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이 왜 결국 드셨냐. 이런 걱정을 하신 거예요.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래도 명색이 선비를 키운 나라인데, 나라가 망하는데 죽는 놈 하나 없으면 어떡하나. 나라도 죽어야겠다.’ 그런데 저는 매천처럼 그렇게 고매하진 못하고요. 제 앞에 열 명쯤은 대신 감옥에 가줘야 하는 거 아니냐. 대장이 죽었는데…….

이때 도청에 남은 400명의 사람들은 왜 남았습니까? 그냥 남았습니다, 그냥. 저는 역사의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가 ‘그냥’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죠. 그 사람들이 거기 남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막아낼 수 없잖아요.

광주가 저렇게 됐을 때, 김남주라는 시인이 시를 썼습니다. 그 시인은 그때 감옥에 있었어요. 감옥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자가 / 외적의 앞잡이이고 / 수천 동포의 학살자일 때 /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어야 할 곳 / 그곳은 어디인가 / 전선이다 감옥이다 무덤이다"

"나한테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거기에 응답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나마 이뤄진 거예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면서 좋은 말씀을 하셨어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글 쓸 수 있는 사람은 글 쓰고, 떠들 수 있는 사람은 떠들고, 떠들지 못하는 사람은 폰질이라도 하고, 그것도 못 하겠으면 바람벽에 대고 욕이라도 해라." 90세 노인이 그렇게
싸우다가, 정말 싸우다가 돌아가신 겁니다.

윤상원은 항쟁 최후의 최고책임자였습니다. 마지막 날 도청 2층에서 친구가 그에게 왜 여기 남으려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건 똑같다. 새벽이면 이제 죽으리란 걸 안다. 내가 여기서 죽어야 광주가 영원히 패배하지 않는다." 지도자는 역사적인 순간 그런 선택과 결단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질문 받겠습니다.

"나는 저놈의 맥아더 장군 동상을 보면 숨이 막힌다, 창피하다, 부끄럽다"라고 썼고, 강 선생님은 "부시자, 철거하자"라고 쓰셨습니다. 같은 뜻인데요. 맥아더 장군 동상은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부끄러운 거죠. 우파가 정신을 회복한다면, 제가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의 보수 세력이 제정신을 회복한다면, 스스로 철거해야 할 겁니다.

아까 보신 체포될 당시 안중근 사진을 살펴보면 외투 아랫부분 단추가 하나 떨어져나가고 없습니다. 필시 이토 저격에 성공한 그 아침 하얼빈 역 머리 어딘가에 단추는 떨어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잃어버린 그 단추 하나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모여 있는 우리의 단추 하나는 어디에 떨어져 있을까요. 우리의 선택이 그 외투에 단추 하나를 다는 일일 때 비로소 역사는 인간의 얼굴로, 정의의
얼굴로 달려 나아갈 것입니다. 3주 동안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