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두 가지 핵심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존재 이유기도 하고요. 첫 번째는 사실 전달입니다. 사실보도가 언론의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왜곡하지않고, 사실 그대로 전하는 거예요.굉장히 쉬운 것 같죠? 굉장히 어렵습니다.

두 번째 핵심 기능은 권력과 강자에 대한 감시비판 기능이에요. 특히 권력,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자본권력, 언론권력, 종교권력, 사회권력...... 소위 강자의 논리만 펴는그 권력이 우리 사회에 좀 많습니까

파업 혹은 제작 거부에 들어갈 때 선택의 갈림길이있는 거죠. 저는 그때도 그랬고, 그전에도 그랬고, 그 뒤에도 살아오는 과정에서 선택의 길목에 섰을때 항상 생각하는 게 매우 단순했습니다. ‘이게 옳은 일인가 아닌가‘, 그 생각을 했습니다. 옳다면 이 길로 가는 것이지요.

역사와 사회가 어떤 질적인 변화를 하는가, 저는 그 방향이 어느 쪽이냐는 측면에서 보자는 겁니다. 역사와 사회뿐만 아니라 개인도 그렇다고 생각하는데요. 갇힌 데서 열린 세상으로 가는 것.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이 존중되고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 하나의 이념이든 가치든 그것이 경직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고 폭넓게 받아들이는 사회. 어떤 권력이나 힘이 한 사람 혹은 소수자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분산되어 있는 사회. 권력이 분산되면서 많은 사람이 참여하여 평등사회로 가는 것. 타율의 시대에서
자율의 시대로 가는 것. 이런 역사의 질적 변화와 방향, 사회의 질적 변화와 방향이 진보라고 봅니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지요. 하나의 생각, 가치, 이념에 갇혀 있지 않고 생각을 열어버리는 것. 어떤 종교적 도그마에 빠져서 이것만이 유일한 구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열어서 다른 종교도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하나로 집중되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가는 것이 역사가 발전하는 게 아니냐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지난 4년이 어떻다는 것은 금방 규정지을 수가 있죠. 열린사회로 간 게 아니라 명박산성을 쌓아서 모두
닫아버리고, 자기와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가차 없이 목을 날려버리고, 도무지 다양성 같은 것은 인정하지 않고요.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 정연주

내 몸이 놓이는 자리의 궤적이 곧 나의 삶이다

자발적 복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말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어떤 선택을 해왔다면, 그 과정에서 붙들었고 붙들고 싶었던 것이
세 번째 개똥을 먹지 않겠다는 의지와 ‘자유인’입니다. 그저 소박한 자유인으로 사는 것이 제 삶의 선택 기준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보는 하더라도 포기는 하지 말자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생존 때문에 자아실현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두 손 모아 당부하고 싶은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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