤 그들은 소수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오늘 이만큼이라도 덜 비인간적인 사회에 살 수 있는 것은 그들 덕분이다. 그들은 항상 소수파였다.

완벽한 승리는 애당초 기대 밖의 일이었고 안타깝고 답답할 정도의 작은 진전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더 인간적인 사회’로 가기 위한 채찍질에 있다기보다 ‘더 비인간적인 사회’로 가려는 강력한 힘에 안간힘으로 맞서는 데 있었다.

걸핏하면 너희들이 ‘보릿고개를 아느냐’, ‘전쟁을 알기나 하느냐’면서 질타한다. 그들에게서 인간성을 느끼기 어렵다고 말할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인간을 사랑하는 한, 인간의 삶을 사랑하는 한, 인간다움과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그러했다. 이 땅은 나에게 실존적 고민의 한가운데서 선택한 시지프스의 바위였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상황은 마치 고릴라가 사람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하여 잘만 하면 사람을 낳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얼토당토않은 부조리의 연속이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조는 성과에 대한 조급성과 일에 대한 전문성과 지적, 논리적인 취약함을 은폐하려는 의도와 맞물려 있다.

부도덕한 사회의 도덕적 인간에게 남는 건 낭패감과 박탈감뿐이다. 정신적 공황을 피할 수 없었고 올바른 생활은 개그가 되었다. 차차 부도덕한 사회의 비도덕적인 개인들이 되었고 고릴라가 들어설 자리는 더욱 확장되었다.

나의 20대. 무엇을 위해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나 자신을 위해 살았다’고 말할 것이다. 20대의 젊음은 분출하는 욕망과 삶을 향한 벅찬 기대, 그리고 낭만적 사랑에 대한 예감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시절에 20대를 맞아야 했던 우리 세대는 억압된 욕망과 자유 그리고 인간과 삶에 대한 회의의 시작을 의미했다.

대신에 우리에겐 자유와 민주의 복원에 대한 열정과 인간의 존엄성 회복에의 열망이 있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자유 역시 사회적 제 관계 속에서 지나치게 구체화되고 개별화되어 마치 상대적 가치인 양 그 실용성이 강조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절대적 가치로서의 자유를 부정하거나 잊어버려선 안된다.

그렇게 자신을 위해 살았다. 영혼을 떠나보내지 않고. 그래서 아픔은 있었지만 후회는 없다. 충분히 공부하지 못한 아쉬움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 남을 것이지만.

그래서 지금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무엇보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성의 항체를 기르라는 것이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모두 쉬운 길을 택한다. 그러나 삶은 단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 그 소중한 삶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 그것은 그대에게 달려 있다. 자유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물신의 품에 안주할 것인가.

다시금 강조하건대, 그것은 일상적으로 그대를 유혹하는 물신에 맞설 수 있는 가치관을 형성하는가와 자기성숙을 위해 끝없이 긴장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 땅에서 억울한 사람들이 수없이 죽었다는 것을. 이 땅이 학살의 땅이었다는 것을. 일제 강점기에 이은 분단과 전쟁,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일이 불가능한 시대였다. 학살의 기억은 살아 있었고, 사람들은 집단 속에 숨어 침묵을 지키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터득했다. 특히 양심, 정의, 인권, 인간성은 단호하게 멀리 해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다른 가치를 따르는 것을 변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가치관이 바뀐 것이 아니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을 ‘이성을 가진 동물’이라고 했던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였는데 인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합리적 동물’이기보다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고, 그래서 우리가 내면화하고 일상화한 합리화의 속살은 대개 ‘현실적 성공’과 ‘명분’이라는 떡을 양 손에 쥐겠다는 욕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 우리의 인생은 실패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그 기억만으로도 우리는 평온하게 눈을 감을 수 있다."

어느 소설의 주인공은 말했다. 역사는 아주 더디고 지루하게 조금씩 바뀐다고. 맞는 말이다. 그래서 변화에 대한 믿음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한 삶인가에 대한 선택이 스스로를 지켜내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거듭 확인해야 할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스스로 바뀌고, 또 권력을 장악한 뒤에는 더 바뀐다. 세상은 바뀌지 않은 채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만 바뀌는, 이 조화는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긴장은 긴(緊)과 장(張)이 합쳐진 말이다. 내가 말하는 긴장은 문자 그대로 ‘긴’과 ‘장’이 합쳐진 것으로 ‘줄어듦’과 ‘베풂’ 사이의 균형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긴장(緊張)한다’고 말할 때처럼 오로지 ‘긴(緊)’만 뜻하는 게 아니다.

침묵은 때로 타인의 잘못된 선택에 편승해 열매를 탐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내면에 감춰진 자신의 욕망에 대한 면죄부가 되기도 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기 위한 유보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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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하는 학생과 공부 못하는 학생의 차이는 시험 본 다음에 잊어버린 학생과 시험보기 전에 잊어버린 학생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학교와 교실이 차별과 억압을 ‘익히는(習)’ 곳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가령 한국의 일부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노동자의식은 ‘의식적인 노동자의식’일 경우가 많다. ‘단결’, ‘투쟁’이 적힌 조끼를 입고 〈임을 위한 행진곡〉, 〈철의 노동자〉를 함께 부를 때나 노동자의식을 확인한다. 이와 같은 소수의 노동자들조차 일상을 지배하는 의식은 소시민의 것이다. 노동자로서의 익힘, 즉 ‘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환경과 일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그래서다. ‘사람은 어렸을 때 형성된다’라는 교육 금언을 생각하면 어렸을 때의 교육환경과 일상이 이웃에 대한 배려나 인권의식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막대한지 알 수 있다.

공부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소설책이든 교양서든 책을 읽을라치면 ‘공부 안 하고 뭐 하냐?’라는 지청구를 들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면서도 책은 안 읽거나 못 읽는 현실, 이것이 우리 학생들의 일상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명제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명료하다. 나는 사람이다. 따라서 사람에 관해 알아야 한다. 사람에 관한 학문, 곧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사회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곧 사회과학을 공부해야 한다.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역시 분명하다. 사회 안에서 주체적 자아로 살기 위해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가 주체적 자아를 지향하는 나에게 요구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사회를 보는 눈 뜨기’를 위한 학문인 인문사회과학에는 원래 정답이 없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노동이란 육체노동, 공장노동을 뜻하고 그래서 ‘하지 않는 게 좋은 것’으로 인식하는 수준에 가깝다. 대부분 노동자가 될 학생들이 일찍부터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을 형성하는 것이다.

학생들을 등수로 줄 세우는 대신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글쓰기다.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 이전에 독서와 글쓰기가 사라진 중고등학교의 ‘미친 교육’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뜨는 만큼 자아의 세계가 확장된다. 학생들에게 인간과 사회에 관해 자기 생각과 논리를 갖게 해야 한다. 학생들은 사물과 현상에 관해 자기 생각과 논리를 펼 때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다녔던 국민학교의 ‘국민’은 본디 ‘일제 천황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국민’을 말했다. 일제는 독립운동을 하는 조선인들을 불령선인이라 했고 ‘비(非)국민’이라고 불렀다.

첫째 목적이 의식을 통제하는 데 있었다면, 둘째 목적은 몸을 통제하는 데 있었다. 몸의 통제가 의식을 통제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 미셸 푸코가 강조한 바 있다. 마지막 셋째 목적은 식민지 중하급 관리자, 즉, 식민지 관리를 위한 마름 양성에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출세한’ 사람 대부분이 일제부역자가 되었던 것은 출세하려면 박정희처럼 몸과 정신이 모두 일본인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군국주의 일본의 이러한 목적에 가장 적합한 학교가 군사학교였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학교의 보편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학교 건물 구조가 병영 구조와 같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교문 옆 수위실은 위병소고, 운동장은 연병장이고, 구령대는 사열대다. 일제가 망한 뒤에 일제부역 세력을 청산하지 못했듯이 민주공화국이 선 뒤에도 일제시대의 학교구조는 그대로 남았다.

봉건사회에서 신의 ‘명령’(order)으로 받아들여졌던 신분‘질서’(order)는 인류 역사상 인간에게 강제된 질서 중에서 가장 무섭고도 강고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공화국은 ‘군주국의 반대’라는 의미만 있을 뿐이고, ‘대통령을 뽑는 것’으로 공화국이 완성된 양 집단 착각에 빠져 있다. 주체도 없고 목표도 없고, 다만 ‘법의 권위가 지배하는 국가’의 개념만 남아 있다. 그것도 실상은 ‘법의 권위’가 아닌 ‘힘과 돈’이 지배하는 국가로.

"논리로 안 되면 인신을 공격하라."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키케로의 말로 전해진다. 토론이나 논쟁을 할 때 상대방에게 논리로 밀릴 것 같으면 상대방의 인신을 공격함으로써 자리를 모면하는 사람들을 빗대서 한 말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21세기에 "논리로 안 되면 인신을 공격하라"는 키케로의 말을 아주 잘 따른다.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뜻은 단순명료하다. 자본가는 자본가의 일상과 이해관계에 따라 자본가 의식을 갖고, 노동자, 농민은 노동자, 농민의 일상과 이해관계에 따라 노동자, 농민 의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자들 중 노동자의식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의식을 가진 극소수의 노동자들도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에 따라 자연스럽게 노동자의식을 가진 게 아니다.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이 지배세력에 의해 의식화되었던 반노동자의식을 ‘반전’시킨 특별한 계기를 통해서 노동자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오늘의 대학에서는 80~90년대와 달리, 소수에게나마 탈의식의 계기를 주었던 선배와 동아리를 만나기 어렵다.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사회비판적 안목을 갖춘 진보적 의식의 형성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 모두의 정서의 고향인 땅이 사라지는 사회, 다만 투기 대상인 ‘부동산’으로 바뀌는 사회……, 앞으로 우리 농촌도 물질과 경쟁으로 채워진 시간과 공간만 남을 것인가. 그리고 시간의 효율적 안배를 위해 앞당겨 치러내던 설 차례나 추석 성묘마저도 사라져갈 것인가.

나는 자본주의에 미래가 없다고 믿는다. 자본주의에 미래가 없는 것은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인간의 자발적 반란 때문이 아니라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 때문이라고 전망한다. 자본을 매개로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인간의 반란이 아니라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을 인간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때가 기어이 올 것이고, 그때까지도 자본주의는 탐욕스런 아집을 계속 부리겠지만 끝내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이다. 인간은 전쟁 수행자들이고 인간 문명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자연의 반란은 지배, 피지배 관계를 뛰어넘어 인간과 자연 모두의 공멸을 가져온다.

"우리는 이 땅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게 아니라 후손에게서 빌린 것이다."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는 이명박 정권이 특히 귀기울여야 할 생텍쥐페리의 말이다.

마하트마 간디였다. "신은 우리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만 단 한 사람의 탐욕도 만족시킬 수 없다"고 말했던 이는. 신조차 인간의 탐욕을 만족시켜줄 수 없다면, 무엇이 인간의 탐욕을 채워줄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공멸뿐인가.

인류가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키고 최첨단의 문명을 자랑하는 시기에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분명한 것은 인간의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전쟁 또한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동지가 지나면서 태양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을 확인한 사흘째 날이 바로 12월 25일이다.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축제일로 기념했다. 나중에 그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태양축제일은 성탄절이 되었고 그것이 유럽 전역으로 역으로 전파된 것이다.

세상에 엽기적인 일이 참 많지만 가장 엽기적인 일은 엽기적인 일을 엽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다. 한국 개신교의 주류를 차지하는 목사님들의 행태가 그런 예에 속한다.

인구 중 65퍼센트가 가톨릭이고 2퍼센트가 개신교도로 구성원의 다수가 하느님을 믿는 프랑스는 잘 사는 나라에 속하는데, 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피에르 신부는 "사람을 굳이 둘로 나누어야 한다면 믿는 사람과 믿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지는 게 아니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했다.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 했다. 군자는 하나로 획일화하지 않으면서 평화로운데, 소인은 별 차이도 없으면서 불화한다는 것이다.

볼테르의 말처럼 "우리들의 부싯돌은 부딪혀야 빛이 난다." 서로 다른 견해가 표현되어 부딪힐 때 진리가 스스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견해를, 다르다는 이유로 없애려고 하는 것은 내 견해의 정당성을 밝히기 위해서도 옳지 못한 행위다.

인간은 편함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나 특히 정의와 진실의 추구는 필연적으로 불편함을 요구한다. 일상에서 사회문제, 정의와 진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사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소수가 한국사회에서는 극소수에 가깝다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

마르크스는 "자유 언론의 일차적 조건은 산업이 아니어야 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문이 미디어산업의 하나로 머물 때, 누가 소유하고 있나에 따라 신문의 지향이 규정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68년 혁명의 열정이 아직 살아 있던 때 민중 주체 신문인 〈해방LIBERATION〉지를 탄생시키는 데 산파역을 했던 장 폴 사르트르는, "자유언론은 생존 수단이 존재 이유를 훼손하면 불가능하다"고 했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 〈해방〉지는 로스차일드가의 소유가 되었다. 체 게바라가 상업주의의 아이콘이 되었듯이 〈해방〉이 재벌 가문에 포획된 것이다.

한겨레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 한복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요구되는 긴장의 크기를 가늠케 한다. 한겨레 구성원들이 다른 언론계 종사자들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박봉을 감내하는 것은, 그것이 자유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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