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서 첫음절 ‘예루’는 ‘우루uru’에서 왔다. 우루는 가나안어로 도시라는 뜻의 ‘예루yeru’가 된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샬렘 신이 세운 도시라는 의미다. 두 번째 음절인 ‘살렘’에서는 히브리어의 ‘샬롬shalom’(평화)과 아랍어의 ‘살람salaam’(평화)이라는 말이 나왔다. ‘샬롬’이라는 이스라엘의 인사말과 ‘이슬람’이란 단어도 모두 여기에서 나왔다.

종교적 맹신은 광신을 낳는다. 오사마 빈 라덴이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져 저지른 테러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한 말을 되새겨 볼 때다.

"가장 완성된 인간이란 이웃을 두루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 이웃이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워싱턴의 선조가 정복왕 윌리엄으로부터 하사받은 영지의 이름이 나온다. 그 영지의 이름이 위스타네스툰Wistanestune이었다. 앙글로-노르망 방언(정복 이후 잉글랜드에 들어간 프랑스어 계열의 노르망디 방언)의 표기로, ‘물water’과 ‘장소, 마을tune’의 합성어다. 이후 ‘Wistanestune’은 영어식 표기인 ‘Wessyington(웨싱턴)’이 되었고, 다시 ‘Washington(워싱턴)’으로 바뀌었다. ton은 마을을 의미하는 말로 town과 그 뿌리가 같다. 다시 말해 워싱턴이란 지명은 ‘습기가 찬 마을’이란 뜻이다. 워싱턴의 이름에 언뜻 보이는 wash는 그 뿌리가 ‘물’에 닿아 있다. 지금도 잉글랜드 중북부의 더비셔에는 웨싱턴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 작은 마을의 이름에서 전 세계를 호령하는 미합중국의 수도 이름이 나왔다.

워싱턴은 1957년 흑인 인구가 백인 인구를 넘어선 최초의 ‘블랙 시티’이기도 하다. 흑인 민권 운동이 활발하던 1970년대에는 흑인 비율이 71%에 달했다.

워싱턴의 유권자들은 1964년 공화당 후보인 존슨 대통령을 압도적 표차로 몰아준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화당 후보를 선택한 예가 없는 유일한 지역구다. 미합중국의 수도이자 초강대국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의 특이한 일면이다.

캔버라는 헌법에 명시된 대로 시드니에서 남서쪽으로 280km, 멜버른에서는 북동쪽으로 660km 떨어진 내륙에 자리를 잡고 있다. 호주에서 8번째로 큰 도시이긴 하지만, 500만이 넘는 시드니와 멜버른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캔버라의 인구는 42만 명). 캔버라는 원주민들의 언어로 ‘만남의 장소’, ‘여자의 가슴’ 또는 ‘여자 가슴 사이의 움푹 팬 곳’이라는 뜻이다. 후자의 어원 설명은 캔버라의 지형에서 나온 듯하다.

1990년 2월 2일 남아공의 프레데리크 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마침내 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를 공식 발표한다. 그리고 9일 뒤에, 종신형을 선고받고 1964년부터 복역 중이던 흑인 인권 운동가 넬슨 만델라를 석방한다. 1994년 5월 만델라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선출되고, 긴 세월 동안 지속되던 인종 차별 정책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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