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에게 놀이는 그 자체로 즐거운 유희다. 더불어서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사회의 규칙을 습득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적응해나간다.

어린 시절부터 놀이를 통해 체화한 능력으로 인해 이들 유목 민족들은 주변의 여러 나라를 가차 없이 몰살시킬 만큼 가공할 능력을 지닌 기마 부대를 갖추게 된다. 흉노에서부터 몽골 그리고
16세기까지 존속한 티무르 제국에 이르기까지 약 2,000년간 초원의 전사들이 유라시아를 제패한 배경에는 어릴 때부터 놀이로 단련한 기마 전사로서의 실력이 숨어 있다.

〈수렵도〉에 그려진 장면은 실제 수렵 장면이 아니라 길들인 야생 호랑이를 대상으로 수렵 연습을 하는 장면이다. 일종의 사냥 놀이를 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고구려가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북방 초원의 유목 민족이 보유한 선진적인 전술과 무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덕분이다. 고구려인들은 놀이를 통해서 초원의 선진적인 기마술을 수용하고 습득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놀이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형태와 방식이 더불어 바뀐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놀이가 어떠한 형태로 바뀌든 간에 놀이를 통해서 인간이 인생을 배우고 삶의 지혜를 얻는다는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놀이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놀이에 숨겨진 가장 보편적인 호모사피엔스의 생존 본능을 건드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은 무엇일까? 직립보행, 호모사피엔스의 등장, 언어의 사용, 국가의등장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단연 농경의 도입이라고 말하고 싶다. 농경은 빙하기가 끝난 이후지난 1만 년의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았을 때 오늘날인류세를 탄생시킨 시초였다. 인간은 농경을 위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공동체를 형성했다. 이 공동체들은 이후 도시와 국가, 다양한 사회체제의 발달로 이어진다.

풍년을 기원하며 하늘에 올리던 제의와 공동체를 결속하기 위한 다양한 체제들은 농경의 부산물이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형태인 고인돌은 농경으로 인한 인류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유적이다.

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협력의 중요성을 깨달은 인류는 각종 제의를 통해 농경이 가진 단점—흉년으로 인한 기근, 사회 갈등의 증가 등—을 효과적으로 쇄신하고, 위기를 극복하면서 한층 더 단단하게 결속할 수 있었다.

한국의 씨름도 레슬링의 일종이다. 2018년, 남북한이 씨름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공동으로 등재할 때 공식적으로 채택한 영문 명칭이 ‘Korean wrestling(한국 레슬링)’이다.

맨몸으로 승부를 겨루는 형태의 격투기는 누가 원조랄 것도 없다. 전 세계 각지에서 인류의 시작과 함께 모두가 즐기던 원초적인 스포츠였으며, 특히 북방 유목 민족 사이에서 널리 발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중일 삼국이 누가 동양 격투기의 원조인지 논쟁하는 일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고대 서양의 격투 경기는 목숨을 걸고 벌이는 잔인한 경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동아시아에서 이루어진 격투 경기는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면서도 즐거움을 주는 오락이었다.

놀이로 승화된 격투 경기를 통해 당시 동아시아인들은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성을 해소했다.

맨몸으로 하는 격투기는 선사시대 이래로 인간 내면의 폭력성을 적절한 방식으로 표출하면서 재미있는 의식으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다.

축국은 네모난 경기장에서 동그란 공을 차는 방식이었기에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의 철학을 구현한 놀이로 여겨졌다.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전쟁을 멈추고 잠시 휴전하는 기간 동안 치러졌다. 올림픽이 평화의 상징인 이유다. 격렬한 몸싸움으로 승부를 낼지언정 살육의 시간을 멈춘 인류는 그 순간 평화에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축구 경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 어느 때보다 지구 곳곳에서 국가 간, 민족 간의 갈등이 극심한 요즘, ‘둥근 공’처럼 ‘둥근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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